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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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영희의 "대화"를 읽었을 때의 흥분과 감탄이 똑 같았다.

 

나는 시대정신이 없다. 이것은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닐란가...

 

리영희 교수는 그렇더라, 국내정세, 세계정세가 훤히 다 보이는 거더라. 그것을 나는 '지성'이라

 

이름하고, 나는 절대로 볼 수도, 보여지지도 않는, 느껴지지도 않는 그 지성적인 면에서는 늘

 

젬병임과 동시에, 그런 지성인에 대한 존경 내지는 무턱대고 우러러 봄이 아주 오래 전 부터 나의

 

근간에 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지성인이 부럽다. 내 자식 중에 한 명정도는 지성

 

인으로 자라기를 얼마나 기도 했었던가!

 

책이 너무 재미 있어서, 출판된지 20여년 된 책임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즐겁고 기쁘게 읽었

 

다. 오래 전 한 때,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때, 나는 무슨 삐딱함에서인지 외면 했다.

 

그 오래 전부터 베스트 셀러라는,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독차지하는 것들은 비단 책 뿐만

 

아니라 여러면에서 외면하게 되더라구. 서점에 들러서도 베스트셀러 코너보다는 다른 쪽을

 

기웃거렸던 것 같은데, 그 삐딱선이 어디서부터 출발 되었던 것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 것도

 

순전히 이 책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를 곰곰 생각해 보니 딱히 그것이네라고 짚어지는 원인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항시 '베스트'라 일컫는 것들에 대한 실망감을 많이 했던 탓이 아니었나 싶다. 책보다 나은

 

영화는 없었듯이, 제 아무리 영화가 재미 있어도 책을 능가하지는 못했던 실망감처럼...

 

그러나, 그러나 앞으로 나는 베스트 셀러라면 봐야 하겠구나라고 마음을 바꾼다.

 

책 앞 표지 뒷면에 그의 사진과 약력이 나온다. 그 첫 번째가,

 

"1947년 서울 출생. 경기중, 고 졸업" 이다.

 

47년에 고등학교 졸업이라면, 그럼 지금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는데...

 

다음 날 친구의 폰(난 아직 스마트 폰으로 바꾸질 못했다는)으로 검색해 보는데,

 

정치인 홍세화만 나오고 내가 찾고자 하는 홍세화는 없는거라! 아~~ 돌아가셨구나.....애재라...

 

다음 날 컴으로 다시 검색해 보니 그 정치인 홍세화가 내가 찾던 그 홍세화인거라!

 

책 표지에 있던 사진과는 모습이 너무 달라(세월이 많이 흐른게지) 미처 알아보질 못했던

 

것이며, 47년이 그의 졸업년도가 아니고 출생년도였던 것도 알게 되었다.

 

분명하게 표기해 두지 않은 책 편집인을 원망하며, 2002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오셨다니,

 

고국에 대한 그의 그리움을 읽었던 터라 참 잘 되었다는 안도감이 무척 날 기쁘게 했다.

 

그리고 살아 계시다는 것도!

 

프랑스, 괜히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또한

 

모두 사라졌다. 프랑스 영화는 볼 때마다 뭔가 찝찝했다. 결말이 확실하게 맺어지는 것도 없어서

 

보고 나면 찜찜한 것이 뭐 이래...라는 생각을 항시 했었는데...

 

"지구를 걷는 아이"에 보면 어린 아들이 옆방인가(아프리카 여행 중인가 그러하니 딱히 방이

 

라기보다는 커튼 뒤쯤 되겠지, 여튼), 가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부관계를 하는 부모의 이야기

 

를 읽고 프랑스 부모들은 우리와는 무척이나 맞지 않는 문화를 가졌구나 생각했고, 나와 맞지

 

않으니 프랑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는 것 같다.

 

"똘레랑스", 이것만으로 나는 몹시도 그 나라가 보고 싶어졌다.

 

"지성인"의 힘이란 이런 것이기에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는 이런 힘이 없다.

 

대학교때 몇 번의 시위를 보았다. 난 최루탄이 무섭고 경찰이 무섭고 그들의 폭력이 무서워

 

일찌감치 그 시위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에 바빴다.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던 어린 이승복을 안타깝게 가슴에 새기며 북한은, 빨갱이는, 간첩은

 

정말 괴물같은 무서운 존재여서 반드시 타도해야 한다라는 걸 머리 속에 넣어 둔, 철저하게

 

반공,방첩교육, 통일교육을 잘 받아 왔던  내가 그 시위에 동할리가 만무했다.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민족의 숙원이라 생각했고, 그런 숙원을 이루어 줄 사람은 훌륭

 

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 여겼다.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어린 여중생의 눈에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충격과 불안이었다.

 

나는 그런 시간을 살아 왔다. 반공, 통일 교육에 있어 한 번의 의심도 없이 말이다.

 

나라에서 그렇게 교육을 시켰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정립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꺼이 싸우는 그들과 나는 무엇이 다른걸까? 

