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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평점 :
유럽에서 전운이 감돌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불과 한달 앞둔 1939년 8월 2일,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편지에는 독일계 유태인이자 노벨상 수상자이며 6년 전 미국으로 망명하여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름만 빌려주었을 뿐, 실제로 그것을 쓴 사람은 아인슈타인보다 20살이나 어린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 실라르드 레오(Leo Szilard)였다. 나중에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Einstein–Szilard lett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편지의 주된 내용은 우라늄을 이용하여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위력의 폭탄을 만들 수 있으며 나치 독일보다 한발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각 심각성을 깨달은 루스벨트는 우라늄 폭탄 개발에 대해 조사를 지시했다. 3개월 뒤 우라늄 자문 위원회는 사실이라고 보고했고 1940년 7월에는 미국보다 한발 앞서 핵무기 개발을 연구 중이던 영국이 협력을 제안했다. 1941년 10월 9일 루스벨트는 핵무기 프로젝트에 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비밀 프로젝트인 '맨하튼 계획(Manhattan Project)'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3년하고 10개월 뒤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폭이 투하되어 단 한발로 도시의 90%와 14만명이 사라졌다. 사흘 뒤에는 나가사키에 두번째 원폭이 투하되었다. 북쪽에서는 거대한 소련군이 물밀듯이 밀고 들어오자 일본 지도부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자 동시에 '핵공포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었다.

맨하튼 계획을 주도한 핵클럽 과학자들. 이들 중 상당수는 독일과 이탈리아, 헝가리 등지에서 탄압을 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인 과학자들이었다. 핵무기의 기초 이론을 제공한 아인슈타인만 해도 나치 때문에 빈털털이로 달아나야 했다. 미국은 이들 덕분에 맨땅에 헤딩하듯 핵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여 히틀러가 과학자들을 존중했더라면 가장 먼저 핵무기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핵개발에 뛰어든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었다. 영국, 소련, 독일, 심지어 2류 국가였던 일본도 있었다. 어쩌면 추축 진영의 또 다른 한축인 이탈리아도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이며 오펜하이머와 더불어 맨하튼 계획의 가장 중요한 멤버 중 한 사람이 되는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가 무솔리니의 탄압을 피해서 미국에 일찌감치 망명하지 않았다면 그 대오에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미국은 경쟁에 한참 뒤쳐진 쪽이었다. 루스벨트가 아인슈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핵개발을 지시한 뒤에도 오랜 평화에 젖어 있던 미국 사회의 태평한 분위기 속에서 과학에 문외했던 관료들과 군인들은 무관심했고 한낱 망상 쯤으로 여겼다. 핵개발 위원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쓸데없는 회의로 시간만 낭비했다. 성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속도는 정권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나치 독일에 비하여 한없이 느리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핵 레이스에서 승자는 미국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미국이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단순히 천조국으로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인력과 돈, 자원을 쏟아부었기 때문일까. 다른 나라들, 특히 물리학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던 독일은 가능성이 없었던가. 실제로 같은 시간 독일에서는 베르노 하이젠바르크, 오토 한같은 저명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치를 위해서 일찌감치부터 핵개발에 매진하고 있었고 점령지에서 핵개발에 필요한 원료와 자재를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독일에게는 미국조차 가지지 못했던 비밀 무기가 있었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원형이었던 V2 로켓이었다. 나중에 미국의 아폴로 계획을 주도하는 폰 노이만 교수가 개발한 V2 로켓은 초음속의 속도로 최대 300km의 거리를 날아갈 수 있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3천발 이상 발사되어 9천여명이 죽었다. 연합군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만약 독일이 핵개발에 성공했다면 오늘날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히틀러가 핵무기를 손에 넣었다면 V2 로켓에 탑재하여 제일 먼저 런던과 모스크바로 날렸을 것이며 사거리를 더욱 늘려서 워싱턴과 뉴욕까지 목표로 삼았을게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공멸로 끝났을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최악의 가정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히틀러의 어리석음,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학 전문 출판사인 해나무 출판사에서 흥미진진한 신작 도서가 나왔다. 핵무기 개발을 놓고 미국과 나치 독일 사이에 벌어졌던,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대담했으며 결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첩보 전쟁을 다룬 <원자 스파이>이다. 어쨌든 전쟁에 이겨야 했으니 말이다. 참고로 원작 제목은 "개망나니 여단(The Bastard Brigade)"이라고. 저자 샘킨(Sam Kean)은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역사 작가치고는 보기 드물게도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라고 한다. 덕분에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우리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고 딱딱할 수 밖에 없는 과학 용어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고 있다. 역사와 과학의 중간 쯤이랄지.
