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이던 2000년대 중반에는, 진로를 준비하며 방황할 때, 현각 스님 등의 불교 에세이가 마음을 바로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어릴 적부터 교회 다니라는 말에 큰 반감을 가진 데다, 타 종교에 적대적인 기독교는 혐오하다시피 해서, 지금의 일베 같은 활동은 아니지만 안티 크라이스트 카페 등에서 그들을 깨는 논리들을 읽곤 했다.














최근 몇 년간, 마음의 화가 많이 쌓여,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솔루션을 찾던 중, 모 인터넷 서점에서 발견한, 지난해부터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장원영의) 『초역 부처의 말』을 발견했다. 급한 마음에 다소 빠르게 읽었는데도 방황하던 그 시절에 그토록 갈구했던 마음의 안식이 돌아오는 듯 했다. 역시, 붓다는 천재. 어떻게 그 옛날 이런 진리를 발견한 것인지.


내친 김에, 인류의 지혜가 담긴 경들을 조금씩 읽기로 했다. 2020년까지 한두번 정도 읽었고 또 한번 통독해야지 했던 성서원의 『쉬운말 성경』도 다시 집어들어 매일 줄 쳐가며 읽는 중. 신약부터 완독했는데, 예수의 말도 깨달음을 주는 부분이 많다. 다만, 그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와 그 후의 제자/사도들의 말을 비교해 보면 다소 차이가 있는데, 사도들은 '신앙'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옛날의 그 불쾌감을 조금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이들의 행적이 당시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기록이어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교회와 신앙을 강요하는 교인들은 여전히 싫지만, 이제 나는 예수의 '빅팬'이 된 듯하다. 


『쉬운말성경』을 읽어가면서, 원문 직역본에 대한 갈증도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워낙 연구자가 많다보니 히브리어, 헬라어 원전번역본은 많겠지만, 신앙심이 아닌 순수하게 학문적 목적을 가진 성서학자의 직역본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일리아스』를 천병희 역본으로 읽고, 좀 더 원문에 가까운 번역본을 찾는 것과 같은 욕망인 것. 아무래도 신앙인들의 역본에는 원본과 다른, 종교인들을 위한 심한 왜곡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한데다, '...께서 말씀하셨다'라는 극존중 어투, 예수의 행적에 대한 후대 사도나 교인들의 MSG (그가 실존 인물이라면)가 배제된, 일종의 역사서로서의 성경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원본 자체가 신앙을 위해 쓰여진 것이니 내가 바라는 역본은 나올 수도 없거니와, 존재한다면 불경이니, 이단이니 공격받기 쉬울 듯 싶다.


그러던 중, 허성갑 목사의 히브리어·헬라어 직역본을 발견했다. 신실한 목회자의 번역이니 내가 찾는 그런 역본은 아니지만, '예슈아'라고 표기하는 등 원문에 가까움을 자부하고 있어 관심이 갔다. 알라딘 댓글이나 일부 블로그에서 오류를 지적하기는 하나, 그래도 이만한 완역본이 우리나라에 없지 않나 싶어 구입해서 '마타이'부터 읽고 있다. 


일단 소감은, 내가 히브리어를 모르니 오역은 잘 모르지만, 정체불명의 한역 표기가 아닌 히브리어 발음으로 표기된 점이 우선 좋았고, '지옥 불'과 같은 비유를 '힌놈 골짜기'라는 실제 지명으로 되살린 게 마음에 들었다(『쉬운말 성경』은 각주에서 히브리어 또는 헬라어 원문을 잘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 한학자 김원중의 역서들처럼 원본에는 없으나 역자의 보충이 필요한 부분은 따로 작은 글씨로 표기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쉬운말성경』을 기준으로 단점도 지적할 만한데, 종이가 너무 얇고, 보통 성경에 있는 옆면의 반원형의 인덱스가 없어 즉시 찾기가 힘들다. 띄어쓰기라든가 문법이 어색하다. 


