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의 밤 -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을 암살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극비 작전
하워드 블룸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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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1월 28일 이란 테헤란에서 세계사에 남을 빅 이벤트가 열렸다. 이른바 연합국의 '빅3', 즉 루스벨트와 처칠, 스탈린이 개전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만나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틀 전에는 카이로에서 장제스와 회담이 있었다. 하지만 루스벨트의 거듭된 재촉에도 불구하고 장제스를 껄끄럽게 여기던 스탈린은 카이로에 오기를 끝까지 거부했고 결국 테헤란에서 스탈린을 위한 별도의 모임을 가져야 했다. 전쟁이 한창일 때 굳이 수도를 떠나서 세 사람이 모인 것은 단순히 친분을 쌓거나 히틀러가 흔히 그러했듯 우리편의 승리를 의심하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동맹국 지도자들을 억지로 끌어다가 알맹이 없는 연설을 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제2전선의 구축과 함께 나치에게 이긴 뒤 전후 구상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였다. 바꾸어 말해서 이미 다 이긴 싸움이라는 얘기였다. 여전히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나치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전쟁의 주도권을 쥔 쪽은 연합군이었다. 1943년 초 독일군은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완패했다. 여름에는 독일 최후의 전략적 공세였던 치타텔 작전이 소련군의 방어선 앞에서 가로막혔다. 그 사이 서방 연합군은 북아프리카에서 승리하고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무솔리니 정권을 끝장냈다. 히틀러의 운명도 초읽기였다.


테헤란 회담이 열릴 때부터 독일 항복까지 연합군의 공세. 1943년 말에 오면 나치가 완전히 수세에 내몰리면서 사실상 승패는 결정난 셈이었다. 이제부터는 어느 쪽이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나치가 얼마나 오랫동안 버티느냐의 싸움이었다.


히틀러가 제아무리 장군들을 닥달한들, 이제와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빅3가 한 자리에 모인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이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면 과연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마다했을까. 히틀러같은 모사꾼이 워털루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나폴레옹을 저격하겠다는 병사를 향해 "장군들은 서로를 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라면서 기사도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부했던 웰링턴마냥 물렁하게 굴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빅3가 모이는 장소는 워싱턴도, 런던도, 모스크바도 아니었다. 연합국의 심장부와는 거리가 먼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었다. 레자 샤 팔레비(Reza Shah Pahlavi)가 1925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후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이름이 바뀐 이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폭발하자 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1941년 8월 25일 영국과 소련은 이란이 독일 편에 서는 것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카운터넌스 작전(Operation Countenance)'을 발동하고 무력 침공했다. 이란군은 9개 사단 20만명에 달했지만 훈련과 무장이 빈약한 오합지졸이었던 이들로서는 압도적인 영국, 소련 연합군의 공격 앞에서 변변한 저항도 못해본 채 무너졌고 6일 만에 정복당했다.


이란 침공 당시 소련군 BA-10M 장갑차와 영국군 수송차량 행렬.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양국 군대의 유일한 연합작전이었다.


반년 뒤인 1942년 1월 29일 영국, 소련은 전쟁이 끝나고 6개월 내에 이란에서의 철수를 약속했다. 1943년 9월 9일에는 이란 정부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명목상 연합국의 일원이 되었다. 실제로 이란군이 추축군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빅3 입장에서 이란은 여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란인들은 침략자들에게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고 독일 스파이들은 이란에 침투하여 연합국에 대한 무장 저항을 선동하면서 지지세력을 확보했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과 식량난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독일군 해외방첩국 아프베어(Abwehr)는 1943년 여름에 튀르크계열의 유목민인 카슈카이족을 이용하여 서방의 대소 랜드리스 수송을 방해하는 계획을 시도했다. 작전명은 '프랑수아(Operation François)'였고 지휘 책임자는 얼마 뒤 무솔리니 구출로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오토 스코르체니(Otto Scorzeny) 소령이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는 무장친위대 소속 제502저격대대 소속의 정예요원 몇명을 뽑아서 선발대로 이란에 보냈지만 낙하 도중에 영국군에게 발각되어 모조리 일망타진당했다.

그리고 더욱 야심찬 시도가 빅3 암살 계획이었던 '멀리뛰기 작전(Operation Long Jump)'이었다. 친위대의 2인자이자 힘러의 라이벌이기도 한 에른스트 칼덴부르너(Ernst Kaltenbrunner)는 빅3가 모이는 장소가 테헤란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히틀러는 철천지 원수와 같은 세 지도자를 한방에 몰살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 작전 역시 스코르체니가 맡았다. 성공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전쟁 이전에도 언제나 쿠데타나 암살 위험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스탈린이야 크렘린 궁전 깊숙한 곳에 숨어 있으니 접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서방 지도자들은 훨씬 덜 조심스러웠다. 심지어 미국인들은 미국 한복판에서 자기네 대통령을 몇번이나 암살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충분한 인력과 자금도 없이 말이다. 1933년에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루스벨트를 거의 살해할 뻔 했던 사람은 주세페 장가라(Giuseppe Zangara)라는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는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벽돌공이었다.

만약 빅3 중의 한 사람이라도 암살에 성공한다면 당장 전쟁의 향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연합국의 결속을 흔드는 것은 물론이고, 모처럼 독일인들의 사기를 높이고 연합국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것이었다. 정말로 성공했다면 진주만 기습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충격적인 사건이 되었겠지만, 결론만 말하면 이번에도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테헤란의 독일 첩보망과 스코르제니가 보낸 특수부대는 소련 NKVD의 철통같은 보안을 뚫는데 실패했고 빅3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깨달을 일 없이 테헤란의 소련 대사관에서 화기애애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히틀러가 두번 다시 그런 시도를 벌이는 일 또한 없었다. 다음 회담은 1년 뒤 소련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열렸고 그 때쯤이면 독일은 베를린 코앞까지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트형 주연의 영화 <바스터즈> 이쪽은 연합군이 히틀러 암살부대를 보낸다는 내용.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양측이 서로의 지도자나 주요 인사를 암살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보안이 워낙 철통같다보니 소위 '참수작전'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효과는 적에게 겁을 줄 수는 있다는 심리적인 것에 있다. 우리나 중국이 참수작전을 숨기는 대신 대놓고 떠드는 것도 이 때문.


이것이 러시아인들이 주장하는 소위 "빅3 암살미수사건"의 전모이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소재이지만 막상 서구 쪽에서는 믿지 않는다고. "우리가 너희를 구했다"라는 러시아인들의 일방적인 주장 이외에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이다. 스코르체니는 그런 작전에 관여하기는 커녕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작전"이라고 일축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영원히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타인의 사유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도서 <암살자의 밤(원저 : Night of the Assassins)>은 제2차 세계대전의 히든 스토리이자 나치판 바스터즈가 될 뻔한 멀리뛰기 작전의 전모를 파헤친 책이다. 저자인 하워드 블룸(Howard Blum)는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으로 퓰리처 상에 두번이나 노미네이트했다는데 수상은 못 한 모양. 또한 논픽션 역사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그 중에서도 이 책은 2020년에 나온 따끈따끈한 최신작.


이 분. 1948년생이라고 하니 올해로 75살. 아직 정정하신 듯. 저서로 볼 때 주로 다루는 분야는 제2차 세계대전과 범죄, 스파이물.