 

망명생활이 어떤 것인지, 그 어려움과 고난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러면 그의 부인이

 

겪어야 하는 아픔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 감히 헤아려 보면서 왜 그는 그의 아내에 대한 언급은

 

전무한지 궁금하다.

 

 

 

 

 

 

 

 

*문제는, 우리들이 노동현장에 들어갈 때, 일생을 두고 그 현장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에

있다고 봐. 죽을 때까지 말이야. 바로 그것이 일반 노동자들의 실제 삶이거든. 우리는 현장에

들어가더라도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이 항상 열려 있지만 일반 노동자들에겐 그게 생존이 아닐까?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스며들자,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베르뜨랑은 그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원한 점

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 차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원한다는 사실이다.

(...)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가, 없는 사회인가의 차이로

구분하였다.

이렇게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선, 즉 설득하는 사회에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축출하지 않으며

깔보지 않는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않고 대신 까페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말이 많고 말의 수사

법을 중요시했다. 또 강요가 통하지 않으므로 편견이 설 자리가 없었다. 택시 운전사를 택시 운전

사로, 즉 그대로 인정했다. 이 말은 택시운전사인 내가 택시 운전을 잘못할 때는 손님의 지청구

를 들을 수 있으나 택시운전사라는 이유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우선 프랑스인을 비롯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길을 모르면 가만히 있지 당신처럼 "이 놈이 돌아

가고 있는 거 아냐"하는 의심은 커녕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아는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한 택시운전사에게 이곳 사람들은 당신처럼 불쾌

한 표정을 짓지 않으며 또 속으로 "이 놈이 돌아가네"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러이러한

길이 더 빠른 길 아니오?" 하고 떳떳이 말한다. 어감에서 불쾌함을 찾기 힘들다. 택시 운전사는

이에 대해 자기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설명한다. 역시 불쾌한 어감이 아니다. (...) 빠리에서

못된 택시운전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의심은 대개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근거없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미리 의심부터 하는 습관을 버리시라.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입니다. 흔히 말하듯 한국 사회가 정(情)이 흐르는 사회

라면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

똘레랑스란 첫째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합니다. (...) '당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이 존중 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남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하라.' 바로 이것이 똘레랑스의 출발점

입니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당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길 요구하고, 당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을 남에게 강제하는 행위에 반대합니다.

원래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은 설득에 의한 동의로 바뀔 수는 있어도 강제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어는 프랑스인이 우리 음식의 냄새를 맡고 당신에게 불쾌감을 표시하면 프랑스의 치즈도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곧바로 응수하면 됩니다. 그는 움츠러들어 슬그머니 물러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치즈의 냄새가 우리 음식 냄새보다 더 고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치즈가 다른 나라 사람에게 배척될 수 있다는 지적에 의하여

자기 것을 인정 받으려면 남의 것도 인정해야 하는 똘레랑스에서 벗어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

입니다.

 

*신앙의 힘은 무한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독선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신앙이 온유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극단화되고 또 광신으로 갈때 그 비이성적인 파괴력으로 인류에게 큰 재앙을 가져

왔습니다.

 

*또레랑스는 당신이 존중받기를 원하면 우선 남을 존중하며, 당신의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념

이 존중 받기를 원하면 우선 다은 사람의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며, 당신과 다른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며 그리고 당신과 다른 생활방식과 문화를 존중하라고

요구합니다. 한마디로 '당신 것'이 존중받으려면 '남의 것'부터 존중하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똘레랑스는 극단주의를 외면하며, 비타협보다 양보를, 처벌이나 축출보다 설득과 포용을, 홀로

서기보다 연재를 지지하며, 힘의 투쟁보다 대화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강제로

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합니다.

내가 처음에 한국 사회를 情의 사회라고들 한다고 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그 정이 지나쳐서일까요? 참견을 잘하고 강요하는 사회인 것도 같습니다. 나와 다른

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와 똑같이 되기를 요구합니다. 나와 똑같은 이념을 갖기를 강요

하며 나와 똑같은 신앙을 갖기를 강권합니다. 그리하여 그 요구에 순응하면 한편이 되고, 또 이

른바 '정'을 주기도 하지만 따라오지 않으면 바로 적대관계로 돌변합니다. 이와 같은 강요의 논

리가 권력수단과 함께 펼쳐질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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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 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
김남희.쓰지 신이치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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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도 그녀가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의 저자

 

라는 걸 몰랐다. 2006년, 산티아고에 대한 '~걷기여행2'를 읽고 얼마나 가고 싶은 욕망을 불태웠

 

던가! 김남희라는 작가보다는 산티아고라는 명칭만 가슴에 남았었던가 보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럽고 여자 혼자'라면 바로 내가 아니던가 하면서 나도 가 볼 수 있겠

 

구나라는 부푼 가능성을 주었던 책! 언제나 떠나고 싶지만 그놈의 '밤(night)'이 무서워 혼자는

 

엄두 조차 내지 못하는 나에게 언젠가는 가보리라라는 다짐을 넣어 준 책!

