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년3월19일
오늘의정진: 欲得不招無間業/욕득불초무간업/무간지옥의 업보를 부르지 않으려면
- 100일 정진, 83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아흔 다섯 번째와 아흔 여섯 번째 구절은
<聞說如來頓敎門/ 문설여래돈교문/ 여래의 돈교문 설함을 듣고서
恨佛滅除令瓦碎/ 한불멸제령와쇄/ 부숴 없애지 못함을 한탄하는 도다
作在心殃在身/작재심앙재신/ 지음은 마음에 있으나 재앙은 몸으로 받나니
不須怨訴更尤人/불수원소갱우인/모름지기 사람을 원망하고 허물치 말지어다> 였다.

   <내 탓이요,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이  구호는 천주교인 들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성경에서 아담과 아훼가 에덴동산을 떠난 이유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선악과를 먹은 행위는 분별의식을 가지게 된 사건이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은 '나' 라는 의식을 확고히 한 행위이고 이것이 바로 원죄(原罪)에 해당된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 원죄가 된 것이 아니고 본래 공(空)한 자리(에덴동산)에서 분별심(선악과)을 일으켰기 때문에 원죄가 된 것이다. 그러니 죄가 없는 자리, 다시 공(空)으로 돌려 놔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분별을 멈추고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마음 공부를 잘 하려면 무조건 내 탓으로 돌려야 된다고 역대 선지식분들도 말씀하셨다.
내게 벌어진 어떤 일의 결과는 전부 내 탓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다 내 탓으로 돌려야 한다.
아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어찌 내 탓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 조차도 나를 낳을 때 내가 어떤 성별로, 어떤 모습으로 태어 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나의 출생 조차도 내 탓이 될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 부터 왔다. 과거의 나는 아주 오래 전의 과거 생을 수 없이 거치면서 진화되어 왔다. 즉 육도윤회를 무수히 돌면서 지금의 나를 형성시켰다는 것이다. 과거 생중에 어쩌다 불법에 인연이 되어 이제는 육도 윤회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수행을 하면 언젠가는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법칙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나를 형성시켜서 나를 지금껏 이끌고 왔기 때문에 내게 닥치는 일 중 남의 탓으로 벌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나를 형성시킨 것은 '나'라고 규정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마음 속 무언가가 바로 나를 이끌고 다니는 본체이다. 우리는 그 본체를 깨쳐야 하는 것인데 그 본체를 놔두고 여지껏 남 탓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분별심이며 곧 선악과를 먹는 것이다. 마음으로 짓는 업보는 몸으로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류의 조상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는가?
 
오늘은 아흔 일곱 번째와 아흔 여덟 번째 구절
欲得不招無間業/욕득불초무간업/무간지옥의 업보를 부르지 않으려면
莫謗如來正法輪/ 막방여래정법륜/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치 말아라
栴檀林無雜樹/전단림무잡수/전단향나무 숲에는 잡나무가 없으니
鬱密深沈師子住/울밀심침사자주/울창하고 깊숙하여 사자가 머무른다

  수행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대화이다. 이제 육도윤회의 끝이 보이는데 어찌 남을 비방할 새가 있는가? 하물며 보살의 바른 길을 인도하는 여래의 가르침을 비방할 수 있을 것인가?
전단향나무는 인도에서 자라는 향기가 나는 향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로 불상을 조각하기도 하며 나무의 뿌리로는 단향(檀香)으로 만들어 피운다. 전단향 내음 그윽한 그 숲이 바로 내 마음이고, 그 마음 숲엔 백수의 왕 사자가 머무르고 있다.

<일일 소견>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머물고 있는 사자는 언제쯤 눈을 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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