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 Mice and Men (Paperback) - Penguin RED Classics
존 스타인벡 지음 / Penguin Classics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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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도에 발행된 121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분량의 고전이다. 고전은 언어나 문체에서도 도전을 주지만 현대작품에 비해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을 어느 방향에서 잘 정리해야할지 모르기도 하고, 책을 덮고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어 검색을 했다. 나의 책 제목에 대한 집착이 해결되지 않아서이다. 초반부에 Lennie가 죽은 생쥐를 끌어안고 쓰다듬는 장면이 있었으나 왜 제목이 Of Mice and Men인지 궁금했다. Lennie는 자기 집을 얻고 토끼를 기르는게 꿈인데...

검색을 해보니 제목은 스코틀랜드 시인 Robert Burns의 시에서 차용한 것이라 했다. 화자가 쥐 둥지를 쟁기로 들어 올리며 생각해보니 인간과 생쥐가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 죽을 운명의 동물이고 고통받는 삶을 산다는 면에서 다를 바 없다는걸 깨닫는다. 작고 영리한 George는 인간, 덩치 크고 힘센 그러나 바보같은 Lennie는 생쥐의 metaphor라고 했다. 제목에 관한 구글의 내용을 읽으니 궁금한 점이 풀리는 듯 했다.

난 마지막 장면에서 George가 Lennie에게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게 하면서 머리에 총을 쏴서 죽이는 장면에서 너무 놀랐다. 그를 고통없이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하며 죽이는 것이 잡혀서 린치 당해 고통스럽게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을까? 너무 슬프고 깜짝 놀랐다.

우리 사회에 Lennie같은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죽은 생쥐를 쓰다듬는 것이 좋고, 자기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른 채 힘을 가해 의도치 않게 피해를 주고, 친구의 말이라면 목숨까지 바쳐 모든걸 다하고, 토끼를 기르며 사는 것이 평생의 행복인 순수하고 외로운 사람들. 순수함을 가리고자 해도 덮을 수 없어 누구나 보면 그의 순수가 자연스레 묻어나서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George 조차 혼자 다니면 쉬운데 늘 말썽만 피우는 Lennie를 버리지 못하고 늘 함께 다녔다.

평범치 않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고단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여도 미래를 꿈꾸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sister관계라 했던가? 결국 토끼를 보살피고 쓰다듬으며 살고픈 Lennie의 꿈은 꿈으로만 남았고, 책은 불행으로 끝이 나서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이런 이유로, 절망과 실망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언제부터인가 희망을 갖고 꿈을 꾸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매력적이면서도 도도한 모습으로 고아하게 남아 빛을 발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역설적인 생각이 든다. 대공황 시기의 American Dream을 꿈꾸며 California를 찾았던 수많은 일일 노동자들이 겪었을 좌절과 절망은 헤아리지도 못한 채 말이다.

우울함을 벗기위해 이 책에 조연급으로 등장하지만 매력적인 남자 Slim에 관한 인품을 소개하는 멋진 문장을 하나 외워야겠다.

His slow speech had overtones not of thought, but of understanding beyond thought.

말투에 상대방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를 할 수 있는) 생각을 넘어 이해심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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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lp (Perfect Paperback) - 『헬프 』 원서
캐서린 스토켓 지음 / Penguin Group USA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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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야말로 page-turner였다. 깨알같은 글씨로 461페이지 분량이지만 한순간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며 읽었다. 내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책이란, 스토리로 승부하거나, 탁월한 언어적 기법을 이용한 감동적인 문장으로 사로잡거나 하는 경우인데 이 책은 전자이다.

6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흑인 여성들이 주인공이라서 영어는 비문법적 표현이 많아 오히려 힘들었지만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내려 놓지 못하게 했다. 이 책은 Invisible Man이나 To Kill a Mockingbird를 연상시켰으며, 내게 언제나 도전을 주는 단어 ‘변화’를 생각나게 했다.

‘변화’,
그 얼마나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며 설레임을 주는 말인가?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며 사는 삶을 동경하고 지향한다. 크고 작은 변화가 있어야,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우선적으로 촉매(catalyst)가 필요하다.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 그 촉매에 힘을 더 할 수 있는 용기,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내적 강인함 등등이 모아지면 변화의 물결이 보인다. 함께 하는 사람의 수가 많을 수록 변화의 속도와 강도가 빨라짐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소설의 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는 흑백인종 간의 차별을 다룬 이야기이다. 60년대 보수적인 남부 Jackson, Mississippi 지방을 배경으로 백인 여성 Miss Skeeter라는 무명작가를 촉매로 하여 Abileen, Minny포함 12명의 흑인 가사도우미들의 용기가 더해져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며 책을 발간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내용이다.