 

그로부터 언 십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막내가 드디어 고3, 내년엔 훌훌~~~훨훨~~~ 잘도 떠나

 

리라 했건만 그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시련은, 고통은, 언제까지 나를 잡아둘 요량일까?...

 

여행이라면 많든 적든 항상 돈이 필요하지 않나? 난 그들이 늘 얼마의 돈을 가지고 떠나는지

 

궁금하다. 그 여행에 든 비용도 알려주면 참고가 많이 될터이고, 나처럼 '떠나기'를 늘 '꿈'

 

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실현 가능성을 더 높여 줄지도 모르겠는데 늘 '비용'

 

은 책에서 빠져 있어 아쉽다.

 

쓰지 신이치 선생님과 같이 여행할 수 있는 그녀가 책을 읽는 내내 무척 부러웠다. 유명인이

 

되면 유명인을 만나기가 더욱 쉽다는 것을 본다.

 

쓰지 신이치 선생님은 한국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아는 것 같고, 한국에 대한 염려는 일본에

 

대한 그것과 같다는 것이 느껴지니 나도 일본을 여행하게 되면 그 나라를 편견없이 볼 수 있을

 

것 같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이치 선생님처럼!

 

제주도를 3번이나 가 보았지만 '4.3항쟁'은 몰랐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니

 

나의 얕았던 제주도 여행이 부끄럽다.  

 

4.3항쟁으로 인해 죽은 제주도 인구에 대한 이야기가 3번 나오는데, 한 번은 그 인구의 1/10 이

 

죽었다하고, 두 번은 1/3이 죽었다 한다. 원고를 한 번만 읽어 보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텐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ㅉㅉ... 

 

박범준, 장길연 부부의 이야기에서 롭상 람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삶은, 순수한 생각과 순수한 행동을 통해서 극치의 조화를 이루는 짝을 끌어당겨 함께 사는 것이다."

 

조화로운 부부야말로 최상의 삶일 것이며, 그들이 이끌어 낼 수 있는 행복은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차원일 것이라고 난 확신하고 싶다.

 

김남희, "~걷기 여행2"에서 그녀는 '도보 여행가'로 되어 있지만, 이 책에선 '여행작가'로 되어

 

있다. 여행작가, 여행작가... 너무 근사하고, 설레고, 부럽고......^^

 

이상하게도 이 책은 제목이 몇 번씩이나 떠오르질 않는다. 얄궂다. 제목 선정이 잘못 된건

아닐라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버릴 줄 알고, 포기할 줄 아는 마음이 우선이

아닐까. 이제 충분하다고 멈출 수 있는 마음, 나눌 줄 아는 마음도 행복의 조건이 아닐까. 질

높은 삶은 물질적 성공이 아니라 나눔에 의해 이루어진다.

 

*재일 조선인, 자이니치, 코리안 재패니즈, 그리고 조센징. (...) 그들은 여기 일본에 있으나

이곳에 속하지 않은 존재다. 한국과 일본 어느 곳도 조국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일본에 우리의 민족이, 우리의 동포가 아직도 이렇게 심각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식물을 기르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이었다. (...) 아무리 어려운

일도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난해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옥상텃밭을 가꾼

일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일이 이것이구나...라고 생각해 본다.)

 

*가와구치:때가 오길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길이 바로 생명의 길, 사람의 길, 그리고

              내가 나아갈 길이다 싶으면 그 길을 가면 됩니다. (...) 가족이라도 올바른 일을

              하겠다고 모두를 납득시키고 일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한

              거고, 이해해주기를 기다리다가는 제 인생이 끝나버릴 테니까요. 주어진 시간이

              정해진 게 삶이니 가족과 이웃이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해야죠. 남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묵묵히 옳은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누구나 바른길을 추구하기 때문에 깨닫기 마련입

             니다. 누가 이해해줘야 한다거나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못한다면 올바른 일을

             해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언가를 할 때면 프로처럼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필요 이상의 부담감

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취미 생활을 즐길 때도 장비나 복장도 프로처럼 갖춰야 폼이

난다고 믿고, 하지만 아마추어로 산다는 것, 그건 실수해도 괜찮고, 수준이 좀 떨어져도 아무

렇지 않은 게 아닐까. 내가 재밌으면 되는 것 아닐까. 아무추어의 힘 뺀 자세야말로 우리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 쓰지 신이치: 마당에는 솟대가 제멋대로 여기저기를 보고 서 있다. 솟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영어 표현으로 말하자면 'It made my day', 이렇다 할 까닭도 없이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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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2015-09-2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블로그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들러봅니다. 오는 10월, 2015 남양주 슬로라이프 국제대회가 개최되는데요, 국제컨퍼런에 `슬로라이프와 행복나눔`이라는 주제로 슬로라이프의 제창자 쓰지신이치 교수, 슬로운동 연설가인 칼 오너리, 슬로시티 창시자 파올로 사투르니니와 본책의 저자 김진세 박사 등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이 시대의 슬로문화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오시면 후회하지 않을 저희 컨퍼런스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참가비 무료,신청:남양주 슬로라이프국제대회 홈페이지[www.slowlifeplanet.org],Tel.031-590-5411)

Grace 2015-09-30 10:21   좋아요 0 | URL
참석하면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 마구마구 달려 가고 싶어요~~~
 
나공부 - 진짜 나를 찾는 5가지 질문
김윤나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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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3만원씩의 곗돈ㅎㅎ이 끝나는 날, 각자 10만원씩 나누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기로 했다.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그날 우리는 '달팽이'라는 북카페에 갑달의 권유로 들렀다.

