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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2025년 10월 15일
제목: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
‘쌰오이에 (少爷)’ 란 말은 중국어에서 ‘도련님’ 이라는 뜻으로 지체 높은 집안의 주인 집 아들을 부를 때 쓰인다.
중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쌰오이에는 집안에서 철없는 골치 덩어리들이다.
조상 대대로 모아 놓은 재산을 쌰오이에가 사고치면서 전부 말아 먹는 내용들이 많다.
위화의 대표적 소설 <인생(중국어 책 제목: 活着: 살아간다는 것)>에서 주인공 푸꾸이(富贵)도 ‘쌰오이에’ 이다. 나는 위화의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먼저 접했었다. 영화에서 ‘쌰오이에’ 푸꾸이는 밤새 노름을 끝낸 후 뚱뚱한 기녀를 부른다. 푸꾸이가 축 처진 몸을 침대처럼 푹신한 기녀의 등에 업혀서 집으로 가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뒷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이 이 철없는 도련님은 도박으로 집안의 전 재산을 날려 먹는다.
위화의 대표 소설 <인생> 은 '쌰오이에 푸꾸이'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스쳐가는 죽음들을 통해서 중국의 근현대사를 말했다.
이번에 읽은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는 위화 자신의 인생을 말하고 있다. 위화는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라는 위상을 지녔다. 그의 친구들이 201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모엔(莫言),멘부커상 최종 후보자 엔렌커(阎连科), <나와 지단(我与地坛)> 을 쓴 작가 사철생(史铁生)등 모두 쟁쟁한 작가들이다. 그들 모두 문화 대혁명이라는 폭풍을 직접 맞아본 세대로서 모두 위화와 개인적으로 무척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들을 중국 현대 문학의 ‘사천왕(四天王)’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이 함께 공유했던 문화 대혁명은 각기 다른 성향의 네 명의 작가를 유머스런 동지애로 뭉치게 한 배경이 되었다.
이들에게 유머는 그들이 힘든 시기에 성장해야 했던 필수 영양분에 해당되는 셈이다.
위화가 성장했던 중국은 지금의 G2가 되리라 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극심한 가난과 폭력적인 사상의 실험을 강행했던 대혁명의 나라였다.
책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는 대만에서 2011년에 출판된 책의 번역본이다.
한국어 부제가 <사람의 목소리는 빛 보다 멀리 간다> 인데 이는 책에서 작가의 생과 관련된 키워드 열 개의 단어 중 첫 번째, “인민”에 대한 회고에서 나오는 말이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 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 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P.39 -인민 중에서.
위화에게 인민은 1989년 6월의 천안문 사건이 발생하기 전,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단어였다.
5월 35일, 즉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 6월 4일은 중국의 인터넷에서 쓸 수 없는 금기어로 사람들은 5월 35일이라 쓴다고 했다.
천안문 앞에 모인 전국의 대학생들의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함성과 목소리는 빛 보다 멀리 갔지만 결국 폭력적 탱크의 억압 앞에서 막히고야 말았다.
빛보다 멀리 갈 수 있었던 변화를 갈망 했던 에너지는 결국 어디로 갔을까?
위화는 천안문 사건 이후 그 응집되었던 에너지가 뿔뿔이 흩어져 결국 각자 돈 벌기에 집착하는 행위로 변질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오늘날의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MADE IN CHINA' 제품으로 성장한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생산했던 싸구려, 저질, 짝퉁 제품은 이제는 자동차, 조선, 우주 항공, 군사 부분을 넘어서 인공 지능 분야까지 첨단 산업으로 진화 중에 있다.
이런 진화의 배경에는 바로 인민들의 내적 변화를 바라는 힘이 밑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수가 서거했다는 소식에 우리는 미친 듯이 눈물을 쏟았다. 천 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울음소리 속에서 나도 울고 있었다..중략....몇몇 사람들이 소리내어 울고 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틀림없는 슬픔이었다.하지만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대한 공간에서 한꺼번에 울부짖을 때,내가 느낀 것은 유머였다.> P. 69 -영수 중에서
영수(领袖)란 뜻은 지도자, 즉 중국에서는 '마오쩌뚱' 을 일컫는 말이다.
위화는 모택동 서거일 날, 광분에 찬 대중의 울음 속에서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 기괴한 울음 속에서 혼자 만 웃음을 터뜨려 버린 것이다. 한번 터져 버린 웃음은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야 말았다. 웃음을 들키는 순간 바로 거기서 인생은 끝이다.
결국 이런 광경을 본 친구가 있었지만, 후에 친구의 평가는 “위화가 가장 슬프게 울더군. 너무 격하게 울어서 어깨까지 심하게 떨리더라니까”
울음의 아이러니다. 아니 웃음의 아이러니 인가?
