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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이슬람 전쟁사 - 패권을 두고 격돌한 1400년의 대립
레이먼드 이브라힘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6년 3월
평점 :
엘프 오빠가 절대 반지 대신 성지 수호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흔한 양판소가 아니라 1187년 7월 4일 이슬람군의 공세로 지난 100년 간 십자군이 알박기한 예루살렘의 몰락을 묘사한 실제 역사이다. 말그대로 킹덤 오브 헤븐의 몰락인 셈. 주인공인 발리앙을 비롯하여 이슬람의 영웅인 살라흐 앗 딘이나 예루살렘 왕국의 은가면 성군 보두앵 4세, 그 뒤를 이어 왕국을 물려받았지만 사고뭉치 금쪽이 르노와 함께 빌런 노릇을 하다가 폭망하는 기 드 뤼지냥 등 등장캐 대부분이 실존 인물이다. 물론 발리앙이 사생아 출신 대장장이였다거나 예루살렘 여왕 에바 그린과의 썸씽은 픽션이지만 말이다.

20년 전 영화지만 십자기를 앞세운 보두앵 4세가 예루살렘의 대군을 이끌고 나오는 모습은 실로 장엄하다. 오히려 CG로 떡칠하는 요즘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광경. 중세 마을의 재현이나 전투 장면 또한 그저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고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기의 개삽질로 저 군대 대부분을 궤멸시킨 하틴 전투가 '어른의 사정'으로 패한 장면만 나오고 넘어간 건 아쉽지만 말이다.
감독판 기준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유혈이 낭자하지만 이 영화의 메세지는 종교적 관용과 화해이다. 양 진영을 대표하는 살라흐 앗 딘과 보두앵 4세는 오랜 숙적이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한다. 반면 오만한 성격의 기는 살라흐 앗 딘의 유인작전에 휘말려 사막 한가운데로 진격했다가 보급로가 끊기는 바람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패배를 당하고 발리앙은 궁지에 몰린 예루살렘을 끝까지 지켜내지만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결국 살라흐 앗 딘과 조약을 맺고 평화적으로 성을 넘겨준다. 극장판에서는 잘렸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시종일관 시비 털던 기와 한판 붙고 그에게 참벌을 내린다. 그리고 머리 빡빡 깎은 여왕님과 손 잡고 속세를 떠나는 대신 고향인 프랑스로 향한다. 사실은 엘프 대장장이 영주님의 영지 개발물이라는 얘기도.
영화는 이슬람의 성지 탈환과 십자군의 패배로 끝나지만 9차에 달하는 길고도 파란만장했던 십자군 원정 전체로 본다면 이제 중반부 즈음이랄까. 중동에서 십자군 세력이 완전히 쫓겨나기까지는 앞으로 100년은 더 싸워야 했다. 게다가 이슬람의 공세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비잔틴 제국의 멸망이었다. 유럽을 지켜주는 마지막 방파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쉴레이만 대제가 이끄는 오스만 군대는 발칸과 동유럽을 휩쓸고 유럽의 중심인 빈까지 진격했다. 지중해에서도 오스만 해군이 신성 동맹 함대를 격파하고 해상 제국 베네치아를 몰락시켰다. 훈족과 몽골족의 침입 이후 또 한번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유럽 전체가 이슬람화되는 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였지만 오스만은 결국 빈의 두꺼운 성벽을 넘지 못했다. 이제 수세에 몰린 쪽은 이슬람이었다. 19세기가 되자 오스만은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고 다른 이슬람 세력이 오스만을 대신하여 산업혁명으로 약진하는 유럽에 도전하지도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두 문명의 기나긴 대결은 기독교가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서구 유럽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문명이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 체제를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살만한 동네가 된 반면, 이슬람 국가들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의 몇몇 석유 부국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가난뱅이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에서도 후진적이며 특히 여성 인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파키스탄이나 '중동의 북한'이라고 불리며 요즘 트럼프를 상대로 이슬람의 깡을 보여주고 있는 신정 국가 이란으로 이민가겠다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하물며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은 숨쉬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할 판.