이 책은 테헤란 회담이 열리기 반년 전인 1943년 6월 포르투칼의 한 사건에서 시작한다. 총리이자 철권 독재자인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가 통치하는 포르투칼은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 때와는 달리 명목상 중립을 유지했다. 그러나 오랜 친영 국가로서 히틀러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연합국을 물밑에서 지원했고 100만명에 달하는 난민들이 이곳을 통해서 나치 치하의 유럽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있다. 빅3 중에서 최고령자로서 일흔을 앞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전쟁 내내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쉬지 않고 온 세상을 돌아다녔던 처칠은 몇 번이나 포르투갈을 은밀하게 방문했고 살라자르를 면담하여 연합국 진영에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물론 포르투갈에는 독일 스파이들이 득실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런 여행은 그야말로 목숨 건 도박이었다. 어느날 독일 스파이는 리스본에서 출발하는 런던행 미제 더글라스 DC-3 여객기에 거물이 탄다는 정보를 알아냈고 그 거물이 처칠임을 알아낸다. 독일 공군의 Ju-88 중전투기들이 즉각 출동하여 그 불운한 비행기를 격추시키지만 독일군을 따돌리기 위한 눈속임이었고 그 사이 처칠은 다른 비행기를 타고 잽싸게 무사히 빠져나옴으로서 독일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물론 독일은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고 연합국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선다. 어차피 궁지에 내몰린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합국은 머리가 셋 달린 괴물과 같았다. 고전적인 교육을 받은 아프베어의 수장 빌헬름 카나리스 제독은 사무실에서 동료 스파이들과 나눈 대회에서 연합국을 '히드라'에 비유했다. 그는 동료들을 위해 사려깊게도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말해 주었다. 헤라클레스가 그 짐승의 머리를 모두 잘라낸 후에야 죽이는데 성공했다고 말이다. - p.24

그 순간 갑자기 군중의 깊은 틈새에서 칼이 날아왔다. 빠르게 움직이는 칼날이 대통령의 가슴으로 직행했다. 루스벨트는 칼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다리는 제자리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마이크가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었다. 그는 군중 사이에 서서 무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p.36

루스벨트는 전시든 아니든 백악관의 일이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의 일이란 정치이므로 공무원들이 백악관 복도를 수시로 들락날락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또한 2주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에는 백악관 문이 활짝 열리고 나무에 불을 밝히는 행사에 군중이 몰려든다는 것을 의미했다.추축국 요원이나 무장 단체 대원이 수많은 낯선 이들 가운데에 껴서 보스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마이크를 초조하게 했다. - p.53

빅3의 만남이라니! 셀렌베르크는 이것이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가 3인의 표적을 노릴 수도 있는 매력적인 기회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이들의 죽음이 전쟁의 최종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가장 열렬한 나치들 - 히틀러나 괴벨스 - 이었다. 독일의 패배는 암울하지만 확실했다. 하지만 루스벨트와 처칠, 스탈린이 사라진다면 다른 평화가 있을 수 있었다. - p.72

셀렌베르크는 평소답지 않게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을 만큼 열정적으로 그것은 단순히 장거리 작전이 아니라고 맞섰다. 훨씬 더 야심찬 작전이라고. 이것은 멀리뛰기와 같다고. 결국 그가 주장한 이름이 받아들여졌다. 이제 연합국 지도자 3명을 암살하려는 작전은 공식적으로 '롱 점프'라고 불리게 되었다. - p.139

이번 전쟁 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틀어 중대한 특공대 작전은 그를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로 만들어 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전사다운 방법으로 적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루스벨트와 처칠, 스탈린이 최후의 순간에 오토 스코르체니가 자신들을 끝장내러 왔다는 것을 꼭 알게 할 것이었다. 그는 그들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 그들이 죽는 순간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폭탄이 필요했다. - p.200

나치가 처음 빅3암살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테헤란 회담까지 약 반년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을 400여 페이지에 걸쳐서 드라마틱하게 풀어쓰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고 불리는 스코르체니가 침투시킨 독일 특수부대와 이들을 막기 위한 연합군 첩보부대간의 추적과 대결은 그야말로 한편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같은 느낌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논픽션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냉전 이후 기밀 해제된 구 소련의 정보 문서와 미국 OSS, CIA, FBI, 영국 정보부 보고서, 개인 회고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참고했다고 하지만 상당부분은 자신의 상상력에 의존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마지막에서 KGB 제1총국장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덧붙인다. "저는 전 세계 어떤 정보기관도 마지막 문서까지는 공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얘기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과 연합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지만 막상 적의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한 암살부대를 보내는 일은 없었다. 전시에 적진 한가운데에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적의 지도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거동이 조금만 수상해도 대번에 체포될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독일 특수부대가 대서양을 넘어서 미국 본토에 침투한 유일한 사례는 1942년 6월 파스토리우스 작전(Operation Pastorius)이었다. 그나마도 뭘 해보지도 못한 채 상륙하자말자 모조리 체포되어 간첩죄로 전기 의자행이 되었다. 하물며 히틀러와 스탈린처럼 평소 남의 원한을 많이 산 인간들일수록 결벽에 가까울 만큼 경계심이 철저한 법이다. 나치 킬러를 자처하는 몇몇 미친 또라이들이 히틀러를 제거한다는 <바스터즈>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스토리이다. 어차피 영화 자체가 블랙 코메디이니. 히틀러가 거의 죽을 뻔했던 순간은 연합군이 아니라 독일 장교들이 설치했던 폭탄이 터졌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멀리뛰기 작전이 실존했고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멀리뛰기 작전이 아니라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 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1943년에 죽었다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불과 1년여 뒤에 뇌출혈로 사망하는 루스벨트의 수명이 좀 더 짧았을 수도 있고, 스탈린이 과로사했을 수도 있으며 처칠이 비행기 추락으로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결코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루스벨트가 1945년 4월에 죽었을 때 히틀러는 미친 듯이 기뻐했지만 전쟁의 전환점이 되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 하지만 1943년이었다면 얘기는 다를 수도 있었다. 루스벨트의 부통령이었던 헨리 월리스(Henry Agard Wallace)가 과연 전시 체제에서 루스벨트에 비견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미국인들을 하나로 이끌 수 있었을 것인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나름의 추진력은 있었지만 정적이 많았다. 더욱이 루스벨트 이상으로 소련에 지나치게 유화적인 태도는 보수파들의 반감을 사서 국론을 분열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처칠이 죽었다고 해서 독일에게 지독하게 두들겨 맞은 영국이 히틀러에게 유화적으로 바뀔 리는 없겠지만 오랫동안 서로를 적대했던 서방과 소련이 힘을 모으는데에는 처칠의 외교술이 컸다. 스탈린의 죽음은 확실히 소련 지도부를 대혼란에 빠뜨렸을 것이다. 공산 독재국가인 소련은 영국과 달리 제아무리 나치가 자국민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어도 그 원한을 풀기보다 지도자들끼리 권력 투쟁에 열을 올릴 나라였다. 실제로 1917년에 레닌은 국내의 동포들과 싸우기 위해서 독일에게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맺고 막대한 배상금과 함께 서부의 광대한 영토를 포기한 바 있었다. 언제나 인민보다 당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또 한번 그 짓을 반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히틀러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 세 사람이 힘을 모았기 때문이었고 어느 한 사람이라도 없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히틀러의 불운은 하필이면 이들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일까. 애초에 미대에 합격했으면 온 세상이 조용했을 것이고 히틀러도 제 손으로 자기 머리에 총알 박을 일은 없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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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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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인들이 왜 히틀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분석한 책으로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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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켰나?
김영서 지음 / 팬덤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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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전쟁 영화의 고전이 된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비교적 최근작인 <미드웨이> <퓨리> <그레이 하운드> 등 제2차 세계대전 영화를 보면 그야말로 화려하고 스펙타클하다. 하늘을 끝없이 메운 비행기들이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거나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고, 지상에서는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치며 바다에서는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수백여대의 함재기들이 쏟아지는 대공포화를 뚫고 적 함대에 폭탄의 비를 쏟아붓는다. 여기에 비하면 참호에서 고작 소총 하나 들고 우루루 뛰어나가다가 기관총과 포격 앞에서 수수다발처럼 쓰러져 나갈 뿐인 제1차 세계대전은 아무래도 따분하다. 물론 사람 죽는 광경을 재미 어쩌구 할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무기들은 대부분 이미 그 전부터 있었던 것들이다. 흔히 제1차 세계대전하면 독가스와 드레드노트 전함 정도를 떠올리지만 전차와 장갑차, U-보트, 비행기, 드론, 화염방사기, 위장복, 철모 등 제2차 세계대전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현대 군대의 주요 장비로 사용되고 있는 상당수가 제1차 세계대전이 만들어 낸 발명품들이다. 세계 바다를 주름잡는 항공모함의 시대가 처음 열린 것도 1차대전 말기였다. 배수량 2만5천톤의 커레이저스급 순양전함 퓨리어스는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고 1918년 7월 19일 7대의 솝위드 카멜(Sopwith Camels) 복엽기가 출격하여 유틀란드 반도에 있는 독일 톤데른(Tondern)의 비행선 기지를 공습했다. 20여년 뒤 진주만 기습의 서막인 셈이다.


