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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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감 넘치는 사진과 각국의 세력권, 전쟁 흐름을 한눈에 보여 주는 지도, 세세한 전투 서열 표를 통해 독자는 승자의 서사에 가려져 있던 작은 나라들의 결정과 그 대가를 차분히 따라간다. 책은 그 선택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불가피해졌는지, 국제정치의 현실이 약소국에 무엇을 포기하게 하고 어떤 행동을 강요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 국방일보 2026년 3월 4일 소개글 중에서.


올 초 윌북에서 나온 던컨 웰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에서는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한 경제학자가 미국을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주인공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때 "칼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유명한 경제사학자"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케네디와 존슨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월트 휘트먼 로스토(Walt Whitman Rostow)였다. 그리고 미국을 영원한 악몽의 수렁으로 빠뜨린 베트남 전쟁의 설계자이기도 했다.


로스토는 15세에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인 예일대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다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24살에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 교수를 맡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영재 중의 영재인 셈.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머리가 명석한 대신, 세상 천재들이 흔히 그러하듯 고집불통이면서 자신에 대한 어떤 비판과 오류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독불장군이었다. 문제는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우리네 세상이 어느 한 사람의 머리로 죄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명성을 등에 업고 존슨 행정부의 고위직으로 입성한 그는 베트남 전쟁 개입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미국의 힘을 보여주어 굴복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과 달리 굴복한 쪽은 북베트남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모든 것을 미국식 경제논리로만 생각했던 그는 폭격으로 북베트남의 산업을 파괴한다면 손해를 견디지 못하고 백기를 들 거라고 기대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공산주의 진영이 북베트남을 도운 덕분도 있었지만 베트남인들 특유의 저항 의식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알아도 다른 나라를 알지 못했던 책상물림 학자의 한계였다. 


북베트남을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며 시작된 미국의 북폭 작전인 "롤링썬더 작전(Operation Rolling Thunder)"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이 퍼부은 폭탄은 800만톤에 달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폭탄의 3배였다. 그리고 군부를 설득하여 작전을 밀어붙인 사람이 경제학자인 로스토였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경제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망각했고 전쟁을 망쳤다. 


로스토의 독선이 초래한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은 물론이고 미국에게도 5만 명의 전사자를 비롯하여 수십 만 명이 불구가 되었으며 100만 명이 넘는 PTSD 환자, 그리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끼쳤다. 하지만 그는 2003년에 87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존슨 시절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라마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뒤늦게 회고록을 통해서 베트남 전쟁의 개입이 실수였다고 후회하자 로스토는 온갖 궤변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신공격까지 퍼부었다고 한다. 자신이 신이 아니라 한낱 평범한 인간임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잘났기 때문이었을까. 로스토만이 아니라 미국만 알고 미국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워싱턴 정가 엘리트들의 흔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또 한번 쓴맛을 보고 나왔음에도 요근래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죽을 쑤고 있는 것을 보니 인간이란 역시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했지만 반복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해야.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열린 책들의 신작도서 <약소국의 제2차 세계대전사>는 여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한 제2차 세계대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사의 바이블로 손꼽히는 존 키건이나 리처드 오버리, 앤터니 비버 등 기존에 나온 책들이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강대국들의 얘기라면 이 책에서는 그동안 강대국 중심의 역사에서 스쳐가는 단역 치부를 당했던 약소국들이 주인공이라는 점. 


저자는 놀랍게도 학계 교수가 아니라 공무원 출신의 전쟁사 작가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랄까. <중일전쟁><중국군벌전쟁><별들의 흑역사>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내놓았으며 특히 마이너한 전쟁사를 주제로 다루는 모양. 


