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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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전운이 감돌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불과 한달 앞둔 1939년 8월 2일,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편지에는 독일계 유태인이자 노벨상 수상자이며 6년 전 미국으로 망명하여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름만 빌려주었을 뿐, 실제로 그것을 쓴 사람은 아인슈타인보다 20살이나 어린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 실라르드 레오(Leo Szilard)였다. 나중에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Einstein–Szilard lett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편지의 주된 내용은 우라늄을 이용하여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위력의 폭탄을 만들 수 있으며 나치 독일보다 한발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각 심각성을 깨달은 루스벨트는 우라늄 폭탄 개발에 대해 조사를 지시했다. 3개월 뒤 우라늄 자문 위원회는 사실이라고 보고했고 1940년 7월에는 미국보다 한발 앞서 핵무기 개발을 연구 중이던 영국이 협력을 제안했다. 1941년 10월 9일 루스벨트는 핵무기 프로젝트에 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비밀 프로젝트인 '맨하튼 계획(Manhattan Project)'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3년하고 10개월 뒤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폭이 투하되어 단 한발로 도시의 90%와 14만명이 사라졌다. 사흘 뒤에는 나가사키에 두번째 원폭이 투하되었다. 북쪽에서는 거대한 소련군이 물밀듯이 밀고 들어오자 일본 지도부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자 동시에 '핵공포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었다.

맨하튼 계획을 주도한 핵클럽 과학자들. 이들 중 상당수는 독일과 이탈리아, 헝가리 등지에서 탄압을 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인 과학자들이었다. 핵무기의 기초 이론을 제공한 아인슈타인만 해도 나치 때문에 빈털털이로 달아나야 했다. 미국은 이들 덕분에 맨땅에 헤딩하듯 핵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여 히틀러가 과학자들을 존중했더라면 가장 먼저 핵무기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핵개발에 뛰어든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었다. 영국, 소련, 독일, 심지어 2류 국가였던 일본도 있었다. 어쩌면 추축 진영의 또 다른 한축인 이탈리아도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이며 오펜하이머와 더불어 맨하튼 계획의 가장 중요한 멤버 중 한 사람이 되는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가 무솔리니의 탄압을 피해서 미국에 일찌감치 망명하지 않았다면 그 대오에 이름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미국은 경쟁에 한참 뒤쳐진 쪽이었다. 루스벨트가 아인슈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핵개발을 지시한 뒤에도 오랜 평화에 젖어 있던 미국 사회의 태평한 분위기 속에서 과학에 문외했던 관료들과 군인들은 무관심했고 한낱 망상 쯤으로 여겼다. 핵개발 위원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쓸데없는 회의로 시간만 낭비했다. 성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속도는 정권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나치 독일에 비하여 한없이 느리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핵 레이스에서 승자는 미국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미국이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단순히 천조국으로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인력과 돈, 자원을 쏟아부었기 때문일까. 다른 나라들, 특히 물리학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던 독일은 가능성이 없었던가. 실제로 같은 시간 독일에서는 베르노 하이젠바르크, 오토 한같은 저명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치를 위해서 일찌감치부터 핵개발에 매진하고 있었고 점령지에서 핵개발에 필요한 원료와 자재를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독일에게는 미국조차 가지지 못했던 비밀 무기가 있었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원형이었던 V2 로켓이었다. 나중에 미국의 아폴로 계획을 주도하는 폰 노이만 교수가 개발한 V2 로켓은 초음속의 속도로 최대 300km의 거리를 날아갈 수 있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3천발 이상 발사되어 9천여명이 죽었다. 연합군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만약 독일이 핵개발에 성공했다면 오늘날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히틀러가 핵무기를 손에 넣었다면 V2 로켓에 탑재하여 제일 먼저 런던과 모스크바로 날렸을 것이며 사거리를 더욱 늘려서 워싱턴과 뉴욕까지 목표로 삼았을게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공멸로 끝났을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최악의 가정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히틀러의 어리석음,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학 전문 출판사인 해나무 출판사에서 흥미진진한 신작 도서가 나왔다. 핵무기 개발을 놓고 미국과 나치 독일 사이에 벌어졌던,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대담했으며 결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첩보 전쟁을 다룬 <원자 스파이>이다. 어쨌든 전쟁에 이겨야 했으니 말이다. 참고로 원작 제목은 "개망나니 여단(The Bastard Brigade)"이라고. 저자 샘킨(Sam Kean)은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역사 작가치고는 보기 드물게도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라고 한다. 덕분에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우리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고 딱딱할 수 밖에 없는 과학 용어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고 있다. 역사와 과학의 중간 쯤이랄지.

미국은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돈과 함께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모아서 맨하튼 계획에 착수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큰 걱정거리는 독일이 먼저 핵개발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보기에 그것은 충분하다 못해 기정 사실처럼 보였다. 미국은 독일보다 훨씬 늦게 핵개발에 뛰어들었고 그나마도 한동안 지지부진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핵개발은 1942년 9월 펜타곤의 건설자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과 오펜하이머가 맨하튼 계획을 맡으면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가동하게 된다. 동시에 또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독일이 미국보다 얼마만큼 앞서 나가고 있는지 알아내고 어떻게 방해하여 늦추는가였다. 그 비밀 첩보 작전이 '알소스 미션(Alsos Mission)'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모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첩보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특공대가 그러하듯, 알소스 팀에도 명망 있는 과학자부터 왕년에 메이저 리그에서 잘나갔던 선수, 할리우드 배우, 심지어 불한당까지 온갖 다양한 인간 군상이 섞여 있었다. 알소스 지휘관인 보리스 패시(Boris Pash) 대령은 원래 러시아 이민 2세로 젊은 시절 적백내전에서 싸웠고 전쟁 이전에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참고로, 알소스란 맨하튼 계획의 책임자이자 이들의 상관이었던 그로브스의 이름을 그리스어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그로브스는 노발대발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나치의 핵개발을 저지하는데 일조한 알소스 팀. 뒷줄 가운데가 보리스 패시 대령. 1943년 9월에 창설된 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독일의 핵개발 정보를 파악하고 전쟁 말기에는 나치 과학자들과 핵연료를 소련군보다 한발 먼저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들조차 독일 핵개발은 막았지만 소련 핵개발은 막지 못했다. 미국 내부에서 암약한 공산주의 첩자들 때문이었다.


