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뜨겁게 - 버트란드 러셀 자서전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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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인생을 불꽃처럼 살 수 있다면...

 

저 유명한 첫 문장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 두꺼운 책은 열정 그 자체이다. 물론 대부분 자서전이라는게 내가 뭘 잘했고, 비난에 대한 변명이 대부분이며, 이 책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이 지점에서 모 대통령의 자서전이 떠오른다...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서 그런 거라고...).

 

예컨대 그의 첫번째 열정인 '사랑에 대한 갈망'은 평생 여러번의 결혼과 외도에 대한 변명은 아닐까. 물론 기독교적 결혼관에 대한 저항이나, 여성의 성적 해방에 대한 그의 주장은 타당하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주장이, 그것이 매우 일관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연애관을 정당화하는 데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더구나, 러셀의 행동은, 아마도 그가 매우 많은 말과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상당 부분에서 모순을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무저항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봉한 바도 없고, 그렇다고 절대 거부한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단지 '양적 변화와 강조점의 이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란다. 뭔 말인가? 심지어 그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고도 했고, 그걸 수없이 말했다고 하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비폭력주의자, 평화주의자, 저항의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그의 변명에 불과한가, 아니면 유명인사인 그를 따라다니던 미디어의 농간인가.

 

그리고, 그는 비판적 지식이었지만, 고국을 매우 사랑했다. 나치가 인간을 짐승처럼 간주했다고 비난하면서, 영국인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지만, 식민지 개척기 영국의 군인들과 종교인들과 인류학자들이 원주민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학자들과 큐레이터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마지막 태즈메이니아인들의 사체를 강탈했다. 그들은 사체를 해부하고, 무게를 재고, 측정하여, 그 분석 결과를 학술지에 실었다. 태즈메이니아 박물관은 1976년경에 이르러서야 1백년 전에 죽은 최후의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트루가니니의 시신을 매장할 수 있도록 내놓았다. 영국 왕립외과대학은 그녀의 피부와 머리카락 표본을 2002년까지 보유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마지막 과업은, 이 책의 마지막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반전운동이었다. 입장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그는 전쟁 반대, 그리고 고통의 대변을 위해 평생을 두고 달려왔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행동주의자였는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로서의 러셀이 인류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나로서는 평생 모를 것이다. 그러나 문필가이자 행동가로서의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자서전 한 권만으로 대중에게 영원히 각인될 것이다.

 

"나를 결정하는 건 나의 내면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다."

(It's not who I am underneath, but what I do that defines me.)

(영화 '배트맨 비긴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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