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단테 - 단테와 그의 시대, 그리고 <신곡>에 대한 인문학적 탐색
A. N. 윌슨 지음, 정해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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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2016년 초 서울도서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5년 말, 김운찬 역 '신곡'을 세번을 읽고 심지어 한번은 받아쓰기(컴퓨터)로 했음에도 이해가 잘 안되어서 대여해서 읽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신곡'과 달리 이 책은 아주 쉽게, 그의 다른 작품인 '새로운 인생', '향연', '제정론'을 비롯해 편지와 시작들, 그의 주변 인간관계들, 역사적 맥락, 기초가 되는 철학 등을 곁들임으로써 단테 자신의 성격과 작품에 잘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가이드이다. 이 좋은 책이 절판되어 사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마침내 2018년 12월엔가 가까스로 중고를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여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신곡'이라는 대작은 시인 단테 자신의 삶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관점이 이 두꺼운 책 전체를 관통한다. 그는 위대한 시인이자 철학자, 종교인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불운했다. (그 불운함이 '신곡'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겠지만... 만약 그가 성공한 정치가였으면 '신곡'은 탄생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불운함이 그를 일관성이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 평생 피렌체를 사랑하고 그리워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추방되고 나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고향을 지배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으니 말이다. 그러한 변덕스러움이 신곡에서도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즉, 애먼 사람을 지옥에 갖다 던져놓고, 피의 지배자를 연옥 또는 천국에 배치하는 기괴함을 보이는 점을 이 책이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단테는 위대한 시인이자 철학자일지 모르지만, 인덕은 많이 부족한 듯하다(공부만 잘한다고 위대한 인물로 대우할 거면 우병우는 왜 저렇게 되었겠나).

 

이 책을 통해 단테와 그 이전의 시대인 중세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역사를 대강 그려볼 수 있다.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의 저녁기도'의 실제 사건도 설명되어 있고, 교황과 황제의 권력투쟁도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굳이 '신곡'의 가이드북으로서의 기능을 제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읽고 나면 '신곡'을 안 읽어보고는 못 견디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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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유재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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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어 원전 번역가는 몇 있어도, 현대 그리스어 원전번역가는 없던 것이 현실. 그 와중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원전번역이 나왔다고 하니, (한국나이) 40세 내 영혼에 대한 생일케이크로 사주어 이틀 간 읽었다.

 

고 이윤기 선생의 번역은 우리말 어감을 살린 구수함은 있지만 왜인지 잘 안 읽혀졌다. 몇몇 문장만이 머리속에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번역본은 꽤 잘 읽힌다. 잘 읽힐 뿐 아니라 생각 외로 번역문이 매우 유려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틀만에 속도를 내어 읽을 수 있었다.(다만, 몇가지 어휘선택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노나서'(나눠서)라든가, '광부를 조정하는(조종이 맞지 않나?)' '욱여넣었다(우겨넣었다)' 등등 몇가지가 거슬렸다. 쇄가 바뀌면 개선되리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몇년 전 읽은 이후 그간 독서량이 누적되어서 그런지 다른 부분들이 보인다. 예컨대, '나'는 단테의 '신곡'을 끼고 사는데, '나'의 나이 35세는 단테가 지옥-연옥-천국을 순례한 했을 때와 거의 같은 나이이다. 즉, 영혼의 구도자인 '나'는 조르바를 만나기 전에는 단테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음이 틀림없다. 순례를 시작할 당시 단테가 '어두운 숲'에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크레타 혁명을 전후하여 애국과 영혼의 구도 사이에서 갈등 때문에 고뇌하고 있었다. '내'가 길을 가는데 맞은편에서 나타난 관능적인 과부를 가리켜 '사나운 짐승'이라 표현한 것 역시, ''신곡-지옥' 1곡에서 단테의 길을 가로막은 표범같은 짐승들을 떠올리게 한다. '피레우스 항구에서' 어쩌고 하는 첫 문장은 플라톤의 '국가'의 첫 문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독서량이 더 누적되고 다시 읽으면 또 어떤 부분이 보일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사실, 단순히 생각하면 '조르바'의 언행이 별것 아닐 수 있다. 예컨대 나는 '나'와 같이 책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지식을 추구하는데(이점은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나'와 다르지만), 그렇게 40년을 범생이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정작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주인공들처럼 막 사는 인생들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매춘과 마약을 달고 사는데 안 죽고 호화롭게 잘 살까? 소설의 '나'는 조르바에게서 그런 것을 본 게 아닐까? 아무리 책을 읽고 읽어도 깨달음, 영혼의 안식을 못 찾았는데, 조르바가 툭툭 내뱉는 말들, 장삼이사들의 평범한 언행에서 깊이 감동한다. 화이트헤드가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라고 했던 것처럼, '나'의 조르바의 언행에 대한 관점은 '꿈보다 해몽'은 아닐런지? 게다가 조르바의 행위는 요새 문제되는 '그루밍'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장의 전 재산을 여자랑 만나는데 탕진하고, 갈탄사업을 완전히 망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조르바가 너무 좋다고 하면서 같이 춤추잔다. 이런게 그루밍 범죄가 아니고 뭔가?

