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벌 전쟁 - 현대 중국을 연 군웅의 천하 쟁탈전 1895~1930
권성욱 지음 / 미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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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중국사라고 하면 대개 교수님들이 쓴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여지껏 보지 못한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20세기 삼국지를 연상케 하는 군웅들의 파란만장한 싸움은 마치 한편의 사극 드라마를 보는 느낌입니다. 활자가 커서 읽기도 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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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 맥주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음미하다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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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뿐만 아니라 꿀벌도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꿀벌은 벌을 받기도 한다.

수컷 초파리는 연애에 실패하면 더 많은 술을 먹는다.

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꿀벌은 일만 하지 않아. 술도 마셔. 초파리도 술마셔"

-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중에서

평소 술을 거의 즐기지 않는 나도 치맥의 유혹만큼은 거부하기 쉽지 않다. 불금이나 토요일 저녁, 집사람과 같이 치킨을 안주 삼아 캔맥주 하나씩 따서 마시면서 영화 한편 감상하는 것. 이보다 안락할 때가 어디 있을까. 때로는 더운 여름밤 집앞 호프집에서 500cc 크림 생맥주를 시켜서 마실 때 그 톡 쏘면서 시원한 맛이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굳이 주당이 아니라도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이 유혹을 이길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지껏 맥주를 마시면서 이것이 무슨 종류의 맥주인가 따져본 적은 없는 것같다. 하긴 종류는 고사하고 카스인지 OB인지 어디 메이커인지도 따지지 않으니 말이다. 나의 둔감한 혀로는 맥주면 맥주이지 죄다 그기서 그기인 느낌이다. 애초에 치맥의 주인공은 맥주가 아니라 치느님이 아니던가. 우리는 치느님을 먹기 위해 맥주를 마실 뿐, 맥주를 마시기 위해 치느님을 먹는 것이 아니다. 맥주는 어디까지나 치느님을 먹는 과정에서 잠시 목이 마를 때 입가심을 위한 콜라 대용일 뿐이다. 그래서 치맥이다. 맥치가 아니라.

알콜 소비량에서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우리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양한 술을 즐길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맥주는 그냥 맥주이다. 소주는 소주이고 막걸리는 막걸리이다. 어느 지역, 어느 회사에 제조했다는 것은 있어도 어차피 알콜 도수도 정해져 있고 가격은 물론이고 맛과 향 또한 대동소이하다. 획일화된 규격품이나 다름없다. 고기집이나 호프집에서 맥주를 시킬 때 메뉴판에는 오직 "맥주" 두 글자가 있을 뿐이다. 용량의 구분은 있어도 무슨 맥주냐는 구분은 없다. 고민의 여지조차 없이 "생맥주 주세요" 한마디면 끝이다. 참 쉽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면서도 막상 술의 종류가 몇 가지 없다는 것은 술맛을 따지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는 술 맛 그 자체보다는 그저 술에 취하기 위해서, 또는 안주빨을 세우려고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네 세상에 주당은 많다지만 술 맛을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주당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서양 술을 보면 정말 다양하다. 와인만 보더라도 그 종류가 얼마나 하늘의 별만큼 다양하며 맛과 향이 천차만별인가. 이 양반들은 진정한 술맛을, 그리고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 외국의 수입 맥주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맥주 그 자체의 맛을 취미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이른바 맥주 덕후, 즉 '맥덕'시대의 개막이다.

북플리오 출판사에서 평소 맥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길을 끌만한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라는 책이다. 저자는 '음미하다'라는 필명을 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인데 일러스트를 보면 아마도 젊은 여성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취미가 맥주"라는 오리지날 맥덕이라는 사실이다.

"사람 뿐 아니라 꿀벌도 꿀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꿀벌은 벌을 받기도 한다. 수컷 초파리는 연애에 실패하면 더 많은 술을 먹는다. 술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파리도, 새도, 박쥐도, 원숭이도, 자연이 만들어낸 술을 먹는다."

"닉네임 : 효모, 성별 : 없음, 종교 : 닌카시, 바커스, 직업 : 맥주랑 빵만들기, 좋아하는 것 : 무조건 달달한 것, 희망사항 : 가끔 나는 야생의 사바나 초원을 달리는 자유를 꿈꾼다. - 호모 프로필 중에서."