미국은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돈과 함께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모아서 맨하튼 계획에 착수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큰 걱정거리는 독일이 먼저 핵개발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보기에 그것은 충분하다 못해 기정 사실처럼 보였다. 미국은 독일보다 훨씬 늦게 핵개발에 뛰어들었고 그나마도 한동안 지지부진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핵개발은 1942년 9월 펜타곤의 건설자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과 오펜하이머가 맨하튼 계획을 맡으면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가동하게 된다. 동시에 또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독일이 미국보다 얼마만큼 앞서 나가고 있는지 알아내고 어떻게 방해하여 늦추는가였다. 그 비밀 첩보 작전이 '알소스 미션(Alsos Mission)'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모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첩보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특공대가 그러하듯, 알소스 팀에도 명망 있는 과학자부터 왕년에 메이저 리그에서 잘나갔던 선수, 할리우드 배우, 심지어 불한당까지 온갖 다양한 인간 군상이 섞여 있었다. 알소스 지휘관인 보리스 패시(Boris Pash) 대령은 원래 러시아 이민 2세로 젊은 시절 적백내전에서 싸웠고 전쟁 이전에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참고로, 알소스란 맨하튼 계획의 책임자이자 이들의 상관이었던 그로브스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그로브스는 노발대발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나치의 핵개발을 저지하는데 일조한 알소스 팀. 뒷줄 가운데가 보리스 패시 대령. 1943년 9월에 창설된 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독일의 핵개발 정보를 파악하고 전쟁 말기에는 나치 과학자들과 핵연료를 소련군보다 한발 먼저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들조차 독일 핵개발은 막았지만 소련 핵개발은 막지 못했다. 미국 내부에서 암약한 공산주의 첩자들 때문이었다.
저자는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전설적인 포수였으며 나중에 알소스 팀의 핵심 멤버가 되는 모 버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핵무기를 먼저 손에 넣기 위한 미국의 맨하튼 클럽과 독일의 우라늄 클럽의 치열한 경쟁, 그런 독일을 저지하는 알소스 팀의 활약을 박진감 넘치면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물론 나치의 훼방꾼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나치 핵개발에 치명타를 가한 노르웨이 특수부대의 중수 공장 파괴작전, 퀴리 부인의 사위이자 세계 최초로 방사선 동위원소를 만들어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물리학자였지만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어 직접 나치에 맞서 싸웠던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친동생 존 F. 케네디에 대한 과도한 경쟁심에 눈이 먼 나머지 전쟁 영웅이 될 기회를 얻겠답시고 비행기에 올라 독일 V3 로켓 발사포대를 제거하는 무모한 임무를 맡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조지프 케네디도 이 책에 등장한다. 그 밖에도 독일이 언제 핵개발에 성공할 지 모른다는 미국 과학자들의 강박에 가까운 공포심과 자기들이 미국보다 한 수 위일거라는 독일 과학자들의 우월의식, 그럼에도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독일 과학자들의 반응 또한 흥미로운 읽을 거리이다. 디데이에서도 연합군 지도부는 히틀러가 방사능 무기로 프랑스 해안가를 오염시켜 수십만명의 병사들을 몰살시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만약 그런 무기가 있다면 동부전선에서 먼저 써먹었을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강박증이 맨하튼 계획을 성공시킨 최대 비결인 셈이다.