무엇보다, 예슈아가 제자와 대중에게 반말을 하는 점이 거슬린다. 예슈아 마쉬아흐라는 청년이 당대의 가치관에 맞서 최하층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그들을 설득했을까를 상상해 본다면, 절대로 이렇게 무례하게는 안 했을 것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장점이 단점을 덮고 있다고 생각하여, 이 역본과 데이비드 스턴의 『유대인 신약성경』을 기준으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처럼) 나만의 '예슈아 마쉬아흐의 삶과 행적'을 정리해 보고 싶기도 하다.


개신교 측에서 다음세대 신자들을 위해 새로 출간한 『새한글 성경』에도 눈길이 간다. 유월절을 '넘넌절'이라고 한글화하여 표기하는 등 한역어들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보이는데다, 앞으로 누군가와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성경의 표현들을 인용하려면 이것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톨릭성경도 언젠가는 올라야 할 산인데, 여러 미술작품에서 유디트와 같은 외경을 주제로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3천 페이지나 되는 것들을 넷씩이나 언제 다 읽으려나...

























불교 쪽으로 넘어가면, 금강경이나 법화경 같은 중국화된 경전들이 너무 어려워, 붓다의 가르침을 사랑함에도 불경은 전혀 읽어볼 생각이 없었다(불포자). 그러던 중, '초기 불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녀원에서 나와서 출가한 일아 스님이라는 분이 쓴 빠알리어 원전 번역본들이 검색되었다. 먼저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알려진 『숫따니빠따』부터 읽었는데, 『초역 부처의 말』과 같은 '당의정'은 아니지만 역시 감동이 크다. 특히 『그리스인 조르바』에도 실린 '다니야의 경'은 여러 번 음독하고 있다. 지금은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을 통해 붓다의 행적을 알아가고 있고, 다음으로 『담마빠다』도 읽으려 한다. 지난해 출간된 이중표 교수의 초기 불경 편역본인 『불경』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걸 지나면 불교의 뿌리인 힌두교 경전들도 읽고 싶은데 마땅한 역본이 없어뵈네...
























아마도 가장 먼저 산 책인 논어는, 가장 손이 안 가기도 하다. 반드시 한자 원문으로 음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벽이고, 공자의 언행이 후대 학자들에 의해 여러 주석이 붙어 지금 유교가 거의 탈레반 취급 받고 있는 것도 한 몫한다. 그래도 역시 교양인으로서는 봐야 한다고 생각에, 사 놓고 20년 가까이 방치한 을유문화사 역본을 집어 들었다. 한자 부담을 덜기 위해 어려운 한자가 많은 구절은 그냥 한글과 각주만 읽고, 와닿는 글들은 한자를 여러번 써본다. 붓다나 예슈아의 말보다는 다소 엄격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나는 사자성어에 길들여진 세대. 앞의 둘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지만 이번 한 번은 끝까지 가보련다. 1회독 후에는 지난해 출간된, 논어에 대해 상세히 다룬 『논어와 역사』나 사마천의 '사기 세가'의 해당 부분도 생각하고 있다(그런데 김영수의 중니제자열전은 언제쯤?).














마지막으로, 세 사람에게서 위로받은 말들 소개.


"나는 성냄에서 벗어나고, 완고함은 사라졌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있네. 내 움막은 지붕도 없고 (번뇌의) 불은 꺼져 버렸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려무나." 

"내 마음은 나에게 충실하고 (번뇌에서) 벗어났다. 오랫동안 잘 수련되고 잘 다스려졌다. 더욱이 (어떤) 악도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려무나." - 「다니야의 경」(일아 역)


"내일을 염려하지 마라. 내일은 그날 염려하여라. 한 날의 악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타이」6:34 (허성갑 역)


