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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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주말이 되면 TV에서 때때로 고전 전쟁 영화를 틀어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조지 패튼과 미 제3군의 활약상을 다룬 <패튼 대전차군단>이라던가, 몽고메리의 흑역사인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머나먼 다리>라던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진주만 기습을 다룬 <도라도라도라>라던가 그 시절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란 주로 위대한 장군을 주인공으로 역사상 유명한 작전을 재현하는 것이 대세였다. CG가 없던 시절이니 지금 보면 조잡한 면이 없지 않지만 스크린을 압도하는 대규모 전투는 요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스케일이었다. 1970년작 <워털루>에서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라인배틀이나 기병 돌격은 지금 봐도 압권이다.

나폴레옹의 화려한 귀환과 백일천하를 다룬 영화 <워털루> 냉전 시절임에도 소련과 서방 합작 영화인데 CG가 없던 시절이라 요즘처럼 복붙복이 불가능하다보니 엑스트라만 1만5천명이 동원되었다고. 전반부는 지루하지만 후반부 전투신은 그야말로 스펙타클하다.

예전의 전쟁 영화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장군들의 이야기였다면 요즘은 그동안 소모품으로만 취급을 받았던 무명 병사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주제 또한 획일화된 영웅주의와 액션 위주에서 벗어나 좀 더 무거워지고 인간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제101공수사단 소속 라이언이라는 졸병을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투입된 대원들의 희생정신을 보여준다면,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영화 <1917>은 화려한 영상미와 별개로 전쟁의 비참함을 강조한다. 작년에 리메이크된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아집에 사로잡힌 장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병사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에 내몰려 집단 학살당하는 모습을 신랄하게 재현한다. <아메리카 스나이퍼>나 <허트 로커>는 참혹한 전장터에서 자기도 모르게 살인과 파괴에 중독되어 일상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병사의 PTSD(외상후 장애)를 다루는 반면, <자헤드>는 반대로 걸프전을 앞두고 혹독한 훈련을 실컷 받고 전쟁터에 투입되기만 기다리다가 총 한발 쏘아보지도 못하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실망하여 목적 의식을 상실한 해병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을 다룬 <아메리카 스나이퍼> 하지만 영화는 조국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영웅으로 포장하기보다 내면의 갈등과 PTSD에 시달리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전쟁이 배경이라고 해서 언제나 군인들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나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의 탄압을 받는 유태인들의 이야기이다. 아역 시절 크리스찬 베일을 유명하게 만든 <태양의 제국>은 태평양전쟁 당시 천진난만한 어린 소년이 겪어야 했던 포로 수용소의 생활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내전을 직접 경험했던 한 의사의 눈을 통해서 크메르 루즈의 잔인무도한 만행을 고발한다. 수용소에서 탈출하는 주인공이 무수한 해골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물론 전쟁 영화가 진짜 전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각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을 말해준다. 정치인과 장군, 무명의 병사와 민간인이 경험한 서로 다른 전쟁, 과연 어느 것이 전쟁의 진짜 모습일까. 정답은 전부 다 일 것이다. 똑같은 전쟁도 누군가에게는 출세와 명예의 기회이고 누군가에게는 희생을, 또 누군가에게는 지옥이자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코르시카의 가난한 하급 귀족 출신인 나폴레옹은 전쟁이 아니었다면 변변찮은 인생을 보냈을 인물이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야망을 위해서 수십만명의 시체를 쌓아 올렸지만 우리는 이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대신 군신이라며 숭배한다. 나폴레옹이 후세인이나 푸틴과 다른 점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와서 여느 병사들처럼 적의 총탄과 포화를 뒤집어 쓰고 무수한 죽음을 경험해 봤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PTSD를 얻는 대신 더 큰 영광을 찾겠다면서 끊임없이 싸움터를 쫓아다녔다. 나폴레옹이라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았거나 우리와 다른 고차원적인 존재라서는 아닐 것이다. 정복자로서의 쾌감과 막대한 보상이 죽음의 공포심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중독이 아닐까.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사람들은 목숨을 건 게임을 벌인다. 이들은 실패하면 죽는다는 공포에 떨면서도 게임을 통과하기만 하면 엄청난 보상이 기다린다는 사실에 이성을 잃는다. 정복자들이 패배하면 끝장인줄 알면서 굳이 전쟁에 매달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인간에게는 폭력적인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성욕이나 식욕, 수면욕처럼 정기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을 혐오하고 금기시한다. 