1960년 생, 위화는 마오쩌뚱 시대의 문화 대혁명을 겪었다.오늘날 문화 대혁명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으로 뒷방 신세에 지나지 않았던 모택동을 다시 부활 시킨 사건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시기 마오쩌뚱은 자신을 추종하는 홍위병들에 의해 인간의 위치에서 살아있는 신처럼 추앙 받게 된다. 지금도 중국의 시골 민가에 가보면 모택동 초상이 걸려 있는 집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그가 성장했던 그 시절은 혁명이란 이름 속에 폭력이 난무했고, 가장 가깝게 죽음을 목격할 수 있는 세대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은 개인에게는 고통에 가깝다. 작가는 그 고통을 어쩌면 유머로 승화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가 쓴 작품 속에 늘 유머가 피처럼 흐른다. 하지만 그의 유머는 슬픔과 고통의 종착지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위화의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다. 그 시절 중국은 국가가 개인의 직업을 지정해 줬고 의사는 병원의 사택에서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위화는 어릴 때 부터 병원 수술실과 영안실을 놀이터로 삼아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는 수술중에 흘린 피나 영안실에 남겨진 죽음 그리고 홍위병들과 조반파(造反派)들이 인민들에게 행한 폭력과 살인들을 목격하며 자란 것이다.
책에는 그 고통과 상흔들을 위화식의 유머로 자신의 성장과 중국의 성장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나는 여성의 음부 그림을 보는 순간 내가 엉겁결에 소리를 지르지나 않았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지 못했다.내가 기억하는 것은은 그 뒤로 우리 중학교 친구들이 끊임없이 위층에 있는 우리 부모님 방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형 친구들과 똑 같은 괴성을 질렀다는 사실 뿐이었다.> p.97 -’독서’ 중에서
<내가 베이징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로 하이옌 전체가 들썩거렸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베이징에 가서 원고를 수정하고 온 하이옌 사람이 되었다. 우리 현 간부들은 나를 천재라고 생각했고 내가 이 뽑는 일 대신 문화관 일을 해야 된다고 보았다.> P.147 -글쓰기 중에서
<내 친구는 또다시 고개를 떨어드리고 풀이 죽어 자리를 떴다. 그는 어째서 루쉬 선생이 항상 자신에게 불리한 말만 하는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 나는 깜짝 놀라서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갑자기 아주 거대한 논리의 허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P.173 -루쉰 중에서
<1949년, 중국 공산당은 중국에 정권을 수립한 뒤로 혁명을 철저히 진행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더 이상 무장투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략.. 그 뒤로 중국은 개혁 개방을 알리며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혁명은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지난 30여 년 동안 이루어진 경제 기적에서도 혁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환골탈태하여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중국의 경제 기적안에는 대약진식 혁명운동도 있고 문화 대혁명식 혁명 폭력도 있다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P.222 -혁명 중에서
중국의 지폐는 1위안부터 시작해서 5위안, 10위안, 20위안, 50위안, 그리고 100위안 단위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지폐들의 초상화는 그냥 마오쩌뚱 얼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기타 다른 나라들이 자신 고국의 위대한 위인을 새겨 넣는 것과 달리 중국은 마오쩌뚱이 중국의 모든 위인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배출한 위대하고 여기는 위인들 공자나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 징키스칸 같은 인물은 아예 끼지도 못한다. 만약 마오쩌뚱 초상화가 화폐에서 사라지고 다른 초상화가 오는 날이 있다면 그건 어떤 새로운 시대를 맞이 한 것 일까?
신중국 설립 이후 수 많은 혁명을 진행해 오던 중국이 오늘날은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한때 우리가 무시했던 가난한 중국이 어느덧 미국의 견제를 받고 전세계적인 우려를 받는 국가로 변한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반중을 넘어 혐중이 되는 날이 오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기를 겪고 있다. 중국 스스로도 자신이 이렇게 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난 중국에서 25년을 살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중국이 혐오 국가가 된 것에 스스로도 당황스럽다. 중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도광양회(韬光养晦:빛을(재능) 감추고 어둠속에서 (실력을) 기른다)의 본색을 너무 일찍 드러낸 것일까?
위화가 이 책을 출판 한 때는 아직 2011년이다. 이제 15년이 지난 작금의 중국에 대해 작가는 어떤 키워드를 고를지 궁금하다.
중국이여, 세계의 쌰오이에(少爷)가 되지 않길 바란다.
by Dharma & Maheal
스물두 살 무렵, 나는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이를 뽑으면서 한편으로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를 뽑는 것은 생계를 위해서였고, 글쓰기는 나중에 더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서였다. - P137
어떤 꿈 하나가 어떤 기억하나를 되돌리면,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변하고 마는 것이다. - P157
혁명은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거나 자수를 놓는 것도 아니다. ...중략... 혁명은 폭동이다. 한 계급이 한 계급을 전복하는 폭력행동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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