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전, 최강국의 탄생 -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가른 해양패권 흥망사
폴 케네디 지음, 이언 마셜 그림,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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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부시가 9.11테러를 핑계로 무솔리니급으로 일을 벌여놓은 후유증 덕분에 근래 와서 리즈 시절이 지났다고 의심을 받는 미국이지만 여전히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경제력은 물론이고 군사력에서 다른 열강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피지컬을 보여주는 것이 해군력이다. 그나마 미 육군과 공군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지상전에서 게릴라들의 비대칭 전략에 휘말려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나 베트남전쟁에서 공산군의 막강한 대공망에 수많은 항공기를 상실했던 것처럼 흑역사라고 할 만한 나름의 오점이 있다면, 미 해군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적 함대이다.


워낙 넘사벽적인 존재인지라 전 세계 해군이 연합하여 한꺼번에 덤벼도 승산이 없을 정도. 미국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지구 어디건 원하는대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것이나 어느 나라도 감히 미국 본토를 침공할 생각을 할 수 없는 것 또한 해군력이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모함 전력에 있어서는 10만톤급 이상 핵추진 슈퍼 캐리어를 보유한 유일한 나라이며 그것도 무려 11척이나 양산. 다른 나라에서는 정규 항모랍시고 1~2척 가지고도 허덕거리는 4만톤급 강습상륙함까지 합하면 20척. 군사력에서 미국 다음을 자랑하는 중국과 러시아조차 미국과 싸우려면 정면 대결은 불가능하고 ICBM과 SSBN을 이용한 핵전쟁을 벌여야 할 판. 물론 그건 다같이 죽자는 얘기이니.

2019년 자료라서 4년이 지난 지금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중국은 2022년에 8만5천톤급 항모를 진수하여 항모 숫자가 3척으로 늘어났고 미국 다음의 해군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미국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라도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월등한 것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인도가 같은 해에 비크란트급 항모를 진수하여 항모가 한척 늘었지만 배수량이 4만5천톤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국과 인도, 일본, 한국 정도가 해군력 증강에 돈을 쏟아넣고 있으며 나머지 나라들은 경제 침체로 현상 유지도 버거운 판국인지라. 쇼미더머니~~.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항모가 남아 있나이다." 그 12척의 항모만으로도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판.


오늘날 미 해군의 절대적인 파워는 한 세기 전에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다는 영국 해군과도 비할 바가 아니다. 섬나라인 영국은 육군 대신 해군에 올인했음에도 여러 라이벌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야 했으며 때때로 바다에서 패배한 적도 있었다. 양차 대전에서는 독일 유보트의 해상 봉쇄로 거의 고사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최대의 해상 결전이었던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독일 해군을 상대로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술적 패배에 가까운 무승부를 벌임으로서 체면이 실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들이 이탈하자 그저그런 이류 강국으로 전락했다. 영국은 무적 함대를 건설하기에 체급이 따라주지 않은게 비운.


반면, 미국은 영국보다 훨씬 유리한 처지이다. 풍부한 자원과 영토, 주변에 이렇다할 위협 세력이 없고 국토 양쪽에는 외부의 침략을 막아주는 천연의 해상방벽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세계 유일의 기축 통화인 달러를 앞세워 지구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경제력까지 갖추었다. 영국은 물론이고 역사상 어느 세계 제국도 꿈만 꾸었을 뿐 감히 누리지 못했던 이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진게 많아도 쓸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듯, 따지고 보면 오늘날 천조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위상이라는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만약 한 세기나 두 세기 전의 미 해군 수장들이 거대한 항모 전단의 위용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실로 격세지감일 것이다.


1812년의 미영전쟁에서 보잘 것 없는 해군력 탓에 수도 워싱턴이 영국 해군의 침공으로 불바다가 되고 대통령이 달아나는 수모를 겪었던 미 해군은 20세기 초반만 해도 여전히 2류에 지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워싱턴 해군조약에서는 몰락한 독일을 대신하여 영국 다음의 지위를 차지했지만 세계 바다를 지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랜 평화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군비가 억제되면서 주력함들의 대부분은 20년 이상 된 구식이었고 항모의 숫자는 일본보다 열세했으며 수병들은 실전 경험이 없었다. 그 결과가 진주만 기습이었다. 이 순간 미국의 힘을 '각성'시킨 것은 루스벨트였다. 무능하고 부패한 아들 부시는 911테러 이후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몇몇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챙겨주는데 낭비하여 미국 국민들에 엄청난 빚만 안겨다 주었지만 루스벨트는 미국의 무한한 잠재 파워를 끌어내는데 성공했고 유럽에서는 독일과 싸우면서 태평양에서 일본의 도전을 분쇄했다. 추축국들은 물론 다른 열강들 입장에서 미국은 그야말로 다른 차원에서 튀어나온 사기 캐릭터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미국은 자원의 일부만을 해군에 투자했음에도 영국 해군조차 보잘 것 없게 만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미국을 위한 전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