저자는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전설적인 포수였으며 나중에 알소스 팀의 핵심 멤버가 되는 모 버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핵무기를 먼저 손에 넣기 위한 미국의 맨하튼 클럽과 독일의 우라늄 클럽의 치열한 경쟁, 그런 독일을 저지하는 알소스 팀의 활약을 박진감 넘치면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물론 나치의 훼방꾼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나치 핵개발에 치명타를 가한 노르웨이 특수부대의 중수 공장 파괴작전, 퀴리 부인의 사위이자 세계 최초로 방사선 동위원소를 만들어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물리학자였지만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되어 직접 나치에 맞서 싸웠던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친동생 존 F. 케네디에 대한 과도한 경쟁심에 눈이 먼 나머지 전쟁 영웅이 될 기회를 얻겠답시고 비행기에 올라 독일 V3 로켓 발사포대를 제거하는 무모한 임무를 맡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조지프 케네디도 이 책에 등장한다. 그 밖에도 독일이 언제 핵개발에 성공할 지 모른다는 미국 과학자들의 강박에 가까운 공포심과 자기들이 미국보다 한 수 위일거라는 독일 과학자들의 우월의식, 그럼에도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독일 과학자들의 반응 또한 흥미로운 읽을 거리이다. 디데이에서도 연합군 지도부는 히틀러가 방사능 무기로 프랑스 해안가를 오염시켜 수십만명의 병사들을 몰살시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만약 그런 무기가 있다면 동부전선에서 먼저 써먹었을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강박증이 맨하튼 계획을 성공시킨 최대 비결인 셈이다.

<원자 스파이> 이야기는 '저열하고 부정직한 10년인' 1930년대에 일어난 핵분열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전쟁이 끝난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서사시적 추적 임무로 이어진다. 연합국 측은 프랑스와 독일로 진격하기 전에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를 점령하느라 이미 수백만명을 희생했다. 하지만 그들은 히틀로가 고작 우라늄 몇 킬로그램만으로 디데이 작전 전체를 수포로 만들고 연합국을 유럽 대륙에서 영원히 축출하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 - p.23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나치는 1939년에 과학자들에게 병역면제를 거의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소수의 화학자와 물리학자에게는 예외를 인정했다. 왜 그랬을까? 디프너가 상관들에게 야심찬 계획에 도박을 걸어보라고 설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계획은 바로 핵분열 폭탄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우란페라인' 즉 우라늄 클럽이라고 불렀다. - p.136

전쟁 초기에 영국과 미국은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했지만, 보안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그로브스는 건전한 이유와 옹졸한 이유에서 정보 교환을 중단시켰다. 기묘하게도 그로브스의 아버지는 1856년에 태어났음에도 왕정 시대에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배신한 행위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고 아들도 영국에 대한 아버지의 증오심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로브스는 이제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미국은 영국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혼자서 원폭을 만들 수 있었다. - p.338

지질학자들은 아이젠하워와 참모들을 설득하여 그들이 선호한 디데이 상륙 장소 대신에 동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오마하비치를 선택하게 했다. 그곳 토양의 접지력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연합군은 첫날에 重차량을 8851대나 상륙시킬 수 있었고 처음 7주 동안 15만 대 이상을 상륙시켰다. 게다가 디데이에 최소한 한명의 지질학자가 현장의 전문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군대와 함께 상륙했다. 물론 노르망디에 상륙한 군인들에게 가장 큰 공을 돌려야 마땅하지만 어디로 상륙해야 할 지 알려준 지질학자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391

마르세유의 우라늄염 27톤은 보스턴으로 운송되었다가 결국에는 오크리지로 보내졌다. 그 속에 포함된 우라늄-235는 훗날 히로시마를 파괴할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쓰였다. 벨기에에서 회수한 61톤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유럽에서 회수한 우라늄염은 도합 90톤이었다. 하지만 벨기에 기록에 따르면 우라늄은 900톤이 있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그것이 남아 있는 한 연합국은 아침에 눈을 떴다가 버섯구름을 목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 p.464

바이츠제커는 문서를 드럼통 속에 넣고 밀봉한 뒤 어느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을 곳에 묻었는데 몇 년 동안 배설물이 쌓인 변소 바닥이었다. 가우드스밋은 군인 두 명을 보내 그것을 건져 올리게 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주 중요한 입글 기밀 임무"라고만 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명예로운 임무에 선발된 것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곳이 분뇨 구덩이라는 사실을 안 그들은 몹시 화가 났고 가우드스밋에게 그 고통을 되갚아 주었다. 오물로 뒤덮은 드럼통을 가우드스밋의 방 창문 아래에 갇다둔 것이다. 호스로 물을 뿌려 드럼통을 씻어낸 뒤 뚜껑을 연 가우드스밋은 독일의 원자폭탄 계획에 관한 전체 문서를 발견했다. "알소스가 잭팟을 터뜨렸습니다." - p.522

몇 달 전 독일의 원자폭탄 계획이 한참 뒤쳐져 있었다는 사실을 안 뒤, 가우드스밋은 그로브스의 한 부관에게 "독일이 우너자폭탄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아주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원자폭탄도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부관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샘, 우리에게 그런 무기가 있다면 우린 그걸 사용할거요." 그 예언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 원자폭탄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즉, 핵무기를 보유한 독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무기였다. 하지만 독일의 위협이 사라지자 방어 무기라는 개념도 사라졌다. 불가피하게 원자폭탄은 다른 성격의 무기 -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무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임을 그는 직감했다. - p.552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미국이 독일의 핵개발을 그토록 두려워 하고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면 반대로 독일은 미국의 핵개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으며 이를 방해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던가. 이 책이나 다른 책을 보더라도 히틀러는 맨하튼 계획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이 제아무리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고 한들 연 인원이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어떻게 그토록 무관심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일본조차 전쟁 말기에 오면 미국의 핵개발이 임박했음을 어느정도나마 깨닫고 있었는데 말이다. 미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히틀러의 오만함, 나치 특유의 극도로 경직된 관료주의, 미국인에 대한 막연한 인종적 편견이 히틀러와 독일 과학자들의 눈과 귀를 가렸는지 모르겠다.

