인어를 사랑한 피에로 - 원고지 위에 펼쳐지는 디렉팅 에세이
소낙비 지음, 손지민 사진 / 시공사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여운이 오래가는 독특한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스토리보다는 원고지 위에서 자유롭게 배치된 새로운 느낌의 구성이 맘에 들었다. 한 번도 원고지 위에 그림을 그려볼 생각은 한 적이 없기에 고정관념이 또 한번 무너졌다. 쓱쓱 아무렇게나 펜으로 그려진 그림과 소품, 조명등의 실감 나는 배치는 야릇한 사실감을 더한다. 그 분위기를 타고 이야기는 더더욱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종이를 슥슥 찢어 자유롭게 북 커버를 만든 기억이 떠올랐고 그때의 느낌으로인해 이 책은 소장 욕구를 백 프로 만족시켜 주었다.

 

 

"선택은... 너의 몫이란다"

 

 

"옛날 옛적에" 라는 익숙한 첫 문장이 주는 마력은 이야기에 집중감을 더한다.
"옛날 옛적에 한 피에로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딱 한가지 소원만 들어주는 요술 모자가 있다. 그리고 그는 여왕이 지배하는 나라에 속해 있다.
만인의 총애를 받으며 살던 피에로. 그런 그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인어에게 마음을 뺏기고 그녀를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한 피에로는 인어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육지에 사는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바다 속 자유를 선택한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왕이 병에 걸리게 되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인어들이 모조리 잡혀오게 된다.
드디어 피에로는 요술 모자에게 소원을 빌게 되는데 피에로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힘은 크다. 이야기를 이야기대로 느껴도 좋지만 등장인물을 분석하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순수하고 정의로운 피에로는 이상적 인간형이다. 게다가 자신보다 사랑을 위한 열정은 감동 그 자체이다.
그와 반대로 여왕은 성실한 군주가 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권력의 맛에 굴복한 캐릭터이다. 권력 아래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행동은 이미 도덕적 선을 넘었다.
그리고 피에로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어는 자유 그 자체이다.
결국 피에로의 선택으로 권력은 무너지나 어느 한쪽의 엄청난 희생이 따랐기에 씁쓸함도 남았다.

 

 

 

딱 한 가지의 소원만 들어준다는 모자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한다.
왜 모자였을까. 지팡이나 신발이라면 또 어땠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여왕은 피에로를 꼬드기지 않았을까, 등등을 떠올리다 보면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그렇듯 다양한 콘텐츠와 모티브를 재배치하는 동안 나만의 디렉팅을 그려보는 것도 괜찮은 시도가 될 것이다.
요즘 그림동화를 보며 힐링하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복잡한 세상사에 지친 마음을 그림과 짧은 글로 달래는 것이다.
이 책도 거친 느낌의 펜화가 주는 강함과 간결한 텍스트가 주는 여백의 느낌이 힐링할 시간을 준다.
적게 보고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렇게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에 우리는 삶의 재미를 찾아가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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