이 책은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장하는 나라 만도 20개에 달한다. 책의 첫번째 장을 장식하는 것은 당시 아프리카 유일의 독립국이었던 에티오피아이다. 우리에게는 오랜 내전과 가난에 허덕이면서 국제 사회의 도움을 호소하는 세계 최빈국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원래는 인류의 발상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 중의 하나이며 무엇보다도 수천년의 역사에서 단 한번도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쟁쟁한 국가들이 유럽 열강들에게 짓밟히는 순간에도 자신들의 힘으로 유럽의 침입자들을 격파하고 끝까지 독립을 지켰다. 그야말로 아프리카의 자존심인 셈. 그런 에티오피아가 1935년 10월 로마제국의 부활을 내건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였던 무솔리니의 침공을 당한다. 일부 역사 학자들은 이 순간을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기도.


에티오피아 솔로몬 왕조의 제64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가 되는 하일레 셀라시에는 무솔리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만만찮은 인물이었다. 비록 말년에는 장기 집권의 불만과 경제난, 미소 냉전의 파고 속에서 군부 내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비운의 군주가 되지만 그는 자기만 살자고 국민을 히틀러의 손에 내동댕이치고 달아났던 이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나 알바니아 조구 1세같은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암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물며 오늘날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등지에서 나라를 막장으로 몰고가며 부귀영화와 개인 우상화에만 열을 올리는 여느 철권 통치자들과도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 p.48


다음날 새벽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영광의 상징인 아두와 상공에 이탈리아 공군의 카프로니 Ca.101 폭격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티오피아 병사들이 비행기를 향해 정신없이 총을 쏘았지만 폭격기들은 여유롭게 날아와 폭탄의 비를 떨어뜨렸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4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에티오피아인들이 처음 겪는 현대전이었다. 이와 함께 12만 명의 이탈리아군이 에티오피아-에리트리아 국경을 흐르는 마레브 강을 넘어서 진군을 시작했다. - p.62

 

유화정책이 상대에게 약점으로 악용되어 도리어 더 큰 전쟁을 불러오리라는 생각은 간과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막대한 이권이 있었고 히틀러를 막는데 무솔리니의 협력이 필요한 처지였다. 이들에 보기에 골칫거리는 무솔리니가 아니라 분수도 모르고 그에게 맞서려는 에티오피아인들이었다. 따라서 그 대가도 마땅히 에티오피아인들이 치러야 할 몫이라는 게 열강들의 결론이었다. 최소한의 정보도 없이 편협한 선입견과 자국의 이익만 내세워 자신들은 아무것도 손해 보지 않으면서 약소국만 제물로 삼아 밀실에서 흥정하려는 열강들의 이기적인 행태는 2년 뒤 뮌헨 회담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참이었다. - p.72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은 국제연맹에서 국가 간의 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금지한 부전 조약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지만 열강들은 오지랍 넓게 끼어들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이유로 침묵했다. 그러면서도 중재안이랍시고 내놓은 것은 약소국인 에티오피아더러 일방적으로 양보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에티오피아인들은 고립무원이었고 구식무기로 무장했지만 그럼에도 순순히 굴복하지 않고 황제의 진두 지휘 아래 최신 무기로 무장한 침략자들에게 용감하게 맞서 싸운다. 뜻밖의 고전에 직면한 이탈리아군은 국제법에서 금지한 독가스를 꺼내야 했다. 결국 반년의 싸움 끝에 수도 아디스 아바바가 함락되고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무솔리니는 로마제국 부활의 첫발에 내딛는다. 하지만 그 후에도 에티오피아인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구한말 맨주먹으로 일본의 총칼에 맞섰던 우리 의병들을 보는 것 같다랄까.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국령 이집트와 수단으로 진격하지만 영국의 반격으로 패배한다. 


영국의 망명생활 동안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온갖 푸대접을 감수해야 했던 황제는 가만히 앉아서 외세에 의한 해방을 기다리는 대신 자기 손으로 나라를 되찾는 쪽을 선택했고 1941년 5월 5일 아디스 아바바로 돌아왔다. 나라를 잃은 지 꼭 5년 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에티오피아를 자국 식민지로 삼으려는 영국을 상대로 또 다른 투쟁을 벌어야 했다. 제국주의 시절 강대국들의 이기심 앞에서 약소국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보여주는 셈이다. 