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패배자로 치부하는 것 또한 성급한 결론일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1/4이 이슬람 교도이며 몇년만 지나면 기독교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자랑하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기보다 이슬람 국가들이 대개 종교 선택의 자유가 없고 짧은 수명과 가난 덕분에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이라고. 게다가 선진국들이 저출산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에 허덕이는 사이 이들이 곳곳에서 침투하면서 세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썩 환영받지는 못하는 처지. 내전을 피하여 유럽으로 넘어온 백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들은 자기네를 받아준 포용에 대한 감사와 절제 대신 폭력과 범죄로 온 유럽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 옛날 쉴레이만 대제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이들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슬람과 역사적으로 별 인연 없는 우리조차 잠재적인 테러 집단 취급하면서 색안경끼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판국이다. 911테러 이후 갈수록 고조되는 반 이슬람 분위기를 죄다 그들이 자초한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막연한 편견이라고만 할 수도 없을 듯하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이슬람이 쫓아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2023년 알제리계 이민자 소년의 죽음으로 폭발한 프랑스 무슬림 폭동. 2명이 죽고 600여명이 다쳤으며 피해액은 1조원에 달했다. 무슬림들은 프랑스 사회의 인종차별과 경찰의 과잉 대응이 초래한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남의 땅에서 행패부리는 짓이 용납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 해결은 커녕 이슬람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스스로 입증하여 이미지만 더 나빠진 꼴이 된 셈이었다.
1천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독교가 이슬람보다 우세해 진 것은 불과 2백여년 남짓이다. 형세가 언제 또다시 역전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기독교가 예전에 어떠했건 근대에 와서 이성주의와 인본주의를 선택한 반면, 여전히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람보다 종교를 우선하는 게 이슬람의 현 모습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살라흐 앗 딘이 보여준 관용은 온데간데 없고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소위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이교도들과 싸우다가 순교하면 저승에서 72명의 처녀가 기다리고 있다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순진한 소리겠지만 판타지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측실들의 암투 때문에 신세 망친 사내가 얼마나 많으며 말이 꽃밭이지 기 센 여인네들 사이에 끼여서 골머리 썩히느니 차라리 홀홀단신 싸움터가 낫다고 할런지도.

역사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책과 함께에서 얼마 전에 나온 신작도서 <기독교-이슬람 전쟁사>는 무려 1400여년 동안 동서양의 경계에서 벌어진 숙명과도 같았던 두 문명의 패권 다툼을 다루고 있다. 저자인 레이먼드 이브라힘(Raymond Ibrahim)은 미국인 작가이자 칼럼리스트이며 이슬람과 아랍을 주제로 글을 쓰는 모양. 그런데 종교적 화해를 강조하는 도덕 교과서 같은 여느 서구 학자들과 달리 이슬람이 서구 문명을 위협한다는 둥 직설적인 소리를 늘어놓다보니 이슬람 쪽에서 알라의 적으로 낙인찍힌 모양. 게다가 미국 내 대표적인 반 이슬람 싱크 탱크이자 트럼프 1기 시절 국가 안전 보좌관을 지냈지만 지금은 앙숙이 된 것으로 유명한 존 볼트가 회장을 맡기도 했던 게이트스톤 연구소(Gatestone Institute)의 선임 연구원이기도. 마가 아님?

이 눈빛 험악한 털보 아재가 저자인 레이먼드 이브라힘. 그러고보니 <킹덤 오브 헤븐>에서 기와 함께 강경파로 나오는 르노 역을 맡은 브렌던 글리슨과 닮은 것같기도.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슬람 비판이 혐오라며 그 동네 인권단체들로부터 욕도 거하게 먹고 있다고.
예전에 미지북스에서 나온 <십자가 초승달 동맹>이라는 책에서 이슬람이 언제나 기독교의 적은 아니었으며 때로는 서로 협력하기도 했음을 보여준다면, 여기서는 이슬람이란 불리하면 평화를 거론하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대번에 본색을 드러내는 후안무치한 족속들이므로 결단코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식. 학술적 차원에서의 역사 기술을 넘어서 때로는 이슬람을 향한 저자의 증오심마저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보니 누군가에게는 속 시원할지 몰라도 나처럼 중립적 시각을 지향하는 입장에서는 걸려 읽어야 싶은 부분도 있더라는.