"효모가 살아있던 과거의 맥주는 햇살을 듬뿍 받은 보리 본연의 영양 성분과 효모가 만들언내 비타민, 단백질이 가득한 든든한 한 끼 식사이자 음료였다. 맑고 깨끗한 맥주라고 해서 우리 맥주가 고대 이집트인들의 그것보다 더 나을까? 더 자연스러울까?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깨끗하게 말린 맥주잔에 6℃의 밀맥주를 45도 기울여 따라 주다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은 병을 돌리면서 따른다. 이제 숨은 효모까지 남김 없이 마시자. - 밀맥주 맛있게 따르는 법. 진짜 맛있다~~!"

"193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딛고 베스트말레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바로 황금빛 트리플이다. 필스너와 같은 고운 빛깔에 벨기에 맥주만의 짙은 과일 향이 일품이었던 이 맥주는 곧 수도원 맥주의 대명서가 되었다. 식사와 함께 마시는 가벼운 맥주인 테이블 비어보다 대략 3배는 도수가 강하다는 의미로 트리플이라고 불렸지만 195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트리펠이라고 부른다."

"피아노처럼 반짝이는 짙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걸어 미켈러 바로 향한다. 재즈 센터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이곳은 평일은 12시, 주말은 새벽 두 시까지 크래프트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비어가는 맥주잔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하루가 저문다."

책의 부제로 붙어 있는 "맥주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말마따나 이 책에서는 맥주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와 온갖 유익한 정보를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와 함께 섞어서 풀어나간다. 맥주 특유의 허연 거품과 톡 쏘는 탄산가스가 사실은 효모가 맥아즙의 당을 소화하면서 뿜어낸 방귀라는 사실. "소리는 커도 냄새가 난다해도 너희가 좋아하는 술냄새인거?"

황금빛 연금술사 효모의 정체, 맥주가 영양가 넘치는 음식에서 술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사, 에일과 라거의 차이부터 대표적인 맥주들, 각각의 맥주와 찰떡 궁합인 안주 고르는 법, 나에게 꼭 맞는 맥주를 찾기 위한 관상 보는 법, 맥주를 가장 맛있게 음미하는 요령, 영국 맥주와 벨기에 맥주, 미국 맥주, 독일 맥주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등 유머러스하면서도 알딸딸한 맥주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다. 컬러풀한 사진과 글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읽다보면 절로 시원한 맥주 한잔이 떠오른다. 그것도 그저 "여기 생맥주 한잔요!"가 아니라 달콤하면서 과일향이 느껴진다는 "파울라너 에딩거 헤페바이젠 한잔요!"라고 외치고 싶다.

이 책을 읽노라니 나도 치맥 덕후를 넘어서 진짜 맥덕이 되고 싶어진다. "맛있는 맥주에는 절로 나오는 추임새 캬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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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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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 네트가 사랑했던 꽃은 장미가 아니라 감자꽃이었다?"

우리 전통 음식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김치이다. 온갖 양념과 함께 고추장으로 시뻘겋게 갓 담근 햇김치 하나만 있어도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다 아는 새삼스러운 얘기이지만 붉은 김치가 우리 식단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고추는 토종 작물이 아니라 외래종이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처음 유입된 것은 학자들마다 약간의 이견은 있지만 대략 임진왜란 전후로, 일본을 통해 전달되었다. 하지만 고추의 매운 맛에 더 익숙해진 쪽은 일본인보다 우리가 아닐까 싶다. 일식에서 고추냉이를 제외하고 딱히 고추가 들어가는 음식을 찾기 어려운 반면, 고추가 들어가지 않는 한식은 상상할 수 없으니 말이다.