2차 대전은 1차 대전 때 등장한 무기를 발전시켜 싸웠다. 예외라고 한다면 레이더와 핵무기 정도일까. 제1차 세계대전은 <1917>같은 영화에 나오는 것마냥 지루한 참호전과 분별없는 장군들에게 떠밀린 병사들의 구태의연한 닥돌이 전부가 아니라 처음으로 전쟁의 패러다임을 사람에서 기술로 바꾸어 놓은 전쟁이기도 했다. 1914년 9월 마른 전투에서 연합군이 풍전등화의 파리를 지켜내고 독일군의 슐리펜 계획을 무산시킨 비결은 차량 덕분이었다. 파리에 있는 수백여대의 택시와 트럭으로 예비군을 전선으로 신속하게 수송하여 전선의 구멍을 막았다. 2년 뒤 베르뎅에서도 프랑스군은 대량의 트럭을 투입하여 수십만명의 병력과 물자를 실어나름으로서 철도의 한계를 극복했다. 장군들은 나름대로 사상자를 최소화하고 전선의 교착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무기 경쟁에 도전했다. 그들이라고 무턱대고 닥돌만 고집한 것은 아닌 셈이다. 일본군에 비하면야.


베르뎅 전투 당시 꼬리에 꼬리를 문 채 병력과 물자를 실어나르는 프랑스군 트럭 행렬. 군대가 마차 대신 차량에 의존하면서 기동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2차 대전은 1차 대전이 만들어낸 발명품을 누가 더 잘 활용하고 더 많이 찍어낼 수 있는가로 승패를 결정한 셈이다.


전쟁 말기에 오면 땅에서는 육중한 지상 전함들이 공세의 주역을 맡았고 하늘에서는 비행기들이 제공권의 장악을 다투었으며 바다에서는 잠수함들이 전통적인 수상함대의 아성을 위협했다. 화려한 군복은 보다 실용적인 위장복으로 바뀌었고 병사들이 철모를 쓰기 시작했으며 소독약의 개선과 X-선의 등장은 부상병들의 생존율을 극적으로 높였다. 전쟁 역사상 처음으로 군인은 전투보다 비전투로 죽을 가능성이 낮아졌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그 기술들은 민간으로 넘어갔고 우리의 삶은 달라졌다. 전쟁이 없었다고 해서 그런 혁신적인 발명품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앞당긴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과학이 전쟁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과학에 봉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영원한 딜레마이다.


팬덤북스 출판사에서 밀덕이라면 눈여겨 볼 만한 책이 나왔다. <전쟁은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켰나? - 기술이 불러온 파괴와 창조의 무대, 제1차 세계대전>은 제목 그대로 제1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우리네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역사 교수가 아니라 나 같은 블로거 출신의 밀덕 작가. 티스토리에서 <비둘기의 레퀴엠>이라는 전쟁사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연재하는 모양.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 세대 전인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에서 시작한다. 흔히 빅토리아 시대라고도 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은 유럽 열강들의 리즈 시절이자 모처럼 평화로운 한 때였다. 오랫동안 자기들끼리 치고박던 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의 엄청난 힘을 외부로 돌림으로서 전 세계 90%를 지배했으며 지구의 모든 부와 자원을 독점했다. 때때로 유색 인종 군대가 낙후된 무기로 부질없는 저항에 나서기도 했지만 진보된 과학이 만들어낸 최신 무기로 무장한 유럽 군대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중국, 인도와 같은 가장 강성하고 오래된 제국조차 감히 맞설 수 없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전쟁 도구만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생활 또한 윤택하게 만들었다. 자동차가 마차를 대신하고 비행선이 대서양을 건너 대륙을 오가면서 사람들을 실어날랐다. 전기는 세상을 밝혔고 전화기와 무선통신이 등장했다. 농업 혁명이 실현되면서 인구 증가가 기근을 불러와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던 멜서스의 예언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백인 문명의 번영은 절정이었지만 열강들은 어리석게도 평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넘쳐나는 힘을 새로운 전쟁의 준비에 돌렸다. 인간이 두번의 대전쟁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력으로 수천만명을 죽였으며 그 폐허를 딛고 오늘날 더욱 발전된 현대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아닌 벨 에포크 시대의 산물이었다는 것.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서 유럽 강대국들은 낙관과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고된 삶을 사는 노동자들도 부르주아처럼 사치스럽게 살지는 못해도 사회 투쟁 덕분에 18세기 산업혁명 초기보다는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하다고 위안했다. 새로운 것이 발명되어 세상이 바뀌는 현상을 보면서 조금만 더 있으면 창조주와 같은 능력을 갖추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유토피아가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실제로 우리 일생 생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19세기, 20세기 초에 나온 것들이 많다. - p.26

18세기에 증기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등장했지만 너무 무거워 상용화되지 못했다. 그러다 1885년 독일에서 벤츠와 다임러 자동차가 처음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후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자동차 개발에 뛰어들었으며 휘발유 엔진을 자전거에 탑재한 오토바이도 등장했다. - p.36

트랙터는 농경지에서 사용하기 최적화되었으며 가축보다 더 큰 힘과 에너지 지속성을 뽐내면서 더 많은 농경지를 한번에 처리했다. 이 덕분에 농업생산력은 수많은 말과 가축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트랙터 하나일때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농촌 인구는 줄어드는데도 쏟아져 나오는 농작물에 강대국들은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게다가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산업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 p.105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본문은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챕터는 벨 에포크 시대의 발명과 진보, 두번째 챕터는 신무기들의 등장, 세번째 챕터는 이전 세기와 전혀 달라진 육해공 입체전의 양상, 네번째 챕터는 당시의 전쟁 기계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문명의 이기로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저자가 블로그에서 연재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였다고 하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짧지만 흥미롭다.

프랑스군이 보유한 공랭식 기관총에 다른 나라들도 관심을 보였지만 프랑스군은 공랭식 기관총의 기술을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유일하게 일본 제국에 알려줬지만 그마저도 불완전해서 일본 제국이 사용했던 기관총은 고장이 잦았다. - p.187

드레드노트 전함은 전 드레드노트 전함처럼 각각의 함포들이 제각기 조준하고 발포하던 것과 달리, 동시에 발포하는 협차사격을 할 수 있었다. 조타실에서 적이 맞을 확율을 계산한 후 좋은 조건일 때 주포들이 일제히 함포를 발포해 포탄의 비를 내리는 방식이었다. 적함은 확률에 따라 몇 발은 피할 수 있어도 한 발이라도 맞으면 치명적이었다. 이런 전투방식 덕분에 드레드노트 전함은 기존 전함의 포격 능력을 압도했다. 기존 전함 10척이 드레드노트 전함 1척을 이기지 못하는 판국이 된 것이다. - p.226

제1차 세계대전은 트럭이 빛을 발하던 전쟁이었다. 무거운 것을 탑재할 수 있고 어디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트럭은 사륜 구동과 공기압 타이어가 더해지면서 어디서나 빠지지 않았으며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어 빠르게 도로를 차지했다. 미국 농촌에서 픽업트럭으로 자리잡은 포드 모델 TT이 농산물과 가축을 수송하는 덕분에 농산물 유통 속도가 빨라졌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일 제국이 전쟁에서 패한 이유를 분석한 결과 트럭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 P.270

장갑차는 작아서 참호를 넘기에 부적합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장갑차는 참호를 공격하는 용도보다는 적의 허점을 빠르게 비집고 들어가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주로 드넓은 동부전선과 중동전선에서 장갑차가 활약했다. 하지만 빽빽한 참호와 장애물로 가득한 서부전선이나 험준한 알프스 산맥이 가로막는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장갑차의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원정군은 장갑차가 참호를 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병력을 참호까지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했다. - p.331

1915년 여름 아드리안 철모는 처음으로 프랑스군에 보급되었다. 당시 절반 정도만 보급되었음에도 사상자가 무려 44%나 감소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아드리안 철모는 연합군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프랑스군 뿐만 아니라 영국 원정군, 이탈리아군, 나중에는 타이원정군이 즐겨 쓰는 철모가 되었다. 심지어 동맹군도 연합군의 아드리안 철모를 노획하여 대충 자기네 색으로 칠한 후 사용할 정도였다. - p.398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연합군 출신 남성들은 질레트 안전 면도기를 선호했다. 이 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면도기 상표명을 잘 몰랐기에 질레트 초상화가 그려진 제품을 찾아다녔다. 동맹군 병사들도 포로 생활을 하면서 질레트 면도기에 감탄했다. 질레트는 이 점을 적극 활용하여 세계적인 면도기 기업으로 성장했다. - p.430