물론 전쟁 이전부터 미국의 공업력이 월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진주만 기습을 계기로 미국의 깨어난 포스는 자신을 억제하던 봉인을 깨뜨린 격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적으로 루스벨트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스탈린처럼 무작정 국민들을 갈아넣은 것이 아니라 유능한 경제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수립했으며 자유분방한 미국민들의 국론을 하나로 결집시켜 진정한 풀파워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군비 지출과 어마어마한 물자를 동맹국들에게 퍼주었으며 전후에는 패전국들을 삥 뜯는 대신 오히려 재건시켰다. 그러고도 초인플레이션은 커녕 경제가 더 성장했다는 기적.(임진왜란에서 명나라의 운명을 생각해보라) 같은 승전국인 영국과 소련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도대체 무슨 마법을 썼나 싶을 정도.


진주만 기습을 시작으로 미국의 변신은 이런 느낌이랄지.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달리 베트남전쟁은 잘나가던 미국 경제를 탈탈 털어먹어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전쟁이 미국을 각성시켰다고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제아무리 미국이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라고 한들, 1941년에 미국 대통령이 루스벨트가 아니라 그 이전의 나태하고 고리타분한 고립주의자들이나 이후의 신통찮은 얼간이들이었다면 지금의 미국이 존재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루스벨트 존재 자체가 미국에게 축복이자 세번째 터닝 포인트라고 할 만하다.(첫번째가 독립전쟁, 두번째가 남북전쟁) 그런 미국조차 요즘에 와서는 트럼프같은 뻔뻔하고 욕심많은 어릿광대가 욕을 쳐 얻으면서도 그 자리에 앉고 그렇다고 딴 놈들도 별 수 없는 것을 보면 갈 데까지 간 느낌이지만 말이다. 하긴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부분은 범용하면서 때때로 3류 소인배가 튀어나와서 거의 바닥까지 말아먹은 다음 아주 가끔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이 포텐셜을 단단히 터뜨리는 식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축복이야, 장난이야.



한국경제신문에서 금년 가장 주목할 책 중 하나가 나왔다.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로서 국내에서도 <강대국의 흥망>으로 잘 알려진 폴 케네디 교수의 따끈따끈한 최신작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Victory at Sea)>이다.


폴 케네디 영감님. 그가 32살이었던 1987년에 쓴 <강대국의 흥망>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여러 열강들의 흥망성쇠를 정치, 군사, 경제 등 전방위적으로 다룸으로서 단숨에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올해로 78살인데 여전히 왕성한 저술과 강의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 나는 벌써부터 노안이 와서 눈이 침침한데. 일반인들과는 신체구조가 다른지도.


폴 영감님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강대국의 흥망>은 서양이 처음으로 인류 역사에 떠오르는 근세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동안 동서양에 등장했던 수많은 제국들이 겪었던 부침을 통해서 강대국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몰락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대학 시절에 샀는데 워낙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여 10번은 읽었을 듯. 삼국지와 더불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다. 이제는 완전히 누더기가 되어서 책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에 21세기 북스에서 나온 <제국을 설계한 사람들>은 시간적 무대를 제2차 세계대전으로 국한하여 연합군의 승리 비결이 어디서 있는지를 분석한다. 문제는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오탈자의 난무. 21세기 북스가 수많은 번역서를 낸 대형 출판사라는 점에서 이해되지 않을 정도. 폴 케네디 이름만 믿고 방심했나.