인간이 전쟁을 하는 이유가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한 생각이다. 전쟁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에 쏟아붓는 자원과 전쟁으로 인한 파괴를 생각한다면 전쟁을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지간히 국력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싸움에서 패배하면 말할 것도 없고 어렵게 이기더라도 만신창이가 된 채 상처투성이로 끝나기 쉽상이다. 어느 누구도 순순히 자기 것을 내놓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당장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더라도 어느 쪽에게도 손익이 맞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빼앗으려고 노력을 쏟아붓느니, 차라리 다른 쪽에 쓰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면서 전쟁에 매달리고 평화로울 때조차 스스로 미지의 공포를 만들어 막대한 자원을 군비에 쏟아붓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열린 책들에서 묵직한 책이 나왔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부터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57명의 세계적 석학이 말하는 근현대 전쟁의 모든 것이다. 그 중에는 제2차 대전 권위자이자 국내에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으로 알려진 리처드 오버리 교수도 있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르 푸엥에서 2018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근세 이전과 19세기 이후 근현대전쟁이 다른 점은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군대의 격차 또한 엄청나게 벌어졌고 싸움의 방식 또한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16세기 비잔틴 제국의 군대는 2천년 전 로마 군대와 비교하여 원시적인 화기를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북전쟁 시절의 군인들은 불과 150년 후 이라크 전쟁에서 등장하는 미군의 무기를 감히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현대전이 근세 이전의 전쟁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훨씬 파괴적이고 그 전쟁에 어떤 식으로 휘말렸던 사람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점, 그리고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다. 과거의 전쟁이 지금보다 덜 야만적이거나 잔혹함이 부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시대 사람들 입장에서는 평화와 전란이 크게 구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란은 대단히 빈번했고 평화로울 때에도 도적이나 짐승의 습격, 흉작, 전염병, 관리들의 수탈로 삶은 가혹하면서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군인들 역시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 죽는 것보다 행군 도중에 병이나 부상으로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들에게 목숨을 건 투쟁과 죽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에 전쟁의 기록은 정치인과 장군들, 역사가같은 높은 교육을 받은 소수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이었고 카이사르나 알렉산더 대왕, 한니발같은 위대한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아 장대한 서사극으로 묘사하는 것이 그 시절 전쟁사였다. 그 이야기에 PTSD라던가, 집단 학살이나 강간, 상이 군인같은 불편한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미군의 조사에 따르면 모든 병사의 99%가 첫 전투에서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그렇지 않은 1%가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 우리가 성웅으로 떠받드는 이순신 장군이나 휘하의 병사들 역시 같은 인간인 이상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명량>이나 <한산도>같은 미디어, 후대의 역사서에서는 이순신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는가에만 포커스를 맞출 뿐, 병사들의 심리적 고통이나 트라우마 따위는 관심 없다. 애초에 그에 대한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전쟁은 더 이상 정치인, 장군들을 위한 기록이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줄 알기 때문이다. 병사들, 언론인, 일반 시민들, 심지어 여자와 아이들도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전쟁을 기록한다. 14세 유태인 소녀가 쓴 <안네의 일기>는 한 소녀가 겪은 나치 치하에서의 도피 생활과 유태인 수용소 생활을 묘사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록이 다양해지면서 전쟁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현대전은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한 서사극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통과 파괴를 낳는 비극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 역사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은 전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파헤친다.