마지막, Aibileen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면서 4살난 Mae Mobley와 헤어지는 장면은 정말 눈물겨웠다. 늘 kind, smart, important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길러왔던 4살난 여자아이와 뼈아픈 이별을 해야하지만 이제 그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더 이상 가사 도우미를 할 수 없으나(지역에서 철저히 배척당함) 그래서 그녀는 이제 그 어떤 것이라도 도전할 수 있는 자유함을 얻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평생 백인 가정에서 사람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helper 역할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리라.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 안전지대에서 큰 위험부담 없이 살 것인지, 조금씩이라도 삶의 변화를 주며 나를 바꾸고 더 나아가 주변을 더 나은 장소로 바꾸며 살 것인지...

어쩌면 Miss Skeeter처럼 가족과 주변 친구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안한 삶에서,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며 무리수를 던지느냐는 사람들 속에서, 깨어서 생각하는 지성인이 있다면 이미 변화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 책 한 권이 소설 속에서처럼 백인과 흑인들의 마음에 각각 어떤 변화의 파동을 불러 왔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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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of Boy (Hardcover, Deckle Edge) - 2019 뉴베리 아너작,『더 보이』원서
캐서린 머독 / Greenwillow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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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인사치례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웬지 휴가를 안 떠나면 아니될 것 같은 시기이다. 그러나 나는 나름 책과의 지적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이 있어 그런지 전혀 부럽지 않고, 밝은 불빛을 따라 음악을 들으며 야간 산책을 하며 책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 올 한해 독서 목표의 절반도 못했고, 책을 읽는 것도 깊이 들어가 이해하기까지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라 쉬운 책을 들었는데, 기대에 마치지 못했다 ㅜ

2019년 Newbry Honor상을 받은 책이다. Medal은 받지 못했는데 대부분 나만큼 감동이 덜했기때문일까? 책 탓이 아니라 원래 환타지나 미스터리 작품 등을 평소에 읽지 않은 나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책마져 평소 편독을 했기에 생소한 소재를 만나니 흥미를 덜 느낀듯하다.

꼽추, 괴물이라 불리는 Boy라는 대 저택에서 염소를 지키는 소년이, 다른 이름이 아닌 Boy라 불리고 싶어서,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얻기위해서 천년을 기다려 지옥에서 나온 Secundus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로마 Saint-Peter- Step으로 가는 여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1350년대 배경이라서 왜 그들이 그토록 로마로 가고 싶어했는지, Rib, Tooth, Thumb, Shin, Dust, Skull, Tomb를 얻기위해 사투를 벌이는지 크게 공감은 안된다.

그러나 그 소년은 몇 개월의 여정을 통해 성장해 다른 사람이 된다. 결국 그는 놀림에서 벗어나 한 명의 소년으로 불리길 간절히 소망했는데 그 자신이 천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열등의식을 벗게 된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home도 결국 로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살던 저택이었단 것도 알게 된다.

남들이 그리 놀리던 등의 꼽추는 천사의 날개였다는걸 알게 되니 더 이상 소심해지지 않고 두려움도 없이 남을 돕는 일에 자신감이 생긴다. Because I am good이라면서.
이 책에 여러 번 반복되는 문장이, there was work to be done(해야 할 일이 있다). 천사의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외적으로 흉해 보였던 장애가 있다고 느꼈던 소년은 결국 천사였다. 천사의 날개가 그렇게 보는 사람에 따라 흉물로 보일 수도...
You are a boy to folk who would harm you. But in your heart, you’re an angel.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진데, 흉해 보이고 미워 보이는 이면에 천사의 모습이 있는걸까? 그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은 어찌 길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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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Futures : Learning from Ladakh (Paperback)
Norberg-Hodge, Helena / Rider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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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감동적인 넌픽션이다. 읽으면서 환경을 생각하니 ‘The Silent Spring’, 기술 문명의 발전을 생각하니 ‘Brave New World’가 떠올랐다. 나는 책 제목을 전체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 궁금했는데 작가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보통 오래된(ancient) 이란 단어 뒤에는 과거가 오는데 언어 유희처럼 미래(futures)를 썼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Ladakh 지방의 과거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모습을 찾자는 저자의 의도일까?

스웨덴의 언어학자인 Helena는 Little Tibet이라 불리는 Ladakh에서 16년 정도 살았다. 언어를 연구할 목적이었으나 그 지방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요약된다. 라다크의 매력, 산업화의 물결로 인한 라다크의 변화, 라다크 지역을 계기로 시작된 작가의 환경 운동

이렇게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랍다. 환경에 매우 관심이 많은 나라서 더욱 공감도 많이 되었고 어떤 식으로든 더욱 더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또한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In the name of progress and development) 우리가 잃어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책 초반부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은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만 피트가 넘은 산악지대에서, 일년 중 4개월이 여름이고 나머지는 40도가 넘는 겨울인 척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scale(규모)을 간과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부락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마을이다. 대가족 안에서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자라며, 협동과 조화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자란 그들은 정서적 안정감과 깊은 유대감이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기에 포용력과 수용력이 크다는 것이다. 그들은 궂이 내가 누구인가를 입증해 보일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한 자아 정체성을 느끼며 자란다는 것이다. 즉 정서적, 문화적, 영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이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볼 때 가난한 삶이지만 내적 풍요를 느끼며 진정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던 이면에는 불교도 큰 역할을 했다. 인간은 자연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의 섭리 안에서 일부분일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이 무(emptiness)이기에 자연 현상이나 환경을 나의 생각대로 이렇게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 그들 삶의 철학이었다. 화를 낼 줄 모르고, 화를 내는 것을 가장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삶이 정말 부러웠다.

