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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 스티븐 투겔 밀스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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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침팬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분 좋은 책이다 .
인간이 다른 영장류와 구분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깊이 고민하게 함으로써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 < 퍼블리셔스 위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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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작가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ㅡ라는 소설집을 보면 ' 동물원의 연인 ' 이란 단편이 있다 . 여친이 생기면 김밥을 싸서 소풍이란 걸 가보고 싶던 한 남자의 소박한 로망이 , 소풍 장소가 한적한 동물원이 되면서 , 소박+ 로망이란 이 어색한 언어 조합처럼 가난한 동물원의 재정 탓에 동물들의 굶주림을 목격하면서 비극이 되고 , 영화처럼 우아한 피크닉과 로망에 맞는 장소는 애초에 한적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한편의 블랙 코미디처럼 다룬 얘기다 .
미술관 옆 동물원이 왜 미술관 옆 동물원인지 , 동시에 깨달은 때도 이 책 때문이었다 . 부의 옆에 있어야 , 곁 불이라도 쬔다는 말이 아닐까 ... 하는 , 단순한 호기심이나 변덕에 의해 그것들은 거기에 나란히 놓인게 아니었구나 하고 ...
버려진 말이나 , 곰이나 , 호랑이나 , 호사가의 취미로 들어왔다가 변덕에 버려져도 또 가는 곳 역시 비슷한 부의 공간인 곳이 대부분 일 것이다 . 동물원은 아마 가장 마지막에 버려진 동물들이 가는 곳일지도 모른다 . 물론 이건 위험한 추측에 지나지 않는 다 . 부러 누군가 동물들을 잡아서 사람들에게 순수하게 구경시킬 목적으로 우리에 가둔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게 더 이해가 안가는 쪽이니까 .
사람들이 흔히 그런다 . 고향이 따로 있나 . 정붙이고 살면 고향이지 . 하면서 오래전에 태어난 사람일 수록 자신이 탯줄을 묻은 땅을 잊지 못한다 . 마치 유전자에 그 고향의 유전자를 새겨 나오기라도 한 냥 . 그말은 , 태어나서 유년을 보낸 기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의 다른 증명이 아닌가 한다 . 물론 현대의 고향 개념은 모두가 병원이 되버려서 의미가 없지만 ,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고향이나 집 , 주소지에서 나고 자란 기억을 가진 사람은 이 침팬지와의 대화가 주는 손짓의 의미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넘어 슬픈 몸짓이란 것을 , 이해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
우리가 살면서 바라는 건 사실 그리 큰 것들이 아닐게다 . 시쳇말로 맘이 맞는 좋은 반려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 그 이전에 연애다운 연애 한번 해보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발등의 불인 경우가 더 많다 . 눈 앞 현실에 급급해 공부에 떠밀리고 , 미래에 떠밀리고 , 좀 더 나중으로 미루고 사는 게 얼마나 많은가 .
그러다보니 자기 현실에 치여 더 먼 것들의 일은 , 하다못해 동네고양이가 죽어나가는 일이나 , 유기견들이 죽어나가는 일에도 무감각해진다 .
사람도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고 사는 세상인데 , 동물 늬들이 뭐라고 ! 안방까지 들어오고 난리야 ! 하는 강팍한 마음 .
그런 마음은 사람 사이에서도 선을 긋는다 . 매일 신문 기사에 독거 노인이 부양 가족이 없음에도 가족부란에 자식이 있어서 정부의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에 , 벌 떼처럼 몰려들어 쓰인 댓글을 보면 다문화지원이 문제라는 말 일색이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 독거 노인 문제에 다문화가족 지원책이 문제라니 , 사람살이의 문제에도 이런데 하물며 동물 윤리의 문제라 ... 바로 감동이 올까 ?
헌데 , 가장 먼 것은 때로 가장 가까운 것이기도 하고 , 혐오의 대상은 바로 내 안의 것이기 쉽다 . 오늘 한 이웃님의 리뷰를 보다 보니 해골바가지의 물을 먹은 원효대사의 일화와 함께 더러움과 깨끗함이 둘이 아님을 깨우친 얘기가 있어 한참을 들여다 봤다 .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건 , 사고하기 때문이라고 데카르트가 말한다 . 그런데 이 사고의 소통과 해석을 인류끼리 하니 그런 오해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라 . 침팬지 워쇼는 수화를 배우고 사람과도 소통을 하며 , 자손에게 수화를 가르치기도 한다 . 아마 워쇼의 자손들은 그것이 자신들만의 언어인 줄 알거다 . 인간과 합작해 만든 언어인 줄 모르고 , 더 나아가 원래 그들은 나름의 체계에서 소통하던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 돌고래처럼 .
늦은 밤 한 동네에 개 한마리가 짖으면 연달아 개들이 울곤 했다 .
그 뭔지 모를 신호가 다음 날 경사일지 애사일지는 인간의 귀는 모른다 . 다만 예감이 있을 뿐이다 . 저 울음 뒤에 무시해선 안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인간들의 오랜 선경험이 낳은 지혜로운 예감 말이다 .
그 예감이 말한다 . 지금 , 이 책에서 나누는 로저와 워쇼의 손짓을 무시해선 안된다고 , 그 먼 경종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 않느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