주제도 결론도 천차만별이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그 과정, 전근대와 근대전쟁의 차이, 전략과 전술의 발전, 징병제도의 종말과 현대에 부활한 용병들의 모습, 기술적 우위가 전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지 못하는 이유, 드론으로 대표되는 무인전쟁, 아프리카의 소년병, 학살과 강간, 종전 이후의 복구, 전쟁이 초래한 정신적 외상, 전쟁 범죄와 재판, 반전 운동에 이르기까지 제목 그대로 전쟁의 모든 것을 담는다. 언급되는 전쟁 또한 18세기 미국 독립전쟁부터 나폴레옹전쟁, 라틴아메리카 해방전쟁, 남북전쟁, 보불전쟁, 양차 대전, 국공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과 비교적 최근의 아프간, 이라크전쟁까지 장장 두 세기에 걸친 전쟁의 역사를 두루 다루고 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다보면 똑같은 전쟁이라도 어떻게 바라볼지는 사람마다, 사회마다, 또는 시대마다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럽에서 직업 군인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산업화가 전쟁터에 미친 영향이었다. 후장식 소총과 기관총, 속사포가 도입되면서 빠르고 결정적인 승리를 끌어내기가 더욱 불확실해졌다. 대량 생산으로 대규모 군대에 장비를 보급하게 되면서 대중 무장을 실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 p.63(2장. 전투의 종말 : 전략가와 전략들)

급진주의자들은 병역을 하나의 민주적인 절차로 보았다. 연령별로 젊은 남성 대다수가 병역을 수행하게 함으로서 그들의 마음에 프랑스 공화국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을 심어주고 성인과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의 수가 많아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면 군대가 유용하지 않다는 주장이 군대 내부에서 나왔다. 이 방식은 세금이 많이 들었고 장교들은 신병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한마디로 비효율적인 징병 형태였다.

- p.92(1부 3장. 시민-군인의 시대)

대칭적인 전쟁에서 질적인 기술 우위는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 중에 서방 국가들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사력에 대하여 누린 기술적 우위 덕분에 연합군은 빠르게 승리했다. 미군의 공군력은 막강했다. 군사 혁명으로 미국의 군사 기술 그리고 공습의 정확도와 파괴력을 높이는 위성 항법 유도 장치와 레이저 기술이 결합되었다. 하지만 2003년에 미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비대칭 전쟁을 벌였을 때 똑같은 기술은 그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 p.150(1부 7장. 전략 없이는 기술은 소용없다)

영국의 식민 지배는 자유주의와 지배권, 식민주의가 결합된 형태라는 점에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구분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세 요소의 결합으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개발된 무기와 전술을 제국 각지에서 활용했고 공문서를 파기하고 퇴역 군인과 식민 지배 계급의 회고록과 인터뷰를 검열하는 치밀하게 조직된 정책을 시행했다. 제국주의 영국의 새로운 계획은 영토를 병합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몽주의와 그 보편적 원칙을 토대로 수립되었다. - p.240(1부 13장. 대영 제국주의의 신화)

미군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했을 때 작전 명령서는 뉴욕의 전화번호부만큼이나 두꺼웠다. 반면에 독일 국방군이 프랑스를 공격했을 때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의 참모장이었던 쿠르트 차이츨러 장군은 소령들과 그들 휘하의 장교들에게 단순히 연대가 독일과 벨기에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명령을 하달하는데 그쳤다. 군사 작전의 성공은 이들 소령과 하급 장교들에 달려 있었다. - p.362(2부 2장. 군 복무 경력)

극단적인 조건에서 억압과 단속의 과격함, 그리고 최고형인 사형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은 병사들이 포화에서 버티게 한 하나의 요인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수십만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진 군대들이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억압하고 단속하는 것만으로 병사들의 거부나 반항, 패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프랑스 군대에서 700여명 이상의 군인이 총살당했음에도 1917년 봄에 군대는 반란을 일으켰다. - p.518(2부 11장. 버틸 힘)

<보이지 않는 부상>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것은 정신에 가해지는 침해이다. 러일 전쟁, 뒤이어 1911년에 이탈리아가 리비아에서 벌인 식민지 전쟁에서 군대 정신과 의사들이 식별해 낸 <정신적 부상>은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질병 분류학의 주요한 챕터를 차지한다. 전쟁 신경증에 걸린 신경증 환자가 안면 부상병이나 독가스에 중독된 사람처럼 전쟁 부상자 목록에 오른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 p.603(3부 3장. 부상과 부상자)