러시아 내전으로 많은 교훈을 얻은 소련군은 공수부대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게다가 공수부대의 임무를 수행할 병력이 넘쳐나다보니 이들이 추락사해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비행기 날개에 공수부대원들을 매달아서 낙하를 시켰다. 당연히 비행기 날개에 매달렸다가 공기 저항을 못 이기고 추락한 병사들도 많았다. 이러한 무모한 작전이 공수부대 전용의 비행기를 설계하는 계기가 되었다. - p.454

19세기 때만 해도 동서를 막론하고 남자들이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음에도 현대인들 대부분이 깔끔하게 깎거나 짧게 기르게 된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독가스에 질식당하여 죽고 싶지 않으면 방독면을 쓸 때 수염이 방해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회용 면도기의 대명사인 질레트의 등장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1차 대전 때 발명품들이 20년 뒤의 전쟁에 등장하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인 느낌이다. 적어도 히틀러의 비밀무기랍시고 태양광선포 조넨게베어(Sonnengewehr)라던가 연합군의 초거대 얼음 항공모함인 하버쿡 프로젝트(Project Habakkuk), 호모 폭탄 따위의 황당하면서 돈 지랄하는 오버 테크놀리지는 없다. 그 시절 사람들은 후대보다 좀 더 상식적이랄지, 상상력이 부족하달지. 찾아보면 있을지도.

주경철 교수를 비롯하여 대학 교수들이 쓴 일반 교양서적들이 흔히 현학적이면서 강의실 노트같은 느낌이라면 이 책은 밀덕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꿰뚫는다랄까. 분량이 짧고 디테일한 부분이 다소 부족하지만 그만큼 읽는데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나로서도 같은 작가로서 여러모로 참고가 된다.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는 유명 저자, 유명 유튜버의 이름만 보고 책을 고르는 것이 요즘 분위기이다. 하지만 저자의 유명세에만 기대어 알맹이라고는 없는 책보다 이런 책이야말로 진흙 속의 진짜 구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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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 인간이 바꾼 전쟁, 전쟁이 바꾼 역사
마거릿 맥밀런 지음, 천태화 옮김 / 공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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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이른바 이대남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 일각에서 병역의 남녀 형평성과 저출산 시대 자원 확보를 명목으로 여성 징병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런 주장이 가장 부담스러운 쪽은 이대녀들이 아니라 그녀들을 받아들여야 할 군 간부들이 아닐까 싶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2000년에만 해도 불과 0.3%였던 대한민국 여군의 비율은 이제는 9% 가까이 늘어났으며 2027년에는 15%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금녀의 벽이 만만치 않은 것이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이다. 하긴 군대만이 아니다. 여성들의 영역에 남자가 들어오고 남성들의 영역에 여자가 들어오면 환영보다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 취급이다. 나만 해도 동네 의원에서 남자가 간호사를 하고 있다거나 우연히 택시를 탔는데 운전 기사가 여자라면 위화감부터 앞선다. "우리 때에는 말이야, 당연히 남자 의사, 여자 간호사였다고." 그것이 잘못된 편견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해도 우리 머리 속에 단단히 박힌 고정 관념을 깨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크라이나의 여군들. 전장에서 여성들이 직접 전사가 되어 싸운 것은 역사가 오래된 일이다. 문제는 남자들 스스로 여자들을 자신들과 동등한 전우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독소전쟁에서 스탈린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징집하면서도 그녀들의 처지나 권리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필요가 없어지자 내버렸다. 남녀가 함께 복무하기로 유명한 이스라엘만 해도 여군의 비중은 30%가 넘지만 남성중심 분위기 속에서 온갖 차별과 인권침해를 감수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한다.


학계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는 역사학과마다 여학생은 그렇게 많은데 다들 졸업 후에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남아서 역사 연구에 일생을 바치거나 그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는 여성 교수는 흔치 않다. 다들 점수 맞춰 가기 때문인가. JTBC의 <벌거벗은 세계사>만 해도 주제마다 강사가 달라지지만 여자는 거의 보지 못한 듯. (게스트 빼고) 하물며 시중의 전쟁사와 군사 서적에서 국내 저자가 여성인 경우가 있었던가. 적어도 내가 기억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금녀의 벽이 높아선지, 여자들 스스로 전쟁사와 인연이 없다고 여기는 탓인지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울 와이프부터 전쟁사는 덮어놓고 여자가 가까이 할 것이 못된다고 지레 결론을 내릴 정도이니. 우리보다 앞서가는 서구 역시 전쟁사는 남자들의 영역이다. 하지만 때때로 여성 저자가 눈에 띌 때가 없지는 않다. 거의 희귀종이지만. 얼마 전에 서평한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8월의 포성>만 해도 저자가 바바라 터크먼 여사이고 열린 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에서도 여러 저자들 중에서 여성이 몇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 될지도. 유튜브에서 보니까 20대 여성 BJ가 <콜 오브 듀티>를 하고 있더라. 여자가 뭔 총 싸움 게임을 하겠냐는 나부터 꼰대 마인드를 버려야.



공존 출판사 신작 도서인 <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는 흔히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전쟁을 여성의 시각에서 쓴 보기 드문 책이다. 저자 마거릿 맥밀런 교수는 캐나다 출신 베스트셀러작가이자 역사 학자로 옥스퍼드 대학 명예 역사 교수라고 한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 전시 총리로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것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후손이라고. 외할머니가 조지의 딸이라고 하니 외증조할배인가. 금수저일세.


이 할머니. 1943년생이니 올해로 80세인데 정정하신 듯. 사람은 역시 많이 배워야 한다는. 조카도 BBC의 유명한 역사 강사라고.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소위 성선설, 성악설과 더불어 인간 본성의 가장 근원적인 궁금증 중 하나이자 수천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수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여전히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주제이다. 인간은 전쟁이 초래하는 파괴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 전쟁에 매료되는 것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기도 하다. 전쟁 영화와 전쟁사 서적은 시대와 세대, 국적을 불문하고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 수많은 게이머들은 가상 세계에서 군인이 되어 적군을 사살하는 게임을 하면서 희열감과 대리만족을 느낀다.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나폴레옹은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수십만명을 희생시킨 학살자가 아니라 희대의 군사적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누군가는 총을 살인 무기로 여기고 AK 소총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를 살인마라며 비난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칼을 사무라이의 영혼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어차피 내가 진짜 전쟁을 겪을 일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지만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전쟁의 폭력을 막연히 동경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성으로 누를 뿐.


"우리는 이러고 논다." 덕후 중의 진정한 덕후는 역시 양덕이라던가. 군복부터 총에 이르기까지 죄다 핸드 메이드로 만들어 주말에는 모여서 라인배틀로 여가를 보내는 양반들. 만만찮은 비용은 물론이고 집에 계신 마눌님들이 남편 취미활동을 내버려 둔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는. 포기했나.


이 책은 저자인 맥밀런 여사가 2017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년 퇴임 후 영국 BBC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리스 강연(The Reith Lectures)에 출연하여 5회에 걸쳐서 전쟁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전쟁에 대한 다양하면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과 함께 자신만의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함으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다른 전쟁 연구가들과의 첨예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언제부터 전쟁을 시작했고 무엇 때문에 싸우며 그것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본성인가. 전쟁은 파괴만을 낳는가, 반대로 전쟁 덕분에 인간은 발전하여 오늘날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던가. 현대에 와서 전쟁은 줄어들고 있는가. 앞으로 인류가 더욱 이성적이고 문명화된다면 언젠가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인가. 역덕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하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란 평화라는 일상이 붕괴되면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인간의 역사에서 보편적인 일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전쟁의 일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전쟁은 가급적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인 잠깐의 일탈이 아니다. 전쟁은 단순히 평화의 부재가 아니다. 사실은 평화의 부재가 정상 상태이다. 전쟁과 인간 사회가 서로 얼마나 깊이 얽히고 설켜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다. 우리 세계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원한다면 전쟁이 인간 사회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해서 안 된다. - p.8