 

'독립출판'물 위주의 책들이라나 뭐라나.. 뭔 책이 이렇게 없냐... 라는 실망감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다 내 눈이 딱 꽂히는 '중고책 반값'코너! 여기도 채 20여권이 될라나 말라나 여튼

 

그 중에서 일곱여덟권의 책을 샀다. 모두 26500원, 앗싸~ 신났다. 현달는 새책 두 권을 샀는데

 

3만원이 넘더라는!!! 아~ 책값이 너무 비싸진다. 책값은 딱 육칠천원 정도면 좋겠구만! 

 

그 와중에 빌려주는 책도 있더라. 이것이 그 책이다. '나공부'라는 단도직입적인 제목이 무척

 

웃겼고, 나보다 훨 젊어 보이는 작가 사진에 심심풀이로 읽어볼까 하고 빌리고자 했는데

 

계산하던 '달팽이' 주인님, 그냥 가져가라시네. 또 앗싸~

 

그런데 시답잖게 보았던 책이었는데 괜찮은거라.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때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던지는 "훌륭한 질문"이야말로

 

훌륭한 스승에게서 나오는구나를 알았는데, 이 책에서도 바로 그 '질문'의 중요성을 보게 된다.

 

심리학 분야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구체적으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워크북이 마음에 들었다. 나 혼자 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이 워크북을 해보면 더 재미있고

 

즐거울 것 같아서 곧 그렇게 해볼라고!

 

나는 --------------------------------사람입니다.

나는 --------------------------------때 기쁘다.

나는 --------------------------------때 만족스럽다.

나는---------------------------------에 관심이 많다.

나는---------------------------------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하고 싶다.

나는---------------------------------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는---------------------------------할 때 에너지가 올라간다.

나는---------------------------------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 등등

 

우리는 이렇게 구체적인 질문에 대답해 본적이 거의 없지 않나?

위에 한 줄만 적었지만 책에는 "나는 -------------- 사람이다"가 30번 정도 나온다.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 칸을 메우는 작업들이 신선하고 재미 있었다. 

 

갑달이는 그날  받은 10만원을 홀라당 다 책값으로 내었다. 집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는구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구입하는 걸 보면 사람은 다 다른거라!ㅎㅎ

쌓인 책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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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상 람파의 가르침
롭상 람파 지음, 이재원 옮김 / 정신세계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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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dream)은 어떤 것일까, 나는 꿈속의 그곳엔 어떻게 간 것일까, 꿈속의 그 환상적인

 

일들은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나는 아주 생생하게 그곳에 있는데 말이다...

 

꿈은 내겐 참 신기하고 야릇하고 요상한 것이었다.

 

각각의 종교에서 이르는 지옥이란 것도 충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신(神)들의 중심은 '사랑'

 

이거늘 왜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끔찍하게 괴롭힌단 말인가!

 

이 책은 일단 위의 두가지 나의 의문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화요일에 태어 난 롬파가(家)의 랍상은 이르기를 꿈이란 유체이탈의 하나라 말한다. 또한 그는

 

지옥이란 없다고 이른다. 결코 신들은 사람들이 지옥이란 곳에 떨어져서 고통받게 하지는 않는

 

다고 말한다. 신들은 사랑의 본질이 아닌가 말이다.

 

유체이탈, 텔레파시, 에테르, 오라... 내 어찌 이런 것에 관심이나 있었겠나!

 

책이란 이런 것이다.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은 미애는 이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며 아주 흥미롭게 이 책을

 

빌려 주었다.

 

믿거나 말거나는 본인의 일이고, 나는 무엇보다 그가 주장하는 순수한 영혼, 그가 말하는 황금룰,

 

곧 네가 대접 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하라는, 십일조로 베풀라는, 또한 모든 것은 단단한

 

믿음아래 열심히 연습하면 누구나 그가 말하는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그러한 그의 논리들이

 

무척 맘에 들었고 편안하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나는 티벳의 라마승이었다'가 유명세를 탈 때 나는 거의 흥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때 그 책을

 

읽어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영원한 당신', '인생의 제장들', '선인들의 지혜', 이렇게 세 책을 한 권으로 엮으니 p629에

 

달해 상당히 두껍다. 책을 보다 잠시 낮잠에 골아 떨어질 때 이 책은 그 두께로 인해 베개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 자고 일어나면 책의 내용이 내 머리속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을 것 같은

 

초딩적인 상상도 좋더라.

 

미달이 아니었으면 이런 부류의 책은 읽어 볼 엄두조차 안 내었을텐데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이

 

한 그득이다.

