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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리셋을 넘어서
ㅡ1장 , 다시 존엄과 안전에 대하여
[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우다
]
불에 데는 경험을 통해 ' 다음 '을 배운 것이다 . 그 ' 다음 ' 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삶은 우연에 맡겨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 . 배움을 통해 인간은 예상되는 위험인자를 통제하고 그 통제를
통해 안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안전이란 이처럼 소극적인 게 아니라 적극적인 것이다 . *
삶이 곧 배움이고 배움이 곧 경험의 연속이라면 ,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는 삶은 이미 죽은 삶이다 . 이번 경험을 통한 배움이 다음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 다음에도 다시 전적으로 우연이나 운에 맡겨질 수 밖에 없다
. 이런 삶은 우연히 살아있는 삶이다 .
요행수를 통해서는 삶을 도모할 수가 없다 .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는
삶은 삶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끔찍한 삶이다 .
ㅡ본문 154 쪽에서 ㅡ
여기서는 우연의 삶에 대해 메르스 사태와 정부 대처를 놓고 이야길 풀어
나간다 . 오랜 세월 과학과 의학 그리고 통계를 쌓으며 다음을 준비 할 수 있게 발전 했음에도 , 작금의 정부와 더 큰 카테고리의 개념으로 보는
세상은 전혀 , 혹은 제외된 안전을 해택처럼 일부만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실과 상처로 또 배운다 "
배움이야말로 , 살아있는 가치라면서 그에 배치되는 사건과 사연이 도처에 있는
우리를 , 만화경처럼 들여다 보게 하는 부분 ...
ㅡ
"흘러간 시간은 다만 공간이며 흐르는 시간이 진정한
시간"
이라는 베르그송의 말에 동의 한다면,
진정한 시간조차 각성치 못한 상태에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믿을수
있으랴.
나는 어느덧 삶을 비극의 본질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졌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나의 실체만 남고 나의 정신은 이미 나로부터 떠난
후였다.
나는 때때로 자살을 생각해 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죽음]의 선택이 [자유]스러운만큼 그
[결단]에는
단순한 [사고]를 요청하지 않았다......
삶답지 못한 생존의 늪을 허우적 거릴때,
만해의 님처럼 기다린 건 도요새 였다.
김원일 작가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 중에서-
(yuelb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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