국가 간 전쟁, 혁명, 반혁명, 내전. 1914~1945년에 벌어진 분쟁들은 그 폭력성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여성과 어린이, 노인을 비롯한 수백만명의 비 전투원이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전쟁과 구분되었다. 동원 규모나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규모 동원은 전쟁 선전이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다. - p.711(3부 11장. 1914~1915년 온 사회가 동원되다)

아부그라이브의 사진들은 여성 군인도 수감자들을 벌거벗기고 두렵게 만들고 고문하고 강간할 수 있으며 남자도 성폭력을 비롯한 이런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였다. 이 여성 군인들은 만지는 행위나 자극적인 자세, 외설적인 몸짓을 동원하고 자신의 생리혈을 불순한 무기로 사용하는 등 매우 폭넓은 제스쳐를 사용한다. 이들은 남성들을 고문하고 폭행한다.

- p.809(3부 17장. 강간, 전쟁의 무기)

1945년 5월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느 나라가 독일의 패배에 가장 크게 기여했는지 물었을 때 조사 대상의 57%가 소련이라고 대답했고 20%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2004년에 프랑스에서 비슷한 여론 조사를 했을 때에는 정확히 반대 결과가 나왔다. 58%가 미국이 연합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대답했다. 오직 20%만 소련이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 p.920(4부 4장. 스탈린그라드의 불꽃이 꺼졌다.)

PTSD가 만들어진 이후로 거둔 성공은 이 병명이 전 세계적으로 정신 의학계와 일상에서 사용된다는 사실로 가늠할 수 있다. 서방국가들에서 이 진단명은 걸프전쟁 이후,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군사 개입과 함께 2000년대에 와서 주목을 받는다. 러시아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PTSD를 러시아어로 옮긴 포스트트라브마티체스키 스트레스가 거론되었다. 뒤이어 1990년대에 두 차례 벌어진 체첸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겪는 <체첸 증후군>이 등장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른바 정당하고 무적이라는 명성을 얻은 군대 때문에 오랫동안 이러한 정신의 <나약함>이 무시되었다. - P.978(4부 8장. 신경과 신경증)

현실의 전쟁은 단순히 장군이 전략을 수립하고 병사들이 총을 쏘고 대포를 발사하고 전투기가 적진에 폭탄을 떨어뜨려서 적병을 죽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이나 전쟁 영화, 시뮬레이션 게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좋은 이러한 드라마틱한 부분에만 집중하지만 그 이면은 훨씬 복잡하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행진하는 군인들을 향해 열광하는 시민들과 소위 애국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전후방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동원되는 대중, 적군을 피하여 달아나는 난민의 물결,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강간과 약탈, 그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 내전은 더욱 참혹하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내전에서는 어린 소년 소녀병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어른을 죽이기 위해 투입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쟁 범죄자들, 적국의 부역자들을 단죄해야 하며, 전쟁이 초래한 상처를 치유하고 파괴된 일상을 전쟁 이전으로 회복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전쟁이 시작되면 너도나도 평화를 외치지만 정작 평화가 오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의 아이러니이다.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 2022년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먼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겪어 않아도 될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횡포는 여전히 누구도 단죄할 수 없다.

굉장히 수준 높은 책이다. 그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참고문헌에서 잘 정리된 풍부한 사료들과 추천도서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 무엇보다도 국내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문학 불모지인 우리네 현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서구에서는 전쟁을 주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을 벌이고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는 점이 나로서는 한없이 부럽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전쟁이나 안보와 관련된 논의는 직업군인들과 몇몇 군사 전문가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을뿐더러 무관심하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은 일반 사회와 격리된 성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단국가로서 매년 막대한 세금을 국방비로 쓰고 있으며 언제라도 전쟁이 일상 삶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우리야말로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전쟁이란 무엇인지 되짚어 볼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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