고추의 원산지는 멕시코이다. 그곳에서 처음 고추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우리도 잘 아는 스페인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인도의 향신료를 찾겠다고 떠난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발견한 것은 고추였고 그는 엉뚱하게도 고추를 후추라고 우기면서 '붉은 후추(red pepper)'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의 고추가 돌고 돌아서 한 세기만에 지구 정반대편의 존재감 없는 나라 조선에까지 전해진 셈이다. 그가 신대륙에 가지 않았거나 고추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먹음직스런 붉은 김치도 없지 않았을까. "브라질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텍사스에서는 허리케인이 일어난다."라는 이른바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는데 콜럼버스와 김치의 관계 또한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나비효과의 사례라고 하겠다.

16세기 유럽에서는 이른바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역사적 특이점 중 하나이자 근세 시대의 시작이었다. 또한 그 전까지 인류 문명에서 변방 취급을 받았던 유럽이 처음으로 아시아를 능가하여 나중에는 세계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바꾸어 말해서 어째서 유럽인이 아니라 비 유럽인들, 아시아인들이나 다른 대륙 사람들은 대항해에 나서지 않았던가. 왜 하필이면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던가. 이들이 거친 파도를 뚫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면서 머나먼 바다로 나아가게 된 가장 큰 동기는 향신료(spice)였다. 후추, 육두구, 정향, 계피 등 유럽인들은 이것을 손에 넣으려고 목숨을 걸었다. 후추의 가격은 한 때 금과 맞먹을 정도였다.

                                

수많은 바다 사나이들이 세계의 보물 "원피스" 아니 "육두구"를 찾아서 떠나는 대항해 시대.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조미료 따위에 그 정도의 가치를 매긴다는 말인가 싶지만 먹거리가 다른 탓도 있다. 아시아인들은 쌀을 주식으로 한다. 쌀은 탄수화물 외에도 단백질과 지방이 함유되어 있어 별다른 부식 없이도 그럭저럭 영양분을 확보할 수 있다. 불교에서 육식을 금할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반면, 밀은 아미노산이 부족하기에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고기는 상하기 쉽상이고 그 전까지 유럽인들은 기껏해야 거친 소금으로 짠 맛나는 간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무슨 맛이 있겠는가. 아시아에서 향신료가 들어오자 한번 여기에 중독된 유럽인들은 전쟁도 불사할 정도였다. 향신료가 듬뿍 섞인 고기를 먹는 것이 곧 지위와 권력을 상징했다. 만약 아시아인들이 밀을 먹고 유럽인들이 쌀을 먹었다면 대항해 시대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향신료의 천국인 동남아에서 더 많은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해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고 훗날 식민지 건설의 첨병이 된다. 향신료 경쟁은 그야말로 살벌했고 여기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보다 저렴하면서 대체 가능한 다른 향신료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 와중에 발견한 새로운 먹거리가 옥수수와 감자였다. 밀과 쌀에 비해서 훨씬 강인한 생명력과 수확 능력을 가진 두 먹거리는 기근 해결에 크게 일조했다. 하지만 설탕의 재료인 사탕수수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재앙이 다름없는 노예 무역 시대를 열었다. 사탕수수 재배는 다른 작물과 달리 가축의 힘을 빌릴 수 없고 사람 손이 엄청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유럽인들의 향신료 경쟁이 만든 세상인 셈이다.

사람과 나무사이 출판사의 신작 도서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은 현대 인류 사회를 이룩하는데 일조했던 13가지 식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일본의 권위 있는 식물학자이자 시즈오카 대학 교수이며 자신의 전공인 식물을 통해서 본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쓰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 양반의 저서 중 하나인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글항아리>도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을 그린 만화이다. 이 만화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궁전에 핀 고고한 장미 한 송이에 비유했다. 하지만 왕비가 실제로 사랑한 꽃은 만화 제목에 있는 장미가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그녀가 사랑한 꽃은 감자꽃이었다. 고귀한 왕비 신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왜 장비나 백합같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감자꽃을 사랑했을까?" - p.26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식물 1위는 옥수수이다. 그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곡물이 밀이고 3위가 벼이다. 그 다음 4위는 감자, 5위는 대두이다. 토마토는 이 세계 5대 주요 작물 바로 뒤인 여섯번째로 생산량이 많은 작물이다." - p.68

