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 스님의 코끼리 - 본래 나로 사는 지혜 ㅣ 용수 스님 시리즈
용수 지음 / 스토리닷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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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을 배우면

생각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생각을 접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생각 세계에 삽니다.

생각 세계는 매우 좁고, 고통이 많은 세계입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몽상과 허상을 계속 만들고 

나라는 존재도 구체화하고 제한이 많은

고통의 세계를 만들어서 그 세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성의 핵심은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

생각을 그저 관하고, 생각의 순수한 목격자가 되어

생각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것을 연습하면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던 것에서

순수자각과 동일시하게 되는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면의 본성을 

더 잘 알게 되어 본성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생각을 해탈해준다고 표현하는데요,

이것이 부처님 법에서 심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명상 방법인데 생각을 풀어 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 지혜란 

모든 것이 마음에서 지어냈을 뿐이며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겁니다. 


*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스님이 감동입니다.


* 생각을 이어 가면 감정이 되고 

감정이 반복되어서 습관이 되고 

습관은 업이며 고통입니다. 

생각이 이어지지 않도록 

개념이 끼어들지 않도록 

생각 없는 깨어있음을 찰나 찰나 유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 알아차림 속으로 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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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한 줄 법구경
이상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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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는 것은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라 간곡히 말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거듭거듭 강조한다.


허나 불교에서는 참을 것이 없는 줄 알면 

견디어 낼 것도 없다고 말한다. 

법륜스님은 열심히 사는 것을 말하기 보다

그냥 살라고 하신다. 


책의 제목에

"법구경"이라는 단어를 감히 적을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은 아니고

그저 자신의 열정적인 일기 정도로 보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소신 있는 삶의 줏대나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는 본받을 만 해서

별 다섯 개를 클릭할 수도 있었으나

정말이지 오타가 너무너~~~무 많아서 별 하나를 제한다. 





*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기 때문에 슬픔이나 초조함이 커진다. 그러나 일을 하면 일을 통해서 실전의 지혜를 배양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깊은 몰입은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이러한 몰입만이 모든 고민을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는 여행을 할 때 왜 행복할까? 여행하는 그 순간에 깊이 몰입하기 때문에 아무 잡념이 없기 때문이다. 


* 현실성 없는 생각은 공상이고 실천 없는 생각 또한 공상이며 힘과 능력 없는 생각 또한 공상이라는 것을 느낀다. 


* 여기에서 만족을 못하면 다른 곳에 가서도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서도 열심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대개 상대방의 허물의 이유는 내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내게 해가 되진 않는다. 나를 먼저 돌아보는 태도를 가지면 사람은 강해질 수 있다.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나에게서 문제를 찾고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 사람은 강하다. 비록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통해서 자기를 돌보는 사람은 강하다.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니다. 나 자신이다. 


* 삶에서의 모든 고통은 내 몸, 내 것, 내 돈, 내 사람 등 '나'를 집착하기 때문에 나온다. 대개는 내 몸에 조금만 상처가 나도, 약간의 교통 벌칙금만 받아도, 생각대로 일이 조금만 되지 않아도 화를 내거나 당황한다. 나로 살되 나를 떠나야 한다. 그래야 내가 편안할 수 있다. 


* 힘들지 않은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마음을 바꾸어 먹어야 한다. 어디에 있든 종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항상 행복할 수 있다. 


* 그냥 하는 것,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해야 한다면 무조건 하는 것, 그것에 자기를 이기는 비결이 있다. 


* 오늘의 행복도 영원하지 않고 오늘의 불행도 영원하지 않다. 제행무상 즉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세상과 사람이기 때문이다. 


* 소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낌 그 자체가 본질이라면, 그 느낌은 마음에 의해서 얼마든지 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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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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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단숨에 읽어내린 책도 없었지 싶다.

널리 읽힐 때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이제사 우연히 잡았는데,

재미있다, 과연 회자될 만하다 싶은 생각이 우뚝 선다.


여자라서...

여자라고...

여자니까...


그래서

나도 한때는 발끈발끈했지.


그러다 나이가 이만큼 먹었고

그러니 지금은

<문화>라는 것으로 이해도 하고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으니 좋은 세상 된 것이여 라고 말하기도 하고.