 

 

 

 

 

 

 

*도-빨강-태양,  레-주황-화성,  미-노랑-수성,  파-초록-토성,

  솔-파랑-목성,  라-남색-금성, 시-보라-달

 

*당신이 먼저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내어줌으로써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지 않는 한

뭔가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소용없는 것이다. 주는 것을 연습하라.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언제, 어떻게, 왜 주어야 하는지가 정해졌다면 그것을 석 달간 실천

해 보라. 당신은 석 달 후에 자신이 영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이득을 보게 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법칙을 공부하고 또 공부해 보지 않겠는가? 기억하라. "받으려면 주어야 한다.

대가 없이 베풀어야 한다."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그 이유는, 만약 우리가 저

세상의 즐거움을 기억해 낸다면 지상의 삶을 저버리고 행복을 찾아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실한 믿음만 있다면 종교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약속해 준다. 우리는 지상의 한계를

넘어선 후엔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같이 지낼 필요가 없다. 그땐 우리의 신경을

긁고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 사람들을 만난 필요가 없다. 그러니 종교를 기쁨으로 대하라.

진실한 종교는 기뻐할 수밖에 없는, 오직 기쁨의 대상일 뿐이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당신은 그것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진실성을 더욱 믿게 될것이다.

자칫하면 좁고 협소한 길 아래로 떨어져 지옥불과 저주에 둘러싸이게 된다고 위협하는 종교

들은 신도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 '영원한 저주'는 없다. 영적 세계에서는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추방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나쁜 사람일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

 

*당신이 설령 이번 기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너무 상심하진 말라. 당신은 곧 다른 기회를

얻을 것이다. 신은 가학적이지 않다. 신은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 움직

인다. 만약 신이 우리를 늘 감시하면서 갈가리 찢어서 굶주린 악마에게 던져 줄 기회만 노린다고

믿는다면 이는 신에 대한 커다란 불경이다. 신을 믿는다면 그의 자비로움도 믿으라. 왜냐하면

그런 믿음으로써 우리도 자비로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말해두건대 푼돈을 받고 운명을 점지하는 뒷골목의 '예언자'들에게는 예언 능력이 없다.

그 가난한 노파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돈을 벌 수가 없을 뿐이다. 아마도 예전에는 투시 능력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일을 상업적으로 지속할 수는 없다. (...) 돈을 주고 받는 행위만으로도

투시 능력이 이지러지기 때문이다. (...) 품성이 좋은 사람은 남의 생각을 아무 때나 읽어대지

않으며 품성이 나쁜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초자연적인 법칙이

다.

 

*꿈이란 유체계에서 일어나는 실제 경험이 왜곡된 것이다.

 

*성격을 밝게 유지하라. 그러면 건강이 좋아질 것이다.

 

*그러니 중도를 지킨다는 것은 '분별있는 길'을 택한다는 뜻이다. 즉 어떤 일을 달성하기에 필요

한 만큼 열심히 일하되, 그 이상으로 생명과 정력을 낭비하지는 않음을 일컫는다.

 

*실제로 만트라(진언)의 뜻은 중요하치 않은데, 왜냐하면 종교의 창시자들은 그 말을 반복할 때

생기는 진동이 잠재의식을 파고들어 원하는 바를 일깨우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지어냈기 때문

이다.

 

*요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 별 생각없이 하는 기도는 소용이 없다. (...) 당신의 머리를 쓰고, 마음

을 쓰고, 잠재의식의 탁월한 능력을 활용하라. 여기에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신성불가침의

단계가 있다. 먼저, 당신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정할 것.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입으로 되뇌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그려내야 한다. 당신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가? 많은 돈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차 또는 새로운 배우자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기술해야 한다. 그것을 머릿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영상화하고 그 영상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한다. 돈을 원한다면 아주 명확하게 그 액수를

기술하라. 분명한 금액이어야 한다. '대략 얼마쯤'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원하는 바를 결정 했다면 기도의 둘째 단계와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이미 '받으려면 주어야 한다'

는 이야기를 했다. 당신은 무엇을 줄 생각인가? 만일 일정한 금액의 돈을 구하는 중이라면

당신은 기꺼이 그중 10분의 1을 좋은 일에, 즉 십일조로 내놓을 것인가? 재산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흔쾌히 도울 용의가 있는가?

여기서 "그럼요, 그만한 돈을 받게 되면 당연히 10분의 1을 내지요"하고 말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당신은 받기 전에 돕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먼저 상대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태도다. 반복하지만 당신의 태도는 명확해야 하고 절대적으로 정확해야

한다.

셋째 단계는 '언제'를 정하는 것이다. 당신은 '언제' 이러한 돈, 자동차, 또는 새로운 배우자를

원하는가? '막연한 미래의 언젠가'라는 대답은 불충분하다. 또한 '지금 당장'이라는 대답도 어불

성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깨뜨릴 수 없는 물리적 법칙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짠 하고 신이

나타나서 당신의 양손에 금덩어리를 떨궈주는 일은 없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그 대가로 당신

의 발가락 몇 개라도 짓뭉갤 것이다.

