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독서 모임 필독서를 읽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원서가 읽고 싶었다.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원서만 읽다가 한글 책을 읽으니 쉽고 빠르게 읽히는 장점도 있지만 원서가 아른거리며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서 동시에 2권을 읽었다. 안 좋은 습관이지만 억제치 못하고 지속하긴 했는데, 대신 한글이 다소 집중해야하는 철학서라서 원서는 부담이 적은 쉬운걸 골랐다.

인도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 고아가 된 Mary Lennox는 외삼촌 Mr. Archibald Craven 집으로 보내진다. 수백개의 방과 10년 동안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정원이 있는 집은 물질적 풍요는 있으나 사랑이 고갈된 곳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Mary는 인도에서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공주처럼 자랐기에 옷을 스스로 입지도 못하는 버릇없는 아이였다.

Mr. Craven은 10년 전 아내를 잃고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간다. 그에게는 너무나 심약하여 꼽추등을 가진 불구로 살아가거나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진단받고 누워서 지내는 아들 Colin이 있다. 초긍정의 대명사인 13살 Dickon의 도움으로 Mary는 비밀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 주력하며 식욕도 찾고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된다. 히스테리를 부리며 울부짖던 Colin은 Mary의 도움으로 태어난지 10년만에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며 방밖으로 나와 엄마가 소중히 가꾸던 비밀의 정원으로 향하게 된다.

10년간 누워서 지내고 언젠가 꼽추등이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에 일어나서 걷지도 못하던 Colin은 기적을 일으켜 보겠다는 과학적 실험을 하게 된다. 마법에 대한 강한 신념, 마법이란 자신이 일할 때 가장 잘 일어난다는걸 믿으며, 누워서만 지내던 Colin이 정원 가꾸기에 참여하며 식욕도 얻고 신체적 건강도 되찾고 마침내 두 발로 걷는 기적을 일으킨다.

결국엔, 그의 생각이 그에게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누구나 그는 일찍 죽을 것이고, 불구가 된다고 했기에 그는 자포자기 상태였고, 늘 어둠 속에서만 히스테리를 부리며 제왕처럼 지냈다. 생각이란 전기 배터리만큼 강력하다. (Thoughts are as powerful as electric batteries. - p.199) 햇빛만큼 좋을 수도 있고, 독약만큼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우리의 마음 속에 2가지 생각이 공존할 수가 없다. 장미가 자라는 토양에 엉겅퀴가 동시에 자랄 수 없다. (Where you tend a rose, my lad, a thistle cannot grow.)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마음의 정원에 키울 것인가 묻고 있다.

무조건적인 긍정의 사고가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줄 수 있는지도 안다. 그러나 부정적 사고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건 실망을 미연에 차단하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싶다. 들뜨지 않는 차분함, 일희일비하지 않는 침착함도 부정적 사고의 장점이 될 수 있을까? 실망감을 감수할 수 있는 긍정적 사고와 행동이 병행한다면 소소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한다. Colin은 기적을 믿는 마음과 동시에 몸을 움직여서 정원을 열심히 가꾸는 일에 참여하며, 식욕도 좋아졌고 신체적 건강을 회복했다.