돈 많고 잘생긴 남자에게 발탁되는 것이 목표였던

<오만과 편견>이나 <인형의 집>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천만다행 아닌가!!


소설 속의 김지영씨는 대부분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삭혀버린다.

그러나 이런 책이 나옴으로써 

그런 김지영씨의 묻혀버린 마음들을 우리는 속시원히 공감하고

공유함으로써 진일보한 후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 고맙다, 그저 고맙다.

훌륭한 책이다. 






*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 예전에는 일일이 환자 서류 찾아서 손으로 기록하고 처방전 쓰고 그랬는데, 요즘 의사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종이 보고서 들고 상사 찾아다니면서 결제 받고 그랬는데, 요즘 회사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예전에는 손으로 모심고 낫으로 벼 베고 그랬는데, 요즘 농부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라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유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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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빛을 주는 티벳 사자의 서 (CD 3장 + 낭송 대본)
파드마삼바바, 정목 낭송 / 정신세계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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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위대한 가르침>


책의 겉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는데

시골의 작은 도서관에서는 부록자료로 곁들여진 CD는 같이 대출하지 못했다.

CD는 없단다....


예전의 나 같으면 분명 시립도서관에 전화해서 

이 책의 부록 CD를 들어야겠으니 대출이 되도록 해 주십사고 

당부를 했을터이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그러지 않는다.

없다면 없는대로~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이다. 



죽음에 대해 내가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던 책이 <롭상 람파의 가르침>이란 책이다.

선악이 함께이고, 음양이 함께이며, 생사가 함께이듯이 죽음과 극락은 함께일 것 같다.

죽음의 고통 뒤에는 극락, 극한의 락이 따라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당신은 그것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진실성을 더욱 믿게 될것이다.

자칫하면 좁고 협소한 길 아래로 떨어져 지옥불과 저주에 둘러싸이게 된다고 

위협하는 종교들은 신도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 

'영원한 저주'는 없다. 영적 세계에서는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추방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나쁜 사람일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 - "롭상 람파의 가르침" 중에서


이 책, <티벳 사자의 서>에서 처럼

죽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영혼의 세계를 떠돌며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이 사후세계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티벳 사자의 서>는 산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두려워해서

현재를 더 참되게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삶에서의 경고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영원한 저주'는 없다. 영적 세계에서는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다. >  

                                                            - "롭상 람파의 가르침" 중에서

이것이 신의 사랑이지 않겠나!



지난 10월 26일 , 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더없이 평안하고 마냥 행복만이 가득한 그 곳에서 편히 계시리라 믿는다. 

거기는 극락이다. 다할 극, 즐거울 락, 극락!!

죽음 뒤에는 극락만이 있을터이다.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그 이유는, 만약 우리가 저 세상의 즐거움을 기억해 낸다면 

지상의 삶을 저버리고 행복을 찾아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 "롭상 람파의 가르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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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2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 ㅣ 참선 2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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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나의 '실패'라고 하는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일어났다면 그것이 진짜 '나의 실패'일까? (...)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우리가 뭔가 하려 할 때는 언제나, 결코 그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그건 실패가 아니다. (...) 과거에 당신이 이룬 큰 성공 중에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정말로 나의 성공이었을까? 그것이 정말 전적으로 내 재능과 노력 그리고 탁월함 때문이었을까? 다른 사람은 관련이 없을까? 운이 개입하지 않았을까? 잠깐이라도 온 세상이 내가 필요로 한 조건들을 모두 제공하지 않았을까?


* (...) 오직 베푸는 것만이 삶을 완벽의 경지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이 베풀고 기여하는 것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아직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크게 성공하든 그건 진정한 성공이 아닐 것이다. 


* 이것이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가? 인생무상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 불교에서는 우리 의식에 파괴될 수 없는 영원한 면이 있다고 가르치잖아. 의식의 근원 말이야. 참선 수행을 충분히 오래 하면 비록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자기 안에서 어떤 빛이나 광체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거든. 사실 무엇을 모든, 그게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말이지. 더 좋은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그러는데, 그 안에서 빛 같은 게 발산되는 것처럼 느껴져. 올고 그름을 떠나서 그게 의식의 빛이라고 느끼기 시작해. 만물이 일어나는 숨겨진 바탕.