"사치스러운 식생활을 즐긴 귀족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귀족이나 상류층에서 후추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실용적인 목적보다 자신의 높은 지위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상정성이 컸다. 이것은 설탕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이 설탕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 p.90

"고추는 유럽인들에게는 외면당했지만 장기간 항해해야 하는 뱃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했다. 당시 뱃사람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괴혈병이었다. 비타민C를 다량 함유한 고추는 괴혈병 예방과 치료에 특효가 있었다. 뱃사람들은 항해를 떠날 때 소중한 식량이자 의약품으로 고추를 챙겼다." - p.105

"논 시스템과 벼라는 작물은 적은 농지로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서 16세기 섬나라 일본은 같은 섬나라인 영국과 비교해서 6배 많은 인구를 부양했다. 유럽에서는 3년에 한 번 밀을 재배할 수 있었지만 아시아에서는 1년 동안 쌀과 밀을 모두 수확할 수 있었다." - p.240

이 책에서는 도합 13가지의 식물이 나온다. 저자가 붙인 별명도 거창하다.

1. 초강대국 미국을 세운 악마의 식물 감자

2. 인류의 식탁을 바꾼 붉은 열매 토마토

3. 다항해시대를 연 검은 욕망 후추

4. 콜럼버스의 고뇌와 아시아의 열광 고추

5. 거대한 피라미드를 떠받힌 약효 양파

6. 세계사를 바꾼 두 전쟁의 촉매 차

7. 인류의 재앙 노예무역을 불러온 사탕수수

8. 산업혁명을 일으킨 목화

9. 한 톨의 씨앗이 문명을 탄생시킨 밀

10. 고대 국가의 탄생 기반이 된 벼

11.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한 콩

12.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 옥수수

13. 인류 최초 거품 경제를 불러온 욕망의 알뿌리 튤립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친숙하면서도 이들이 인류 역사에 남긴 발자취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심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어쩌면 위의 13가지 식물 중에서 하나라도 없었다면 우리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대항해 시대를 연 후추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령 우리가 주식으로 쓰는 쌀이 없었다면 아시아 문명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감자와 옥수수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인류가 70억에 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산업혁명은 영국 면직물 산업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면직물의 원료인 목화가 없었다면 산업혁명도 없었으리라. 하물며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김치는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백김치, 물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별로다. "너희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트라도 뽕뽕 날려주고 싶다.

고추는 일본이 우리에게 전해 주었는데 왜 정작 일본인들은 고추를 즐기지 않을까. 반대로 우리는 고추 없이는 살 수 없을까. 고추가루를 넣어서 부글부글 끓인 매운탕은 상상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고추장을 바른 불고기를 밥과 함께 쌈에 싸서 입에 넣고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이보다 맛있는 별미가 없다. 저자는 종교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즐기지 않는 반면, 고려 시대 이후 우리는 불교의 영향이 약화되면서 다시 육식을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육식에는 향신료가 빠질 수 없다.

이 책에서 나오는 13가지 식물의 역사 이야기는 다채로우면서 흥미진진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식물들에게 알고 보니 이런 역사가 담겨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다. 또한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직 여름 휴가를 가지 않은 분, 갈 곳이 마땅찮은 '동남아(동네에 남아 있는 아저씨)'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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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5 - 열도의 게임 본격 한중일 세계사 5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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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공사가 다망하여 정신은 없지만, 그럼에도 타고난 습성 탓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여 짬짬이 읽는 중이다. 역덕후 굽 선생의 역사 만화 <본격 한중일 세계사> 작년 12월 쯤에 4권 리뷰를 했던 것같은데 벌써 5권이 나왔더라. 이번 편은 전편에 이어서 태평천국의 난을 최종 마무리 짓고 옆동네 열도로 포커스를 옮긴다.

태평천국의 수도 난징 포위되다. 장장 14년 동안 중국 대륙을 진동시키며 꿈의 파라다이스(물론 지들 기준에서)을 실현할 것 같았던 태평천국의 멸망도 초읽기에 들어가는데.

태평천국 천왕 홍수전의 머리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날의 리즈 시절.