신체적 건강을 주심에 감사하며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면서 동시에 건강한 생각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실천한 사례가 반드시 책에서만 존재하는건 아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몸을 더 많이 움직이며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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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은 이 책은 한 주간 나를 행복하게 했다. 아주 오랜만에 한글 독서를 하며 편안하긴 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평소 생활화하던 원서가 그리워 하루에 두 권의 다른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아껴 읽곤 했다. 영국에서 팟캐스트로 운영되던 ‘철학 한입’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원서 제목(Women of Ideas)이 암시하는 것은 철학하는 여성들로서, 각기 다른 여성 철학자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며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구조된 피해자에게는 불평등을 감별하고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그들에겐 경험으로 인해 생긴 그 인식적 특권을 제 2의 피해자를 막기위해 사용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 내가 그 피해자라면 나는 책임의식을 갖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용기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그 피해라는 것의 범위도 매우 다양하기에 나 역시, 과거 어느 시점에선가 크고 작은 언어적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수적 집단에 몸담고 있을 때, 제 3의 다른 피해자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맞고 틀리다는 도덕적 판단도 매우 어렵다. 때와 상황에 따라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 없기에 도덕적 융통성을 발휘한다는 이유로 회색 영역 안으로 들어갈 때 누군가 도덕적 실망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도덕적 실망이란 자신에게는 불가능하고 과거의 어떤 사람을 향한 것이므로 일종의 비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누군가 나를 향해 도덕적 실망을 할 수도 있다. 즉 원치 않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남을 향한 도덕적 실망도 조심해야겠다. 내가 무슨 권리로 남을 향해 비난과 비판의 화살을 쏠 자격이 된단 말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양이란 개념에 대한 정의가 매우 신선했다. 흔히 생각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의 예의 바름, 존중 및 정중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이란, 대화를 나눌 때 최소한의 미덕으로, 힘겨운 자기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장 별로인 상대와 한 공간에 머무르며 계속해서 함께 하겠다는 의지이며, 의견 차이는 여전히 달갑지 않아도 칼보다 말로 싸우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 밀의 ‘어느 누구도 반대자를 침묵시킬 권리는 없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장 살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현대인들에게 세련된 교양이 필요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만 어울리는 것은, 관용이 절실히 요구되는 민주사회에서 재앙이며 오히려, 의견이 불일치 할 때 빛이 발한다는 대목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동안 죽 재앙을 일으키는 행위를 해 왔단 말인가? 나와 너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불편해서 싫었다.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이를 재앙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 사고의 폭이 넓지 못하고 새롭고 다른 것에 포용력이 깊지 못한 것일까?

신뢰의 개념도 신선하다. 신뢰의 기본이 되는 약속 실천이 언제나 중요한 것은 아니고, 무조건적으로 실천만을 강조한다면 필수 도덕이 결여되어 있어도 신뢰할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내 능력과 한계를 이해하고 할 수 있는 일과 부담되는 일을 구별하여,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거절이 특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와 관련된 개념이 신뢰이며, 신뢰는 내 행동을 생각하게 하고 거절을 쉽게 하며, 거절이 이기적 행위가 아니라 상대에게 도움이 되며, 그것이 오히려 궁극적으로 상대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 된다.

자유롭게 행동하는 주체가 되려면 나 자신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철학자 Seneca, Marcus Aurelius 처럼 자기 수양이라는 사회적 관행을 통해 오히려 자유롭게 행동하는 주체가 되었다. 만약에 자기 행동의 주체가 되지 못할 경우, 감시에 중점을 둔 체제 속에 살면서 감시를 내면화하여 스스로에게 특정 질서를 부과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감시, 규율, 관행 자체를 모두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옳다, 그르다의 기준, 우리가 기대하는 기준의 절대성이 어쩌면 우연에 지나지 않기에, 진실을 안다거나 어떤 규범적 기준이 옳다고 지나치게 확신해서도 안된다고 표현도 충격적이다. 인간은 무엇에 기대어 판단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가진 두 얼굴이 ‘오만과 겸손’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내가 가진 근본적인 믿음에 툭 질문을 던지고는 틀렸다고 다시 생각하라고 한다. 심사숙고해도 답을 못찾으니 길을 보여 달라 질문하니, 철학 스스로도 아는 것이 별로 없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 틀리거나 잘못 인지하고 있는 것 일수도 있다고 꼬리를 내린다.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부분에서 격하게 공감했고, 내가 그동안 회의적이었던 부분을 잘 긁어주었다 생각했다. 책 속의 책도 많아서, 다음에 꼭 읽어 보고 싶은 충동을 갖게 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이 철학적 담론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해 진다. 도덕적 실망을 보류하며, 정반대의 색깔을 마주해도 세련된 교양을 갖추고 상대를 침묵시키지 않을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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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urage To Be Disliked : How to free yourself, change your life and achieve real happiness (Paperback, Main) - '미움받을 용기' 영문판
Ichiro Kishimi / Allen & Unwin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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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Adler의 심리학을 기저로 하여 ‘용기(Courage)’를 수십 번 강조하는 책이다. ‘죽음의 수용서에서(Men’s Search for Meaning)’의 저자 Victor Frankl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Adler의 심리학은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틀을 깬다는 것은 부정과 거절을 감수해야 하지만, 화석화 되었던 우리의 생각에 신선한 변화의 파장을 일으킨다는 장점이 있다.