600여 페이지 가까운 분량임에도 저자 특유의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필력과 스릴 넘치는 전개 덕분에 도저히 손을 뗄 수 없어서 주말 동안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런 책일수록 내용도 내용이지만 번역자의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 용어가 난무함에도 흠 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서울대 출신의 과학 전문 번역가라고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을 앞두고 시중에서는 오펜하이머 평전을 비롯하여 맨하튼 프로젝트와 히로시마 원폭을 다룬 책들이 줄줄이 나오더라.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결말이 정해진데다 핵폭발 빼고는 그다지 임팩트나 액션신이 있는 것도 아닌 이 영화가 그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소재일까 했는데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할리우드 빠와! 영화가 맨하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자 스스로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자조했던 오펜하이머의 인간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이 책은 스케일이 한 단계 더 크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처럼 한편의 액션 영화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에 읽어보라. 재미가 2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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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와 배신자 -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중 스파이,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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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레드 히트>라는 고전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이 무려 아놀드 슈왈제너거. 러시아 마피아 두목이 미국에 마약을 팔자 그를 잡기 위해서 모스크바 경찰국에서 파견된 소련 경찰이 미국 시카고 수사관과 공조 수사를 벌이는 액션 코미디 영화이다. 물론 소련 경찰을 맡은 쪽은 당시 터미네이터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젊은 시절의 아놀드. 이 영화에서 그는 두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고릴라같은 거구에 근육질 몸매, 두꺼운 사각턱, 임무를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살인머신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수룩하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시골 촌놈같은 느낌이다. 그 시절 서방 사람들이 생각하던 러시아인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아놀드의 파트너를 맡은 미국 경찰관은 반대로 위트 가득한 전형적인 남부 카우보이 스타일이다. 물과 기름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은 처음에는 상대를 탐탁찮게 여기면서도 공동의 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신뢰와 우정을 쌓아간다는 내용이다. B급 액션물이라고 하지만 꽤 재미있게 본 영화이다.

젊은 시절 우리 주지사님. 진짜 KGB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듯. 소련인 터미네이터 경찰과 그와는 정반대로 능청스러운 미국인 경찰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콤비는 자본주의 미국과 공산주의 소련을 대표하는 것이자 그 시절 두 체제의 화해를 향한 기대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나온 것은 냉전 끄트머리였던 1988년으로 아직까지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따라 소련이 조금씩 문호를 열기는 했지만 그곳은 서방 사람들에게는 같은 지구이면서 여전히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함부로 나올 수도 없는 미지의 공간인 '철의 장막' 속 세계였다. 철저한 억압과 통제,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무조건적인 헌신의 강요, 전체는 하나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개인을 말살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소련 체제는 국가 차원의 거대한 교도소이자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 세상의 현실판이었다. 생각만 해도 숨막히는 그런 공간에서 그 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견뎠나 싶지만 한편으로 그럼에도 어찌어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이기도 하다. 자유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 독재와 가난, 범죄가 판을 치는 콜롬비아, 소말리아조차 사람 사는 동네이니 말이다.

하긴 우리만 하더라도 현실의 부조리함 속에서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했던 서슬 퍼런 시절이 불과 30~40년 전에 있지 않았던가. 원래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인지라 대부분은 어지간히 부당한 꼴을 당하더라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쪽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현실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우는 사람 또한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부조리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 아닐까. 그것은 그저 얻어낸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련 역시 그렇게 무너졌다. 정작 그 수혜는 대중이 아니라 푸틴이라는 탐욕스러운 독재자 한 놈이 독차지하여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렸지만 말이다.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열린 책들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 나왔다. 악명높은 소련 KGB의 고위 간부로서 부와 권력, 명예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했던 한 스파이의 파란만장하면서 영화보다 더 스릴 넘치는 실화를 다룬 내용이다. 주인공은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자 KGB 런던지부장이었던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대령.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재작년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첩보 영화 <더 스파이>에 나오는 소련 총참모부 산하 GRU(정찰총국) 소속 올레크 펜코브스키 대령과 더불어 냉전 시절 가장 유명한 소련 이중 첩자 중 한 사람이자 서방에 소련 체제의 약점을 알림으로서 냉전이 서방의 승리와 소련 붕괴로 이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KGB 시절의 고르디옙스키 대령. 매서운 눈빛과 탄탄한 체격은 영화 <레드 히트>에 나오는 주지사님 못지 않게 강렬한 포스 작렬이다. 아직도 살아 있다.


미-소 군대가 직접 맞붙지 않았다는 이유로 냉전(Cold war)라고 하지만, 음지에서는 양측 스파이들간의 총성 없는 열전(Hot war)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영화 <007>이나 <킹스맨>, <미션 임파셔블>처럼 화려한 액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현실 세계에서 스파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악으로부터 은밀하게 세상을 지키는 영웅 노릇을 하지 않는다. 과연 그런 일을 하는 조직이 실제로 있는지 모르겠다. 이들의 임무는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정보를 캐는 일이다. 때때로 영화 <뮌헨>에 나오는 이스라엘 모사드나 최근 푸틴이 자신의 반대파에게 방사능 홍차를 보내는 것처럼 누군가를 납치, 고문, 암살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직의 배신자들을 응징할 때에만 해당한다. 만약 상대 정치인이나 고위 장성, 기업가같은 거물을 함부로 노렸다가 들통나면 엄청난 보복은 물론이고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첩보 조직에 있어서 최대의 승리는 상대측 첩보 조직 내부에 트로이 목마, 즉 이중 첩자를 심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가만히 앉아서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셈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냉전 시절 첩보 전쟁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매번 몸을 아끼지 않는 활약을 보여주는 톰 형. 영화에 나오는 IMF(미션 임파셔블 포스)는 설정상 CIA 산하 첩보 조직이지만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슈퍼 빌런 때려잡는 대테러 비밀부대이자 먼치킨 히어로 조직이랄지.