국제연맹이 무솔리니더러 국제법을 어기고 금단의 무기를 썼다고 해서 문제 삼거나 더 강력한 제재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참상을 경고하기 위해 국제연맹에 보낸 보고서들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개가 거부되었다. 물론 상투적인 핑계일 뿐, 열강들로서는 자기네와 상관없는 골치 아픈 일에 연루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방독면을 보내달라는 요구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에티오피아인들은 최소한의 보호를 위해 목면으로 원시적인 방독면을 만들어야 했다. - p.87

황제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자신이 자랑하는 친위대였다. 라스 게타체우 아바테의 지휘 아래 친위대가 에리트레아 제2사단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이들은 분명 여느 에티오피아 전사들과는 달랐다. 서구식 군사 전문가들에 의해 고도로 훈련받았으며 뛰어난 규율과 현대적인 무기로 무장했다. 친위대는 에리트레아군 1개 대대를 단숨에 괴멸시키고 이탈리아군 측면을 위협했다. 하짐나 이들 역시 이탈리아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폭격 앞에서는 무력했다. 오후 4시 가랑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최후의 공격에 나섰지만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 p.103

황제는 이탈리아군이 에티오피아에서 어떤 일을 저질렀으며 국제 연맹이 약소국을 지켜주기로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것을 호되게 질타했다. 연설을 마치고 마이크가 꺼지기 직전 그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듣고 있던 모든 참석자들의 양심을 후벼팠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이며 내일의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 p.118


이탈리아의 지배는 끝났다. 하지만 그것이 에티오피아의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영국인들은 <적의 영토를 점령한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에티오피아가 동맹국이 아니라 적성국의 식민지라는 얘기였다. 이탈리아인들로부터 접수한 모든 물자와 자원, 공장  설비, 인프라는 죄다 영국인들 차지였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영국의 군정을 받아야 했다. 황제는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영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p.153

2부의 "두 거인 사이에서"는 인구 350만명의 약소국이면서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소련을 상대로 모두 승리했던 핀란드의 위대한 투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3부의 "처칠의 도박"과 4부의 "중립의 딜레마"는 반대로 오랜 중립만 믿고 전쟁을 대비하지 않았다가 독일과 연합군의 싸움에 휘말려서 제대로 저항도 못해 본 채 몰락한 나라들을 다루고 있다. 5부 "발칸의 악몽"에서는 에티오피아와 마찬가지로 무솔리니의 야욕에 용감하게 맞선 그리스가 등장한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그리스는 초기 승리에 도취되어 전쟁을 끝낼 기회를 놓쳤고 이참에 알바니아까지 먹겠다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도리어 히틀러의 제물이 되어 이웃동네 유고슬리비아와 도매금으로 멸망한다. 6부 "동유럽의 파편들"은 히틀러에게 먹히거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 사냥개 노릇을 해야 했던 동유럽 국가들의 이야기이다. 헝가리가 마지못해 추축 편에 섰다면 바로 옆동네 루마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 에서 독일과 싸웠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히틀러의 가장 든든한 동맹국이었다. 불가리아는 직접 전쟁에 끼어들지 않으면서 히틀러에게 요령껏 단물만 뽑아먹은 유일한 추축국이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히틀러와 엮이게 되었건 간에 결말은 똑같았다. 다같이 나라를 잃고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된다.


발트3국은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차례로 스탈린에게 굴복했다. 이들은 결코 소련의 지배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군비를 너무나 소홀히 한데다 이제야 대응책을 마련하거나 저항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발트 3국의 군대를 모두 합해도 7만명 남짓에 불과했다. 그 중 에스토니아군이 1만 7천여명, 라트비아군이 2만8천명, 리투아니아군이 2만4천명 정도였다. 무기와 장비도 구식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운명을 체념한 채 아예 손을 넣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 p.179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소련과 독일 두 나라를 상대로 양쪽 모두에게 승리한 유일한 나라였다. 그것은 야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핀란드인들은 어떤 외세도 자신들을 정복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힘만으로 얻어낸 성과였다. 반면 발트해 너머 3국은 그다지 운이 좋지 못했다. - p.298