 

이러한 '합리적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너무도 좋다. 조르바의 천진난만함이나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차치하고서라도, 밑줄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다 옮길 수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 2년간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서가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저명한 영문학 번역가인 이종인과 김욱동이 새로운 영문본을 저본으로, 이재형은 새로운 불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본을 냈다. 저명한 번역가들이 '중역'이라는 오명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고 싶어한다니, 희한한 현상이다. 이종인과 김욱동이 영문본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번역한다고 하면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조르바는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반증일게다.

 

어쨌거나, 그리스 문학사상 어렵다고 소문난 카잔'자'키스의 이 걸작을 깔끔한 한국어로 번역해 준 역자께 진심 감사드린다. 지금까지의 번역본들은 그리스어에서 불어로, 불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삼중역'이라고 하는데, 그 경위도 해설에 나와 있다. 이윤기본이 어려웠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는 데 위안을 삼으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읽기 어려웠던 것도 역시 고 이윤기 선생의 중역이었기 때문이라는 데서 핑곗거리를 찾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카잔'자'키스의 마지막 작품, '엘 그레코에 대한 보고(영혼의 자서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역자와 출판사에 말하고 싶다.

모든 믿음과 망상에서 자유로워진,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마지막 인간, 그가 속한 모든 땅은 숨결이 되고, 그 숨결은 더 이상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줄 수도, 취할 수도 없게 된 마지막 인간, 그 인간은 씨앗도, 똥도, 피도 다 비워버렸다.

나는 이 새해 첫날의 생각을 조용히 음미하기 위해 가까이 있는 바위에 웅크리고 앉았다. 아! 새해에는 신경질적인 조급함 없이 내 삶을 조율할 수 있다면! 내가 조급하게 나오게 하려다 죽인 그 조그만 몸뚱어리의 나비가 항상 앞에서 날면서 내게 길을 보여줄 수 있다면! 때 이르게 죽은 나비 한 마리가 다른 자매인 한 사람의 영혼으로 하여금 서둘러 날개를 펴지 않고 느긋한 리듬으로 천천히 날개를 펴게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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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oent 2019-12-1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영화 <카잔자키스> 수입사 마노엔터테인먼트입니다. 감사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세트 - 전4권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차용구.박승찬 감수 / 시공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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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주가 바뀌어서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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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뜨겁게 - 버트란드 러셀 자서전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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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인생을 불꽃처럼 살 수 있다면...

 

저 유명한 첫 문장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 두꺼운 책은 열정 그 자체이다. 물론 대부분 자서전이라는게 내가 뭘 잘했고, 비난에 대한 변명이 대부분이며, 이 책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이 지점에서 모 대통령의 자서전이 떠오른다...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서 그런 거라고...).

 

예컨대 그의 첫번째 열정인 '사랑에 대한 갈망'은 평생 여러번의 결혼과 외도에 대한 변명은 아닐까. 물론 기독교적 결혼관에 대한 저항이나, 여성의 성적 해방에 대한 그의 주장은 타당하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주장이, 그것이 매우 일관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연애관을 정당화하는 데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러셀의 행동은, 아마도 그가 매우 많은 말과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상당 부분에서 모순을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무저항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봉한 바도 없고, 그렇다고 절대 거부한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단지 '양적 변화와 강조점의 이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란다. 뭔 말인가? 심지어 그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고도 했고, 그걸 수없이 말했다고 하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비폭력주의자, 평화주의자, 저항의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그의 변명에 불과한가, 아니면 유명인사인 그를 따라다니던 미디어의 농간인가.

