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준열의 시대 - 박인환 全시집
박인환 지음, 민윤기 엮음, 이충재 해설 / 스타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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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옛날의 사람들에게

ㅡ물고 작가 추도회의 밤에 ㅡ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불행하였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즐거운 말이 없었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사랑해 주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

나라가 해방이 되고
하늘에 자유의 깃발이 퍼덕거릴 때
당신들은
오랜 고난과 압박의 병균에
몸을 좀 먹혀
진실한 이야기도
사랑의 노래도 잊어버리고
옛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

나는 지금 당신들이 죽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
당신들의 호흡이 지금 끊어졌다 해도
거룩한 정신과
그 예술의 금자탑은
밤낮으로 나를 가로막고 있으며
내 마음이 서운 할 때에
나는 당신들이 만든 문화의 화단 속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당신들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푸른 '시그널'
우리는 그 불빛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당신들의 유지를 받들어 가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당신들이여
가난과 고통과 멸시를 무릅쓰면서
당신들의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

승리가 온 것인지
패배가 온 것인지
그것은 오직 미래만이 알며
남아있는 우리들은
못 잊는 이름이기에
당신들 우리 묺하의 선구자들을
이 한자리에 모셨습니다 .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불행하였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즐거운 말이 없었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사랑해 주던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

허나 지금
당신들은 불행하지 않으며
우리의 말은 빛나며
오늘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당신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

*박인환 시인이 작고하기 3일전 '자유문협'주최 '물고 작가 추모제'때
낭독되기 위해 쓴 작품 . 이 추모제가 열리기 전 세상을 떠나 유작이 되
고 말았다.
p.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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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물러나 있는 지금의 날을,
이날을 위해 쓴 듯 하지 않은가
시간은 흘러가도 과거의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듯이
그도 그리워져 하길
바라 마지 않았을 애가
고스란히 도돌이표로 그에게 들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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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2-18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의도하지 않았지만 박인환 시인 자신에게 바치는 독백시가 되었군요...

[그장소] 2016-12-18 06:56   좋아요 1 | URL
네에ㅡ 나는 죽어서 당신들이 이 노래를 ...
같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