* 참선 수행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에 대해 아는 건 육체뿐이야. 그 육체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그러니 육체를 상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을 잃기만 하고 얻는 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이게 바로 내가 참선을 하는 이유야. 나는 나 자신에게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뭔가를 발견하고 싶거든. 그러면 더 이상 두렵거나 슬프지 않을 것 같아.


* 인류의 미래와 관련한 자신의 꿈...

( 내겐 너무나 어마어마한 말이다. 나의 미래와 관련한 나의 꿈조차도 모르는 판에 인류의 미래와 관련한 자신의 꿈이라니!!! 이 책이 좋은 이유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 이 세상에서 내 원수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 적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면 ... 친구로 만드는 거지.


* 통찰력을 바탕으로 용서한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사람이 무례하게 군다고 해서 당신이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모욕한다고 해서 당신이 진짜 그가 표현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위협한다고 해서 당신이 겁쟁이거나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고 해서 당신도 그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을 향한 분노나 증오, 혹은 무관심이나 경멸로 가득한 사람을 아주 맑은 눈으로 통찰력을 갖고 보면 그들의 그런 감정이 당신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게 보인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들의 어그러진 욕망과 기대 때문이다. 자기들 마음대로 상황을 해석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각자 자아상을 만들고 왜 이렇게 됐나 원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지금 상처받기 쉬운 사람은 그들이지 당신이 아니다. 


* 나는 자기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 참선 수행은 우리의 시선이 더 깊이 그 근원을 향하도록 훈련시킨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은 없다. 참선을 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개발'하거나 '개선'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한 상태로 존재하는 우리의 실체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우리 몸을 차지하고 있는 빛나는 생명력과 지혜를 느끼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어떤 느낌일까? 스스로를 개선하거나 개발하려는 모든 생각과 노력, 시도를 멈추면 비로소 느끼는 그 기분은 완벽한 진정성과 투명한 의식, 순수한 행복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애다. 


* 앉아서 참선을 하고 나면 그때마다 이전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권위 있는 종교지도자나 종교 단체의 축복이 아니라 이처럼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 참선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유일한 기준이다. 그리고 앉아서 하는 참선에 능숙해질수록, 그러니까 자세와 호흡, 집중하는 방법에 잘 적을할수록 참선은 더 풍용롭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 이제 진정한 영적 수행에 필요한 것은 외부 권위에의 복종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섬세하고 정확한 방법임을 알게 된다. 


* 참선으로 각자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물론 세상에는 나쁜 것들도 많이 보인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어서 보고 있으면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좋은 것들도 눈에 띈다. 더 좋아질 가능성도 보인다. 그리고 이세상에 좋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선가 그렇게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들은 무척 성실히 노력하고 있으며 아마도 엄청난 용기를 내서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품위 있고 생산적인 삶을 살기 위해 자기가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전등 스위치를 누르면 빛이 들어오고, 기차역에선 거의 제시간에 기차가 도착하고, 가게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그런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세계 어느 도시, 어느 거리에서든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세상은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잘 돌아간다. 언론에 보도되는 온갖 부정적인 뉴스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선한 사람들이 매일같이 각자의 일을 성실히 해내고 절제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감정은 그저 지나가는 마음 상태일 뿐이다. 우리가 느끼는 애정과 절박함은 다른 어떤 사람 혹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에 정신적으로 집착하는 상태다. 우리는 이런 기대와 애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참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날려 보내야 한다. 


* 참선에 들어가면 그 자세와 호흡이 내면을 고요한 상태로 만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평화 속에서 "이뭣꼬?"를 읊조리며 우리의 의식을 그 근원으로 돌린다. 그러면 우리의 의식이 꽉 막힌 듯 답답한 상태가 되어 대의심을 일으킨다. 한편으로는 온 마음을 다해 철벽을 밀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면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렇게 꽉 막힌 내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몸과 마음에 가득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알아차리고 그 의식을 마치 빛처럼 느낀다. 대의심이 우리의 의식을 옥죄고 억압하는 습관적인 강박과 두려움, 분노를 모두 녹여 없앰에 따라 의식이 안팎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 만약 어떤 말이든 와 닿는 것이 있다면, 가슴속에서 뭔가 끌림이 느껴진다면, 더 높은 차원의 해법을 구하라는 작은 속삭임이 들린다면, 송담 스님의 법문을 직접 찾아 듣고 그 가르침을 실천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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