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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시집 ㅣ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개도 안 짖는다
ㅡ김용택
무엇인가를 잘못 눌러
써놓은 시들이 다 날아갔다 .
머릿속이 하얘졌다 .
며칠 후 세편이 돌아왔다 .
한편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고
두편은 뭐가 불편한지
자꾸 밖을 내다본다 .
돌아오지 않은 몇편 중에
어떤 시는 눈썹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시는 아랫입술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떤 시는 귓불 밑 까만 점이 생각난다 . 언젠가는
그것들이 모습을 갖추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
개의치 않겠다 .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이웃집 개도 안 짖었다 .
58/158
울고 들어온 너에게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들었다 놨다 되작거
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
7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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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노벨문학상후보자로 번번히 물망에 오르고 있는 그를 흐뭇하게 보지만 , 한때 나는 하루키의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
아니 제법 오래 걸렸다라고 하는게 맞는 표현일게다 . 상실의 시대는 나와 맞질 않았다 . 십여년이 지나 누군가 단편이나 에세이로 다시 시작해보란 얘기에 시작을 했고, "여자없는 남자들"을 만난 나는 꽤나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다 .
그간 밀리고 쌓인게 얼마나 많을 것인지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여기서 간단히만 전하고 픈 건 , "도쿄기담집"을 통해 만나게 된 <우연한 여행자> 속 이야기로 피아노 조율사로 나오는 남자의 경험담인데 , 어느 날 맘에 드는 카페를 발견한 그가 화요일 마다 그곳에가서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읽다 같은 책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이여자의 호감을 받게된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피아노조율사는 게이였고 그 때문에 오래도록 집안과 인연을 멀리한 채였다가 이 여자의 귓불에 난 점이 기억나면서 누나를 떠올리게된다 . 그리곤 전화를 걸고 누나와 안부를 주고 받다 누나가 갑자기 그 여자처럼 울음 섞인 목소리란걸 눈치채고 유방암으로 곧 입원한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 이 이상한 우연은 그 여자도 유방암일지 모른다고 두려워한 부분은 물론이고 디킨스도 그렇고 , 암튼 다행히 누이가 혼자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는데 있다 .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 어쩌면 한번 쓴 시도 잃어버린 시도 , 다시 기억해내 써봐도 이전의 시와 완전히 같더라도 한번 잃었던 것이라서 어쩐지 돌아온 후에는 뭔가 변한 기분이 느껴지는 때가 있지 않던가 , 저 글 속의 남자도 멀어졌을 당시의 동생이나 다시 돌아간 이후의 동생이나 똑같지만 , 받아들이는 가족은 그 이해가 달라져 있듯이 ...
어릴 적 어느 저물 녘에 까무룩 잠이들어 깨었다가 까닭모를 서러움에 울어버린 적이 있다 . 아랫목에 손을 덮혀 두었다가 얼굴을 감싸주는 이가 아버지일 것 같다고 이제야 제목을 제대로 본다 .
울고 들어온 너에게 , 는 어딘가에서 잔뜩 찬바람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는 가족에게 하는 말이로구나 ...하고 , 가슴 저미는 사랑의 슬픔을 말하는 시가 아니었다고,
(yuelb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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