넷쩨 단계로, 당신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작정인가?

다섯째 단계로, 우리는 글로 쓰인 문자가 입으로 하는 말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말과 글은 상호보완적인 도구지만, 기도를 할 때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적어두도록 하라.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라. 당신은 원하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최대한 단순하고 명료하게 적었으면 '나는 받기 위해 먼저 주려 한다.'는 말로 끝을 맺으라.

이제 그 글을 매일 세 번씩, 큰 소리로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라.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의념이

잠재의식 속으로 주입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죄를 범한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우리가 해를 끼친 이들에

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늘 기억하라. 좋은 카르마를 낳는 확실한 길은, 바로 우리 자신이 대접

받기 바라는 대로 남들을 대접하는 것이다.

 

*병자들을 참을성 있게 대하라. 그는 당신이 잘 모르는 많은 문제를 떠안고 있을 수 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라. 그는 건강한 당신보다 훨씬 더 진화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니

병자를 돌보는 것이 실은 당신 자신에게 실로 엄청나게 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육식이라는 주게를 논하다 보니 살생이라는 개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곤충일지라도 죽여

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 생명이 있는 것은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말라리아를 감염시킬 위험이 있는 모기를 죽이는 게 과연 중한 죄인지, 바이러스 예방주

사를 맞는 것이 생명에 대한 범죄인지 우리는 의아하기만 하다. 세균과 바이러스도 생명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결핵균과 암세포를 죽이는 일도 정의롭지 못하니 중단되어야만 하는가?

감기를 치료하겠다는 것도 커다란 죄가 되는가? 병을 치료하고자 할 때, 분명 우리는 어떤 식으

로든 살생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 모든 일에 대해 합리적이어야 한다.

 

*하스타 라 비스타(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어요)

 

*우리가 이 지상에서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삶은, 순수한 생각과 순수한 행동을 통해서 극치의

조화를 이루는 짝을 끌어당겨 함께 사는 것이다.

 

*치유할 부위로 왼손을 가져가라. 엄지와 검지만으로 그 부위의 피부를 단단히 쥐라. 숨을 한껏

내쉬고 호흡을 멈추라. 그리고 호흡을 멈추고 있는 동안 손가락 끝에서 생명력이 흘러나와 그

부위로 스며든다고 상상하라. 더 이상 숨을 참기가 어려워지면,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소흡을 안정시키라.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라. 반복할 때마다 엄지와

검지가 치유할 부위를 최소 2분 이상 붙들고 있도록 하라.

 

*사람들은 보통 불교를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는 삶의 길, 삶의 규칙, 삶의 태도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사람들이 남에게 영향을 주려고 애쓰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 삶과 영성의 길에 대한 개인

의 선택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 자기 의지에 반해 특정한 길을 선택하

도록 남을 강요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할당된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지상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는 살아

야 할 날들이 정해져 있다.

 

*생각건대 악마가 없다면 신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마땅히 부정적

인 즉면도 있어야 옳다. 긍정적인 측면만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식단은 그저 상식적으로 꾸려가면 충분하다. 과식하지 말고, 정신을 취하게 하는 것을 피하라.

왜냐하면 취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 영혼의 집을 속되게 하고 유체를 육체로 부터 몰아내게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기에는 정의와 선이 우세하나 세월이 지나면서 악의 힘이 늘고 악행이 증가한다.

현재 우리는 네 번째 주기인 칼리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이 사악한 시대라는 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지금은 나쁜 의도를 가진 자들이 변함없이 힘을 갖고 배신이 성공하는 주기이다.

이 주기가 끝나면 세상은 다시 선이 주권을 갖는 새로운 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칼리의

시대에는 세상을 바르게 이끌 어떤 '구세주'가 필요하다. 이것은 불면의 법칙이다.

 

*팔정도는 절제된 품행으로써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팔정도는 삶의 법전이다.

팔정도는 흔히 종교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바른 생각의 소유자가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태도를 정리한 것이다. 십계명이 꼭 그르스도교의 전유물일 수만은 없는 것과도

같다. (팔정도(八正道): 바른 이해, 바른 동기,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삶, 바른 노력, 바른

지적 홛동, 바른 묵상)

 

*기도가 곧 진언이며, 진언이 곧 기도이다. 기도의 목적은 우리의 강력한 잠재의식을 일깨워

그 게으른 친구로 하여금 특정 부분을 열심히 자극하도록 하는 것이다.그래야 다른 사람이

해주기만 바라던 것들을 스스로 해낼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 흔히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힘을 위해서는 기도해도 결코 남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혼으로서는 배울 수 없는 교훈을 얻기 위해 육체를 부여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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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8-18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책을 읽으셨군요.
그리고 그 책에서 흐르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간추려 주셨네요.
꿈꾸는 대로, 곧 생각하는 대로 삶을 짓는 이야기를
모든 사람이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하루를 아름답게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는 늘 모두 다 알지만
언제나 모두 다 잊고 마는
`잊혀진 하느님`이로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잦습니다.
고맙습니다.