국내 출간으로는 세번째인 <대해전, 최강국의 탄생>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6대 해군국(미, 영, 일, 프, 이, 독)의 치열한 경쟁과 미국이 다른 열강들의 도전을 누르고 오늘날의 절대적인 해상 패권을 쥐게 되는 과정을 700여 페이지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강대국의 흥망 제2차 세계대전 버전이랄까. 역자의 후기에 따르면 저자가 처음에는 지인이 수채화로 그린 53점의 군함 화보집에 가벼운 마음으로 서문이나 몇 장 써줄 생각이었는데 '기왕' 쓰는 김에 그림을 삽화로 활용하여 제2차 세계대전 해전사를 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주력 중순양함이었던 자라와 피우메, 폴라 세 자매. 중간중간 들어간 삽화만 해도 미려하여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의 등장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해상 패권 장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역덕이라면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의 해전은 불과 20년의 차이가 있는 제1차 세계대전이나 그 이전과 비교하여 큰 차이가 있다. 더 이상 트라팔가르 해전이나 유틀란트 해전처럼 거함들로 구성된 대함대들이 서로 정면에서 맞부딪치며 함포를 겨누지 않았다. 태평양의 주역은 항공모함과 함재기였고 대서양에서는 잠수함이었다. 바꾸어 말해서 이것은 어마어마한 소모전으로 이어졌다. 이전의 해전이란 육지처럼 일정한 전선이 형성되기 어렵기에 양측 함대가 광활한 바다에서 서로 접촉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대개 상당한 거리를 두고 포격전을 벌이다가 이기기 어렵다 싶으면 재빨리 물러나는 식이었다. 자칫 오판하거나 괜한 오기 부리다가 그 타이밍 잘 못 놓치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가 한방에 전멸한 쓰시마 해전 꼴이 나니까 말이다.

유틀란트 해전만 해도 도합 250척이 참여했지만 격침된 것은 전함 5척을 포함해 20여척에 불과했다. 요동치는 바다에서 육안으로 보면서 어림 짐작으로 쏘는 원거리 포격으로는 명중률이 극히 낮아 적 함대에 치명타를 주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맞으면 일격필살) 하지만 함재기들은 적 함대를 발견하는 즉시 날아가서 어디에 있건 말그대로 쓸어버렸다. 아무리 막강한 방공망이 있어도 수백대의 함재기가 달라붙으면 무용지물이었다. 게다가 군함은 전차나 비행기, 대포에 비하여 훨씬 고가인데다 건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력 양성도 어려운 법이다. 개전 직후에만 해도 강력한 함대와 우수한 파일럿을 대거 보유했던 일본이 1년도 되지 않아 수세에 몰린 것이나 영국조차 미국에게 두손 들고 넘버 원 자리를 양보한 것 또한 이 소모전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서양에서는 독일 잠수함들이 20년 전보다 훨씬 파괴적으로 연합군 수송선단을 사냥함으로서 영국을 거의 고사직전까지 몰아넣었음에도 침몰시키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빨리 찍어내는 미국의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백기를 들어야 했다. 미국만이 그 싸움을 감당할 인력과 자원, 무엇보다 돈이 있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벌어진 주요 해전이 전후의 미국 전성시대를 어떻게 탄생시키게 되는지 풍부한 자료와 함께 예리하면서 흥미롭게 분석한다.


1938년 여름, 지중해의 따뜻한 물이 물타의 역사적인 자연항 그랜드 하버에 나란히 정박한 두 전함의 측면을 살짝살짝 때렸다. 두 전함 뒤로는 성 요한 기사단이 15세기에 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의 주량 현관이 보였다. 해군 예인선 한척이 가까이 다가왔고 여러 척의 작은 배가 부지런히 부두를 오갔지만 다른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 세계는 조용했다. - p.25

다른 면에서 태평양 전쟁은 순양함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았다. 태평양에서는 경쟁적으로 확보해야 할 수송 항로가 없었다. 미국은 구형 전함 외에도 순양함을 침공을 앞두고 포격을 퍼붓기 위한 용도로 꾸준히 사용했고 항공모함을 적군의 폭격기에서 보호하는 역할로도 활용했다. - p.74

미국-스페인 전쟁과 러일전쟁의 결과에서 머헨의 가르침이 확인됐다. 달리 말하면 해전에서 승리한 국가가 전쟁에서 이겼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머핸의 가르침은 퇴색되지 않았다. 1918년의 패전국은 해군력이 약한 동맹국이었고 승전국은 전투 함대를 보유한 영국과 미국, 일본이었다. - p.168

무솔리니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1940년 6월에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이탈리아 해군 최고 사령부에게 장밋빛을 의미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의 전략적 지점에 치명타가 되리라 판단되는 군사 행위가 이탈리아 제독들에게는 반드시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탈리아가 지중해에 갇힌 신세라는 점은 전쟁 전과 달라진 게 없었고 영국 해군은 그들에게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제독들이 나폴리 만에 서서 밖을 바라보면 장애물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국 항공대와 잠수함, H-부대의 중후한 해상 전투함, 더욱이 그 뒤에 포진한 본국 함대의 절반을 물리치고 지브롤러로 진격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 p.272

