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감동적인 넌픽션이다. 읽으면서 환경을 생각하니 ‘The Silent Spring’, 기술 문명의 발전을 생각하니 ‘Brave New World’가 떠올랐다. 나는 책 제목을 전체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 궁금했는데 작가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보통 오래된(ancient) 이란 단어 뒤에는 과거가 오는데 언어 유희처럼 미래(futures)를 썼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Ladakh 지방의 과거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모습을 찾자는 저자의 의도일까?
스웨덴의 언어학자인 Helena는 Little Tibet이라 불리는 Ladakh에서 16년 정도 살았다. 언어를 연구할 목적이었으나 그 지방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요약된다. 라다크의 매력, 산업화의 물결로 인한 라다크의 변화, 라다크 지역을 계기로 시작된 작가의 환경 운동
이렇게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랍다. 환경에 매우 관심이 많은 나라서 더욱 공감도 많이 되었고 어떤 식으로든 더욱 더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또한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In the name of progress and development) 우리가 잃어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책 초반부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은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만 피트가 넘은 산악지대에서, 일년 중 4개월이 여름이고 나머지는 40도가 넘는 겨울인 척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scale(규모)을 간과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부락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마을이다. 대가족 안에서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자라며, 협동과 조화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자란 그들은 정서적 안정감과 깊은 유대감이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기에 포용력과 수용력이 크다는 것이다. 그들은 궂이 내가 누구인가를 입증해 보일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한 자아 정체성을 느끼며 자란다는 것이다. 즉 정서적, 문화적, 영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이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볼 때 가난한 삶이지만 내적 풍요를 느끼며 진정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던 이면에는 불교도 큰 역할을 했다. 인간은 자연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의 섭리 안에서 일부분일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이 무(emptiness)이기에 자연 현상이나 환경을 나의 생각대로 이렇게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 그들 삶의 철학이었다. 화를 낼 줄 모르고, 화를 내는 것을 가장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삶이 정말 부러웠다.
철저하게 검소하고 그 어떤 것도 낭비하지 않으며 친환경적인 삶이 존경스럽기고 했다. 땅, 자연, 동물까지 거스르지 않는 삶, 나쁜 환경에 감정이 지배당하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랍다. 그런 그들이 세계화, 산업화, 현대화의 논리로 불어닥친 개발에 의해 외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것 같았으나, 지역적 특성, 생태학적 개발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 상업화된 라다크는 정신적으로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이나 친환경적 재료를 사용한 사례 등으로 라다크를 변모시켜 가고 있으며 의식의 전환을 통해 생태학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깨어있어 실천하는 지식인이 있기에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인지도;;;
너무 많은 것을 느꼈는데 부담이 된다. 행복, 환경, 적정기술, 실천하는 지성인.....
나는 매우 편리한 환경에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저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거라 느끼는 정도. 무엇이 나를 공허하게 만드는가?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의 척도가 아님을 알면서 무엇이든 더 가지려했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