<기독교-이슬람 전쟁사>는 서방과 이슬람 세계가 약 1400년 전 이슬람교가 탄생한 이래로 불구대천의 원수였음을 보여주고 그들의 군사사를 서술하는 맥락에서 양측의 가장 역사적인 전투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 가운데 일부는 세계사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대부분의 군사사가 아무리 흥미롭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학문적 논의에 머무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시의적절한 교정을 제공한다. 즉 두 문명 사이의 심하게 왜곡된 역사 기록을 바로잡고 이를 통해 이슬람교도의 서방에 대한 적대가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 이슬람 역사에서 계속 이어져 온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 머리말 중에서(p.23)
이 책은 634년에서 시작한다. 동로마 제국과 이슬람 세력이 중동의 패권을 놓고 처음으로 맞붙는 역사적인 한해였다. 결과는 동로마 제국의 참패였다. 무함마드의 충복이자 '알라의 검(Sayf Allah)'이라고 불리는 걸출한 군사 지도자인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Khalid ibn al-Walid)가 이끄는 이슬람군의 공세 앞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했고 시리아를 빼앗겼다. 동로마 제국은 총력을 기울여 반격에 나섰지만 2년 뒤 시리아와 요르단 국경에서 벌어진 야르무크 전투(battle of Yarmouk)에서 때마침 불어온 모래폭풍 때문에 재앙에 가까운 대패를 당했다. 이슬람에게는 알라의 가호였고 기독교도들에게는 신의 외면이었다. 이 전투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린 동로마 제국은 내분까지 겹치면서 80년 뒤에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포위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동로마 제국의 패배는 부패와 타락으로 약해져서라기보다 이슬람이 여태껏 본 적 없는 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슬람 특유의 복종에 대한 보상과 가차없는 처벌의 공포에서 비롯된 종교적 광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하디스>에 적혀 있다는 72명의 처녀 어쩌구는 죽음조차 불사할 만큼 그 동네 남정네들에게는 어지간히 매력적이었던 모양. 그 이유에 대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지하드를 수행하는 이들은 반드시 진심이거나 경건한 의도를 가져야 할 의무는 없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코란>의 냉정하고 사무적인 언어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하드를 수행하는 자는 누구든 알라에 좋은 대출을 해주는 것이며 알라는 그 대가를 여러 배로 보상해주는 것을 보장한다. "그들은 알라의 길에서 싸우며 죽이고 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맺은 이 거래에 기뻐하라." 죄에 대한 즉각적인 용서가 신자들에게 주어지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믿음이 약한 이슬람교도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면허가 되었다. 지하드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기도나 단식같은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여러가지 면제 혜택이 있었다. - p.36
땅에 쓰러져 죽어가던 이슬람 병사들은 지하드를 통해 죽은 자에게 약속된 천국의 미녀가 양팔을 벌이고 자신들을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여러 일화가 이슬람 연대기에 들어갔다. 한 이슬람 병사는 야르무크 강변에서 칼을 맞고 땅에 쓰러진 전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쳐드는 것을 보았고 그가 기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미녀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또다른 아라비아 지휘관은 깃발을 흔들며 병사들에게 "기독교도 개들에게 맹렬히 돌진하는 것은 미녀들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라고 외쳤다. - p.61
이집트는 기독교 인구가 많은 지역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슬람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초기 이슬람 연대기들은 수백년에 걸친 박해와 재정적 수탈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콥트인들이 샤하디를 고백하게 되었고 이로서 이집트가 오늘날과 같이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국가가 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슬람 역사학자 타키알딘 알마크리지는 그의 방대한 이집트사를 통해 이슬람교도들이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도들을 학살 또는 화형에 처하고 그들의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삼았다는 여러 별도의 기록들을 전하고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많은 기독교도가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 p.77
이 책은 636년 야르무르 전투, 717년 콘스탄티노플 포위전, 732년 투르 전투,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1187년 하틴 전투,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1683년 빈 포위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와 이슬람이 벌였던 8번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균형적 시각이라기보다 백인 기독교도의 눈에서 본 이슬람의 침략에 맞선 기독교의 항전사이랄까. 이슬람은 악이요, 기독교는 선이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관점이 구석구석에서 와닿는 느낌. 저자는 이슬람의 잔혹함을 단순한 일부의 일탈이 아닌 교리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은 종교라고 매도하면서도 정작 그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기독교의 만행에 대해서는 마치 불가피한 선택인양 옹호한다. 흔히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코란"이라는 이슬람이 일부 지식인들의 막연한 환상마냥 다른 종교보다 더 관용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독교가 이교도들에게 덜 폭력적이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십자군 원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물론, 특히 근세에 와서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아야 했던 아시아, 아프리카인들 입장에서는 말이다. 저자도 다이야 할당 못 채웠다고 손목이 잘려봐야.