<레드 히트>의 아놀드 못지 않은 탄탄한 근육질의 몸짱이면서 <미션 임파셔블>의 에단 호크만큼이나 명석한 기억력과 몇 개 국어에 능통한 이 책의 주인공 올레크 고르디옙스키는 대학 졸업과 함께 형의 추천을 받아 KGB 해외 지부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아버지는 스탈린 시절 NKVD(KGB의 전신)에서 고문과 처형을 맡았던 공안이었고 형과 아내 역시 KGB 요원이었다. 심지어 장인은 KGB 장군, 장모도 KGB 출신이었다. 뼛속까지 KGB이자 KGB가 수호하는 체제의 특권층으로서 수혜를 누리면서도 그 체제의 모순과 함께 특권이 사막의 신기루마냥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 또한 가장 잘 알고 있는 셈이었다.

올레크는 아버지의 태도에서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을 느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스탈린 정권의 억압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을 때 올레크는 이제 퇴직할 나이가 가까워진 아버지가 당시 KGB가 저지른 모든 범죄와 만행이 부끄러워 KGB의 일에 대해 아들과 이야기하기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면 안톤 고르디옙스키는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아들에게 그런 세계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해 주지도 못하는 이중적인 삶을 유지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p.37

배경 좋고 혈기왕성한 엘리트 청년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 역시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야심만만하면서 출세욕과 모험심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이상과 장래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지만 장미빛 환상은 오래지 않아 깨졌다. 그에게 소비에트 체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세계였고 KGB는 위선과 가식 덩어리였다. 반면, 서방은 소련보다 훨씬 부유하면서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유로웠다. 소련이나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이 서방의 물결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문고리를 꽁꽁 걸어잠구고 국민들이 혹시라도 딴 생각을 할까 편집광적인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체제 선전에 열을 올리는 것 또한 그런 현실에서 나온 열등감의 표출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공산주의 체제가 단숨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는 쪽은 올레크처럼 소련의 바깥 세계가 어떤지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체감한 젊은이들이었다. 현실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 달랐다.

그가 1970년 1월에 돌아간 소련은 3년 전 그가 떠날 때보다도 훨씬 더 억압적이고 편집증적이며 음침했다. 브레즈네프 시대의 정통 공산주의 통치가 모든 색채과 상상력을 빨아내고 있는 것같았다. 올레크는 고국의 모습에 진저리를 쳤다. <모든 것이 얼마나 추레해 보였는지> 줄을 선 사람들, 더러운 건물들, 숨이 막힐 것같은 관료주의, 공포, 부정부패가 얼마 전 그가 떠나온 덴마크의 밝고 풍요로운 세상과 우울한 대조를 이뤘다. 어디서나 선전을 볼 수 있고 관리들은 비굴하거나 무례했으며 모든 국민이 다른 사람들을 염탐했다. 누구도 웃지 않았다. - p.65

KGB에 들어온 지 13년 째인 1973년 덴마크로 부임한 올레크는 영국 해외첩보부인 MI6와 처음 접촉했고 이중 스파이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그것은 스릴 넘치는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는 것은 물론이고 배신자로 체포되어 잔혹하게 처형될 수 있었다. 이중 스파이는 어디에나 있었고 올레크처럼 KGB 내에서 소련을 배신하고 서방을 위해 일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서방측 첩보 조직 내에서도 서방을 배신하고 소련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있었다. 한발짝만 잘 못 내딛거나 운이 없으면 정체가 발각되어 파멸이었다. 어지간히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 그런 선택을 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중요한 기밀을 MI6에 넘겼다. 그 중에는 KGB에 매수되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련을 위하여 일하는 영국의 저명한 인사들에 대한 명단도 있었고 소련 체제와 지도부의 사고 방식이 서방의 막연한 편견과 어떻게 다른지, 그들이 얼마나 편집광적으로 서방의 침공을 두려워 하고 있는지 알게 해 주는 것도 있었다. 냉전은 서로에 대한 어이없는 오해와 의심이 초래한 것이기도 했다.

첩자 풋은 저명한 작가 겸 웅변가, 베테랑 좌파 의원, 영국 노동당 지도자이며 만약 다음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한다면 영국의 총리가 될 마이클 풋이었다. 이 나라 영국에서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야당 지도자가 KGB에 매수된 첩자였다는 뜻이었다. 마이클 풋은 정치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20년 동안 영국 노동당 좌파에서 우뚝 솟은 인물이었다. 1974년에는 처음 각료로 임명되어 헤럴드 윌슨 내각의 고용부 장관이 되었다. 1984년 5월로 예정된 차기 총선에서 마이클 풋이 승리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 P.186

KGB 요원들은 <핵 관련 핵심 결정권자>를 면밀히 감시해야 했는데 어이없게도 이 결정권자 중에는 교회 지도자와 최고위 은행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밤에 핵심 관청 건물에 불이 몇 개나 켜져 있는지 세어 보라는 지시도 있었다. 관리들이 공격을 준비한다면 밤새 불이 꺼지지 않을 터였다. 정부 주차장에 주차된 자동차 대수도 헤아려야 했다. 펜타곤에 주차된 차들이 갑자기 늘어난다면 미국이 공격을 준비한다는 신호일 수 있었다. 병원도 감시 대상이었다. 적이 선제 공격에 대한 상대의 보복을 예상하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도살장도 비슷한 수준의 감시 대상이었다. 도살되는 가축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서방이 아마겟돈에 앞서서 햄버거를 비축하고 있다는 징후일 수 있었다. <구입하는 혈액의 양이 증가하고 가격이 올라간다면 전쟁에 대한 대비가 시작되고 있다는 중요한 징후일 수 있었다.> 크렘린은 자본주의가 서구인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스며들었을 테니 <혈액은행>이 정말로 혈액을 사고 파는 은행이라고 믿었다. KGB 지부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이 기초적인 오해조차 바로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위계질서가 강하고 비겁한 조직에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일보다 더 위험한 것은 상사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일이었다. - p.229

미국의 대외 정책 분석가들은 소련이 선전을 위해서 일부러 과장된 표현을 쓰는 것이며, 그들의 경고성 표현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허세 대결의 하나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의 생각과 달리 미국이 핵전쟁을 시작할 계획을 짜고 있다는 소련 최고 지도자 안드로포프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소련에서 온 스파이 덕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크렘린의 걱정이 비록 무지와 의심증에서 싹튼 것이라고 해도 진심이라는 사실을 미국에도 알려 줘야 할 것 같았다. - p.233