인과 관계론(aetiology)을 주장하는 프로이드나 융의 심리학은 진단뿐이지 해결책이 없다. 그러나 목적론(teleology)을 주장하는 Adler의 심리학은 과거는 중요치 않고 과거의 상처에서 원인을 찾지 않기 때문에 희망적이다. 실제로 고칠수도 수정도 안되는 나의 과거를 상기시켜주며, 과거가 현재 내 아픔의 원인이라고 진단하는 것은 결정론적 처방일 뿐이다. 오히려 Adler의 심리학에서는, 과거(past)의 상처가 부인되고 현재 여기(here and now)에 충실하게 살아냄을 강조한다.

현재의 경험 자체에 의해 나라는 사람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자기 주도적이며 개인주의 심리학 냄새가 난다. 인정의 욕구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면서 타인과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냄도 중요하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과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 철저히 과제를 분리시킴으로써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일중독(workaholic)으로 살아감도, 내 삶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냄이 아니라, 오로지 삶의 특정한 한가지 면에만 집중함으로써 내가 내 삶에 저지르는 거짓말(life-lie)일 수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 누구보다 거짓에 대해 분노하고 참지 못하는 내가 결국 나 자신에게 거짓을 일삼으며 그동안 일중독으로 살아 왔다니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난 일중독으로 살면서 내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칭찬(praise)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것도 신선한 논리이다. 칭찬이란 수직적 관계(hierarchial relationship)에서 상대방을 길들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는 부정적 의견을 내놓고 있다. 즉, 나보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칭찬을 주로 하게 되고, 그 칭찬에 길들여지면,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인정의 욕구를 갖게 된다. 기대에 부응치 못했을 때 상대방에게 실망감을 안기게 되고 나는 열등의식과 자괴감을 떠 안게 된다. 결국 자기 주도적 삶이 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일지라도, 평등하지만 같지 않은(equal but not the same) 수평적 관계(horizontal relationship)를 유지하며 칭찬(praise)이 아니라 격려(encouragement)를 강조하는 Adler의 심리학은 희망적이고 진취적이다. 모든 사람은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용기가 부족한 것이고, 정상적(Being normal)이라는 것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나 자신이 삶에, 내가 경험하는 일상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어떤 의미(meaning)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할 것인가?

철학이나 심리 서적을 읽다 보면 항상 따라 다니는 단어가 의미와 행복이다. 삶의 의미는 나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라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누군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쓸모있는 사람이란걸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의미와 행복의 정의도 결국 나의 생각과 행동에서 출발한다고 볼 때 개인주의 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이라 불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은 나의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유의미한 삶을 살고 있으며 내 삶은 행복한가’라는 답을 하기 위해, 나는 변하고 싶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변화를 꿈꾸어 왔다. 과거와 다른 내가 되고 싶었지만 계속 실패해 왔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답이 나와 있다. 나는 이제 용기만 내면 된다. 변화는 불안을 동반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실망할 것이다. 나에게 더 이상의 실망을 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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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bstacle is the way(번역서: 돌파력)’란 책을 너무 감동깊게 읽었던 차에, 같은 작가라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지난 주에 읽은 책이 ‘The Daily Stoic이라서, 동일한 맥락에서 이 책의 흐름이 진행되어 수월하게 읽었다. 책 전반에 스토아 학파의 사상이 관통하고 있다.

자아(Ego)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고 적(enemy)이 될 수 있다. 나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듯한 표정만 읽어도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질 수 있다. 하물며 자존심을 해치는 상처내는 언행에는 나의 자아가 어찌 반응할지 나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우리의 자아는 난공불락의 성벽 안에서 견고히 버티기를 원한다. 늘 품격있고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고자 하는 고집으로 자신도 모르게 교만이란 옷을 입게 된다.

그러나, 평균을 향한 회귀(Regression toward mean)란 말이 있듯이, 우리의 삶이 항상, 부와 성공이란 단어와 손잡으며 순탄한 길만을 걸어갈 수는 없다. 어린 나이에 성공의 정점까지 찍었다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과 좌절을 겪었던 작가는 우리에게 바닥을 칠 만큼의 낮은 겸손을 수 없이 강조한다.

광활한 우주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 각자를 스승삼아 날마다 배워야 하고, 평생 학생의 입장으로 살아야 한다. 사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책을 읽을 수록 결국 나 자신의 무지와 만나게 된다. 무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겸손하게 되고 겸손은 배움을 낳게 한다.

