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랑집

백 석 시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山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즘생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즘생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멫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엔 섬돌 아래 승냥이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 山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녯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께에 넣어 대감
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달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 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 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산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멫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어 하로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p. 32 ,33 ,34 : 고어 해석까지
<제 1부 사슴 > 백 석 시 정본 ㅡ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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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나 그런 고개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가 하고
풀썩 웃었다.
국민학교 입학하고 2학년 때 였나 ,
같은 반 남자애가 현산에 살았는데
그 마을을 가려면 길고 큰 내도 지나야 했지만
뭣보다 무서운건 가파른 언덕 ..
아니 산 꼭대기를 하나 꼴깍 넘어가야 한단 것
그 꼭대기 즈음엔 신기하게 아래를 굽어보는
널따란 묘지가 있어서 또, 키가 매우 크고
깊은 전나무숲 터를 지나쳐야 했으니
한 날 구구단 숙제를 안 가져온 남자애는
그 언덕길은 혼자는 못 간다며
울먹이며 말하다 오줌을 쌌다.
그 애는 우리와 내내 6년을 한 반으로 지내고
우리반에서 가장 키가크고 힘이 센 아이였었다.
아직도 승냥이가 나오고 , 무서운 산적도 나와
혼자 못 건너간단 그런 이야길 들을라 치면
누런 코를 옷 소매에 스윽 닥으며 울던 그 애가
생각나고 만다.
지금 그 현산은 한없이 지대가 낮아져
까마득하던 깊은 숲을 품었던 산길은 간데 없다.
그 길엔 더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가즈랑집은 그 길에 없었어도 상엿집은 있었다.
그 상여막은 오래 오래 그 곳에 있으려니 했는데
지금은 역시 터만 남았다.
백석의 시를 읽는 밤 ㅡ
친구들 생각에 덜 익은 버찌가 문득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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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1 0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백석 시에 대한 사전이 있군요.

[그장소] 2016-02-21 00:09   좋아요 1 | URL
이 정본 백석 시집 ㅡ문학동네 ㅡ버전엔
고어 ㅡ들 ㅡ이나 옛 방언을 달아두어서
이해를 돕고 있어요.
아주 어려운 말이 아니고는 대게 알겠더라는..
지방언어에 영 맥을 못추는 저인데,
(사투리분간을 못해서-경상도, 전라도 등을 듣고 알아내지 못함)이상하게 고어나 옛 방언은 그 의미를 미루어 짐작하는데 무리가
없다는게 ..제 스스로로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