KGB는 1983년 선거에서 대처가 반드시 패배하게 하려고 열심히 움직였다. 좌파 성향의 언론인들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공급해 주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였다. 소련은 더러운 술수와 비밀스러운 훼방을 이용하여 민주적인 선거를 휘젖고 자신들이 선택한 후보에게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 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노동당이 선거에서 이겼다면, 고르디옙스키의 처지는 참으로 기상천외하게 변했을 것이다. KGB의 현금을 기꺼이 받던 자가 총리로 앉아 있는 정부에 KGB의 기밀을 넘기는 꼴이 되었을테니까. - p.277

올레크는 10여년 동안 MI6를 위해서 일했고 그가 넘긴 정보는 서방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쿠바 미사일 사건을 해결하는데 일조한 올레크 펜코브스키 대령만큼이나 인류를 위해 기여한 셈이었다. 그는 KGB 런던 지부장까지 올라가면서 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지만 어이없는 일로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처했다. 그것은 KGB가 이중 스파이를 찾아냈다거나 MI6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CIA가 내부를 단속하는데에는 게을리한 탓이었다. 올레크는 CIA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지만 MI6가 엄청난 정보를 연일 물어오자 CIA는 대번에 질투심을 드러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레크의 정체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MI6에게 뒤질 수 없다는 자존심에 눈이 멀어서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정보를 알아내겠답시고 힘을 빼면서도 정작 등잔밑이 어둡다고 자기 발밑은 무관심했던 것이 세계 최고의 첩보 조직을 자처하는 CIA였다.

CIA 간부였던 올드리치 에임스는 무능하고 게으르면서 조직에서는 고립되어 있었다. 게다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고 돈을 물쓰듯 낭비하는 애인 때문에 언제나 돈에 찌들렸다. 배신자를 조심해야 하는 첩보 조직에서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인물이었다. 그는 스탈린의 가명인 '코바'를 자처하면서 제 발로 KGB의 문을 두들겼고 돈 몇푼에 자신의 영혼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는 쪽을 선택했다. 에임스는 CIA가 확보한 소련과 서방의 이중 스파이 명단을 넘겼고 KGB는 즉각 배신자 색출에 나섰다.

1985년 6월 13일 올드리치 에임스는 첩보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축에 속하는 반역 행위를 저질렀다. 무려 스물 다섯명이나 되는 서방 정보기관 첩자들의 이름을 소련에 알려준 것이었다. KGB에서 처음 돈을 받은 뒤 한달 동안 에임스는 잔인할 정도로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소련 정보기관 내에서 활약하는 CIA의 수많은 첩자 중에서 누가 그의 꿍꿍이를 알게 되면 그의 정체를 폭로할 거라는 결론이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밀고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첩자의 신원을 KGB에 한발 먼저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소련이 그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처형할 것이었다. 에임스는 자신이 이름을 알려준 모든 사람들에게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렸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안전해지고 부자가 되는 길은 그것 뿐이었다. "만약 그들 중 한명이라도 내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나는 CIA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힐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그냥 그 바닥이 원래 그런 곳이었다." - p.377

당장 올레크의 정체가 들통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시간 문제였다. KGB는 런던 지부의 고위급 중에서 배신자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결론 내렸고 올레크를 모스크바로 소환했다. 올레크는 탈출을 결심했고 대처 여사는 MI6에 영국을 위해 목숨을 건 소련인의 구출을 명령한다. 이 점이 단물 쓴물 다 빼먹고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면 토사구팽하는 소련 KGB와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3부에서는 그의 탈출 작전이 시작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리 얘기하면 마치 영화의 스포가 될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스릴 넘치고 흥미진진하다.

냉전 막바지인 1987년 레이건을 만난 올레크 고르디옙스키(오른쪽). 고르디옙스키는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이 소련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조언했고 레이건은 그의 말을 충실하게 실천했다. 레이건은 그에게 "우리는 당신이 한 일에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결론만 얘기한다면 올레크는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여 영국으로 망명한다. 그는 서방의 영웅이 되었고 대처는 물론이고, 레이건조차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면서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세상을 구한 대가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소련에 남은 가족들은 KGB의 집요한 심문에 시달려야 했고 모든 친구와 동료들을 잃었다. 대처는 가족들의 송환을 위해서 고르바초프에게 거래를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 고르바초프에게 올레크는 위험을 무릅쓰고 두 세계에 다리를 놓아준 영웅이기보다 그저 조국에 창피를 준 인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올레크는 소련이 무너지기 직전에야 비로소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한 때 남편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아내는 재회의 기쁨 대신 남편이 자신과 가족을 버렸다면서 분노했고 결국 이혼했다.

게다가 소련의 붕괴는 러시아의 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무능한 개혁가였던 옐친의 뒤를 이은 쪽은 전직 KGB 출신인 푸틴이었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내건 푸틴은 더 이상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공산주의자들의 방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비판하거나 국가를 배신한 자라면 어디에 있건 KGB의 오랜 방식에 따라 사정 없이 응징한다. 85살이 된 올레크는 여전히 러시아의 배신자로서 조국에 발을 디딜 수 없고 혹시 모를 러시아의 암살 위협 때문에 MI6의 엄중한 보호를 받으며 은신처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소련을 배신한 올레크와 서방을 배신한 올드리치 에임스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소련을 배신한 것은 선이고 서방을 배신한 것은 악인가, 어차피 조국을 배신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라고.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대로 두 사람은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에임스는 전적으로 사리사욕을 위해서 나라와 동료들을 적에게 팔아먹었지만, 올레크는 소련 체제의 모순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행동했으며 그에 따른 불이익을 마땅히 감내했다. 이 책에서는 두 사람 말고도 두 진영에서 다양한 배신자들이 등장한다. 소련의 배신자들이 죄다 올레크처럼 신념에 따라서 행동한 것도 아니며 탐욕을 이기지 못하거나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서 서방으로의 망명을 선택한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느 쪽이건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설령 배신이 들키더라도 서방에서는 적어도 정당한 재판을 받고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룰 수 있었다. 소련처럼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뒷통수에 총알이 박힐 위험은 없었다. 반면, 소련에서는 설사 잘못이 없어도 단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이것은 서방의 악선전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서방이 절대선은 아니라도 최소한 소련보다는 선이었고 소련은 절대악에 가까웠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쪽은 산전수전을 겪었고 양쪽 체제를 모두 경험해 본 자들이었다. 그 시절 막연한 이상주의에 빠져서 세상 물정 모르는 대학가의 햇병아리들이나 공산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보다 더 나은 세상일거라고 믿었을 뿐이었다.