Grace 2015-08-19 10:21   좋아요 0 | URL
˝우리는 늘 모두 다 알지만 언제나 모두 다 잊고 마는 잊혀진 하느님...˝
정말 글을 잘~ 쓰십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만들 수 있는지,
읽는 순간 아~ 하는 동의의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아름다운 책이라 해 주시니, 또한 고맙다는 말씀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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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집 소파에 있던 이 책이 단박에 눈에 들어와 잽싸게 빌려왔다.

 

거푸 3번을 읽어 보지만 나의 마음 수련은 여전히 고되기만 하다.

 

일체유심은 알겠는데, 모든 것은 마음이 일으키는 것임을 알겠는데 왜 이렇게도 그 마음 닦는

 

일은 고되고 힘드는가!! 방법을 몰라서 일까? 끊임없이 마음수련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도 꾸준히 보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자리는 늘 한자리에 머물러 있다.

 

30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수련센터에 들어가기엔 그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기에 끝끝내

 

그런 곳엔 여태도 가보지 못하고 책만 잡고 있다가 이 책을 보니 정토회라도 다녀와야지 내가

 

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치인들과 함께이던 법륜스님을 TV에서 봤을 땐 그랬다. -스님인데...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그 일이 꼭 필요하셨던가 보다... 이렇게 생각이 달라진다.

 

스님의 상황은 같다. 나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지. 모두가 다 내 마음이 일으키는 것이다.

 

아~ 내 마음, 내 마음, 마음, 마음....   잘 쓰고 싶다.

 

 

 

 

 

 

* 자기에 대해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고치고 못 고치고, 많이 알고 조금 알고를 떠나서

일단 자기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중요해요. 틀렸을 때 틀린 줄 알아야 고필 기회가

있고 잘못했을 때 잘못한 줄 알아야 뉘우칠 기회가 있고 모를 때 모르는 줄 알아야 알 기회가

있습니다. 모르는 주제에 모르는 줄도 모르면 해결 방법이 없어요. 이것을 '부지'라고 합니다.

 

* 칭찬하는 소리에 속아서 붕 떴다가 거품이 빠지고 나면 땅에 떨어져서 허리 부러지는 거예요.

비난한다고 거기에 속아서 밤새 잠도 못 자고 괴로워하면 그것도 저만 손해지요. 각자 다 자기

식으로 생각하며 사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이예요.

 

* 죽비치고 참선 시작하면 마치는 죽비는 언제 치는지만 기다리고, 참선 끝나는 죽비 치면

밥 먹을 생각만 하고 이래서야 한 철 나고 두 철 나고 열 철, 백 철 나 봐야 아무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사법계(事法界)-다른 말로 하면 더러움에 물드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게으른 사람과 

있으면 더불어 게을러지고 욕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욕을 따라 배우고 도둑질하는 사람과

있으면 도독질하고 싸우는 사람과 있으면 싸우게 됩니다.

*이법계(理法界)-물들지 않으려고 이 더러운 세계를 멀리 떠나버리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담을 쌓고 깨끗한 세계에서만 노닐지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더러운 가운데 있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입이다.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걸레가 되어 더러움을 닦아내버립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렵혀 상대를 깨끗이 해버리지요.

 

*행복하려고 결혼 했다가 남편 혹은 아내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행복하려고 애를

낳았다가 자식 때문에 죽겠다고 울고, 돈 벌려고 사업을 벌였다가 사업이 망해서 죽겠다고

고함을 치면서 남에게 도와달라는 겁니다.

 

*어차피 결혼한 김에, 어차피 자긱 낳은 김에, 어치피 부도난 김에, 어차피 암에 걸린 김에,

어차피 늙은 김에 괴로워하지 말고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늙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병이 났을 때만 깨칠 수 있는, 이혼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배신 당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잘되었다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보면 잘못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자기 삶을 잘 살피며

살아가야 합니다. 깨달음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있습니다. 옛 선사들이 꼭 어디 산속에

가서 수행하다가 깨친 것만은 아니에요. 항상 자기 마음의 모순을 직시할 때 깨달음의 길이

열립니다. 그러니 밖을 보지 말고 안을 봐야 합니다.

 

*우리는 늘 현재의 자기 직분을 놓치고 삽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러 와 놓고는 남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러 왔는데 그걸 방임하는 사람도 있고, 도움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도와 준 사람들을 욕하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 왜, 이 세가지에 늘 깨어 있으

면 삶에 후회라는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나고 보면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그러니 옛 선사처럼 한번 해 보세요. '아무개야' 하고 자기 이름을 부르고 '네.'하고 대답하면서

'너 지금 깨어있니?'물어보세요. '예, 깨어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도록 늘 자기를 점검

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장마철에 비가 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비가 올 수밖에 없는 원리가 있죠. 댐이 무너지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원리가 있듯이 사람이 그렇게 할 때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이 있습니

다.

