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들어가니 한 반에 선화라는 이름은 두어명씩 있어서
선생님마다 1 . 2 많게는 3 까지 혹은 A B C 가 될 때도 있던 이름 였었다 . 미선이와 선화 , 은주 같은 이름은 유행처럼 꼭 있었다
.
대게 그 이름의 주인들은 이름이 불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 예뻤는데 그 자신들은 자신이 그만큼 예쁘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 그와 비슷하달까 나역시 내 이름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이름에 한자가 계집아이 희 를 쓰는 것이 너무 못마땅 해서였다.
밝을 희도 있고 , 지으려면 많을 텐데 ㅡ희가 돌림자라 여,남 모두 희 자돌림을 쓴다ㅡ 왜 하필 계집 희, 냐고... 어릴 적부터
엄마는 차별이 무척 심했던 사람이어서 나는 상처를 많이도 받았었고 , 더구나 이웃에
있던 큰 집의 증조할머니께서도 호랑이같은 분이라
계집애가 아침부터 눈에 띄면 재수없다고 얼마나 길길이 날뛰셨는지... 이건 6살 이전 의 기억들이다 . 외가라고 다르지 않았다 .
계집애라고 그나마 예뻐해준 사람은 막내이모 한 분 뿐이고 아주 까마득한 기억 속 일이다 .
그런 얘길 하면 엄마는 깜짝 놀라곤 한다 .
넌 참 별걸 다 기억한다고 엄마는 엄마가 고생한 것만 기억하듯이 나역시 그런게 아닐까 . 내 편은 그저 아버지 뿐이었다 . 아마
그래서 어쩜 엄마 눈 밖에 더 난걸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
아들과 며느리가 사이가 좋은게 못마땅 한 고약한 시어머니같이 ,
질투를 하고 이간질을 하는 시어른들
같이.
착하기만하고 유약한 가장은 아내를 그런 어머니에게서 지키지 못한다 . 자신의 어머니 역시나 아내와 같은 처지이면서 더 구박하고
못된 악담을 퍼붓다 못해 아내에게 남편이 손찌검을 하게 하며 그 원흉이 모두 그 아내가 낳은 허물 있는 딸 때문이라고 할때 ...
아 , 그나마 나는 손가락 발가락 정상에 보이는 곳에 큰 허물이 없음을 감사했는데 그럼에도 엄마는 불행해 했다는 것 이 못내 맘이
아팠다 .
선화는 결국 이름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지키며 자신을 똑바로 보며 살거라는 생각을 한다 . 불행했으나 그
시기들은 꽃들이 더 정갈해 지기위한 손질의 시간였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 이름처럼 고운 꽃을 담는 사람이 될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해지는 소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