에임스는 돈을 위해 첩자가 되었고 고르디옙스키는 이념적인 신념에 따라 움직였다. 에임스의 희생자들은 KGB의 손에 대부분 목숨을 잃었지만 고르디옙스키가 폭로한 베터니나 트레홀트같은 사람들은 감시 끝에 채포되어 정당한 재판을 받고 복역한 뒤 석방되어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르디옙시키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지만 에임스는 더 큰 차를 원했다. 그는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잔혹한 전체주의 정권, 단 한번도 직접 가서 살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고르디옙스키는 민주주의 체제를 맛본 뒤 그런 생활 방식과 문화를 보호하고 지지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며 결국 개인적인 희생을 치르고 서방에 정착했다. 고르디옙스키는 선을 좇았고 에임스는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했다. - p.535

600여 페이지의 만만찮은 분량임에도 읽는 내내 뒤가 궁금하여 손을 뗄 수 없어 무려 이틀 만에 완독했다. 마침 휴가철에 책을 받아서 다행이랄까. 저자의 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영화로 만든다면 <더 스파이>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같다. 애플TV에서 방영한 <스파이들의 전쟁> 4화가 이 양반을 다룬 내용이라고 하는데 다큐멘타리인지라. 어차피 나는 애플TV를 구독하지 않으니까 볼 방법도 없지만 말이다.


빌 게이츠가 추천했다고 하는데, 내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감히 최고라고 꼽는다. 일독을 강력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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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08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독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스파이와 배신자 -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중 스파이,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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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글로도 영화 <미션 임파서벌>처럼 독자에게 긴박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내가 읽은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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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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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주말이 되면 TV에서 때때로 고전 전쟁 영화를 틀어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조지 패튼과 미 제3군의 활약상을 다룬 <패튼 대전차군단>이라던가, 몽고메리의 흑역사인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머나먼 다리>라던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진주만 기습을 다룬 <도라도라도라>라던가 그 시절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란 주로 위대한 장군을 주인공으로 역사상 유명한 작전을 재현하는 것이 대세였다. CG가 없던 시절이니 지금 보면 조잡한 면이 없지 않지만 스크린을 압도하는 대규모 전투는 요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스케일이었다. 1970년작 <워털루>에서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라인배틀이나 기병 돌격은 지금 봐도 압권이다.

나폴레옹의 화려한 귀환과 백일천하를 다룬 영화 <워털루> 냉전 시절임에도 소련과 서방 합작 영화인데 CG가 없던 시절이라 요즘처럼 복붙복이 불가능하다보니 엑스트라만 1만5천명이 동원되었다고. 전반부는 지루하지만 후반부 전투신은 그야말로 스펙타클하다.