<원자 스파이> 이야기는 '저열하고 부정직한 10년인' 1930년대에 일어난 핵분열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전쟁이 끝난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서사시적 추적 임무로 이어진다. 연합국 측은 프랑스와 독일로 진격하기 전에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를 점령하느라 이미 수백만명을 희생했다. 하지만 그들은 히틀로가 고작 우라늄 몇 킬로그램만으로 디데이 작전 전체를 수포로 만들고 연합국을 유럽 대륙에서 영원히 축출하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 - p.23 |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나치는 1939년에 과학자들에게 병역면제를 거의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소수의 화학자와 물리학자에게는 예외를 인정했다. 왜 그랬을까? 디프너가 상관들에게 야심찬 계획에 도박을 걸어보라고 설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계획은 바로 핵분열 폭탄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우란페라인' 즉 우라늄 클럽이라고 불렀다. - p.136 |
전쟁 초기에 영국과 미국은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했지만, 보안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그로브스는 건전한 이유와 옹졸한 이유에서 정보 교환을 중단시켰다. 기묘하게도 그로브스의 아버지는 1856년에 태어났음에도 왕정 시대에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배신한 행위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고 아들도 영국에 대한 아버지의 증오심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로브스는 이제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미국은 영국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혼자서 원폭을 만들 수 있었다. - p.338 |
지질학자들은 아이젠하워와 참모들을 설득하여 그들이 선호한 디데이 상륙 장소 대신에 동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오마하비치를 선택하게 했다. 그곳 토양의 접지력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연합군은 첫날에 重차량을 8851대나 상륙시킬 수 있었고 처음 7주 동안 15만 대 이상을 상륙시켰다. 게다가 디데이에 최소한 한명의 지질학자가 현장의 전문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군대와 함께 상륙했다. 물론 노르망디에 상륙한 군인들에게 가장 큰 공을 돌려야 마땅하지만 어디로 상륙해야 할 지 알려준 지질학자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391 |
마르세유의 우라늄염 27톤은 보스턴으로 운송되었다가 결국에는 오크리지로 보내졌다. 그 속에 포함된 우라늄-235는 훗날 히로시마를 파괴할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쓰였다. 벨기에에서 회수한 61톤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유럽에서 회수한 우라늄염은 도합 90톤이었다. 하지만 벨기에 기록에 따르면 우라늄은 900톤이 있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그것이 남아 있는 한 연합국은 아침에 눈을 떴다가 버섯구름을 목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 p.464 |
바이츠제커는 문서를 드럼통 속에 넣고 밀봉한 뒤 어느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을 곳에 묻었는데 몇 년 동안 배설물이 쌓인 변소 바닥이었다. 가우드스밋은 군인 두 명을 보내 그것을 건져 올리게 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주 중요한 입글 기밀 임무"라고만 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명예로운 임무에 선발된 것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곳이 분뇨 구덩이라는 사실을 안 그들은 몹시 화가 났고 가우드스밋에게 그 고통을 되갚아 주었다. 오물로 뒤덮은 드럼통을 가우드스밋의 방 창문 아래에 갇다둔 것이다. 호스로 물을 뿌려 드럼통을 씻어낸 뒤 뚜껑을 연 가우드스밋은 독일의 원자폭탄 계획에 관한 전체 문서를 발견했다. "알소스가 잭팟을 터뜨렸습니다." - p.522 |
몇 달 전 독일의 원자폭탄 계획이 한참 뒤쳐져 있었다는 사실을 안 뒤, 가우드스밋은 그로브스의 한 부관에게 "독일이 우너자폭탄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아주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원자폭탄도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부관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샘, 우리에게 그런 무기가 있다면 우린 그걸 사용할거요." 그 예언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 원자폭탄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즉, 핵무기를 보유한 독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무기였다. 하지만 독일의 위협이 사라지자 방어 무기라는 개념도 사라졌다. 불가피하게 원자폭탄은 다른 성격의 무기 -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무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임을 그는 직감했다. - p.552 |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미국이 독일의 핵개발을 그토록 두려워 하고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면 반대로 독일은 미국의 핵개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으며 이를 방해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던가. 이 책이나 다른 책을 보더라도 히틀러는 맨하튼 계획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이 제아무리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고 한들 연 인원이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어떻게 그토록 무관심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일본조차 전쟁 말기에 오면 미국의 핵개발이 임박했음을 어느정도나마 깨닫고 있었는데 말이다. 미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히틀러의 오만함, 나치 특유의 극도로 경직된 관료주의, 미국인에 대한 막연한 인종적 편견이 히틀러와 독일 과학자들의 눈과 귀를 가렸는지 모르겠다.
600여 페이지 가까운 분량임에도 저자 특유의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필력과 스릴 넘치는 전개 덕분에 도저히 손을 뗄 수 없어서 주말 동안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런 책일수록 내용도 내용이지만 번역자의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 용어가 난무함에도 흠 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서울대 출신의 과학 전문 번역가라고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을 앞두고 시중에서는 오펜하이머 평전을 비롯하여 맨하튼 프로젝트와 히로시마 원폭을 다룬 책들이 줄줄이 나오더라.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결말이 정해진데다 핵폭발 빼고는 그다지 임팩트나 액션신이 있는 것도 아닌 이 영화가 그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소재일까 했는데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할리우드 빠와! 영화가 맨하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자 스스로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자조했던 오펜하이머의 인간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이 책은 스케일이 한 단계 더 크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처럼 한편의 액션 영화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에 읽어보라. 재미가 2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