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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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스토리텔링 애니(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지은이: 조너선 갓셜/ 노승영 옮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 1>.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모든 불교 경전의 첫구절>

 

 

 

우리 인간의 말하는 능력과 듣는 능력의  결합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종류의 생물체 보다 우수해진것은 틀림없는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유발 하라리는 200만년전 영장류중에 가장 힘이 없던 종에 불과 했던 호모사피엔스가 오늘날 지구에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인지혁명(認知革命) 을 꼽았다.

우리 인류는 이야기로 소통을 하고 믿음을 공유하며 개인과 부족간의 유대를 하며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활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장 별볼일 없는 종에서 가장 뛰어난 사회적 동물로 발전한 셈이다.

 

 

이제 인류에게 이야기는 떠날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문학, 영화, 게임, 오락, 음악, 무용, 철학, 정치, 과학 등등  모든 문명의 바탕에는 스토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게 다 태초의 말씀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야기가 곧 신이 되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조너선 갓셜의 책<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일독 할 만하다.

이 책을 보기전 나는 작년에 같은 작가의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를 먼저 읽었었다.

그때 당시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던 작가의 통찰은 이야기라는 것이 살아있는 유기체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인류가 멸망치 않고 존속하는 한 이야기 또한 같이 살아 나간다것 이다.

 

책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효용에 대하여 모든 이야기의 목적은 '상대를 구슬린다는데 있다' 는 관점으로 해석했다.

즉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꼬신다' 는 것이다.

상대를 나의 의도에 맞게 구슬리려면 짜임새 있게 서사를 넣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가 결국은 '구슬림' 이란 것이다.

상대를 구슬림으로 이야기에 공감하게 하고 화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효용 반면에 작가는 '이야기 꾼을 믿지 말라' 고 했다.

<플라톤의 국가>를 언급하며 플라톤의 위대한 스승이 당시의 시인들(이야기 꾼) 에 의한 선동으로 인해 대중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는 상대에 대한 분열 , 불신, 증오를 조장을 할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탈진실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범람하는 정보 미디어 홍수들, 가짜 뉴스, 보이스 피싱, 매일 실시간으로 업로드하는 유투버들의 선정성 콘텐츠들. 정치가들과 선동자들의 분열적인 구호들과 음모론 속에서 헤매고 있다.

더구나 인공지능의 발달로 우리는 심지어 챗GPT가 진실을 말하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이시대의 이야기 꾼은 다양하게 진화를 했고 또 현재도 진행중이다.

 

 

 

모든게 진짜 같아 보인다.

진짜 처럼 보이는것은 진짜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고 들리는 말들을 다 믿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야기 꾼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을 조장하는 시대의 이야기가 바로 2500년전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았던 그리스 시대와 다르지 않다고 본 작가의 통찰과 시공간을 연결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해석력에 감탄했었다.

 

그때 받은 감동으로 작가의 전작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이번에 읽게 되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 출판> 2014년 에 출판이 되었고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위즈덤 하우스 출판>  2023년에 나왔다.)

 

두 책의 작가(조너선 갓셜)은 영문학 교수이자 과학적 인문학의 선두주자를 자처한다.

작가는 스토리와 인간의 상관관계를 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시종 유쾌한 어투로 이야기속의 세상 즉 네버랜드에 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두 책 모두 인류를 '호모 픽투스(Homo fictus:이야기 하는 인간)'라는 관점 에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만 아쉽다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통찰은 훌륭하지만 워낙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정신없이 풀어 놓아서 읽고난 후 정리가 잘 안되고 있다.

(독후감을 쓰면서 뭘 쓰고 있는건지 나도 헤매고 있다가 다 지워버렸다.

결국 당연히 나의 문해력의 문제라고 봐야지. )

 

 

그렇지만 작가의 두 책을 비교한다면 나에게는 작년에 읽었던 후속작<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위즈덤 하우스 출판>이 더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소장가치를 따진다면 전작<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 출판>은 서가에 두고두고 읽어볼 책이 될것 같다.

 

 

 

앞의 태초의 말씀과 여시아문을 다시 살펴본다면,

기독교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불교는 듣는것에서 시작한다.

말하는것과 듣는것 중 어느것이 먼저 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청각장애인은 말을 못한다.

그렇게 보면 듣는게 좀 더 중요 하지 않을까?

 

 

 

나의 어린시절, 초딩 3학년때 였다.

그 당시 우리반에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다.

다른 애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고 나는 '옛날 이야기' 를 말했다.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에 우리가 표현했던 춤이나 노래, 옛날 이야기 하기 같은 장기자랑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넓게 본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존재의 행위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이는 곧  말하는 것이 되며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즉 나의 이야기속에서 나는 주연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세상에서는 내 뜻대로 만들수 있지않을까?

 

태초의 말씀은 곧 내가 되는 것이다.

 

단어를 늘어놓는 것은 작가이지만 단어 자체는 생명이 없어 생기를 불어넣을 촉매가 필요하다. 그 촉매는 독자의 상상력이다. - P26

우리 몸은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 시공간에 늘 갇혀있지만 상상력은 우리를 해방해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넘나들게 해준다. - P32

...뽕 가기 위해서...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요점이다. 픽션은 코카인과 같은 마약이다. - P51

모든 사람의 뇌에는 작은 셜록 홈스가 들어있다...이야기하는 마음은 의미 중독자이다. - P133

이야기는 공동체의 가치를 강화하고...사회를 결속하는...
이야기는 젊은이를 문화에 적응시킨다.
이야기는 집단을 정의한다.
이야기는 무엇이 고귀한 행동인지, 무엇이 비난받을 행동인지 알려 준다.
이야기는 사회의 윤활유이자 접착제이다.
이야기는 우리를 균질화한다. 즉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 P170

우리중 90퍼센트는 자신의 운전이 평균 이상이라 생각하며 대학교수 중 94퍼센트는 자신의 업무 능력이 평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위비곤 호수 효과:라디오 방송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로, 이곳에 사는 여자들은 모두 힘세고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고 아이들은 모두 평균이상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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