 

*우리 나름대로 잘한다고 한 행동의 결과가 대개는 원치 않는 쪽으로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괴롭지요. 그러나 지금 이렇게 살게 된 것은 모두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대로는 수년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어요. 누울 때는 눕는 게 더

나알 것 같아서 누웠고, 앉을 때는 앉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앉았고, 먹을 때는 먹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먹었고, 말 안 들을 때는 안 듣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안 들었고, 이렇게 다

순간순간은 자기 나름대로 잘한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거에요. 그래서 다른 누가 만든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만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말할 때 거짓말하고 싶어서 거짓말하진

않습니다. 그 순간은 거짓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 본래 그리 될 요인이 씨앗 속에 있었기 때문에 호박이 싹트고 참외가 싹트고 참깨가 싹

튼 것입니다. 남편을 잘못 만나서, 자식을 잘못 만나서, 친구를 잘못 만나서 이런다고 생각하지

만 사실은 자기 내면에 그렇게 싹이 틀 씨앗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에요.

 

*우리 모두는 이렇게 선택에 선택을 거듭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거에요. 이걸 자업자득이라고

합니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모두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이지요. 그런데 닥친 순간

에는 잘한다고 했지만 지난 뒤에 보면 잘못한 게 너무 많아요. 순간순간 잘했지만 지난 뒤에

다시 보면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다 싶지요.

왜 이럴까요? 세상을 바로 보고 사는 게 아니라 눈 감고 살기 때문이에요. 어리석어서 그렇습

니다. 잘못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들 순간순간은 나름대로 잘살았어요.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에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남은 커녕 자신의 아내나 남편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취향조차 존중하지 않

습니다. 오직 자기의 생각, 자기으 습관, 자기의 이념, 이것을 중심으로 놓고 다른 것을 용납하

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나고 짜등이 나고 상대가 미워지고 원망이 듭니다. 우리가 괴롭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자기만이 옳다는 뜻입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것만

내료놓으면 화날 일도 없고 짜등날 일도 없고 미원할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본래 청정한데 내가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결국은 미위하고 원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함부로 하고 학대하는데 누가 나를 좋아하겠습

니까? (...) 그래서 우리는 늘 정신차려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이것을 늘 살펴서 자기에게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천하만물이 본래 내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없어 한가한 게 아니라 일이 많은 가운데 한가하고, 인연을 다 끊어 버려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인연이 있는 가운데 자유로워야 합니다. 연꽃이 진흙탕 속에서 피지만 진흙에

물들지 낳듯이 우리도 온갖 혼잡함 가운데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연옆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은 연잎이 스스로 매끄럽기 때문이지요. 내가 걸림이 없다면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도 나는

걸릴 게 없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잘못 만나서, 아내를 잘못 만나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자식을 잘못 낳아서, 사장을

잘못 만나서 그렇다며 남을 원망하고 고치려 듭니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기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되는 부처님, 하느님, 산신님, 용왕님을 찯아가 어떻게 좀 해결해 달라고

매달립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니까 결국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몸부림 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운명론에 빠져, 신이 운명을 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신에게

죽기살기로 빌고 매달리지요. 인도에서는 이게 전생에 지은 업 탓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도사 저도사 찾아 다니며 자기 전생이 어떤지 알아보느라 분주합니다. 중국에서는 이게 다

사주팔자 탓이라면서 사주 보러 다니기 바쁩니다. 모두 원인을 엉뚱한 곳, 다시 말래 바깥에서

찾기 대문에 일어나는 현상들 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교훈을 얻으면 나에게

좋은 일이 되고, 원한에 사무쳐 괴로워한다면 인생의 큰 불행이 되지요.

인생을 살면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했던

게 내일 가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일이라 했던 게 내일 가면 좋은 일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의 일일 뿐이에요. 그것을 어떻게 자기의 삶에 유용하도록

만들어내느냐는 오직 본인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면 문제 해결이 참 쉽습니다. 그러나 상대에세 책임을 떠넘기면 해결책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내가 참여한 정토회가 내 사랑에 장애가 되고,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내 가고자 하는 길에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고, 내가 낳은 자식이 내 꿈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된다면 이것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모두가 자기에게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한 생각만 돌이키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는 끝나버립니다. 애초에 빌고 도움을 요청할 일이

없어져요. 그 다음부터는 하는 일마다 한가해집니다. 남 돕는 일밖에 할 일이 없거든요.

남을 도와야 한다는 게 아니라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다 남 돕는 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자기 할 일이 많은 사람은 제 일에 바빠 남을 데려와 자기 일을 시키지만 자기 할 일이 없는

사람은 결국 남의 일을 거들어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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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8-0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은 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요.
그러니, 마음을 내가 스스로 올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몸이 움직이도록 이끌 일을 마음에 제대로 품지 않으면
몸은 늘 힘들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모르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마음닦기란,
어떤 꿈을 마음에 품으면서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 하는가를
슬기롭게 깨닫는 길이에요.

Grace 2015-08-05 15:08   좋아요 0 | URL
˝마음닦기란
......슬기롭게 깨닫는 길이에요˝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좋겠습니다.

숲노래님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요?
고흥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모습 무척 인상적입니다.
애초에 고흥행을 결정하게 된 첫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늘 궁금했는데 오늘은 질문 할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