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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을 팝니다 - 사회학자의 오롯한 일인 생활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책 표지의 5개의 예쁜 커피 잔이 저자와 무척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쩜 제목을 이렇게 잘 지었을까!
느낌을 팝니다, 느낌을 팝니다...
일본 제목은 <싱글의 오후에>라는데 이것보다는
<느낌을 팝니다>가 훨씬 매력적이고 독창적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읽고 싶은 강한 유혹이 느껴졌으니...
그녀가 말하는
해비타마 모나카를 검색해보고
미킬라 패트리의 리코더 연주도 들어보고
키스 제럿의 반주로 패트리의 연주도 들어본다.
이노우에 요스이의 노래도 들어보고
영화 <8월의 고래>도 다시 보았다.
이런 류의 책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무척 편안하고 재미있는 수필이다.
나도 세차하기 싫어서 비둘기색 차를 좋아하는데,
나도 혼자 있어도 하나도 외롭지 않은데,
그녀의 바흐가 있듯이 난 베토벤인데,
나도 "어째서 옛날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거죠?"인데,
나도 "혼자 있음의 평온함을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인데,
나도 주로 듣는 쪽인데,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중,
바다 한가운데서의 태풍과의 사투 장면을 보고
나도 저 태풍의 중심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는데(비록 태풍 트라우마가 내게 있지만)
태풍이 상륙하는 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그녀, 우에노.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그녀와 나의 생각을 견주어 보고
비슷한 부분이 나오면 그녀와 어쩐지 친구가 된 듯한 느낌이 들다가,
자동차 질주 본능 같은 대범함이나,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는 또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인 것도 같았다.
책 표지에 있는 다섯 개의 커피 잔에 따뜻한 커피나 우유를 붓고
그녀를 중심으로 나를 포함해서 어떤 여자 다섯 명이
도란도란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듣고 싶다. 더 많은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는 멋지다.
* 목소리는 어쩌면 그 사람의 인격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 부르고, 외치고, 속삭이고, 한숨을 내쉬고, 호흡하는 것, 생명의 가장 기본이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목소리다. 기적이 아닐 수 없다.
* 어른이 된 후 남자와 연애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약 당신이 나와 사귀면서 조금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당신을 만나기 전에 만났던 남자들에게 감사하도록 해. 그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니까...
*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태풍의 접근 예보를 들으면 가슴이 설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태풍 날에 방수 처리가 된 옷을 입고, 물이 불어난 가모가와를 일부러 보러 간 적이 있다 언제나 온화한 모습으로 흐르던 가모가와가 굉음을 내고 있었다. 탁류에 휩쓸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며 수위가 불어나는 둑 위에 선다. 언젠가는 고치 현의 무로토 곶에서 태풍이 상륙하는 것을 경험하고 싶다. 지바 현의 이누보 곶도 좋다. 어떤 기분이 들까. 이 꿈이 실현될 대쯤이면 아마 나이가 너무 들어 돌풍을 견디지 못하고 나뒹굴어 대퇴골 골절을 입고 말 것이다.
* 옛날에는 죽을 때도 혼자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자식, 손주, 친인척이 지키는 가운데 제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불현듯 도래한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오래 살면 살수록 주위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죽게 된다. 장수의 괴로움은 상실의 괴로움과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 '친구란 십 년 동안 만나지 않아도 마치 어제 헤어진 것처럼 재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십 년이나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십 년 동안 만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당신의 삶 속에 그 사람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당신이 그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 또한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소중히하고 싶은 관계라면 마땅히 관리가 필요하다.
*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도 직함이나 지위로는 잴 수 없는 그 사람의 모습, 행동, 말투, 움직이는 방식...... 결국 그 사람의 풍채가 그 사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그러한 풍채가 훌륭한 사람인 것이고, 다시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 역시 그런 좋은 느낌을 주는 이들이다.
*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이들은 자신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상 속의 자신과 현실 속의 자신 사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더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괴로워하지 않으려면 자아 이상의 기대치를 낮추면 되겠지만, 이 사람들은 너무 성실해서 그게 안 되는 것이리라. 나는 자아 이상이 높지 않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 세상과 남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덕에 뜻하지 않은 은혜를 입기도 한다. 남이 기대 이상으로 선의를 베풀어 주었을 때 느끼는 기쁨, 세상이 내 기대 이상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줄 때 느끼는 고마움. 세상은 나를 '공격적인 남성 혐오자'로 여기는 듯하지만 사실은 정 반대다.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관용적이며 성을 내는 일도 드물다. 왜냐하면 남자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게 잡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남자에게서는 기대 이상의 미덕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생각보다 살기 좋아져서 재미있다.
꿈꾸는 사람은 현실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한데 목숨만 부지할 수 있다면 뭐든지 오케이라는 생각을 가진 리얼리스트쪽이, 어쩌면 현실을 수용하는 폭이 더 넓은지도 모르겠다.
* "그때보다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이십년이나 고생해야 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고 식은 땀을 흘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철이 드는 것입니다. 어째서 옛날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거죠?" 방황과 후회로 가득한 세월과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옛날보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느끼게 되었다. 맞다. "어째서 옛날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거죠?"다.
* 젊었을 때부터 친구였던 사람들도 단순히 옛날부터 아는 사람이라서 친구인 것이 아니다. 인생의 고비 때마다 그 사람다운 선택을 거듭하면서 걸어온 궤적에 대해 존경과 공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정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 혼자 있음의 평온함을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고집불통 할머니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