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파쿠와 여름방학을 (1disc)
하라 케이이치 감독, 니시다 나오미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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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갓파쿠"가 무엇인가 했네.

물의 정령을 "갓파"라 하고, 여기에 나오는 갓파의 이름이 "쿠"였다는.

무려 138분!!

상당히 길지만 스토리가 나쁘지는 않았고, 몇몇 그림도 근사해서 볼 만 했다.

 

코이치와 쿠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언덕과 그 배경이 된 하늘은 정말 근사했다.

간간히 칼라풀한 색깔을 언뜻언뜻 비치며 비구름 속에서 날다가 승천하는 용은 더욱

근사했다. 아름다웠다. 정말 용같았다.

동네 모습, 골목길, 개천, 강물 등의 그림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여기에 더해진 음악은 갓파 "쿠", 그 자체였다.

참으로 감미롭고, 부드럽고, 따뜻했다.

쿠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코이치의 마음은 아주 잘 표현되어서 나도 눈물을 찔끔였다.

음악이 더욱 그리 만든 듯 싶다.

 

재패니메이션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따돌림이던데, 여기서도 잠시 볼 수 있다.

따돌림이 아이들의 세계라고 이해하기엔 너무 마음 아프다.

 

물의 정령,

물의 정령이란 말이 주는 느낌은 참 깨끗하고 맑다. 정말 쿠 처럼.

우리네는 갓파같은 물의 정령이 있었을까?

물의 정령보다는 물귀신을 더 많이 들어본 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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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2disc)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 대원DVD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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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보고 선뜻 집어들 수 있었는데

스토리가 좀은 엉성한 듯해 하품을 몇 번 했다.

일본의 전래동요같은 노래는 그들에겐 상당히 추억거리이겠더라.

일본에서는 너구리가 사람으로 변신한다는구나.

나 어릴 적엔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한다했던 것 같은데.

어느 나라건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염려는 매한가지인가 보다.

이 만큼 많은 너구리를 어디서건 본 적이 없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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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us_fugit 2018-06-12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60년대 타마지구 타마뉴타운 개발 당시의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경각심을 느꼈어요. 좋아하는 작가 중에 ‘이노우에 히사시‘ 라는 반전주의 성향의 작가가 있어요. 이 애니메이션의 엔딩 크레딧에 이 작가의 이름에 ‘협력‘이라고 나와서 조금 이상했는데, 이노우에의 ‘책의 운명‘ 이라는 책을 보니 작가가 소설에 참고하려고 도쿄의 헌책방들에서 너구리에 관한 거의 모든 책을 사들였다고 해요. 당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너구리에 관한 문헌을 찾고 있었는데 헌책방을 둘러봐도 관련된 서적이 없었대요. 헌책방의 주인들이 ˝이노우에씨가 휩쓸고 가셨어요!˝라고 했대요. 그래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이노우에 히사시‘에게 너구리에 관한 고문서, 관련 서적을 빌려서 애니를 만들 때 참고했다고 하더라고요. 애니보다는 그 부분이 더 인상깊었고, 타마뉴타운이 후에 ‘귀를 기울이면‘의 배경이 된 것은 조금 아이러니했어요. :)

Grace 2018-06-13 09:51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폼포코의 배경이, 귀를 기울이면의 배경이기도 했군요.
저도 역시 폼포코, 이 애니보다는 코코로님의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어요.
더 해 주실 것은 없는지 초등생마냥 막 떼쓰고 싶다는.^^
이런 뒷이야기를 알려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참 좋아하는데 고인이 되셔서 슬펐어요.


Tempus_fugit 2018-06-13 20:26   좋아요 1 | URL
전 말재주 글재주도 없고, 아는 것도 단편적이에요^^;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좋아하시는군요! ‘반딧불의 묘‘ 로 여러 이견이 있지만 아시다시피 감독 자신은 일본 공산당 지지자 이기도 했고, 극우정당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본 헌법 개정을 끝까지 반대하기도 한 평화주의자였어요! 저도 다 재미있게 봤어요. :)