우수한 육군과 해군을 양성하려면 더 나은 교육과 영양 공급도 필요했다. 영국 정부와 국민들은 1899 ~ 1902년에 벌어진 보어전쟁에 지원한 사람 중 1/3이 신체 부적격 판단을 받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불우 아동에 대한 학교 무상 급식 제공 같은 개혁과 공중 보건 향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 p.64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전쟁은 대개 극도로 잔혹하다. 천국이나 지상낙원이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걸림돌이 되는 인간을 제거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릇된 이념이나 신념을 고수하는 자들은 마치 병마가 퇴치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여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 p.92

기원전 6세기 중국의 손무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상대를 정복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상대의 군대를 보전하는 것이 최선이고, 파괴하는 것은 차선이다." 그래서 손무 이후의 왕조들은 북방 기마 민족을 장벽과 회유로 막았고 군사력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19세기 영국은 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나서야 그와 비슷한 전략이 아프가니스탄에 적합함을 깨달았다. - p.121

로마의 도로 체계가 상당 부분 붕괴되어 물류가 원활하지 않고 무장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기병의 규모는 비교적 작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 한명을 무장하고 유지하는데 1.2~1.8㎢에 달하는 비옥한 농장이 필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사와 말에 착용하는 갑옷이 더 화려하고 무거워지면서 기동력이 떨어졌고 보병들의 새로운 무기와 전술에 매우 취약해졌다. - p.137

히틀러의 여러 착오 중 하나는 독일이 한때 세계를 주도했던 분야인 과학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나치는 기초 과학을 등한시했다. 우수한 과학자들이 징집되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전장에서 희생되는 경우도 많았다. 나치는 또한 유태인 과학자들을 추방했다. 망명 과학자들은 독일의 적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제공했다. 이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연합국이 그렇게 빨리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름 끼치는 가정이지만 히틀러가 인종 정책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원폭을 먼저 수중에 넣었을지도 모른다. - p.183

프랑스에서는 출산율 저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의 어느 유명한 지식인이 프랑스 기자에게 눈치없이 말했다. "남자는 군인이 되기 싫어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민족은 활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그런 민족은 더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민족에게 지배당할 운명입니다." - p.209

대체로 남자가 싸움을 하고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전쟁의 기원 만큼이나 커다란 논쟁거리이며 생물학적 이유부터 문화적 이유까지 설명의 범주 또한 다양하다. 평균적인 성적 차이로 본다면 남자가 체력과 체격에서 우월하고 더 공격적일 수 있지만 남자에 버금가거나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크고 강한 여자들도 많다. 남자가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분비한다는 사실로 남자의 공격적 성향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천성이 온화하여 싸움을 싫어하는 남자도 많다. 싸우기로 결심하거나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경우 여자도 남자만큼 사나워질 수 있다. - p.229

최근 몇 십년 간 대부분의 서구 군대들은 여성을 정규군에 서서히 편입시켜 왔다. 하지만 케케묵은 사고방식은 변하기 어려운 법이다. 1990년대 러시아 해군의 한 장교는 해군사관학교 입학 허가를 받은 첫 여성 사관생도에게 이런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여자애 하나 있다고 해군이 망할 리 있나." 모든 군대 중 가장 힘들다는 해병대에 들어간 미국 여성들은 적대와 여성 혐오, 심지어 성적 학대까지 당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사회 전반에서 강한 반감을 보였다. 모순되게도 군복 입은 여성은 성적 매력이 없거나 아니면 철철 넘쳐 보였다. 2차 세계대전 때 미 여군은 매춘부나 다름없다는 중상모략이 나돌았다. - p.235

전방과 후방 사이의 간극을 벌이는 또 다른 차이는 대개 민간들이 전쟁터의 군인들보다 더 적을 증오한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일의 공습을 받지 않은 시골 사람들이 실제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도시 사람들보다 더 독일 도시들에 대한 보복 폭격을 원했다. 미군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아직 전쟁터로 떠나지 않은 군인들이 태평양에 배치된 군인들보다 일본군을 '전멸'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더 많이 동의했다. - p.289

양차 세계대전 중에 여성 근로자들, 특히 전통적으로 남자의 자리로 여겨진 직종에 있었던 여성들은 작업장에서 남성 동료들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남성들은 고용주가 임금 낮은 여성들을 빌미로 자신들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할까 우려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버밍엄의 군수 공장에서는 이전 근무조의 남성들이 다음 근무조 여성들의 작업 속도를 떨어뜨릴 요량으로 선반의 너트를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너무 꽉 끼는 스웨터를 입었다는 이유로 53명의 여성을 해고하자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사측은 꽉 끼는 스웨터는 기계에 걸려 안전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핑계를 늘어놓았다. - p.348

2차 세계대전 후의 여성 운동가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핵무장 해제운동에 참여했다. 1980년대에는 영국 버크셔주 그리넘코먼 공군 기지에 미군의 핵탄두 순항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에 항의하는 여성들만의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쟁을 부추기는 치어리더 노릇을 한 여성들도 있었다는 사실 또한 항상 기억해야 한다. - p.398

전쟁에 대한 과거의 예측을 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많이 틀렸는지 알 수 있다. 군사 전략가들은 1차 세계대전이 공격적인 기동전이 될 것으로, 2차 세계대전은 방어형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해군 전문가들은 강력한 해군 전력끼리 맞붙어 전쟁의 승패가 갈릴 것으로 내다봤고 잠수함이나 어뢰, 소형 기뢰는 과소평가했다. 미국 육군전쟁대학원장을 지낸 로버트 밥 스케일스 장군은 최근 미래 전쟁의 본질과 특성을 규정하려는 시도에 대해 "워싱턴 D.C의 가장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같은 시도는 멈추지 않으며 멈추어서도 안 된다. - p.468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이자 '바다를 향한 셔먼의 대행진(Sherman's March to the Sea)'으로 남부를 초토화시킨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테쿰세 셔먼 장군은 말년에 미시간 군사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생도들을 향해 "전쟁은 지옥이다"라면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강조했다. 반대로 조지 패튼 장군은 아마도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았던 인물이다. 그는 평화로운 시절에 잉여 인간 취급을 받으면서 방황했고 전쟁이 터지자 제일 먼저 전장으로 향했다. 그에게는 죽음이 난무하는 그곳이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남과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참호에서 보낸 1460일>라는 책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지옥같은 참호전에서 시달렸던 한 대령이 휴가를 나와서 가족들과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귀대하는 날 자살했다는 대목이 있다. 누군가는 전장터에서 PTSD를 얻어 평생 끔찍한 악몽에 고통받는다면,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전장터에서 안도감을 찾기도 한다. 하물며 전쟁의 공포가 지속될 때에는 평화를 외치다가도 평화가 오면 다시 전쟁을 거론하면서 미지의 공포를 만들어내어 전쟁 준비에 혈안이 되는 것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양면성이다. 과연 어느 쪽이 인간의 진짜 모습인지는 영원한 의문이 아닐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이라크에서 250여명을 사살한 네이비 씰의 전설적인 스나이퍼였던 크리스 카일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지만 할리우드 액션과 로맨스 밖에 없는 <에너미 앳더 게이트>와는 달리 전장 PTSD에 시달리면서도 가족과 헤어져 전장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인간적인 고뇌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번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은 그것을 쉽게 잊지 못하기 때문일까.


저자는 전쟁이란 인간과 뗄 수 없으며 전쟁을 통해서 인류 사회를 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류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전쟁은 계속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충분히 논란이 있을 만한 발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은 적어도 이전보다는 더 평화로워진 것은 분명하다. 평화주의자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것은 수백년 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이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파괴적이고 대량 살육이 벌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화력이 그만큼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는 단 한 발의 원폭으로 도시가 지워졌고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었다.

전쟁은 인간에게 필요악인가. 소말리아에서 수십년 째 이어지고 있는 내전은 온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터전은 물론이고 희망을 빼앗았다. 언제나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쪽은 약자들의 몫이다. 가족을 잃고 팔다리가 날아간 사람들에게 인간의 본성이 어쩌구 진화가 어쩌구 하는 말은 책상물림 교수의 개 풀 뜯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푸틴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덕분에 자신들이 거듭날 수 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2014년 크름 반도를 빼앗길 때만 해도 한없이 무기력했던 그들은 처음으로 싸우기 위해서 스스로 무기를 들었고 러시아군의 전진을 막음으로서 비로소 패배주의를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 전쟁이 푸틴의 야심이 아닌 서방의 음모라고 믿는 국내외 친러 좌파들은 서방과 결탁한 젤렌스키의 아집 탓에 무고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당장 저항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이 남베트남과 다른 점은 미국의 용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러시아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이다.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푸틴으로서는 우크라이나를 손쉽게 지배하리라는 욕심은 버려야 할 것이다.