실제로 10세기의 이슬람세계는 유럽의 생산물이나 천연자원을 소비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오직 유럽인들의 몸 자체만이 필요했다. 수요가 많은 것은 젊은 여성과 소년이었지만 10세기 중 거의 모든 연령과 계층, 그리고 대륙의 거의 모든 지역의 유럽인들이 사슬에 묶여 북아프리카나 서아시아로 향하는 배에 실렸다. 이 끊임없는 습격의 결과는 원인은 잊혔을지라도 잘 알려져 있었다. 점점 가난해지고 문맹이 되어가던 유럽인들은 해안을 떠나 고지대의 요새와 성으로 피신했고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어떤 영주나 기사에게든 충성을 맹세했다. 유럽의 '암흑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p.155
요컨대 사도 바울이 말한 기독교도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경건하고도 근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특정 형태의 공적 폭력을 용인하는 것은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용서의 교리에서 본질적인 모순은 없다. - p.214
서방 기사들은 동료 기독교도 기사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여 끊임없이 죄를 짓고 있었다. 그들의 문화는 전투 중심이었고 전쟁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것이 그들이 잘하는 일이자 아마도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는 예수의 사랑과 평화의 명령을 어긴다는 죄책감에 늘 시달리고 있었다. - p.21
<코란> 제3장 28절은 타키야를 정당화하는 주요 구절 중 하나이다. "믿는 자들은 이교도를 친구나 동맹으로 삼지 말라. 누그든 그렇게 한다면 그는 더 이상 알라와 관계 없다. 다만 이교도를 조심해야 할 위험이 있을 때에는 예외로 하되, 신중하게 처신하라." "만약 이슬람교도가 이교도의 권위 아래 놓여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고 느낀다면 말로는 충성을 가장하되 마음 속으로는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품어라. 알라께서는 신자들이 이교도와 우호적이거나 친밀해지는 것을 금지하셨다. 다만 이교도가 권세를 가졌을 경우에는 예외이다. 그럴 때에는 그들에게 친근하게 굴되, 종교는 지켜야 한다." - p.309
역설적이게도 미화된 역사 속 다른 이슬람 제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아이들에 대한 유괴, 강제 개종, 지하드 세뇌 제도는 일부 주요 학자들에 의해 마치 아이를 좋은 교육 기관에 보내 성공적인 경력을 위한 훈련을 받게 하는 것에 해당하는 듯 묘사된다. 실제로는 세뇌와 비인간화라는 가혹한 시련을 견뎌낸 자들만이 이교도와의 전쟁에 대한광적인 욕구를 가진 사람으로 변신해 오스만 군대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바로 '새로운 병사'라는 뜻의 예니체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가족과 본래 신앙으로부터 납치한 책임이 있는 술탄에게 '개처럼 충성'했고 그들의 옛 가족과 신앙을 상대로 광란의 행동을 보였다. 이것은 기록에 남아 있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역사상 최초 사례 가운데 하나라는 증거였다. - p.328
샤리아에 따르면 언제 이교도와 평화 조약을 맺을 지 결정하는 요인은 상황이다. 이슬람 교도가 강할 때에는 공격을 지속해야 하고 약할 때에는 평화를 청해야 한다. 6장에서 보앗듯 개종을 가장하는 타키야가 그런 겨웅이다. 일반적으로 이교도에게 우위를 점하기 위해 속임수를 사용하는 거은 선지자의 유명한격언 "전쟁은 속임수이다"에 근거한다. 그는 한 젊은 개종자에게 선지자를 조롱했던 늙은 유대인 시인을 속여 이슬람 교도가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하도록 만들 것을 허락했다. 유대인이 경계를 풀고 이슬람교도 청년을 신뢰하게 되자 그 청년은 노인을 암살했다. - p.351
제노바 상인이자 오스만 제국의 관습에 정통했던 야코포 데 캄피는 그 절차를 이렇게 묘사했다. "튀르크 황제는 벌하고자 하는 사람을 땅에 눕힌다. 팔로라고 불리는 날카롭고 긴 장대를 항문에 꼽고 집행인은 두 손으로 큰 망치를 잡아서 있는 힘껏 내리친다. 그러면 장대가 인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것이 지나가는 경로에 따라 불행한 자는 오래 고통을 겪다가 죽기도 하고 즉사하기도 한다. 그 후 장대를 들어서 땅에 꽂아 세운다. 그렇게 불행한 자는 최후의 순간을 맞게 되며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 p.352