홍수전 죽기 전 수십 년 뒤 마오의 등장을 예언하다. 마지막 유언으로 "천국으로 올라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천병을 청할 테니 하늘에서 병사들이 내려와도 놀라지 말라." "공수부대인가?"라는 부하의 드립.

그렇게 지상에서 천국을 꿈꾸었던 그가 결국 죽어서 천국의 문을 두드리러 가는데. 난징은 함락되고 잔여 세력들마저 정리되고 죽을 놈들 죽고 이것으로 파란만장했던 태평천국 편은 끝. 하지만 그 와중에 등장한 또다른 녀석들. 한떼의 고양이 무리(왜놈들) 상하이에 나타나다.

"산 채로 썩어간다"라는 다카스키 신사쿠의 맞말 퍼러이드. 너무 맞말이라 반박이 불가.

중국보다 한발 늦게 개항했지만 흘러가는 모양새는 그다지 다르지 않는 일본. 막부가 근대화다 서구화다 어쩌구 하면서 정신 없는 와중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썩어빠진 세상 엎겠다고 달려드는 불만분자들과 뒤에서 부채 들고 바람 날리는 지방 번주들.

비록 이빨 다 빠진 신세라지만 막부 또한 나름대로 제 세상을 앞으로도 틀어쥐기 위하여 노력 중.

막부세력과 토막세력의 대립은 결국 1864년 7월 19일 킨몬(禁門)의 변으로 폭발. 신선조와 사이토 하지메도 나왔는데 켄신도 어딘가에서 등장하지 않으려나. 다음 편은 막부의 조슈 정벌을 시작으로 무진 전쟁과 메이지 유신 차례가 될 듯.

세간에 이름난 굽본좌의 야심작답게 이번 편 역시 온갖 기발한 역드립이 난무한다. 전편이 난장판이 된 중국이었다면 이번편은 열도의 난투극이다. 팬더와 고양이, 수탉, 사자 등 의인화된 동물들이 펼쳐 나가는 파란만장한 역사 이야기, 중간중간 등장하는 재치있는 패러디와 독자의 허를 찌르는 유머. 이 나이 되어서 평소에 만화 따위 보지는 않지만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아무래도 깊이가 다소 부족하다는 점은 어쩔 수 없다. 지식 전달보다 개그가 우선이다보니 재미는 있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역사를 배울 만한 책은 아니다. 킬링 타임에 적격이다. 게다가 요즘 젊은 세대의 트랜드에 맞춘 탓인지, 나처럼 그 트랜드에 익숙치 못한 노땅 세대 입장에서는 솔직히 뭔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세대 따지지 않고 누구나 부담 없이 읽으면서 피식 웃을 수 있는 책이다. 시중에는 <이야기 일본사>를 비롯해 다양한 일본사 개설사가 있으므로 곁들어 읽는다면 재미가 200%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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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의 세계사
셰저칭 지음, 김경숙 옮김 / 마음서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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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는 단순한 돈이 아니다. 예술이자 역사의 기억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세계 최초의 동전은 BC.670경 현재의 터키 지역인 메소포티미아에서 사용된 일렉트럼이라고 한다. 금과 은으로 된 동전인데, 겉면에는 곡식의 이삭과 사람 모습의 무늬가 들어가 있다. 어째서 단순한 귀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무늬를 넣은 것일까. 누가 언제 어디에서 발행했는지를 표시하여 화폐의 공인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용 할 때마다 일일이 무게를 달아보고 녹여서 금, 은이 맞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말이다. 지금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도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상이 아니었을까.

                                

세계 최초의 금속 화폐인 일렉트럼 코인.