전쟁이 고통스럽다면 패전의 대가는 훨씬 고통스러우며 평화가 인간을 나태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또한 고려 시대에는 거란과 몽골에 침략에 용맹스레 맞섰던 민족이 조선 시대에 와서는 오랜 평화로 타성에 젖어 임진왜란과 두번의 호란에서 한없이 무기력했고 결국 변변히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때로는 전쟁도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물론 전쟁 장사꾼은 경계해야 하지만 말이다.

전반적으로 번역이 매끄럽다고 생각하지만 중간중간에 오역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부분이 눈에 띄더라.

프랑스 혁명가들이 국민은 국가와 민족에 대해 의무를 진다는 '국민개병' 제도로 세운 기본 전제가 1945년 독일에서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나치 고위 지도부는 독일 국민의 생명을 구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국제 적십자위원회가 베를린 시민들이 임박한 전투를 피해 모일 수 있는 피란처를 마련하자고 제안했을 때 독일군 참모총장은 코웃음 치며 거절했다. 그에게 그 제안은 독일 국민의 저항 의지를 시험하려는 수작이었을 뿐이었다. "그 제안에 동의했다가는 이내 사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 베를린 전투 직전의 독일 육군참모총장이라면 우리가 잘 아는 구데리안(1945년 3월 27일에 해임되었다.)이거나 아니면 후임자인 한스 크렙스 장군인데 이들은 전형적인 프로이센 군인으로서 나치가 아니었으며 크렙스는 오히려 히틀러의 자멸 작전을 반대하는 쪽이었다. 원문을 보지 않고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참모총장(Chief of the General Staff)이 아니라 히틀러의 딸랑이었던 국방군 최고사령관(Chief of the Wehrmacht High Command) 빌헬름 카이텔 원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보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히틀러 자신이거나 베를린 방위 총감이었던 괴벨스 같은데. 저자가 착각했을지도.

p.358 북부군 원수였던 헨리 할렉 → 북부군의 소장이었던 헨리 할렉

※ 남북전쟁 당시 미 연방군(북군)의 최고 계급은 중장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 총사령관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가 대장으로 승진했다. 미군 역사에서 원수 계급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와서 제정되었다.

전쟁의 근원을 짚어본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수준 높은 책이다.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국내에서도 이런 강의를 들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대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양 수준의 역사 강의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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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전, 최강국의 탄생 -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른 해양패권 흥망사
폴 케네디 지음, 이언 마셜 그림,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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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부시가 9.11테러를 핑계로 무솔리니급으로 일을 벌여놓은 후유증 덕분에 근래 와서 리즈 시절이 지났다고 의심을 받는 미국이지만 여전히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경제력은 물론이고 군사력에서 다른 열강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피지컬을 보여주는 것이 해군력이다. 그나마 미 육군과 공군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지상전에서 게릴라들의 비대칭 전략에 휘말려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나 베트남전쟁에서 공산군의 막강한 대공망에 수많은 항공기를 상실했던 것처럼 흑역사라고 할 만한 나름의 오점이 있다면, 미 해군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적 함대이다.


워낙 넘사벽적인 존재인지라 전 세계 해군이 연합하여 한꺼번에 덤벼도 승산이 없을 정도. 미국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지구 어디건 원하는대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것이나 어느 나라도 감히 미국 본토를 침공할 생각을 할 수 없는 것 또한 해군력이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모함 전력에 있어서는 10만톤급 이상 핵추진 슈퍼 캐리어를 보유한 유일한 나라이며 그것도 무려 11척이나 양산. 다른 나라에서는 정규 항모랍시고 1~2척 가지고도 허덕거리는 4만톤급 강습상륙함까지 합하면 20척. 군사력에서 미국 다음을 자랑하는 중국과 러시아조차 미국과 싸우려면 정면 대결은 불가능하고 ICBM과 SSBN을 이용한 핵전쟁을 벌여야 할 판. 물론 그건 다같이 죽자는 얘기이니.

2019년 자료라서 4년이 지난 지금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중국은 2022년에 8만5천톤급 항모를 진수하여 항모 숫자가 3척으로 늘어났고 미국 다음의 해군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미국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라도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월등한 것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인도가 같은 해에 비크란트급 항모를 진수하여 항모가 한척 늘었지만 배수량이 4만5천톤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국과 인도, 일본, 한국 정도가 해군력 증강에 돈을 쏟아넣고 있으며 나머지 나라들은 경제 침체로 현상 유지도 버거운 판국인지라. 쇼미더머니~~.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항모가 남아 있나이다." 그 12척의 항모만으로도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판.


오늘날 미 해군의 절대적인 파워는 한 세기 전에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다는 영국 해군과도 비할 바가 아니다. 섬나라인 영국은 육군 대신 해군에 올인했음에도 여러 라이벌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야 했으며 때때로 바다에서 패배한 적도 있었다. 양차 대전에서는 독일 유보트의 해상 봉쇄로 거의 고사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최대의 해상 결전이었던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독일 해군을 상대로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술적 패배에 가까운 무승부를 벌임으로서 체면이 실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들이 이탈하자 그저그런 이류 강국으로 전락했다. 영국은 무적 함대를 건설하기에 체급이 따라주지 않은게 비운.


반면, 미국은 영국보다 훨씬 유리한 처지이다. 풍부한 자원과 영토, 주변에 이렇다할 위협 세력이 없고 국토 양쪽에는 외부의 침략을 막아주는 천연의 해상방벽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세계 유일의 기축 통화인 달러를 앞세워 지구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경제력까지 갖추었다. 영국은 물론이고 역사상 어느 세계 제국도 꿈만 꾸었을 뿐 감히 누리지 못했던 이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진게 많아도 쓸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듯, 따지고 보면 오늘날 천조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위상이라는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만약 한 세기나 두 세기 전의 미 해군 수장들이 거대한 항모 전단의 위용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실로 격세지감일 것이다.


1812년의 미영전쟁에서 보잘 것 없는 해군력 탓에 수도 워싱턴이 영국 해군의 침공으로 불바다가 되고 대통령이 달아나는 수모를 겪었던 미 해군은 20세기 초반만 해도 여전히 2류에 지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워싱턴 해군조약에서는 몰락한 독일을 대신하여 영국 다음의 지위를 차지했지만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랜 평화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군비가 억제되면서 주력함들의 대부분은 20년 이상 된 구식이었고 항모의 숫자는 일본보다 열세했으며 수병들은 실전 경험이 없었다. 그 결과가 진주만 기습이었다. 이 순간 미국의 힘을 '각성'시킨 것은 루스벨트였다. 무능하고 부패한 아들 부시는 911테러 이후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몇몇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챙겨주는데 낭비하여 미국 국민들에 엄청난 빚만 안겨다 주었지만 루스벨트는 미국의 무한한 잠재 파워를 끌어내는데 성공했고 유럽에서는 독일과 싸우면서 태평양에서 일본의 도전을 분쇄했다. 추축국들은 물론 다른 열강들 입장에서 미국은 그야말로 다른 차원에서 튀어나온 사기 캐릭터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자원의 일부만을 해군에 투자했음에도 영국 해군조차 보잘 것 없게 만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미국을 위한 전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



물론 전쟁 이전부터 미국의 공업력이 월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진주만 기습을 계기로 미국의 깨어난 포스는 자신을 억제하던 봉인을 깨뜨린 격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루스벨트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스탈린처럼 무작정 국민들을 갈아넣은 것이 아니라 유능한 경제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수립했으며 자유분방한 미국민들의 국론을 하나로 결집시켜 진정한 풀파워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군비 지출과 어마어마한 물자를 동맹국들에게 퍼주었으며 전후에는 패전국들을 삥 뜯는 대신 오히려 재건시켰다. 그러고도 초인플레이션은 커녕 경제가 더 성장했다는 기적.(임진왜란에서 명나라의 운명을 생각해보라) 같은 승전국인 영국과 소련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도대체 무슨 마법을 썼나 싶을 정도.