 

그리고, 그는 비판적 지식이었지만, 고국을 매우 사랑했다. 나치가 인간을 짐승처럼 간주했다고 비난하면서, 영국인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식민지 개척기 영국의 군인들과 종교인들과 인류학자들이 원주민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학자들과 큐레이터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마지막 태즈메이니아인들의 사체를 강탈했다. 그들은 사체를 해부하고, 무게를 재고, 측정하여, 그 분석 결과를 학술지에 실었다. 태즈메이니아 박물관은 1976년경에 이르러서야 1백년 전에 죽은 최후의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트루가니니의 시신을 매장할 수 있도록 내놓았다. 영국 왕립외과대학은 그녀의 피부와 머리카락 표본을 2002년까지 보유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마지막 과업은, 이 책의 마지막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반전운동이었다. 입장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그는 전쟁 반대, 그리고 고통의 대변을 위해 평생을 두고 달려왔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행동주의자였는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이 인류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나로서는 평생 모를 것이다. 그러나 문필가이자 행동가로서의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자서전 한 권만으로 대중에게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나를 결정하는 건 나의 내면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다."

(It's not who I am underneath, but what I do that defines me.)

(영화 '배트맨 비긴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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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 - 세계 1등 혁신국가를 만든 이스라엘의 아버지 시몬 페레스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시몬 페레스 지음, 윤종록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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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자서전을 끝까지 읽은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는..."이라는 그 유명한 문구로 시작하는 러셀 자서전도 중간중간 편지 때문에 흐름이 끊겨서 중간에 그만두었고... 아무튼 평전이든 자서전이든 읽은 적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요새 이스라엘의 창업 지원 정책에 꽂혔기 때문이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이스라엘의 국부, 건국의 아버지 시몬 페레스. 벤처의 나라, 혁신의 나라가 된 것은 평생을 두고 혁신을 외쳤던 한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안 리더로 있었기 때문이라니... (돌이켜보면 놀라운 것도 아니다. 조선 초 사회가 안정되었던 것은 세종 같은 성군이 오랫동안 왕좌에 지키고 있었기 때문일테니...)

 

이 자서전은 페레스가 사망 1주일 전 탈고했단다. 93세. 자신의 생명이 다해 가고 있음을 알면서 필사적으로 써내려 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생애 전반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마다 상세하게 써 내려갔다. 이스라엘로 이주, 항공산업 추진, 원전 건설, 엔테베 작전, 경제위기 극복과 창업국가 건설, 그리고 마지막 평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기나긴 생애는 마치 영화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는 그 때마다 더 기발한 상상, 더 대담한 자세로 문제를 해쳐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하는 말이 '가장 큰 후회는 더 큰 꿈을 꾸지 못한 것'이란다. 허허허. 나도 몽상가를 넘어 4차원 소리를 참 많이 듣는데, 이 노인에게는 못 당하겠다.

 

페레스는 '판타지 협회'라는 것을 두고, 상상 가능한 것을 자유롭게 토론했다고 한다. 그의 열린 자세를 보면서 요새 꽉 막힌 상사 때문에 같이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반면, 페레스도 사실 독불장군이 아니었을런지. 그는 사람들의 대담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좋아했지만, 그것에 꽂히면 결코 고집을 꺾는 법이 없었던 것 같다. 책에서는 그의 선택이 모두 성공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성공만 한 사람이었을까. 대부분의 성공은 그보다 몇배의 실패를 뒤에 두고 있는 게 아닐까. 그가 빚어낸 창업국가의 본질인 벤처기업들도, 수십번 수백번의 실패 끝에야 성공을 맛보게 된다. 그런데 책만 읽다보면 자신은 단 한번의 실패도 한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점이 무척 아쉽다. 후세에 귀감이 되려면 '내가 이만큼 실패했기 때문에 혁신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라고 할텐데... 그는 그냥 그 자신이 신처럼 되고 말았다. 모든 자서전은 기본적으로 다 이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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