귀금속이나 동전을 대신하여 종이로 된 돈, 즉 지폐가 처음 쓰인 것은 북송 시절이다. 군사적으로는 허약했지만 중국 역사상 전에 없이 문화와 상업의 발전이 찬란했던 시절이다. 쓰촨 성의 상인들은 지나치게 무겁고 운반이 어려운 동전이나 귀금속, 현물 대신 "교자(交子)"라는 일종의 약속 어음을 발행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가령 쓰촨 성에서 비단 한필의 가격은 동전 2만개에 달했는데, 문제는 그 무게가 무려 120근에 달했다고 하니 비단 한필 사려면 수십kg의 동전을 등에 짊어지고 와야 한다. 무슨 인간 당나귀도 아니고 이러한 '무식한' 방법 대신 귀금속이나 동전을 예탁하고 특수 제작한 영수증으로 대체한 것이 지폐의 시작이다. 지폐에는 발행처와 발행자, 화폐 가치 이외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곡식 창고라고 한다. 지폐를 발행한 상가의 창고에 실물 상품인 쌀과 보리가 있으니 믿고 써도 된다는 뜻이다. 지폐의 가치는 오직 신용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지폐 시대가 열린 것은 그 후로 300여년이나 지난 뒤인 원나라 시절 세조 쿠빌라이가 ‘지원통행보초’를 발행해 유라시아 전역에 유통시키면서라고 하니 오늘날 우리가 쓰는 지폐란 그저 그림 그려진 종이 조각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가 담겨 있는 셈이다.

 

평소 인문교양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한 신간이 나왔다. <지폐의 세계사>는 세계 각국에서 쓰이고 있는 지폐를 통해 짚어보는 세계사 이야기이다. 저자는 셰저칭이라는 타이완 출신 대중 인문학자이다. 어릴 때 우연찮게 오래된 지폐를 얻은 이후로 평생 지폐 모으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25년 동안 세계 97개국을 돌면서 다양한 지폐를 수집했다고 한다. 우리같은 일반인들이야 지폐가 아니라 돈에 더 관심이 많은데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양반도 돈으로 돈을 버는 셈이다. 지폐를 연구하고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니까 말이다. 나름 부러운 인생이다.

우리는 평소에 돈을 대할 때 액수가 중요하지 지폐에 뭐가 그려져 있는지에 대하여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하지만 돈을 잘 보면 이 또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우리가 '배춧잎'이라고 부르는 1만원짜리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금액 이외에도 다양한 그림과 무늬가 아주 정밀하면서 깨알처럼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장에는 세종대왕의 인자한 얼굴과 함께 임금이 정사를 보던 편전의 병풍인 <일월오악도>가 그려져 있다. 뒷장에는 세종대왕의 대표적인 발명품 중의 하나인 혼천의(국보 제230호)가 있다. 또한 혼천의 주변에는 복잡한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당시 한국은행에서 도안을 제작할 때 우리 역사상 가장 과학이 찬란하게 발전했던 세종대왕을 강조하여 '과학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이 돈을 쓸 때 뭐가 그려져 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지만 말이다.

다른 나라들의 지폐에도 우리처럼 다양한 그림과 무늬가 그려져 있다. 위조 방지의 목적도 있지만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목적도 있다. 독재 국가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돈에 권력자의 얼굴을 넣는다는 점이다. 1950년대 우리 화폐에도 이승만의 얼굴이 있었고 타이완 또한 장제스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던 적이 있다. 중국에서 '런민삐(人民幣)'라고 불리는 위안화는 마오 시절에는 노동자, 농민과 소수 민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집권하고 100위안에 처음으로 마오의 얼굴이 들어간 이후, 1999년에는 건국 5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액수와 상관없이 죄다 마오 일색이 되었다.

 

                                

마오 시절의 위안화. 당시에는 권력자의 얼굴을 넣은 경우는 없었다.

                                

지금의 위안화. 마오 성역화의 일환이다. 수백년 전의 인물도 아니고 현대사의 권력자를 화폐 도안에 넣어서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중동이나 태국 같은 왕정 국가에서 흔하게 하는 행태라는 점에서 봉건 타도를 내세워 정권을 잡은 공산당이 도리어 시간을 거꾸로 달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이런 식은 아니다. 온 국민이 쓰는 돈에 최고 권력자가 굳이 자기 얼굴을 박아넣어 권력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북한, 이라크같은 예가 있는가 하면, 막 독립되었거나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나라들 중에는 지폐를 통하여 희망과 평화, 화합을 기원하기도 한다.