일본 함대가 길버트 제도를 지키려고 움직였다면 레이테만 전투보다 11개월 빨리 두 해군 강국이 맞붙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해군은 반응하지 않았다. 일본 해군이 이 순간 싸우지 않기로 결정한 주된 이유는 일시적으로 홀시 제독의 남태평양 사령부 휘하의 항공모함 전단이 라바울에 주둔한 일본 해공군력에 11월 5일 가한 타격 때문이었다. 그 때 중순양함을 비롯한 많은 군함이 입은 피해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헬켓 전투기 편대의 공격에 대체불가의 노련한 함재기 조종사를 너무 많이 잃었기 때문이었다. - p.441

강대국들이 부담한 군비를 비교해 측정해보면 1943년에 영국은 국민소득의 55퍼센트를 군사비에 지출했고 소련은 60퍼센트 이상, 나치 독일은 동서 양쪽의 이웃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자원을 약탈했는데도 70퍼센트를 지출했다. 미국은 다른 모든 강대국보다 훨씬 많은 돈을 전쟁에 쏟아부었지만 군사비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한 비율은 42퍼센트에 불과했다. 어떤 분야에서나 똑같지만 예컨대 영양 쉽취에 대한 전쟁의 경제 사회적인 비용을 조사해보면 다른 강대국은 혹독한 비용을 치른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는 증거가 뚜렷하다. 독일은 식량 배급량이 줄었으나 미국인들은 배불리 먹었다. - p.499

1945년 4월 1일 부활절이던 일요일, 1200척의 상륙함이 오키나와 중부의 해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200척의 구축함과 18척의 전함, 40척이 넘는 항공모함이 그들을 엄호했다. 일본 함대의 저항이 없었는데 이때 18척의 전함과 40여척의 항공모함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을까?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표현대로 당시 미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고 머헨의 정의에 따르며 여태껏 존재한 세계 최강의 전함 부대로 대적할 수 있는 적이 없을 정도였다. - p.597

이탈리아의 전략 지도 자체가 엉망진창이었다고 해서, 이탈리아 해군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부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탈리아 군함들은 강력하고 인상적이었으며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1940~1942년의 억눌린 작전 상황에서 본래의 능력을 좀처럼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이탈리아 해군의 대잠 초계 능력은 영국 해군의 잠수함 부대에 적지 않은 피해를 가한 반면, 이탈리아의 소형 잠수함들은 알렉산드리아에 주둔한 커닝엄의 전투 함대를 공격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커닝엄의 함대를 공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탈리아의 전략적 오판을 보여주었다. 당시 전쟁은 세계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기에 키닝엄의 함대를 공격한다고 해서 제해권을 확보하기는 커녕 대서양과 수에즈 동쪽에서 활동하는 영국 함대를 지중해로 끌어들이는 역효과만 낳았다. 따라서 레지아 마리나(이탈리아 해군)이 1943년 9월 지휘권을 넘겼을 때 대연합의 전력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저 연합군의 병력을 분산시키는 세력이 제거되고 런던의 압박감이 사라진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보다 약하고 프랑스보다 약하며 진정한 열강에 비할 수 없었던 국가의 해군이 그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 p.639




리델 하트는 '진정한 승리'를 가리켜 "한 국가가 전쟁을 치른 뒤에 전쟁 전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게 되는 승리"라고 정의했다. 1945년 이후의 미국은 분명히 그런 국가였다. 미국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승리를 쟁취한 유일한 강대국이었다. 소련 또한 승전국으로 떠올랐지만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얻은 보상이었다. 미국은 여섯 교전국 중에서 자국이 폭격받지 않고 민간인 사상자도 거의 없는 유일한 국가였다. 미 해군은 2위였던 영국 해군보다 컸을 뿐더러, 나머지 모든 국가의 해군 규모를 합한 것보다도 컸다. - p.655