진주만 기습을 시작으로 미국의 변신은 이런 느낌이랄지.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달리 베트남전쟁은 잘나가던 미국 경제를 탈탈 털어먹어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전쟁이 미국을 각성시켰다고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제아무리 미국이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라고 한들, 1941년에 미국 대통령이 루스벨트가 아니라 그 이전의 나태하고 고리타분한 고립주의자들이나 이후의 신통찮은 얼간이들이었다면 지금의 미국이 존재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루스벨트 존재 자체가 미국에게 축복이자 세번째 터닝 포인트라고 할 만하다.(첫번째가 독립전쟁, 두번째가 남북전쟁) 그런 미국조차 요즘에 와서는 트럼프같은 뻔뻔하고 욕심많은 어릿광대가 욕을 쳐 얻으면서도 그 자리에 앉고 그렇다고 딴 놈들도 별 수 없는 것을 보면 갈 데까지 간 느낌이지만 말이다. 하긴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부분은 범용하면서 때때로 3류 소인배가 튀어나와서 거의 바닥까지 말아먹은 다음 아주 가끔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이 포텐셜을 단단히 터뜨리는 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축복이야, 장난이야.



한국경제신문에서 금년 가장 주목할 책 중 하나가 나왔다.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로서 국내에서도 <강대국의 흥망>으로 잘 알려진 폴 케네디 교수의 따끈따끈한 최신작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Victory at Sea)>이다.


폴 케네디 영감님. 그가 32살이었던 1987년에 쓴 <강대국의 흥망>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여러 열강들의 흥망성쇠를 정치, 군사, 경제 등 전방위적으로 다룸으로서 단숨에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올해로 78살인데 여전히 왕성한 저술과 강의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 나는 벌써부터 노안이 와서 눈이 침침한데. 일반인들과는 신체구조가 다른지도.


폴 영감님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강대국의 흥망>은 서양이 처음으로 인류 역사에 떠오르는 근세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동안 동서양에 등장했던 수많은 제국들이 겪었던 부침을 통해서 강대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몰락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대학 시절에 샀는데 워낙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여 10번은 읽었을 듯. 삼국지와 더불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다. 이제는 완전히 누더기가 되어서 책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에 21세기 북스에서 나온 <제국을 설계한 사람들>은 시간적 무대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국한하여 연합군의 승리 비결이 어디서 있는지를 분석한다. 문제는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오탈자의 난무. 21세기 북스가 수많은 번역서를 낸 대형 출판사라는 점에서 이해되지 않을 정도. 폴 케네디 이름만 믿고 방심했나.


국내 출간으로는 세번째인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6대 해군국(미, 영, 일, 프, 이, 독)의 치열한 경쟁과 미국이 다른 열강들의 도전을 누르고 오늘날의 절대적인 해상 패권을 쥐게 되는 과정을 700여 페이지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강대국의 흥망 제2차 세계대전 버전이랄까. 역자의 후기에 따르면 저자가 처음에는 지인이 수채화로 그린 53점의 군함 화보집에 가벼운 마음으로 서문이나 몇 장 써줄 생각이었는데 '기왕' 쓰는 김에 그림을 삽화로 활용하여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를 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주력 중순양함이었던 자라와 피우메, 폴라 세 자매. 중간중간 들어간 삽화만 해도 미려하여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의 등장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해상 패권 장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역덕이라면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의 해전은 불과 20년의 차이가 있는 제1차 세계대전이나 그 이전과 비교하여 큰 차이가 있다. 더 이상 트라팔가르 해전이나 유틀란트 해전처럼 거함들로 구성된 대함대들이 서로 정면에서 맞부딪치며 함포를 겨누지 않았다. 태평양의 주역은 항공모함과 함재기였고 대서양에서는 잠수함이었다. 바꾸어 말해서 이것은 어마어마한 소모전으로 이어졌다. 이전의 해전이란 육지처럼 일정한 전선이 형성되기 어렵기에 양측 함대가 광활한 바다에서 서로 접촉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대개 상당한 거리를 두고 포격전을 벌이다가 이기기 어렵다 싶으면 재빨리 물러나는 식이었다. 자칫 오판하거나 괜한 오기 부리다가 그 타이밍 잘 못 놓치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가 한방에 전멸한 쓰시마 해전 꼴이 나니까 말이다.

유틀란트 해전만 해도 도합 250척이 참여했지만 격침된 것은 전함 5척을 포함해 20여척에 불과했다. 요동치는 바다에서 육안으로 보면서 어림 짐작으로 쏘는 원거리 포격으로는 명중률이 극히 낮아 적 함대에 치명타를 주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맞으면 일격필살) 하지만 함재기들은 적 함대를 발견하는 즉시 날아가서 어디에 있건 말그대로 쓸어버렸다. 아무리 막강한 방공망이 있어도 수백대의 함재기가 달라붙으면 무용지물이었다. 게다가 군함은 전차나 비행기, 대포에 비하여 훨씬 고가인데다 건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력 양성도 어려운 법이다. 개전 직후에만 해도 강력한 함대와 우수한 파일럿을 대거 보유했던 일본이 1년도 되지 않아 수세에 몰린 것이나 영국조차 미국에게 두손 들고 넘버 원 자리를 양보한 것 또한 이 소모전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서양에서는 독일 잠수함들이 20년 전보다 훨씬 파괴적으로 연합군 수송선단을 사냥함으로서 영국을 거의 고사직전까지 몰아넣었음에도 침몰시키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빨리 찍어내는 미국의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백기를 들어야 했다. 미국만이 그 싸움을 감당할 인력과 자원, 무엇보다 돈이 있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벌어진 주요 해전이 전후의 미국 전성시대를 어떻게 탄생시키게 되는지 풍부한 자료와 함께 예리하면서 흥미롭게 분석한다.


1938년 여름, 지중해의 따뜻한 물이 물타의 역사적인 자연항 그랜드 하버에 나란히 정박한 두 전함의 측면을 살짝살짝 때렸다. 두 전함 뒤로는 성 요한 기사단이 15세기에 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의 주량 현관이 보였다. 해군 예인선 한척이 가까이 다가왔고 여러 척의 작은 배가 부지런히 부두를 오갔지만 다른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 세계는 조용했다. - p.25

다른 면에서 태평양 전쟁은 순양함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 태평양에서는 경쟁적으로 확보해야 할 수송 항로가 없었다. 미국은 구형 전함 외에도 순양함을 침공을 앞두고 포격을 퍼붓기 위한 용도로 꾸준히 사용했고 항공모함을 적군의 폭격기에서 보호하는 역할로도 활용했다. - p.74

미국-스페인 전쟁과 러일전쟁의 결과에서 머헨의 가르침이 확인됐다. 달리 말하면 해전에서 승리한 국가가 전쟁에서 이겼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머핸의 가르침은 퇴색되지 않았다. 1918년의 패전국은 해군력이 약한 동맹국이었고 승전국은 전투 함대를 보유한 영국과 미국, 일본이었다. - p.168

무솔리니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1940년 6월에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이탈리아 해군 최고 사령부에게 장밋빛을 의미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의 전략적 지점에 치명타가 되리라 판단되는 군사 행위가 이탈리아 제독들에게는 반드시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탈리아가 지중해에 갇힌 신세라는 점은 전쟁 전과 달라진 게 없었고 영국 해군은 그들에게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제독들이 나폴리 만에 서서 밖을 바라보면 장애물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국 항공대와 잠수함, H-부대의 중후한 해상 전투함, 더욱이 그 뒤에 포진한 본국 함대의 절반을 물리치고 지브롤러로 진격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 p.272

일본 함대가 길버트 제도를 지키려고 움직였다면 레이테만 전투보다 11개월 빨리 두 해군 강국이 맞붙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해군은 반응하지 않았다. 일본 해군이 이 순간 싸우지 않기로 결정한 주된 이유는 일시적으로 홀시 제독의 남태평양 사령부 휘하의 항공모함 전단이 라바울에 주둔한 일본 해공군력에 11월 5일 가한 타격 때문이었다. 그 때 중순양함을 비롯한 많은 군함이 입은 피해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헬켓 전투기 편대의 공격에 대체불가의 노련한 함재기 조종사를 너무 많이 잃었기 때문이었다. - p.441

