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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오노 나나미의 연작 로마역사 에세이는 90년대 출간되어 지금까지 절판된 적 없이 꾸준한 인기를 이어오고 있는 그의 작품은 가장 대중적인 로마역사서인 듯하다. 그 중 작가가 최고로 꼽는 인물이 바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런데, 숱한 말과 자취를 남겼음에도 우리나라에서 그에 대한 책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실정이다. 몇 년 전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는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시리즈 정도가 카이사르의 생애를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작품은 매우 훌륭하고 매력적이긴 해도, 소설이라는 한계상 사실과 허구를 선별하는 수고를 독자가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영국의 역사가인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이 평전은 시오노 나나미의 카이사르관의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출간된 『로마와 페르시아』의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어, 절판되고 내가 사는 지역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도 않은 이 책을 운 좋게도 중고로 구입할 수 있었다.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함은, 저자는 사료가 극히 드문 고대사의 특성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세부 사건들을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데 반해 골즈워디는 가능성, 또는 추측으로 메우는데 이 점에서 오히려 더 믿음이 간다는 것이다(물론,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의 첫 남자가 '거의 확실하다'라는 의견을 낸 부분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2천년 후의 역사가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가 겨우 100만명 정도의 갈리아인과 로마인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카이사르의 관용'이라는 말의 주인공이 된 점, 간질환자였다는 점, 어느 나라의 왕과 남색을 했다는 소문이 있고 이를 극히 싫어했다는 점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어느나라의 모 정치인 저리가라 할 만치 현금을 뿌리고 다닌 포퓰리스트(포퓰라리스)면서, 대중 선동의 달인이었다. 루비콘을 건널 때 그가 했다는 말의 여러가지 버전과, 살해당할 때 했다는 말의 여러 버전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장면들을 다시 소환한 것도 수확이라 할 만하다. 스파르타쿠스 반란은 그라쿠스가 진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태만을 질책하기 위해 '10분의 1형'을 명령했다거나, 폼페이우스가 마지막에 떡고물을 줏어먹었다는 점이 그렇다. 카이사르와 관련해서는, 기록에는 없으나 이 전쟁에 '카이사르가 참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는데, 시리즈에서 카이사르가 반란군 사이에 밀정으로 잠입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남색을 했다는 소문은, 드라마에서 크라수스의 아들에게 강간당하는 장면과 묘하게 연결된다.
한편으로, 나폴레옹이 가장 존경한 인물로서,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생활할 때 그에 대한 평전도 남겼다고 전해진다. 둘이 닮은 점이 상당하다. 자투리 귀족에서 출발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그를 위해 100만명도 넘는 사람을 전쟁에서 죽음으로 몰았으며, 동방 정복을 꿈꾸었다. 우호적인 여론을 만드는 데 달인이었고, 자신의 군대로부터 충성을 이끌어냈으며,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해 필경사를 항시 옆에 두었다. 숱한 여자도 항시 옆에 두었지만 말이다.
그가 경쟁자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독재관으로 부임함으로써 로마 공화정의 몰락과 제정의 시작을 앞당겼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저자는 당시의 로마 공화정도 망조가 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집정관 등의 부정선거가 만연했다는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필요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 지점에서 또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유투브도 엄청나게 많이 봤지만 이런 로마 공화정 말기의 상황과 동일하다고 판단해서 그런 어이없는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적어도, 카이사르는 술독에 빠져 살면서 판단을 그르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적들을 용서하는 '관용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 대통령은 카이사르보다는 그의 측근 중 하나인 안토니우스와 오히려 흡사하다. 음주를 무척이나 즐겼고 용서를 몰랐는데, 마지막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와 비교되면서 많이 안 팔려서 절판된 것 같긴 한데, '책과함께' 같은 대중 역사서 출판사를 통해 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