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백이와 숙제는 과거의 원한을 기억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도 그를 원망하는 것이 매우 적었다.) 「공야장에게」- 23장 (박종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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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블루레이] 푸치니 : 마담 버터플라이 (한글자막)
몬트비다스 (Edgaras Montvidas) 외 / C Major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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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상의 그때그때 심경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리움이 절정에 다다랐을 떄 초초상의 연기와 열창은 대단한 감동을 자아낸다. 브레겐츠의 무대와 연출은 실망을 준 적이 없다. 큰 무대를 열심히 뛰어다닌 고로 이하 배역진들에게도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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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블루레이] 푸치니 : 나비부인 [한글자막]
푸치니 (Giacomo Puccini) 외 / Arthaus Musi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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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부인의 현대적 연출 관람은 처음이다. 사실 현대적 연출은 보기 드문 것 같은데, 그만큼 일본 전통문화들이 서구인들의 눈에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2막과 3막 구성이 의아하긴 했다. 마지막 씬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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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1~3 세트 - 전3권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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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간신히 정착했다 싶었던 독서 루틴이『풀잎관』과 함께 하는 동안 완전히 깨졌다. 다른 것들은 모두 제껴놓고 4일 간 오직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이야기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이다. 첫날 밤 1권을 모두 읽고 잠자리에 누웠다. 둘째날 밤 6백페이지에 육박하는 2권의 절반을 조금 넘겨 잠자리에 누웠고, 셋째 날에는 2권을 모두 마친 뒤 바로 3권에 들어가, 미트리다테스의 야만적인 행위들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다.


『풀잎관』은 소아시아 지역의 폰투스 왕 미트리다테스의 부상과 자연인으로 돌아가 동방을 여행하던 마리우스가 미트리다테스와 만나는 것을 프롤로그로 하여, 모든 이탈리아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려던 호민관 드루수스의 개혁과 좌절,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 이런 상황을 기회로 삼은 미트리다테스의 그리스-로마 침공, 그리고 술라와 마리우스의 연쇄 쿠데타를 다루고 있다.


첫 주인공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보수 파트리키 집안이지만 게르만족과의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함께 했던 마르시족 실로와 교류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겨 ‘가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이들을 포함해 이탈리아인 전체에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상정하려다 반대파에 암살당한다. 이로 인해 마르시족과 삼니움 족 등이 주축이 되어 전쟁이 발발한다. 에트루리아와 움브리아를 제외한 전 이탈리아 동맹시가 로마의 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로마의 이 역사를 배웠어야 했다. 그들이 로마사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카피톨(의회) 습격 폭력사태 뿐인 듯하다.


한편, 아시아의 맹주를 노리던 미트리다테스 왕은 비티니아와 카파도키아를 점령하고, 쫓겨난 양국의 왕들은 원로원 유력자들에게 온갖 금을 뿌려 왕위를 돌려줄 것을 간청한다. 진상조사를 위해 파견된 위원들은 아시아의 금은보화에 대한 욕구가 엄청났으며, 이를 위해 현지 병사들을 모아 폰투스를 침략한다. 역공에 나선 폰투스는 순식간에 소아시아 전체와 그리스까지 점령하고 제국 내 로마인과 그들의 노예 8만명을 학살한다.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의 원인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아쉬운 지점이다. 동맹시 전쟁은 흡사 미국의 혁명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탈리아의 다른 부족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로마 원로원의 공유지이며 전쟁시 병사들을 제공하는 반면, 로마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라는 것. 반면, 미트리다테스 전쟁의 원인은 엘리트들 개개인들의 욕망으로 축소되어 있다. 처음에는 동맹시 전쟁에 따른 국고 탕진으로 전쟁 자금이 부족해 출병을 꺼려했던 술라마저, 종국에는 '동방의 황금과 여자들'을 보상으로 부하들을 독려한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도 '화약고'라 불리는, 제국들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두 강대국의 충돌에 지정학적 요인을 분석했어야 했다. 아니면, 아시아의 왕국들이 보유하고 있던 금은보화와 여자가, 지금의 석유나 희토류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로마인과 아시아인은 잔인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반란자 5천명을 모두 참수형에 처한 '카르니펙스(도살자)'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도, 미트리다테스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작가는 영화 '300'의 크세르크세스와 그의 병사들 만큼이나 미트리다테스를 비틀린 괴물로 묘사한다. 아마도 아시아 쪽은 사료가 없어, 주로 그리스-로마 측 기록에 근거하여 서술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트리다테스가 마니우스 아퀼리우스의 입에 녹은 금을 부어 죽이는 장면은 미드 '왕좌의 게임'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미트리다테스의 독 면역성 신화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나 아르센 뤼팽(『813』)에 영향을 준 것처럼.


