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년3월21일
오늘의정진: 若是野干逐法王/ 약시야간축법왕/ 여우가 법왕을 쫓으려 한다면
- 100일 정진, 86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아흔 아홉 번째와 백
번째 구절은
<境靜林閒獨自遊/경정림한독자유/ 경계 고요하고 숲 한적하여 홀로 노나니
走獸飛禽皆遠去/주수비금개원거/길짐승과 나는 새가 모두 멀리 가버렸다
師子兒衆隨後/사자아중수후/새끼 사자를 사자 무리가 뒤 따름이여
三歲卽能大哮吼/삼세즉능대효후/세살에 곧 크게 포효하도다> 였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세살 먹은 어린아이는 말도 할 줄 알고, 스스로 걷고 뛰는 데도
지장이 없다. 그렇게 쭉 팔십까지 살게 된다. 그래서 사람
노릇의 출발을 세살로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모는 세살 먹은 아이 때부터 필요한 말과 행동을 가르치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알려 준다. 그렇게 배우고 자라면서
아이의 말과 행동을 부모는 뒤에서 지켜 봐준다. 마치 아이가 부모를 이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가
스스로 앞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다. 사자의 무리는 사실 새끼 사자를 뒤 따르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무리를 이끌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봐주는 부모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혼자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지하고 성원하는 것이다. 수행의
길도 그와 같다. 나 혼자 수행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체 불보살님과 스승님들의
돌보심이 없다면 수행은 시도조차 못 했을 것이다.
오늘은 백 한 번째와 백 두 번째 구절
若是野干逐法王/약시야간축법왕/여우가 법왕을 쫓으려 한다면
百年妖怪虛開口/백년요괴허개구/백 년 묵은 요괴가 헛 되이 입만 여는 것이라
圓頓敎勿人情/원돈교물인정/원돈교는 인정이 없나니
有疑不決直須爭/유의불결직수쟁/의심이 있어 결정치 못하거든 바로 다툴지어다.
꼬리 아홉개 달린 여우가 아무리
재주를 피워도 백수의 왕 사자를 이길 수는 없다.
내 마음속에 온갖 그럴듯한 생각이
있다고 해도 분별, 망상은 망상심이다.
망상심은 진리의 참성품을 이길
수가 없다. 원돈교(圓頓敎)는 바로 선(禪)이다.
선은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정신이다. 단칼에 죽여 없애야 하는데 인정(人情)이란 있을 수가 없다.
진짜 자비를 위해 때로는 무명(無明)을 한 칼에 베어 버려야만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심정이 아니라면 원돈의 문에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원돈은 단박에 들어가는
문이다. 문을 찾으려고 조금이라도 기웃거리거나 지체해서는 안된다. 문없는
문으로 단번에 들어가야 한다. 무문관(無門關) 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일 소견>
몸이 아프니 마음이 괴롭다. 고통 있는 곳이 지옥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지옥이다.
몸이 나으니 마음이 기쁘다. 기쁨 있는 곳이 극락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극락이다.
마음으로 짓고 몸으로 받는다는
뜻이 바로 이것이다. 지옥과 극락이 바로 나한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