어떤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광활한 러시아 평원을 놓고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치는 독소전쟁의 거대함에 비하면 바다에서 벌어진 전투는 부차적일 뿐이라고 말할 지 모른다. 어쨌든 독일군을 불도저마냥 밀어내고 제3제국의 심장부를 점령한 것은 수백만명에 달하는 소련 지상군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찮은 막간극으로 취급하는 것 또한 어폐가 있다. 라이프치히 전투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몰락시켰다고 해서 트라팔가르 해전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듯 말이다. 미국과 영국 해군은 독일 유보트의 위협에 맞서 어마어마한 물자를 영국과 소련으로 실어날랐다. 히틀러 입장에서 제해권의 상실은 영국 봉쇄에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나폴레옹이 그러했듯 물자 수송에 심각한 부담을 줌으로서 한층 불리한 싸움을 강요받았다. 만약 독일 해군이 미, 영을 꺾을 수 있었다면 영국과 소련은 봉쇄당한 채 굶어 죽어갔을 것이고 미국은 대서양 너머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냉전 시절 소련이나 오늘날 국수주의에 사로잡힌 러시아 학자들은 서방의 랜드리스 원조가 소련 생산량의 4%에 불과했다는 둥, 별거 아니었다는 식으로 깎아내리지만 필요할 때에는 실컷 도움 받고 전쟁 끝나니까 우리 힘만으로 이길 수 있었다 운운하는 것은 뻔뻔한 소리일 뿐더러, 그런 논쟁이 벌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연합군의 도움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해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결정짓지 않았더라도 한축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개별 해전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부터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전체적인 해전의 흐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해전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 제일 먼저 프랑스 해군이 나가떨어지고 이탈리아 해군이 1943년 9월에 항복했으며 미드웨이 해전을 시작으로 일본 해군이 수세에 내몰리고 독일 유보트들이 괴멸하며 전쟁이 끝났을 때 영국 해군이 미 해군의 거대한 위용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째서 미 해군이 진정한 승자가 되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저자는 그것이 결코 원래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해상 패권 또한 없었다는 얘기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잠재능력을 해방시켰다.


밀덕으로서 워낙 흥미진진하여 퇴근 후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바람에 1주일만에 완독했다. 아쉬운 점은 이번에도 오역과 오탈자가 상당하다는 점. 앞서 언급한 21세기 북스의 <제국을 설계한 사람들>만큼이나 어색한 번역투는 아니지만 중간중간 오역이 눈에 띄더라. 그 중 몇개를 언급하자면,

p.39 바럼호 측면 전체의 무게는 7톤에 가까웠고(The full broadside of the Barham weighed fifteen thousand pounds) -> 바럼호 현측 부포의 무게는 7톤에 가까웠고

※ 상식적으로 배수량 3만5천톤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바럼호의 측면 무게가 7톤 밖에 될 리 없다. 이것은 현측에 배치된 6인치(152mm) 부포를 가리킨다.

p.59 탄창을 비롯해 -> 탄약고를 비롯해

※ magazines은 '탄창'이라는 뜻도 있지만 문맥상 '탄약고'라고 번역해야 한다.

p.71 카운티급 순양함이 탄창을 단단한 철판으로 두른 정도에 그쳤을 만큼 보호 장치가 허술했다는 것은(the County-class’s light-armored protection—only the magazines had solid “box” armor around them) -> 카운티급 순양함의 빈약한 장갑 방호는 단지 탄약고 주변만을 철판으로 단단히 둘러싼 정도였기에

p.169 10만척의 전함을 목표로(occasional vision of 100,000-ton battleships) -> 10만톤급 전함을 목표로

※ 실제로 독일 해군의 Z계획에 따르면 해군판 마우스 전차라 할 수 있는 H-44/45급 전함은 10만톤을 넘어섰다. 물론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밖에도 '정규 항공모함(Fleet carrier)'을 '플리트 항공모함'이라고 하거나 p.179에는 아예 '프리트'라고 오타를 내기도 하고 '독일 제10항공군단(X. Fliegerkorps)'을 '제10항공대'라고 한 점, p.331에서는 소련 '근위사단(Guards Division)'을 '경비사단'으로, 듀크 오브 요크(HMS Duke of York)를 p.68에서는 요크 공작호라고 했다가 뒷쪽에서는 듀크 오브 요크라고 하는 등 용어가 잘못되거나 통일되지 않는 등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제법 있더라. 또한 p.595에서는 '20미국톤(907킬로그램)'이라고 되어 있는데 20미국톤(18.1톤)이 아니라 1미국톤이 907킬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자가 그 유명한 <총균쇠>를 비롯하여 그동안 수많은 번역서를 낸 베테랑이라고 하는데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나 싶을 정도. 물론 역자도 사람이다보니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내 경험으로 볼 때 이런 것은 편집자가 잡아주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앞뒤 문맥이 맞지 않으면 대개는 오역이니 말이다.

오역보다 진짜 지적받아 마땅한 부분은 오탈자.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페이지를 한장 넘길 때 오타 하나. 오타 없는 책은 없다지만 이쯤되면 너무 무성의하여 어떨 때에는 짜증이 치밀어 당장 반품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을 정도. 출판사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너무 급하게 책을 내려고 지나치게 서두른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서 대개는 최종 탈고 전에 출판사 서평단을 통하여 대부분 걸러내던데 말이다. 그것만 아니면 나무랄 데가 없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오탈자 교정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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