Grace 2018-06-14 22:12   좋아요 1 | URL
댓글이나 서재에 올리신 글들로 봐서는
아는 것도 복합적인 듯 하시고, 말재주, 글재주에 친절까지 겸비하신 듯 해서,
자기비하?에 해당하는 말씀은 겸손으로 간주해도 무방한 듯 싶네요.
<반딧불의 묘>는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저처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이 있으시니 참 좋아요.
코코로님 서재에 애니에 대한 평도 올리시면 어떨까요?^^


Tempus_fugit 2018-06-16 21:27   좋아요 1 | URL
몇 개 쓰지는 않았지만, 쓴 글을 보면 창피해서 매번 지우고싶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리뷰는 더더욱 못쓸 것 같아요. 다른 분들께 빗나간 정보를 줄 수도 있고요. Grace님의 리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딧불의 묘‘는 저도 너무 슬프게 봤습니다...

Grace 2018-06-18 11:30   좋아요 1 | URL
코코로님은 다른 분들을 위해 글을 올리시는가 봅니다.
좋은 일이에요. 저도 정말 그러고 싶은데, 그럴 역량이 없다 보니
저는 그저 절 위한 독후감을 쓸 뿐입니다. 읽은 책들을 잊지 않기 위해,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구절들을 후에 다시 쉽게 볼 수 있기 위해서 말이죠.
코코로님의 글들이 본인이 보기에는 창피할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상당히 유익하고, 읽는 재미가 여간하지 않으니
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혹여 빗나간 정보더라도, 그건 다음에 제가
바르게 알아지면 되는 일이라 괜찮지 싶어요.
그외 다른 재패니메이션들에 대해 코코로님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집니다. 친절에 감사드려요.^^



Tempus_fugit 2018-06-18 13:23   좋아요 1 | URL
책을 읽을 때 집에서 읽는 것과 도서관에서 읽는 그런 차이랄까요? 어느 곳이던 책은 본인 스스로가 읽는 것이지만, 알라딘 블로그에 하찮은 글을 쓸 때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주위가 조금은 신경 쓰이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더군다나 알라딘에서 구매를 할 때 누군가에게는 그 책과 연동된 알라딘에서 만들어준 알라딘 블로그와 알라딘 북플의 작은 리뷰와 별점 하나라도 고려될 수도 있으니까요. 직접 만져보고, 펼쳐보고, 들어보고, 한 다음에 구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댓글 같은 일상적인 교류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만, 리뷰는 집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구글 도큐먼트에 기록장을 만들어 독후감을 쓰고 있어요. 말씀 감사합니다. :-)

Grace 2018-06-18 14:54   좋아요 1 | URL
˝책을 읽을 때 집에서 읽는 것과 도서관에서 읽는 그런 차이˝,
아주 적절한 표현같아요.
진짜 그러네요. 저는 거의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읽고 있다 보니,
구매면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어요. 정말 사려 깊은 분이셔요.
아, 그럼 저는 어쩌죠? 저야말로 그렇다면 다른 분들에게 피해막심일지도
모를텐데 말입니다... 정말 난감해지는데요...^^

Tempus_fugit 2018-06-18 16:32   좋아요 1 | URL
피해 막심이라뇨~! 전.혀.요. 시즈쿠가 세이지에게서 자극을 받았던 것 같이. 때로는 도서관에서 타인의 읽는 모습이나 혹은 다른 것에 자극을 받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별점과 리뷰는 나쁜 게 아니라고 봐요,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인 것 같고, 제가 좀 더 단순하게 바라보면 해결될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 Grace님께서 리뷰와 독서기록을 올리셨기 때문에 이렇게 대화도 이루어지고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쓰신 리뷰의 분야도 다양해서 도움도 되고, 자극도 받고요. 그래서 전혀 걱정하실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제 댓글에 매번 친절하게 응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Grace 2018-06-18 21:00   좋아요 1 | URL
우와~ 그리 말씀해주시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ㅎㅎ
그리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면 소심해서 얼마간은 연연해 할 뻔 했군요.ㅎㅎ
저야말로 감사드려요. 친절한 분이십니다.
<친절>의 빛은 어떤 색깔일까가 문득 궁금해지는군요.^^
 
트라우마 사용설명서 -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크 엡스타인 지음, 이성동 옮김 / 불광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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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은 이 책의 내용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붓다와 트라우마"라 하는 편이 책의 내용을 추측하기가 훨씬 쉽지않을라?