예전의 전쟁 영화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장군들의 이야기였다면 요즘은 그동안 소모품으로만 취급을 받았던 무명 병사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주제 또한 획일화된 영웅주의와 액션 위주에서 벗어나 좀 더 무거워지고 인간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제101공수사단 소속 라이언이라는 졸병을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투입된 대원들의 희생정신을 보여준다면,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영화 <1917>은 화려한 영상미와 별개로 전쟁의 비참함을 강조한다. 작년에 리메이크된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장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병사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에 내몰려 집단 학살당하는 모습을 신랄하게 재현한다. <아메리카 스나이퍼>나 <허트 로커>는 참혹한 전장터에서 자기도 모르게 살인과 파괴에 중독되어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병사의 PTSD(외상후 장애)를 다루는 반면, <자헤드>는 반대로 걸프전을 앞두고 혹독한 훈련을 실컷 받고 전쟁터에 투입되기만 기다리다가 총 한발 쏘아보지도 못하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실망하여 목적 의식을 상실한 해병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을 다룬 <아메리카 스나이퍼> 하지만 영화는 조국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영웅으로 포장하기보다 내면의 갈등과 PTSD에 시달리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전쟁이 배경이라고 해서 언제나 군인들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나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의 탄압을 받는 유태인들의 이야기이다. 아역 시절 크리스찬 베일을 유명하게 만든 <태양의 제국>은 태평양전쟁 당시 천진난만한 어린 소년이 겪어야 했던 포로 수용소의 생활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내전을 직접 경험했던 한 의사의 눈을 통해서 크메르 루즈의 잔인무도한 만행을 고발한다. 수용소에서 탈출하는 주인공이 무수한 해골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물론 전쟁 영화가 진짜 전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각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을 말해준다. 정치인과 장군, 무명의 병사와 민간인이 경험한 서로 다른 전쟁, 과연 어느 것이 전쟁의 진짜 모습일까. 정답은 전부 다 일 것이다. 똑같은 전쟁도 누군가에게는 출세와 명예의 기회이고 누군가에게는 희생을, 또 누군가에게는 지옥이자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코르시카의 가난한 하급 귀족 출신인 나폴레옹은 전쟁이 아니었다면 변변찮은 인생을 보냈을 인물이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야망을 위해서 수십만명의 시체를 쌓아 올렸지만 우리는 이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대신 군신이라며 숭배한다. 나폴레옹이 후세인이나 푸틴과 다른 점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와서 여느 병사들처럼 적의 총탄과 포화를 뒤집어 쓰고 무수한 죽음을 경험해 봤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PTSD를 얻는 대신 더 큰 영광을 찾겠다면서 끊임없이 싸움터를 쫓아다녔다. 나폴레옹이라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았거나 우리와 다른 고차원적인 존재라서는 아닐 것이다. 정복자로서의 쾌감과 막대한 보상이 죽음의 공포심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중독이 아닐까.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사람들은 목숨을 건 게임을 벌인다. 이들은 실패하면 죽는다는 공포에 떨면서도 게임을 통과하기만 하면 엄청난 보상이 기다린다는 사실에 이성을 잃는다. 정복자들이 패배하면 끝장인줄 알면서 굳이 전쟁에 매달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인간에게는 폭력적인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성욕이나 식욕, 수면욕처럼 정기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을 혐오하고 금기시한다. 인간이 전쟁을 하는 이유가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한 생각이다. 전쟁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에 쏟아붓는 자원과 전쟁으로 인한 파괴를 생각한다면 전쟁을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지간히 국력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싸움에서 패배하면 말할 것도 없고 어렵게 이기더라도 만신창이가 된 채 상처투성이로 끝나기 쉽상이다. 어느 누구도 순순히 자기 것을 내놓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당장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더라도 어느 쪽에게도 손익이 맞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빼앗으려고 노력을 쏟아붓느니, 차라리 다른 쪽에 쓰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면서 전쟁에 매달리고 평화로울 때조차 스스로 미지의 공포를 만들어 막대한 자원을 군비에 쏟아붓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열린 책들에서 묵직한 책이 나왔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부터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57명의 세계적 석학이 말하는 근현대 전쟁의 모든 것이다. 그 중에는 제2차 대전 권위자이자 국내에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으로 알려진 리처드 오버리 교수도 있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르 푸엥에서 2018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근세 이전과 19세기 이후 근현대전쟁이 다른 점은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군대의 격차 또한 엄청나게 벌어졌고 싸움의 방식 또한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16세기 비잔틴 제국의 군대는 2천년 전 로마 군대와 비교하여 원시적인 화기를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북전쟁 시절의 군인들은 불과 150년 후 이라크 전쟁에서 등장하는 미군의 무기를 감히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현대전이 근세 이전의 전쟁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훨씬 파괴적이고 그 전쟁에 어떤 식으로 휘말렸던 사람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점, 그리고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다. 과거의 전쟁이 지금보다 덜 야만적이거나 잔혹함이 부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시대 사람들 입장에서는 평화와 전란이 크게 구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란은 대단히 빈번했고 평화로울 때에도 도적이나 짐승의 습격, 흉작, 전염병, 관리들의 수탈로 삶은 가혹하면서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군인들 역시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 죽는 것보다 행군 도중에 병이나 부상으로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들에게 목숨을 건 투쟁과 죽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에 전쟁의 기록은 정치인과 장군들, 역사가같은 높은 교육을 받은 소수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이었고 카이사르나 알렉산더 대왕, 한니발같은 위대한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아 장대한 서사극으로 묘사하는 것이 그 시절 전쟁사였다. 그 이야기에 PTSD라던가, 집단 학살이나 강간, 상이 군인같은 불편한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미군의 조사에 따르면 모든 병사의 99%가 첫 전투에서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그렇지 않은 1%가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 우리가 성웅으로 떠받드는 이순신 장군이나 휘하의 병사들 역시 같은 인간인 이상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명량>이나 <한산도>같은 미디어, 후대의 역사서에서는 이순신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는가에만 포커스를 맞출 뿐, 병사들의 심리적 고통이나 트라우마 따위는 관심 없다. 애초에 그에 대한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전쟁은 더 이상 정치인, 장군들을 위한 기록이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줄 알기 때문이다. 병사들, 언론인, 일반 시민들, 심지어 여자와 아이들도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전쟁을 기록한다. 14세 유태인 소녀가 쓴 <안네의 일기>는 한 소녀가 겪은 나치 치하에서의 도피 생활과 유태인 수용소 생활을 묘사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록이 다양해지면서 전쟁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현대전은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한 서사극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통과 파괴를 낳는 비극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 역사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은 전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파헤친다.

주제도 결론도 천차만별이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그 과정, 전근대와 근대전쟁의 차이, 전략과 전술의 발전, 징병제도의 종말과 현대에 부활한 용병들의 모습, 기술적 우위가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지 못하는 이유, 드론으로 대표되는 무인전쟁, 아프리카의 소년병, 학살과 강간, 종전 이후의 복구, 전쟁이 초래한 정신적 외상, 전쟁 범죄와 재판, 반전 운동에 이르기까지 제목 그대로 전쟁의 모든 것을 담는다. 언급되는 전쟁 또한 18세기 미국 독립전쟁부터 나폴레옹전쟁, 라틴아메리카 해방전쟁, 남북전쟁, 보불전쟁, 양차 대전, 국공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과 비교적 최근의 아프간, 이라크전쟁까지 장장 두 세기에 걸친 전쟁의 역사를 두루 다루고 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다보면 똑같은 전쟁이라도 어떻게 바라볼지는 사람마다, 사회마다, 또는 시대마다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럽에서 직업 군인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산업화가 전쟁터에 미친 영향이었다. 후장식 소총과 기관총, 속사포가 도입되면서 빠르고 결정적인 승리를 끌어내기가 더욱 불확실해졌다. 대량 생산으로 대규모 군대에 장비를 보급하게 되면서 대중 무장을 실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 p.63(2장. 전투의 종말 : 전략가와 전략들)

급진주의자들은 병역을 하나의 민주적인 절차로 보았다. 연령별로 젊은 남성 대다수가 병역을 수행하게 함으로서 그들의 마음에 프랑스 공화국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을 심어주고 성인과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의 수가 많아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면 군대가 유용하지 않다는 주장이 군대 내부에서 나왔다. 이 방식은 세금이 많이 들었고 장교들은 신병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한마디로 비효율적인 징병 형태였다.

