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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유재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평점 :
고대 그리스어 원전 번역가는 몇 있어도, 현대 그리스어 원전번역가는 없던 것이 현실. 그 와중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원전번역이 나왔다고 하니, (한국나이) 40세 내 영혼에 대한 생일케이크로 사주어 이틀 간 읽었다.
고 이윤기 선생의 번역은 우리말 어감을 살린 구수함은 있지만 왜인지 잘 안 읽혀졌다. 몇몇 문장만이 머리속에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번역본은 꽤 잘 읽힌다. 잘 읽힐 뿐 아니라 생각 외로 번역문이 매우 유려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틀만에 속도를 내어 읽을 수 있었다.(다만, 몇가지 어휘선택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노나서'(나눠서)라든가, '광부를 조정하는(조종이 맞지 않나?)' '욱여넣었다(우겨넣었다)' 등등 몇가지가 거슬렸다. 쇄가 바뀌면 개선되리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몇년 전 읽은 이후 그간 독서량이 누적되어서 그런지 다른 부분들이 보인다. 예컨대, '나'는 단테의 '신곡'을 끼고 사는데, '나'의 나이 35세는 단테가 지옥-연옥-천국을 순례한 했을 때와 거의 같은 나이이다. 즉, 영혼의 구도자인 '나'는 조르바를 만나기 전에는 단테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음이 틀림없다. 순례를 시작할 당시 단테가 '어두운 숲'에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크레타 혁명을 전후하여 애국과 영혼의 구도 사이에서 갈등 때문에 고뇌하고 있었다. '내'가 길을 가는데 맞은편에서 나타난 관능적인 과부를 가리켜 '사나운 짐승'이라 표현한 것 역시, ''신곡-지옥' 1곡에서 단테의 길을 가로막은 표범같은 짐승들을 떠올리게 한다. '피레우스 항구에서' 어쩌고 하는 첫 문장은 플라톤의 '국가'의 첫 문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독서량이 더 누적되고 다시 읽으면 또 어떤 부분이 보일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사실, 단순히 생각하면 '조르바'의 언행이 별것 아닐 수 있다. 예컨대 나는 '나'와 같이 책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지식을 추구하는데(이점은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나'와 다르지만), 그렇게 40년을 범생이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정작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주인공들처럼 막 사는 인생들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매춘과 마약을 달고 사는데 안 죽고 호화롭게 잘 살까? 소설의 '나'는 조르바에게서 그런 것을 본 게 아닐까? 아무리 책을 읽고 읽어도 깨달음, 영혼의 안식을 못 찾았는데, 조르바가 툭툭 내뱉는 말들, 장삼이사들의 평범한 언행에서 깊이 감동한다. 화이트헤드가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라고 했던 것처럼, '나'의 조르바의 언행에 대한 관점은 '꿈보다 해몽'은 아닐런지? 게다가 조르바의 행위는 요새 문제되는 '그루밍'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장의 전 재산을 여자랑 만나는데 탕진하고, 갈탄사업을 완전히 망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조르바가 너무 좋다고 하면서 같이 춤추잔다. 이런게 그루밍 범죄가 아니고 뭔가?
이러한 '합리적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너무도 좋다. 조르바의 천진난만함이나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차치하고서라도, 밑줄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다 옮길 수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 2년간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서가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저명한 영문학 번역가인 이종인과 김욱동이 새로운 영문본을 저본으로, 이재형은 새로운 불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본을 냈다. 저명한 번역가들이 '중역'이라는 오명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고 싶어한다니, 희한한 현상이다. 이종인과 김욱동이 영문본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번역한다고 하면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조르바는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반증일게다.
어쨌거나, 그리스 문학사상 어렵다고 소문난 카잔'자'키스의 이 걸작을 깔끔한 한국어로 번역해 준 역자께 진심 감사드린다. 지금까지의 번역본들은 그리스어에서 불어로, 불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삼중역'이라고 하는데, 그 경위도 해설에 나와 있다. 이윤기본이 어려웠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는 데 위안을 삼으며,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읽기 어려웠던 것도 역시 고 이윤기 선생의 중역이었기 때문이라는 데서 핑곗거리를 찾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카잔'자'키스의 마지막 작품, '엘 그레코에 대한 보고(영혼의 자서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역자와 출판사에 말하고 싶다.
모든 믿음과 망상에서 자유로워진,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마지막 인간, 그가 속한 모든 땅은 숨결이 되고, 그 숨결은 더 이상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줄 수도, 취할 수도 없게 된 마지막 인간, 그 인간은 씨앗도, 똥도, 피도 다 비워버렸다.
나는 이 새해 첫날의 생각을 조용히 음미하기 위해 가까이 있는 바위에 웅크리고 앉았다. 아! 새해에는 신경질적인 조급함 없이 내 삶을 조율할 수 있다면! 내가 조급하게 나오게 하려다 죽인 그 조그만 몸뚱어리의 나비가 항상 앞에서 날면서 내게 길을 보여줄 수 있다면! 때 이르게 죽은 나비 한 마리가 다른 자매인 한 사람의 영혼으로 하여금 서둘러 날개를 펴지 않고 느긋한 리듬으로 천천히 날개를 펴게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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