또한 트라우마 극복의 예시를 붓다를 든다는 것은 중생인 우리에겐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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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머피 잠재의식의 힘
조셉 머피 지음, 김미옥 옮김 / 미래지식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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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your subconscious mind>

내 보기엔 결국 론다 번의 <secret >과 상통하는 것 같다.

자신을 믿어라.

의심없이 믿고 있는 자신을 믿는 것으로 나는 결론 내렸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정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듯이,

자신을 확고히 믿는다는 것은, 믿는다는 그것조차 없는 것이며,

그럼으로해서 우리의 잠재의식은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secret>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서양적인 자기계발서의 기본유형이며,

이러한 것들을 더욱 크게 아우르는 것이 법륜스님의 설법이 아닐까 싶다.

 

 

 

 

 

 

 

*당신의 전제가 올바르면 그 결론은 반드시 올바른 것이 됩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꼭 해답이 나온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바라고 있는 것을 부단히 잠재의식에

계속 보내면 급기야는 밤이 새고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어떤 젊은 남자가 소크라테스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지혜를 획득할 수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 그 젊은이의 머리를 물 속에 잡아넣고 그가 필사적으로 호흡하려 할 때까지 그의 머리를

누르고 있다가 힘을 빼고 머리를 놓았습니다.

"물에 머리를 넣고 있을 때 무엇이 가장 탐나던가?"

"공기였습니다."

"물에 머리를 담그고 있을 때 공기가 탐났을 정도로 지혜를 바란다면 군은 영지(英智)를 얻을

것입니다."

 

*공포는 당신의 마음속의 하나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나는 나이를 먹었다.'고 말하지 말고, '나는 하나님의 대생명이라고 하는 점에 관하여 현명

하다.'고 말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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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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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ge of access>

2000년도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과도 아주 잘 맞다.

엘빈 토플러보다는 제러미 리프킨을 권하다는 글을 읽었는데 정말 그렇더라.

엘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보다 훨씬 이해가 쉬웠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특히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에서는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던지

지금은 그 목차 하나하나가 다 전체 내용이 된다.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3. 무게 없는 경제

4. 지적 재산의 독점

5. 서비스 세상

6. 인간 관계의 상품화

7. 삶으로서의 접속

 

IT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이라 나는 우리나라가 꽤 발전된 선진국 대열에

속한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이 벌써 2000년도에 나온 것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Tedtalk에서 Pranav Mistry의 강의를 보고 얼마나 대단한 세상이 되어가는지를 실감했다.

그 강의도 벌써 9년 전의 일이니, 지금 내가 접속하고 있는 세상은 언제적 세상인 것일까?

나의 정보가 나의 몸에 그려지는 세상이라니!!!

Pranav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일까?

모든 편리함은 비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을 위한 것들이 된다면 세상은

그 어떤 편리함을 추구하더라도 문제 될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의 성과물이 장애인들을 위해 쓰여지면 좋겠다던 Pranav는 삼성에서 근무한다.

삼성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을까?

 

몇일 전 롯데리아를 들렀는데, 계산원이 없었다. 기계에서 터치로 주문하더라.

뭔가 섬찟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나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접속의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더이상 아날로그는

추억도 뭣도 아닌 것 같다.   

 

 

 

 

 

 

 

 

*정부와 문화 영역이 크게 축소되고 상업 영역만이 인간 생할의 으뜸가는 매개 고리로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문명이 살아남겠느냐

 

*세대 격차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경제적, 사회적 격차다. 세계인구의 1/5은 사이버스페이스

를 넘나들고 접속 관계를 즐기는 반면, 나머지 인구는 물질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격차도 크지만 연결된 사람과 연결되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더욱 크다.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면 자신을 상대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가령, 인텔 같은 회사는 한꺼번에 세 가지 종류의 차세대 칩을 개발한다. 한 칩을 생상하는

동안 2세대 칩은 제작 준비에 들어가고 3세대 칩은 한창 설계중이다.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한때 사유 재산 체제의 구심점이었고 건강한 자본주의 체제의 지표로