강대국들이 부담한 군비를 비교해 측정해보면 1943년에 영국은 국민소득의 55퍼센트를 군사비에 지출했고 소련은 60퍼센트 이상, 나치 독일은 동서 양쪽의 이웃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자원을 약탈했는데도 70퍼센트를 지출했다. 미국은 다른 모든 강대국보다 훨씬 많은 돈을 전쟁에 쏟아부었지만 군사비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한 비율은 42퍼센트에 불과했다. 어떤 분야에서나 똑같지만 예컨대 영양 쉽취에 대한 전쟁의 경제 사회적인 비용을 조사해보면 다른 강대국은 혹독한 비용을 치른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는 증거가 뚜렷하다. 독일은 식량 배급량이 줄었으나 미국인들은 배불리 먹었다. - p.499

1945년 4월 1일 부활절이던 일요일, 1200척의 상륙함이 오키나와 중부의 해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200척의 구축함과 18척의 전함, 40척이 넘는 항공모함이 그들을 엄호했다. 일본 함대의 저항이 없었는데 이때 18척의 전함과 40여척의 항공모함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을까?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표현대로 당시 미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고 머헨의 정의에 따르며 여태껏 존재한 세계 최강의 전함 부대로 대적할 수 있는 적이 없을 정도였다. - p.597

이탈리아의 전략 지도 자체가 엉망진창이었다고 해서, 이탈리아 해군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부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탈리아 군함들은 강력하고 인상적이었으며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1940~1942년의 억눌린 작전 상황에서 본래의 능력을 좀처럼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이탈리아 해군의 대잠 초계 능력은 영국 해군의 잠수함 부대에 적지 않은 피해를 가한 반면, 이탈리아의 소형 잠수함들은 알렉산드리아에 주둔한 커닝엄의 전투 함대를 공격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커닝엄의 함대를 공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탈리아의 전략적 오판을 보여주었다. 당시 전쟁은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기에 키닝엄의 함대를 공격한다고 해서 제해권을 확보하기는 커녕 대서양과 수에즈 동쪽에서 활동하는 영국 함대를 지중해로 끌어들이는 역효과만 낳았다. 따라서 레지아 마리나(이탈리아 해군)이 1943년 9월 지휘권을 넘겼을 때 대연합의 전력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저 연합군의 병력을 분산시키는 세력이 제거되고 런던의 압박감이 사라진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보다 약하고 프랑스보다 약하며 진정한 열강에 비할 수 없었던 국가의 해군이 그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 p.639




리델 하트는 '진정한 승리'를 가리켜 "한 국가가 전쟁을 치른 뒤에 전쟁 전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게 되는 승리"라고 정의했다. 1945년 이후의 미국은 분명히 그런 국가였다. 미국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승리를 쟁취한 유일한 강대국이었다. 소련 또한 승전국으로 떠올랐지만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얻은 보상이었다. 미국은 여섯 교전국 중에서 자국이 폭격받지 않고 민간인 사상자도 거의 없는 유일한 국가였다. 미 해군은 2위였던 영국 해군보다 컸을 뿐더러, 나머지 모든 국가의 해군 규모를 합한 것보다도 컸다. - p.655






어떤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광활한 러시아 평원을 놓고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치는 독소전쟁의 거대함에 비하면 바다에서 벌어진 전투는 부차적일 뿐이라고 말할 지 모른다. 어쨌든 독일군을 불도저마냥 밀어내고 제3제국의 심장부를 점령한 것은 수백만명에 달하는 소련 지상군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찮은 막간극으로 취급하는 것 또한 어폐가 있다. 라이프치히 전투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몰락시켰다고 해서 트라팔가르 해전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듯 말이다. 미국과 영국 해군은 독일 유보트의 위협에 맞서 어마어마한 물자를 영국과 소련으로 실어날랐다. 히틀러 입장에서 제해권의 상실은 영국 봉쇄에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나폴레옹이 그러했듯 물자 수송에 심각한 부담을 줌으로서 한층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았다. 만약 독일 해군이 미, 영을 꺾을 수 있었다면 영국과 소련은 봉쇄당한 채 굶어 죽어갔을 것이고 미국은 대서양 너머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냉전 시절 소련이나 오늘날 국수주의에 사로잡힌 러시아 학자들은 서방의 랜드리스 원조가 소련 생산량의 4%에 불과했다는 둥, 별거 아니었다는 식으로 깎아내리지만 필요할 때에는 실컷 도움 받고 전쟁 끝나니까 우리 힘만으로 이길 수 있었다 운운하는 것은 뻔뻔한 소리일 뿐더러, 그런 논쟁이 벌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연합군의 도움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해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결정짓지 않았더라도 한축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개별 해전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부터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전체적인 해전의 흐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해전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 제일 먼저 프랑스 해군이 나가떨어지고 이탈리아 해군이 1943년 9월에 항복했으며 미드웨이 해전을 시작으로 일본 해군이 수세에 내몰리고 독일 유보트들이 괴멸하며 전쟁이 끝났을 때 영국 해군이 미 해군의 거대한 위용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째서 미 해군이 진정한 승자가 되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저자는 그것이 결코 원래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해상 패권 또한 없었다는 얘기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잠재능력을 해방시켰다.


밀덕으로서 워낙 흥미진진하여 퇴근 후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바람에 1주일만에 완독했다. 아쉬운 점은 이번에도 오역과 오탈자가 상당하다는 점. 앞서 언급한 21세기 북스의 <제국을 설계한 사람들>만큼이나 어색한 번역투는 아니지만 중간중간 오역이 눈에 띄더라. 그 중 몇개를 언급하자면,

p.39 바럼호 측면 전체의 무게는 7톤에 가까웠고(The full broadside of the Barham weighed fifteen thousand pounds) -> 바럼호 현측 부포의 무게는 7톤에 가까웠고

※ 상식적으로 배수량 3만5천톤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바럼호의 측면 무게가 7톤 밖에 될 리 없다. 이것은 현측에 배치된 6인치(152mm) 부포를 가리킨다.

p.59 탄창을 비롯해 -> 탄약고를 비롯해

※ magazines은 '탄창'이라는 뜻도 있지만 문맥상 '탄약고'라고 번역해야 한다.

p.71 카운티급 순양함이 탄창을 단단한 철판으로 두른 정도에 그쳤을 만큼 보호 장치가 허술했다는 것은(the County-class’s light-armored protection—only the magazines had solid “box” armor around them) -> 카운티급 순양함의 빈약한 장갑 방호는 단지 탄약고 주변만을 철판으로 단단히 둘러싼 정도였기에

p.169 10만척의 전함을 목표로(occasional vision of 100,000-ton battleships) -> 10만톤급 전함을 목표로

※ 실제로 독일 해군의 Z계획에 따르면 해군판 마우스 전차라 할 수 있는 H-44/45급 전함은 10만톤을 넘어섰다. 물론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밖에도 '정규 항공모함(Fleet carrier)'을 '플리트 항공모함'이라고 하거나 p.179에는 아예 '프리트'라고 오타를 내기도 하고 '독일 제10항공군단(X. Fliegerkorps)'을 '제10항공대'라고 한 점, p.331에서는 소련 '근위사단(Guards Division)'을 '경비사단'으로, 듀크 오브 요크(HMS Duke of York)를 p.68에서는 요크 공작호라고 했다가 뒷쪽에서는 듀크 오브 요크라고 하는 등 용어가 잘못되거나 통일되지 않는 등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제법 있더라. 또한 p.595에서는 '20미국톤(907킬로그램)'이라고 되어 있는데 20미국톤(18.1톤)이 아니라 1미국톤이 907킬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자가 그 유명한 <총균쇠>를 비롯하여 그동안 수많은 번역서를 낸 베테랑이라고 하는데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나 싶을 정도. 물론 역자도 사람이다보니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내 경험으로 볼 때 이런 것은 편집자가 잡아주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앞뒤 문맥이 맞지 않으면 대개는 오역이니 말이다.

오역보다 진짜 지적받아 마땅한 부분은 오탈자.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페이지를 한장 넘길 때 오타 하나. 오타 없는 책은 없다지만 이쯤되면 너무 무성의하여 어떨 때에는 짜증이 치밀어 당장 반품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을 정도. 출판사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너무 급하게 책을 내려고 지나치게 서두른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서 대개는 최종 탈고 전에 출판사 서평단을 통하여 대부분 걸러내던데 말이다. 그것만 아니면 나무랄 데가 없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오탈자 교정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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