유틀란드 반도의 작은 나라 덴마크는 그야말로 무책임하리만큼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 나라가 살아남기는 커녕 잠시도 버티지 못할 판국이었다. 면적은 4만3천㎢에 인구는 384만명에 불과했다.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신세인 벨기에와 비교하여 영토는 조금 더 크면서 인구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위스나 핀란드처럼 자연이라는 막강한 우군도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오랜 평화에 젖어 전쟁을 남의 일로만 여겼기 때문이었다. - p.332

노르웨이인들이 이웃 형제인 핀란드인들보다 결코 용기가 부족했다고 말할 수는 업었다. 또한 핀란드인들처럼 스키와 사격술에 능했다. 부족한 것은 전의와 국난을 극복할 지도력이었다. 비록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가 형인 덴마크 국왕과 달리 결사 항전을 선택했지만 막상 대다수 국민은 침략자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군비가 최소한으로 억제되면서 노르웨이군은 현대 무기 도입은 커녕 체계적인 동계 훈련이나 기동 훈련조차 거의 하지 못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자국 군대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일보다 국내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하는데 활용되었던 사실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무기를 들어 침략자에 맞서야 한다는 정부의 호소를 냉담하게 받아들였다. - p.368


스웨덴 육군은 5개 보병사단 및 1개 기병 여단 10만명 정도였고 전시에 최대 40만명을 동원할 예정이었다. 전차는 체코제 AH-1V탱켓을 라이선스 생산한 M/37 48대와 스웨덴에서 독자적으로 생산한 L-60 경전차 20대가 전부였다. 1930년대 초반에 생산된 이 전차들은 하나같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장갑과 화력이 매우 빈약했다. 공군력으로는 5개 전투 비행대 전투기 158대, 폭격기 116대, 정찰기 100대 등 374대의 항공기를 보유했다. - p.394

온 유럽에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벨기에가 프랑스와 힘을 합치는 커녕 도리어 거리 두기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히틀러의 감언이설에 넘어갔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근본적으로는 프랑스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었다. 벨기에는 프랑스와의 동맹이 자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기보다 도리어 프랑스의 이기심 때문에 원치 않는 싸움에 끌려 들어가지 않을까 우려했다. 벨기에의 오랜 후견국인 영국은 매번 독일을 핑계 삼아 불장난을 벌이는 프랑스를 히틀러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라고 낙인찍었다. - p.436


6월 21일 새벽,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8만 명의 이탈리아군은 모든 전선에 걸쳐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전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쏟아지는 눈보라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숨어 있는 프랑스군 저격병의 사격을 받아야 했다. 눈은 두껍게 쌓였고 땅은 진창이었다. 이탈리아군의 주력 전차인 L3 경전차들은 원래 알프스의 산악지대에서 쓰기 위해 개발했음에도 엔진이 약하고 궤도가 너무 좁아 눈이 가득 쌓인 산길을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 p.522


그리스 해군은 전 드래드노트급 전함 1척과 장갑 순양함 1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0척, 잠수함 6척, 어뢰정 13척, 기뢰부설함 4척, 수리함 1척 등 37척의 군함과 병력 6500명을 보유했다. 그 중 현대적인 군함은 1930년대 말에 영국에서 구매한 배수량 1300톤의 그레이하운드급 구축함 2척이 전부였다. 배수량 15000톤의 그리스 유일 전 드래드노트급 전함인 렘노스는 노후화가 너무 심해서 1937년에 퇴역한 뒤 무장 해제되어 그리스 해군의 모항인 살라미스에 정박한 채 썩어가는 신세였다. - p.569

4월 20일 서부 마케도니아 군관구와 에피루스 군관구가 항복했다. 그리스 15개 사단 20만명이 포로가 되면서 그리스 북부 전선이 와해되었다. 뒤늦게 그리스가 자신을 빼놓고 독일군과 협상 중이라는 얘기를 들은 무솔리니는 분통을 터뜨리며 카발렐로 장군에게 총공격을 명령했다. 하지만 그리스군도 독일군이라면 몰라도 이탈리아에게 굴복한 생각은 없었다. 이탈리아군은 끝까지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다. - p.642