언제라도 부서지기 쉬운 한줌 같은 세상에서, 겸손을 다짐하고 맹세해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개드는 나의 강한 자아 즉 부질없는 자부심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청소를 한 번만 하고 그만 두지 않듯이, 매일 매일 청소를 해야 방안의 먼지가 쌓이지 않듯이, 매일 매 순간 쓸고 닦으며 자아와의 치열한 싸움을 하라고 한다.

오늘 하루만에도, 나의 교만한 자아로 인해 나를 더 높이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내가 더 우월하다는 표정이나 말투로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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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mers: Human Advantage in an Age of Technology and Turmoil (Paperback) - 『프레임의 힘』원서
Viktor Mayer-Schoenberger / Ebury Publishing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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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어떤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하는 모습에 따라, 즉 우리 사고의 틀에 따라 어떤 것을 바라보게 된다. 내 마음 상태, 나의 인지 구조, 생각의 틀, 사고 범주에 따라 세상은 왜곡된 채로 인지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창, 정신적 모형(mental model)은 어떤 결정을 하게 하는, 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결정을 해야 하고, 평생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어떤 메카니즘의 원리에 따라 결정을 내리게 되는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감성과 이성의 이원론적 싸움에서 해독제를 제공하는 것이 frame이다. 내 마음의 틀, 창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직관과 충동적으로 혹은 알고리즘과 빅데이터의 결정에 따른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인지적 복잡성 속에서 머리 아플 때 충동적 결정을 내린 후 얼마나 후회가 많았는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듯 보이는 유투브 알고리즘을 따라 다니다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가?

빠르고 정확한 계산은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기계에 우리의 중요한 결정을 모두 맡길 수가 없다. 프레임을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을 가진 인간은 Why와 How라는 질문을 통해 인과관계(causality)를 찾고, 끊임없이 대안의 현실(alternative realities)을 상상한 후, 인지적 구속력과 제약(mental curbs, mental menacles)을 적용하여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절대적 개방성은 공백상태와 같기에 구속력과 제약은 불가피하다. 최소한이지만 결정적 수정과 변화를 통해 더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개선과 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글로벌 펜데믹을 겪으며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나라마다 각기 다른 결정을 하기도 하고,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펜데믹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결책이 엇갈리기도 했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만병통치약은 없고 타이밍은 중요하다(Timing matters.) 순간 순간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하느냐는 개인과 국가 수준 모두에서 매우 중요하다.

과거의 훌륭한 성과도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에, 타이밍에 잘 맞는 효율적 결정과 선택을 통해 후회를 줄이는 최고의 프레이머는 프레임을
프레임한다(Framers frame frames). 마지막 목적어가 복수(frames)라는 것도 중요하다. 나쁜 프레임은 없고 잘못 사용된 프레임이 있기에, 인지적 다양과 유연성( diversity and flexibility)의 중요성을 수 없이 반복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인정하고 논의하는 교육적 기반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함도 중요하다.

친숙하지 않은 낯선 환경에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인지적 불일치를 극복하며, 새로운 관점을 위해 호기심을 키우고 언제든 불일치와 즐겁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짐으로써 내 마음의 창이 한 가지 프레임에 고착됨을 막을 수 있다. 나이, 성별, 교육, 수입 및 직업 등의 범주를 넘어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지적 동일성(cognitive homogeneity)과 획일성(uniformity)은 나를 일시적으로 편안하게 하고, 인지적 불일치(cognitive dissonance)는 나를 일시적으로 고통스럽게 한다. 그동안 난 전자를 선호해 왔음이 분명한데, 차후 나는 후자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이 책에서 프레임은 인간에게 희망을 제공한다(Framing offers human beings hope.)고 했다. 기술과 혼란의 시대에 인간의 우위를 인정해 주는 것이 프레임이라고 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위압에 눌러 나 자신의 왜소함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결국 희망의 불씨는 우리 안에 있었다(The power is within us).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잘 만들어 가는 프레이머들은 세상을 현재 모습 그대로 보며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가능성을 본다(not as it is, but as it can be).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프레이머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의 마음은 충분히 열려 있는가?’, ‘나의 마음 값은 불일치를 받아들이도록 항상 설정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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