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놓기
날짜:2025년2월21일
오늘의정진:無相無空無不空 무상무공무불공/모양도 없고,공도 없고,공 아님도 없음이요
- 100일 정진, 58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쉰 일곱번 째 구절은
<不求眞不斷妄 불구진부단망 /참됨도 구하지 않고 망령됨도 끊지 않으니
了知二法空無相요지이법공무상/ 두 법이 공하여 모양 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였다.
중도는 치우침이 없는 것이지 중간으로 행하라는 뜻이
아니다.
또한 치우침이 없다는 것은 양 변을 모두 무시하라는
뜻도 아니다.
변화에 따라 항상 고정됨이 없으니 무상이 되는 것이다.
무상은 형상이 없고 중도는 곧 무상이 된다.
중도(中道)와 무상(無相)은 둘이
아니다.
오늘은 쉰 여덟번 째 구절
無相無空無不空 (없을 무, 서로 상, 없을 무, 빌 공, 없을 무, 아닐 불, 빌 공 )
무상무공무불공 /모양도 없고 ,공도 없고,공 아님도 없음이요
即是如來眞實相 / (곧 즉, 옳을 시, 같을 여, 올 래, 참 진, 열매 실, 서로 상)
즉시여래진실상 / 이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모습이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곧 공이요, 공이 즉 색이라.> 반야심경 중에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허망하나니
만약 모든 형상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즉 여래를 보는 것이라. > 금강경 제 9분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중에서
반야심경에서 색은 모양의 상징이요, 공은 비움의 상징이다.
모양은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며 공은 비어 있지만 꽉
차있는 텅 빈 충만함이다.
세상의 실체는 텅 빈 형상으로 이루어 졌다.
오늘날 양자물리학과 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이 맞아 들어가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입자냐 파동이냐? 이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의 구절처럼 여래의 진실한 모습은 형상으로
볼 수 없다.
아니 부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진실한 모습은 결코 겉
모습인 형상이 아닌 것이다.
부처의 참 모습, 진정한
나의 참 모습을 보려면 그 모습 없는 모습을 봐야 한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했었다.
마음으로 관(觀) 해야 한다. 그래야 보여진다.
<일일 소견>
새벽 꿈.
<나는 벽을 타고 달리기를 잘 했다. 평지를 뛰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물들을 밟으며 뛰는 것이다.
발이 땅에 닿지를 않도록 뛰는 것이다. 이렇게 뛰다가 어느 노비구스님을 만났다.
내가 그 스님을 칼로 찔러 죽게 한 것 같다.
이후 완산을 만나 부부가 되었고, 설해를 길렀다.
나는 완산과 사이가 좋았고 완산이 먼저 집을 나섰다.
나는 또 벽을 타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옆으로 차가 따라 붙었다. 차에서 비구니 스님이 내려 나를 불러 세웠다.
스님은 나에게 스님들이
입고 다니시는 승복을 잘 개인 상태로 나에게 건네주셨다.
'이게 뭔가요?' 라고 묻자 스님은 이 옷은 내가
죽인 스님께서 입었던 옷이라고 했다.
그 스님께서 돌아가신 옷을 잘 빨아서 나에게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나보고 잘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때 그 스님 뒤로 관이 하나 들려 나왔다. 그 관은 뭐냐고 묻자, 그 안에 완산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라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전에 스님을 죽인 벌로 완산을
화장(火葬) 시킨다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해서 어이가 없어 했다.
그때 완산은 나를 향해 ‘다음 생에 당신과 꼭
다시 부부가 되고 싶다’ 고 했다.
그러자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 앉아서 온 몸으로
울기 시작했다.>
꿈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꿈 속에서 달리고 누군가를 죽이고 온 몸으로 처절히 울었던 나는 실제 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