폴포드의 광기가 휩쓸기 이전인 1970년대 초반에 사용된 캄보디아 돈에는 이름 없는 어린 여학생의 환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 미소처럼 자신들의 앞날에는 장미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으리라. 하지만 그런 희망이 무색하게 얼마 뒤 총칼을 앞세워 캄보디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폴포드는 고작 3년 반의 통치 기간 동안 나라를 완전히 절딴내었고 온 국민의 1/4를 죽이는 전대미문의 대학살을 자행하였다. 도안의 주인공이었던 그 여자 아이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1970년대에 들어서 네덜란드의 지폐 디자인은 더욱 자유분방해졌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 발행된 길더 시리즈는 플랑드르 문화의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부분을 드러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옥세나아르에게 디자인을 제안하면서 과감한 시도를 요구했고, 옥세나아르도 대중의 기대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에 입각해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 pp.52~53

파푸아뉴기니 지폐의 앞면에 등장하는 새도 바로 라기아나 극락조다. 2007년 이전에 발행된 지폐에서는 전면을 차지하고 있지만, 2008년 이후에는 크기가 축소되어 왼쪽 상단에 자리하게 되었다. 어느 부분에 위치하든 극락조의 기세등등한 자태는 변함없이 파푸아뉴기니 지폐의 주제라 할 수 있다. - p.66

세계 화폐의 발행 품목과 수량을 살펴보면 국경을 초월해 지폐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 바로 콜럼버스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다. 1874년 미국 퍼스트은행이 발행한 1달러 지폐의 앞면에는 콜럼버스와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가 인쇄되어 있다. 미국은 콜럼버스를 남의 땅을 강제로 차지한 인물로 여기는 동시에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의도와 야심을 널리 선포하는 인물로 생각하는 듯하다. - p.107

미신 때문에 네 윈은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전대미문의 소동, 즉 화폐 개혁을 일으켰다. 1985년부터 미얀마 군사정부는 20, 50, 100차트를 회수하고 75차트 신권을 발행해 네 윈의 75세 생일을 경축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2년 후 군사정부는 또 예고 없이 25, 35, 75차트의 발행을 중지하고 오로지 45, 90차트 지폐의 유통만을 허락했다. 두 숫자는 9로 나누어 완전히 떨어지는 동시에 네 윈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였다. - p.146

1995년 발행한 50파운드 지폐는 의외의 큰 파문을 일으켰다. 쥘 베른이 반란의 상징으로 묘사했던, 매우 변덕스럽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지브롤터의 원숭이가 여왕의 머리 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록 반항적인 행동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경건하지 못한 구도와 디자인은 보수 인사들의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 p.167

1,000리엘이 과거 지폐와 크게 다른 점은 앞면의 도안이다. 앞면에는 또 다른 미소가 등장한다. 바로 희망이 가득하고 낙관적인 기개가 돋보이는 여학생의 미소다. 여학생은 자신감과 긍지가 충만한 얼굴로 침착하면서도 긍정적인 광채를 발하고 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빛나는 미래가 머지않았음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 p.208

이 책에는 42개 나라의 지폐에 얽혀 있는 비화가 담겨 있다. 18세기 로코코 시대 스페인을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인 프란시스코 고야의 화려한 필체가 담겨 있는 스페인 지폐부터, 1970년대 최악의 홀로코스트가 벌어졌던 남아프리카의 부룬디-르완다의 지폐에 담긴 두 민족의 화합과 평화에 대한 기원, 독재자의 광기가 담겨 있는 북한과 이라크, 리비아의 지폐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지폐 이야기가 있다.

지폐에 담긴 비사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보다도 이 책의 진짜 별미는 컬러풀한 지폐 사진들이다. 우리가 평소에 별 생각 없이 사용하던 돈이 사실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던가 싶을 정도이다. 지폐는 단순히 교환 수단이 아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새겨져 있는 상징물이자 위대한 미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노라면 저자가 어째서 그토록 지폐 모으기에 빠져 들었는지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300여 페이지의 많지 않은 분량에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딱딱하고 골머리 아픈 전문서적에 파묻혀 있다가 이런 책을 읽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역사를 밑줄 좍좍 그어가면서 배울 필요는 없으리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역사 이야기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42개국 중에서 북한과 일본은 있는데 우리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저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돈은 별로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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