- p.92(1부 3장. 시민-군인의 시대)

대칭적인 전쟁에서 질적인 기술 우위는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 중에 서방 국가들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사력에 대하여 누린 기술적 우위 덕분에 연합군은 빠르게 승리했다. 미군의 공군력은 막강했다. 군사 혁명으로 미국의 군사 기술 그리고 공습의 정확도와 파괴력을 높이는 위성 항법 유도 장치와 레이저 기술이 결합되었다. 하지만 2003년에 미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비대칭 전쟁을 벌였을 때 똑같은 기술은 그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 p.150(1부 7장. 전략 없이는 기술은 소용없다)

영국의 식민 지배는 자유주의와 지배권, 식민주의가 결합된 형태라는 점에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구분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세 요소의 결합으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개발된 무기와 전술을 제국 각지에서 활용했고 공문서를 파기하고 퇴역 군인과 식민 지배 계급의 회고록과 인터뷰를 검열하는 치밀하게 조직된 정책을 시행했다. 제국주의 영국의 새로운 계획은 영토를 병합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몽주의와 그 보편적 원칙을 토대로 수립되었다. - p.240(1부 13장. 대영 제국주의의 신화)

미군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했을 때 작전 명령서는 뉴욕의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꺼웠다. 반면에 독일 국방군이 프랑스를 공격했을 때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의 참모장이었던 쿠르트 차이츨러 장군은 소령들과 그들 휘하의 장교들에게 단순히 연대가 독일과 벨기에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명령을 하달하는데 그쳤다. 군사 작전의 성공은 이들 소령과 하급 장교들에 달려 있었다. - p.362(2부 2장. 군 복무 경력)

극단적인 조건에서 억압과 단속의 과격함, 그리고 최고형인 사형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은 병사들이 포화에서 버티게 한 하나의 요인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수십만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진 군대들이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억압하고 단속하는 것만으로 병사들의 거부나 반항, 패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프랑스 군대에서 700여명 이상의 군인이 총살당했음에도 1917년 봄에 군대는 반란을 일으켰다. - p.518(2부 11장. 버틸 힘)

<보이지 않는 부상>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것은 정신에 가해지는 침해이다. 러일 전쟁, 뒤이어 1911년에 이탈리아가 리비아에서 벌인 식민지 전쟁에서 군대 정신과 의사들이 식별해 낸 <정신적 부상>은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질병 분류학의 주요한 챕터를 차지한다. 전쟁 신경증에 걸린 신경증 환자가 안면 부상병이나 독가스에 중독된 사람처럼 전쟁 부상자 목록에 오른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 p.603(3부 3장. 부상과 부상자)

국가 간 전쟁, 혁명, 반혁명, 내전. 1914~1945년에 벌어진 분쟁들은 그 폭력성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여성과 어린이, 노인을 비롯한 수백만명의 비 전투원이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전쟁과 구분되었다. 동원 규모나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규모 동원은 전쟁 선전이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다. - p.711(3부 11장. 1914~1915년 온 사회가 동원되다)

아부그라이브의 사진들은 여성 군인도 수감자들을 벌거벗기고 두렵게 만들고 고문하고 강간할 수 있으며 남자도 성폭력을 비롯한 이런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였다. 이 여성 군인들은 만지는 행위나 자극적인 자세, 외설적인 몸짓을 동원하고 자신의 생리혈을 불순한 무기로 사용하는 등 매우 폭넓은 제스쳐를 사용한다. 이들은 남성들을 고문하고 폭행한다.

- p.809(3부 17장. 강간, 전쟁의 무기)

1945년 5월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느 나라가 독일의 패배에 가장 크게 기여했는지 물었을 때 조사 대상의 57%가 소련이라고 대답했고 20%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2004년에 프랑스에서 비슷한 여론 조사를 했을 때에는 정확히 반대 결과가 나왔다. 58%가 미국이 연합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대답했다. 오직 20%만 소련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 p.920(4부 4장. 스탈린그라드의 불꽃이 꺼졌다.)

PTSD가 만들어진 이후로 거둔 성공은 이 병명이 전 세계적으로 정신 의학계와 일상에서 사용된다는 사실로 가늠할 수 있다. 서방국가들에서 이 진단명은 걸프전쟁 이후,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군사 개입과 함께 2000년대에 와서 주목을 받는다. 러시아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PTSD를 러시아어로 옮긴 포스트트라브마티체스키 스트레스가 거론되었다. 뒤이어 1990년대에 두 차례 벌어진 체첸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겪는 <체첸 증후군>이 등장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른바 정당하고 무적이라는 명성을 얻은 군대 때문에 오랫동안 이러한 정신의 <나약함>이 무시되었다. - P.978(4부 8장. 신경과 신경증)

현실의 전쟁은 단순히 장군이 전략을 수립하고 병사들이 총을 쏘고 대포를 발사하고 전투기가 적진에 폭탄을 떨어뜨려서 적병을 죽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이나 전쟁 영화, 시뮬레이션 게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좋은 이러한 드라마틱한 부분에만 집중하지만 그 이면은 훨씬 복잡하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행진하는 군인들을 향해 열광하는 시민들과 소위 애국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전후방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동원되는 대중, 적군을 피하여 달아나는 난민의 물결,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강간과 약탈, 그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 내전은 더욱 참혹하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내전에서는 어린 소년 소녀병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어른을 죽이기 위해 투입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쟁 범죄자들, 적국의 부역자들을 단죄해야 하며, 전쟁이 초래한 상처를 치유하고 파괴된 일상을 전쟁 이전으로 회복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전쟁이 시작되면 너도나도 평화를 외치지만 정작 평화가 오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의 아이러니이다.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 2022년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먼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겪어 않아도 될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횡포는 여전히 누구도 단죄할 수 없다.

굉장히 수준 높은 책이다. 그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참고문헌에서 잘 정리된 풍부한 사료들과 추천도서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 무엇보다도 국내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문학 불모지인 우리네 현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서구에서는 전쟁을 주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을 벌이고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는 점이 나로서는 한없이 부럽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전쟁이나 안보와 관련된 논의는 직업군인들과 몇몇 군사 전문가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을뿐더러 무관심하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은 일반 사회와 격리된 성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단국가로서 매년 막대한 세금을 국방비로 쓰고 있으며 언제라도 전쟁이 일상 삶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야말로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전쟁이란 무엇인지 되짚어 볼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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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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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블로그를 통해서 이전부터 기대했던 책인데 드디어 나왔네요. <벌거벗은 세계사>의 설민석, 최태성씨처럼 필력이 맛깔나면서 우리가 잘 모르는 마이너한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쓰는게 마음에 듭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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