정부를 둘을 비롯해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학대하는 악마적 본성의 술라.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의 남부 전장에서 주도하면서 총사령관으로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부하들로부터 '임페라토르'의 칭호와 함께 '풀잎관'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원로원 내 비주류 신진세력인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점차 멀어지면서 파트리키(구귀족) 반동 세력으로 주자로 성장하는데, 집정관으로 선출되고 이어 미트리다테스 전쟁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지만, 마리우스와 술피키우스의 반대로 출병을 준비하던 중 총사령관 권한을 박탈당한다. 이에 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몰아내고 다시 권력을 쥐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꿈꾸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술라가 역사상 최초로 로마 시내에 군대를 진입시킨 아름다운 전통은 이어진다. 술라가 그리스 전장으로 간 틈을 타 쫓겨난 마리우스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낸다. 군대를 로마 시내에 진입시킨 것으로 모자라 반대파들을 대량학살한 것이다. 그리고 일곱 번째 집정관에 취임했지만, 한 달을 못 넘기고 사망한다. ‘2주 천하'쯤 될 것이다. 더 아름다운 전통은 다시 술라가 더욱 더 아름다운 전통으로 계승하게 된다. 카이사르 같은 ’관용‘의 변종이 있을 것이지만, 이 전통은 아우구스투스의 10년 간의 피의 숙청의 선례가 될 것이다. 


2부에서는 1부에서 뿌려놓은 ‘점성술사 마르타의 예언’ 등 떡밥들을 대부분 회수했다. 그 중 마지막에 카이사르가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이 될 거라는 예언에 마리우스가 견제구를 넣는 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① 학살을 거의 마무리한 마리우스가 어린 카이사르를 유피테르 신전의 대신관으로 임명했는데, ② 이것은 유피테르 대신관직은 군인으로 성장하는 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①과 ② 모두 기록이 있는 것들인데 이 둘을 연결하는데 이런 의미를 부여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익히 알고 있는 카이사르 시대 인물들의 어릴적 모습들을 읽어가다 보면, '카이사르 평전'의 프리퀄 같은 느낌도 받는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장터인 속주 총독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던 키케로는 『풀잎관』의 이탈리아 동맹시 전쟁에서 수습군관으로 복무하면서 연신 토한다. '도살자'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키케로의 그런 문약함을 비웃는 동년배의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평생 연인이 되는 세르빌리아는 바람난 친모더러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 소녀인데, 『카이사르의 여자들』에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자뭇 궁금하다. 그녀의 그런 성격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배다른 동생 카토도 아기일적부터 지지리도 말을 안 들었으니. 


카이사르만은 다소 다르다. 마리우스의 회복을 돕던 총명한 소년이 유부녀들을 끝도 없이 홀리고 다니는 남자가 되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다음 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 점에서만큼은 그분을 능가하고 싶지 않아요. 아니, 흉내조차 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절대 로마의 시가지에 피가 흐르게 하지 않을 거예요.” 3권 368쪽


"내 머리가 온전히 붙어 있었으면 하는데, 저 불쌍한 시월의 말은 그러지를 못하니 말이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중략) 왜 군마를 둘씩 짝지어서 전차에 매어 경주를 시키고 이긴 쪽 전차의 오른편 말을 제물로 바치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누가 말 머리를 드느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까지……!"(1권) - P102

"무엇을 하느냐가 왜 하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야! 왜 하느냐는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위안일 뿐, 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단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뿐이고, 나는 무엇을 제대로 해내는 최선의 길은 건전하고 건강한 자존감이라고 확신한다." (2권) - P168

