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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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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을 떄는 다소 지루하고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자유'에 대한 조르바의 고찰들을 다시 보고 나니 왜 사람들이 이 책을 사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책은 '자유'에 대한 이야기다. 근대적 의미의 자유는 구제도의 모순으로부터의 해방, 즉 프랑스혁명 이후 민중의 노예적 삶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도 우리는 국가에, 제도의, 자본에, 관습에 종속되어, 스스로 자유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많은 부분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의 '나', 즉 카잔차키스는 구도자이다. 예수는 물론 단테, 붓다, 니체 등을 읽으며 자신의 본질을, 자유의 의미를, 생의 이유를 찾아나간다. 요즘 단테의 '신곡'을 읽고 있는데, '나'가 단테를 '내 여행의 동반자'로 표현한 부분이 흥미롭다.

 

우리 인생길 한 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

 

단테, 『신곡』 지옥편, 제1곡 1~3행, 김운찬 역, 열린책들

 

'나'의 나이는 서른 다섯. 단테가 '신곡'을 쓴 나이이면서 '인생길 한 중간'인 35세와 같다. 그는 조르바를 만날 무렵 단테처럼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천국으로 향하듯, 그는 조르바를 만나 그가 그토록 갈구하는 삶을 찾아 간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자유'에 관한 이야기. 나는 예수에서, 단테에서, 붓다에서 자유의 의미를 찾아나가고자 하는 반면, 조르바는 이를 조롱하면서 전장에서의 숱한 살인 경험, 여자 경험, 인생 경험에서 자신이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역설한다. 샌님이 부랑아를 만나 깨달음을 얻어가는 셈.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재미있다. '자유=인간'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따르면 이는 매우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조르바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이 우리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들린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그러면서도 남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자유. 작품은 조르바의 자유론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대사 몇 개를 더 소개한다.

 

"우리는 독립군이 되어 그 지랄을 했는데, 사기 치고, 훔치고, 죽이고 했는데, 그 때문에 게오르기오스 왕자가 크레타로 왔답니다. 그러고는 자유라니! ...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 더러운 놈의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 치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 그런데도 그 결과 웃겨. 자유라니! 우리 같은 것들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고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라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오? 프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 덩이가 동그랗게 되는 겁니다. 흡사 당신의 이런 말을 알아들은 듯이 말입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램프를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오."

 

"...'어디 갔다 왔어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어디서 잤어요?' 이런 게 아니었어요. 여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이쪽에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이게 바로 자유 아니겠어요!"

 

"…내 조국으로부터 구제받고, 신부들로부터 구제받고, 돈으로부터 구제받았습니다. 나는 짐을 덜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족족 덜어 버린 겁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내 짐을 덜었습니다. 자, 이런 걸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해탈의 길을 찾은 겁니다. 나는 인간이 되는 겁니다."

 

조르바는 춤을 춘다. 말보다는 춤이 더 표현력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춤을, 그의 언어를 배웠기에 '나'를 진정한 자신의 친구로 인정하게 된 조르바. '나'는 그를 후세에 남기고자, 그가 그렇게 경멸하는 잉크와 종이에 그를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나는 과거를 현재로 재현시키고 조르바를 기억해 내어 실체 그대로 소생시키면서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그가 사라지면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가능한 한 이 옛 친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나갔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문으로 끝맺고자 한다. 자유의 의미를 알려 준 조르바와 그의 친구가 그들을 거부한 천국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있기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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