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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
배병삼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평점 :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의원이라 앉을 마땅한 자리조차도 없음은 물론이고,
겨우 구석진 바닥이라도 찾을라치면 또 한참을 대기해야하는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조차도 살뜰하게 만들어 준 것이 '신동아'라는 잡지였다.
이곳에서 '배 병삼'이란 이름을 보았고, '논어'를 보았다. 이후 한의원을 들어가면 일찌감치
신동아를 잡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는 나는 병원을 온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위해 오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하면서 긴 기다림의 시간에도 마냥 좋아라했다. 오히려 더 긴 시간을 기다리고
싶을지경이었으니, 책이 주는 즐거움은 매양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나를 붙들어 맨다.
나를 휘감던 배 병삼선생님의 그 글귀들에 반해서 그의 책 두 권을 구입했다.
이런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말투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걸음걸이에, 어떤 미소를
지을까? 표지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미소는 부드럽기 그지없다. 그의 글들처럼.
총 3부로 나누어져있다. 1, 2부에서는 흡사 나의 생각들을 누군가 아주 근사하고 조리있게
적어둔 것 같아서 연신 '아~'라는 감탄사와 함께 동의의 끄덕임을 거듭했었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그 오랜 시절들을 그리워하는 속내를 보았고, 맑은 물이 개천을 흐를적의
그 달디 단 공기를 아쉬워하고 있었다. 나의 그리움보다는 더욱 깊고, 푸르렀으며, 설득력있었다.
'고향의 상실'은 하나하나가 다 내것이었다.
헌데, ㅋㅋ3부, 고전의 주변으로 넘어가니 웬걸!!! 내용을 못따라가겠는거다.
어떤 문장은 무슨 말인지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는거였다.
'고전이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에 대한 '원형적 시각'을 글로 펼친 것이기 때문이다....'
'유교는 수식어가 되기에는 너무나 본질적이고, 존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유교가
자본주의를 수식해야 한다면, 그 유교는 둘로 나눠서 봐야 하리라. '논어'적 맥락에서라면
유교는 '신뢰성'과 항등호를 그릴 것이다.......'
이런 식의 글들이 3부를 차지하고 있다. 원형적 시각이란 어떤 것일까? 유교가 자본주의를
수식하다니. 논어적 맥락이란 또 뭐란 말인가?
지금 내가 배병삼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모든 것이 배움이고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의 수업이란 또 얼마나 가치있는 일이겠는가!
사람은 거꾸로 산다면 참 좋을텐데... 노년부터 시작해서 어린이로 돌아가 죽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수있을텐가 말이다.
한의원 '신동아'잡지에서 '송창식'을 보았다. 그 또한 기인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며 몇장의 인터뷰
내용을 읽었는데 어느날 티비에 그의 모습이 잠깐 보이는 거다. 'Una fortiva lagrima'를 부르는데
숨이 막히는거였다. 아웃 라이어, 그는 아웃 라이어였다. 빙빙 돌며 걷는데 1만 시간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가슴뛰는 일을 해라 라는 의미가 어렴풋이 알것도 같다.
돈을 벌기위해 나의 재능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했던가! 내 가슴을 뛰게 할 수 있다면
돈은 없어도 좋다 했던가! 나는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하지만 월급날 통장 확인도 해보지 않았으며,
나는 돈을 벌기위해 일을 하지만 그 돈으로 인한 목표도 없었다. 내 가슴 벌렁이게 만드는 일을
잡고 있지만 욕심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돈이 없어도 좋다도 아니다.
살때는 가슴 뻐근하게 전력을 기울여 살아라던 법정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새겨볼 일이다. 나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곰곰 헤아려 볼일이다.
박완서 별세...란 뉴스에 또 목이 컥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