"그럴 수는 없소. 로마의 그 어떠한 법, 헌법, 전례도 임기가 끝나지 않은 고등 정무관을 기소하거나 해임할 권한을 주지 않소. 그 어떤 정무관도, 국정 주체도, 민회도 그럴 권한이 없소. 방법을 잘 찾으면 호민관이나 의무에 태만한 재무관을 해임하거나 원로원에서 방출시키거나 심사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지. 하지만 집정관이나 다른 고등 정무관은 절대 임기중에 해임할 수 없소." (3권)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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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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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오노 나나미의 연작 로마역사 에세이는 90년대 출간되어 지금까지 절판된 적 없이 꾸준한 인기를 이어오고 있는 그의 작품은 가장 대중적인 로마역사서인 듯하다. 그 중 작가가 최고로 꼽는 인물이 바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런데, 숱한 말과 자취를 남겼음에도 우리나라에서 그에 대한 책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실정이다. 몇 년 전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는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시리즈 정도가 카이사르의 생애를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작품은 매우 훌륭하고 매력적이긴 해도, 소설이라는 한계상 사실과 허구를 선별하는 수고를 독자가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영국의 역사가인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이 평전은 시오노 나나미의 카이사르관의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출간된 『로마와 페르시아』의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어, 절판되고 내가 사는 지역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도 않은 이 책을 운 좋게도 중고로 구입할 수 있었다.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함은, 저자는 사료가 극히 드문 고대사의 특성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세부 사건들을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데 반해 골즈워디는 가능성, 또는 추측으로 메우는데 이 점에서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물론,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의 첫 남자가 '거의 확실하다'라는 의견을 낸 부분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2천년 후의 역사가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가 겨우 100만명 정도의 갈리아인과 로마인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카이사르의 관용'이라는 말의 주인공이 된 점, 간질환자였다는 점, 어느 나라의 왕과 남색을 했다는 소문이 있고 이를 극히 싫어했다는 점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어느나라의 모 정치인 저리가라 할 만치 현금을 뿌리고 다닌 포퓰리스트(포퓰라리스)면서, 대중 선동의 달인이었다. 루비콘을 건널 때 그가 했다는 말의 여러가지 버전과, 살해당할 때 했다는 말의 여러 버전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장면들을 다시 소환한 것도 수확이라 할 만하다. 스파르타쿠스 반란은 그라쿠스가 진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태만을 질책하기 위해 '10분의 1형'을 명령했다거나, 폼페이우스가 마지막에 떡고물을 줏어먹었다는 점이 그렇다. 카이사르와 관련해서는, 기록에는 없으나 이 전쟁에 '카이사르가 참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는데, 시리즈에서 카이사르가 반란군 사이에 밀정으로 잠입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남색을 했다는 소문은, 드라마에서 크라수스의 아들에게 강간당하는 장면과 묘하게 연결된다.


한편으로, 나폴레옹이 가장 존경한 인물로서,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생활할 때 그에 대한 평전도 남겼다고 전해진다. 둘이 닮은 점이 상당하다. 자투리 귀족에서 출발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그를 위해 100만명도 넘는 사람을 전쟁에서 죽음으로 몰았으며, 동방 정복을 꿈꾸었다. 우호적인 여론을 만드는 데 달인이었고, 자신의 군대로부터 충성을 이끌어냈으며,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해 필경사를 항시 옆에 두었다. 숱한 여자도 항시 옆에 두었지만 말이다.


그가 경쟁자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독재관으로 부임함으로써 로마 공화정의 몰락과 제정의 시작을 앞당겼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저자는 당시의 로마 공화정도 망조가 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집정관 등의 부정선거가 만연했다는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필요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 지점에서 또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유투브도 엄청나게 많이 봤지만 이런 로마 공화정 말기의 상황과 동일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어이없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적어도, 카이사르는 술독에 빠져 살면서 판단을 그르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적들을 용서하는 '관용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 대통령은 카이사르보다는 그의 측근 중 하나인 안토니우스와 오히려 흡사하다. 음주를 무척이나 즐겼고 용서를 몰랐는데, 마지막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와 비교되면서 많이 안 팔려서 절판된 것 같긴 한데, '책과함께' 같은 대중 역사서 출판사를 통해 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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