쉴레이만의 전례없는 유럽 진출은 시기적으로도 최악의 순간에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오스만이 맘루크 술탄국의 광대한 영토를 흡수한 해인 1517년에 기독교 세계의 마지막이자 가장 혹독한 최악의 분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궁극적 결과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이익이 되었다. 가톨릭 성직자인 마르틴 루터는 이 때 역사적인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루터의 행위는 의도치 않게 이슬람 세력의 침입에 맞선 유럽의 단합을 약화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아마도 가장 심각한 점은 루터와 다른 종교 개혁 지도자들이 가톨릭 교황을 수십만의 기독교도를 학살하고 노예화한 책임이 있는 오스만 술탄보다 더한 '적 그리스도'로 묘사함으로서 일종의 상대주의를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만연한 이 상대주의는 가톨릭 역사 속 종종 왜곡된 사례를 끌어와서 지금도 계속되는 이슬람교도의 만행을 축소하거나 희석하는데 이용된다. - p.392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신생 독립국이었던 미국이 처음으로 치러야 했던 전쟁이 이슬람과의 싸움이었다고 말한다. 북아프리카에서 미국 선박을 상대로 노략질했던 바르바르 해적 토벌전 말이다.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요근래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벌집을 건드려서 전 세계 기름값을 폭등시킨 것 또한 이슬람과의 기나긴 성전의 일환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듯. 내가 보기에는 그 양반에게 원대한 계획이 있다기보다 치매나 충동조절장애가 더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아무튼 "서방은 바뀌었지만 이슬람은 여전하다"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리고 서방의 정신이 해이해진 사이 이슬람은 지금도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사회 일각에서 잊을 만하면 북한 위협론을 들고 나오는 느낌이랄까.
물론 저자의 지적처럼 이성적인 서구 기독교도들에 비하여 탈레반이나 ISIS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우리네 세상에 훨씬 위험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동에서 깡패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이 과연 그들보다 덜 하다고 할 수 있으며 서방 또한 묵인하고 있지 않은가. 소위 '스트롱맨'을 자처하는 트럼프조차 이란 핵에 대해서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핵은 우리편이라면서 모르쇠로 일관하여 역시 만만한 적에게만 스트롱맨임을 입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미국식 이중잣대에는 침묵한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이슬람은 서쪽의 기독교 세계를 끊임없이 위협했지만 동쪽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가령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국가인 것은 대항해시대 향신료 무역과 개종의 결과이지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어째서 오스만 제국은 유교 국가인 중국을 상대로 종교 전쟁을 벌이지 않았던가. 그들의 칼끝은 동쪽이 아니라 언제나 서쪽으로 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또한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출판사의 소개글이나 옮긴 이의 말에는 영원한 숙적이었던 기독교와 이슬람 갈등의 역사를 담백하게 거론할 뿐, 저자의 특수한 배경이나 이런 내용의 책이라는 얘기는 쏙 빼놓고 있다. 처음부터 알고 번역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슬람이 탐탁치는 않지만 기독교 하는 짓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나로서는 교인이라면 몰라도 우리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 이슬람 포비아를 자극하여 교회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외친들 둘 다 도찐개찐 아닌가 싶기도. 어떻게 평가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