철저하게 검소하고 그 어떤 것도 낭비하지 않으며 친환경적인 삶이 존경스럽기고 했다. 땅, 자연, 동물까지 거스르지 않는 삶, 나쁜 환경에 감정이 지배당하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랍다. 그런 그들이 세계화, 산업화, 현대화의 논리로 불어닥친 개발에 의해 외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것 같았으나, 지역적 특성, 생태학적 개발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 상업화된 라다크는 정신적으로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이나 친환경적 재료를 사용한 사례 등으로 라다크를 변모시켜 가고 있으며 의식의 전환을 통해 생태학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깨어있어 실천하는 지식인이 있기에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인지도;;;

너무 많은 것을 느꼈는데 부담이 된다. 행복, 환경, 적정기술, 실천하는 지성인.....
나는 매우 편리한 환경에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저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거라 느끼는 정도. 무엇이 나를 공허하게 만드는가?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의 척도가 아님을 알면서 무엇이든 더 가지려했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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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elds of Gold (Mass Market Paperback)
Stanley, Andy / Tyndale House Pub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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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 3가지가 있다면, volunteer, donation, charity라고 생각하고 이는 서양이 기독교를 바탕으로 건립된 나라가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한다. 기독교 문화에서 강조하는 헌금(offering)에 관한 내용이다. 사실 읽기 전에는 부담을 안고 읽었다. 교회 성경 공부 모임의 필독서라 접하게 되었는데 책 제목부터 압박을 가하는 것 같았고 웬지 모를 죄책감도 느끼며 책장을 열었는데....

봉사와 기부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서양에 비해 사실 나는,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게 부담이 되고, 가진 자만 주어야 할 것같고, 주는 것이 무슨 연례 행사처럼 생각되었다. 교회도 성실하게 다닌게 아니고, 십일조도 항상 낸 것도 아니고, 정확한 금액의 십일조를 낸 적도 없어 이 책을 읽고 나니 너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헌금을 강조하는 설교에 거부담도 있었고 투명한 재정에 의구심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인 원인은 두려움(Fear) 때문이라 꼭 집어 지적하고 있다. 수 많은 what ifs를 머리 속으로 계산하며 재정의 안전지대가 무너질세라, 두려움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인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씨앗을 잃을까하여 심지 않아 수확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 빈손으로 왔으니 현재 가진 것도 내 것이 아닐진데, 그저 주신 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명심하고, 두려움의 벽을 넘어 나누는 삶을 살 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헌금 방법을 3Ps, 아니 4Ps로 이야기한다.
1. Priority giving(생활비 쓰기 전에 우선적으로 헌금을 먼저 준비)
2. Percentage giving(일정 비율, 즉 십일조로 헌금하기) 여기서 순이익과 총액의 십일조냐 문의하는 사람들에게 후자를 권한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표현을 생각할 때 왜인지 이해는 된다.
3. Progressive giving(매년 십분의 일이 아닌 신앙의 증가에 따라 더 늘려서 헌금하기) 이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사실 영어 단어처럼 굉장히 진보적인 생각이 아닐까하여 신선하기도 했다.
4. Prompted giving(십일조 처럼 일정 금액을 정해진 시기에 내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보았을 때 즉흥적으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하는 헌금)

위 4가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는 기쁨(The Joy of Giving)을 누리며 관대하게(generously), 두려움없이(fearlessly), 목적을 가지고(intentionally) 주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재산의 많은 부분을 나눔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았던 자선사업가들의 사례도 있었다.

종교의 메세지를 논외로 하더라도,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이고 주는 것이 곧 더 큰 것을 받는 것일진데 매우 인색하게 살아온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봉사도 어쩜 삶의 부분으로 자리 잡아야하고 당연히 해야함에도 지난 토요일 아침에 일어날 때는 너무 힘들고 마치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줄 알았는데 막상 봉사하러 가서는 내가 느낀점이 너무 많았다.

더 가지려는 소유욕에서 자유함을 얻고, 나누고 베푸는 삶이 나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하는 그 날을 조금이라도 당기려면, 나의 부족함을 꼭 집어내며 부끄러운 치부를 잘 보여주는 양서를 아주 아주 많이 읽어야 할 것같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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