오랫동안 인식되었던 업무용 부동산이, 접속의 시대에는 적어도 일부 산업에서는 번영의

잣대가 될 수 없고 많은 경우 수익 창출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 부동산이 일부 업종에서는 짐이 되고 줄이거나 없애야 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리적 시장에기반을 둔 시대>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둥 시대>

로 변하는 추세의 중요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 영역이 날로 확대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부족한 것은 사람의 관심이지 물건이 아니다.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물건을

그냥 주는 것은 마케팅 전략으로 점점 각광을 받을 것이다. 고객의 관심이 계속 유지되느냐는

기업이 효과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상 만사가 서비스화된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상품을 교환하는 데 바탕을 둔 체제에서 경험

영역에 접속하는 데 바탕을 둔 체제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자본주의는 물질에서

출발했지만 물질성을 벗어던지고 점점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으로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고 있다. 그는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 세계 안에서 자기 몫의 인생을

즐기고 네트워크 경제가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물건을 쌓아두는데는 관심이 없지만

흥미롭고 신나는 체험에는 관심이 많고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고 가짜든 진짜든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현실에 자신의 인격을 재빨리 적응시킬 수 있다.

21세기이 주역으로 등장할 이 새로운 인간은 산업 시대를 살았던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부르주아 인간형과는 종자부터 완전히 다르다.

 

*근대의 핵심이 근면이라면 탈근대의 핵심은 휴희다. 노동을 중심으로 구축된 체제에서 생산은

운영의 지표가 되고 재산은 인간 노동의 결실을 의미한다. 유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는 공연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문화적 접속에 대한 상업적 접속이 인간 활동의 목표가

된다. 접속의 시대에는 물건을 만들고 재산을 교환하고 축적하는 것이 시나리오를 짜고

이야기를 만들고 환상에 젖는 것에 비해 부차적 지위밖에 못 누린다.

 

*세계를 연극무대로 보는 데 익숙한 새로운 시대의 남녀에게는 상업 세계가 제공하는 대본,

무대, 다른 배우, 청중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사는 것이 자신들이 거느리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격을 살찌우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기를 할 수 있고 변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인간 활동의 기초가 지리적 공간이었을 때에는 정부의 존재 이유가 분명했다. 하지만 경제

활동과 사회 활동이 점점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중요할까?

지리에 기반을 둔 항구적 공동체보다는 가상 세계 안에서 어울리면서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일시적 공동체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한 나라가 통합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조건으로 오래전부터 여겨져 온 땅과 국토에 대한 애정과 집단적 연대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접속의 시대는 인간이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지금 돈을 주고 접속하는 것의 대부분이 어라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짜로 접할 수 있었던

문화물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꾸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체험은 물론 그에 어울리는 문화적 치장과 복장까지도 구입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공공 생활은 상업공간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이것은 장기적으로 문명의

미래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문화 생산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문화 생산이 상업 영역에서 시작되는

법은 절대로 없다. 산업 생산이 자연에서 나는 원료에 의존하는 것처럼 문화 생산은 문화

영역이 제공하는  재료애 의존한다고 말 할 수 있다. (...) 언제까지나 시장을 위해 황금 달걀을

척척 낳아주는 문화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인간의 경험을 상업

영역이 근시안적 영리추구를 위해 착취하기만 하고 순환이나 재충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경제는 결국 문화 생산의 재료가 되는 인간 경험의 방대한 수원지를 잃게 될 것이다.

 

*산업 경제에서 놀이가 중요했던 것처럼 문화 경제에서는 놀이가 점점 중요해진다.

 

*자유에서 자율성을, 자율성에서 나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서 팔 수 있는 능력을 연상하면서

우리가 근대를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노동의 결실로 얻은 재산은 우리가 가진 자유의

징표로 여겨졌다. 우리가 소유한 것으로부터 남을 배제하는 권리는 우리의 자율성과 개인적

자유를 지키는 최선의 길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

다.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할 수 없는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성숙한 놀이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끌어 모은다. 그것은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섬세한

인간교류 형식이다. 성숙한 놀이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건 상업적 성격을 띠었건 제도화된

권력의 무분별한 횡포에 저항하는 힘이다.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도 지금 세대가 자연 경제와 인간

경제의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해 기울인 것과 똑같은 정성과 노력을 이 운동에 쏟아 부어야

한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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