합스부르크 제국이 남긴 근대 산업 대부분을 차지한 체코슬로바키아는 단숨에 중부 유럽 제일의 공업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헝가리에 남은 것은 수도 부다페스트를 제외하고는 가난하고 낙후한 농촌이었다. 제국 시절의 자유 시장은 사라졌고 농산물에는 높은 관세가 부과되었다. 패전의충격에다 경제적 장벽으로 유통이 막히면서 경제는 막히고 실업자가 늘어났으며 물가는 폭등하고 재정은 파산 지경이었다. - p.717


헝가리가 주변 눈치를 보면서 억지로 끌려 나왔다면 반대로 아예 국운을 걸다시피한 쪽은 루마니아였다. 안토네스쿠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이었다. 루마니아도 헝가리만큼 전쟁에 끼어들 처지가 아니었다. 전해에 영토 태반을 빼앗기면서 인구와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1940년 말의 겨울과 다음 해 봄은 루마니아인들에게 어느 때보다도 혹독했다. 폭우로 인한 홍수와 추운 날씨로 전에 없는 흉작이었다. 루마니아군은 시대에 뒤떨어진 군대였다. 무기와 장비는 구식이었다. 당장이라도 소련군이 프루트 강을 넘어서 남은 영토까지 넘볼까봐 전전긍긍하는 판국에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겠답시고 이쪽에서 치고 나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 p.802


소련군이 1812년의 나폴레옹 군대나 1941년의 독일군이 직면했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러시아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추위에 더 강하게 진화해서도, 독일군이 소련군보다 용기가 부족해서도, 하물며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더 뛰어난 전략가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서방이 넘겨준 수십만 대의 차량과 막대한 양의 고품질 연료 덕분이었다. (중략) 전쟁 내내 서방을 향해 끊임없이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았던 소련 지도자들은 전쟁이 끝나자 자신들에게 불편한 사실을 깡그리 잊기로 했다. 어느 순간 서방의 원조는 소련 전체 생산량의 4퍼센트에 불과했다는 것이 공신 노선으로 정지고 소련 관변학자들은 자기네 승리에서 시방 기여분을 축소하려고 인간힘을 썼다. 한마디로 서방의 도움 따위가 없었어도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 p.931


이 책을 읽으면서 약소국이라고 해서 죄다 고래 싸움에 휘말린 새우들마냥 운명에 휘둘린 비련의 주인공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쳤고 때로는 강대국들의 운명을 바꾸어놓기도 했다. 그리스의 영웅적인 항전은 무솔리니를 파멸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탈리아와 헝가리가 어영부영하다가 히틀러의 손아귀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 반면, 루마니아 국왕 미하이 1세는 전쟁 말기에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독일군을 물리치고 연합군으로 갈아타는데 성공한다. 국난의 순간에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셈이다.


무려 1천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국방대 교수들의 딱딱한 학술서적이 아니라 역사 스토리텔러가 풀어 쓴 논픽션이기에 읽기 쉽고 팍팍 와닿는다랄까. 장대하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마치 2차 세계대전 다큐멘타리나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는 느낌. 밀덕으로서 저자의 필력이 느껴진다. 그보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특히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사진들과 지도, 당시 사용한 무기, 부대 전투 서열 등 풍부한 자료는 여느 전쟁사 서적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소위 "신 냉전"이라고 부르는 시대이다. 우리 시대의 평화는 커녕, 지구촌 곳곳에서 분쟁은 더욱 격화되는 느낌이다. 푸틴은 4년이 넘도록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는 트럼프는 실속없는 세계 경찰 노릇 대신 미국의 이익만 챙기겠다고 공언하면서 만만한 동맹국들의 주머니 털기에만 여념이 없다. 일본은 갈수록 전쟁 국가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으며 중국은 태평양에서 세력을 확장하면서 미국에 대한 도전을 감추지 않는다. 과연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강대국보다 약소국의 역사에 주목하고 그들로부터 우리가 살아남을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역덕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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