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아버지는 늘 시를 받아 적어라, 주문하셨더랬다. 알길없는 읊조림의 순간을 빠르게 잡아내는 일은 늘 곤욕이었다.권여선의 소설이 기억을 환기시킬때마다 울음이 그리움처럼 솟아나 괴로웠다


 

"어머니 그 긴 시좀 외워주세요."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우리는 어머니에게 시심을 배급해 달라고 졸

랐다.

"얘들은 잠안자고 맨날 무슨 시를 외어달래?"

   어머니는 짐짓 이렇게 말하지만 결국 우리의 요청에 못 이기는 체하

고 본격적인 운동을 하기 전에 몸을 풀듯이 장시를 외우기 위한 준비운

동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시

낭송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심호흠을하고 조용히 시를 읊

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시를 외우는 음조는 아주 특이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면 바다는 더욱더 광폭해지다."

어머니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 쉬는 것으로 행을 분절했다.

"나 홀로 바닷가에 앉아서 춤추는 하얀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

  나는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시구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그림으로 만

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어둠이 내린 바닷가에 하얀 물거품

들...... 어쩐지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 가슴 파도와 같이 부풀어올라 깊은 향수가 내 맘을 사로

잡도다."

   어머니는 내 두려움을 가라앉히려는 듯 약간의 비음을 섞어 목소리

에 달콤함을 실었다. 나는 사탕을 빨듯 그 달콤한 한 어절 한 어절을 맛

보았다. 어머니는 숨 한번 쉬지 않고 급격하게 다디단 서정의 끈을 죄

어나갔다.

"그대 위한 이 향수, 그대는 어느곳에서도 나를 사로잡고 어느 곳에

서도 나를 부르도다,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다디단 우울이 끝나는 지점에서 어머니는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세찬 숨소리와 함께 내 등이 서늘해졌다.

"바람이 부는 소리에도, 파도치는 소리에도, 나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

는 한숨 소리에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때부터 점점 힘차게 되고 어머니의목은 하염

없이 떨렸다. 나는'소리에도 ,소리에도 ,소리에도,' 라는 규칙성에 따라

어머니의 턱이 착,착,착 단계적으로 치켜올라가는 것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뭔지 모르게 아슬아슬하고 비극적이고 암울한 상황이 닥

쳐오고야 말았다는 느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무엇엔가 맹

렬히 저항하는, 그 무엇을 마침내 쳐부수고야 말겠다는 어머니의 시적

인 결기가 느껴졌다.눈을 감은 탓에 목소리의 실물감은 더욱 섬뜩하게

귀를 찔러대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야멸차기 짝이 없었다. 아, 이제 세

상이 끝나버리는구나 하고 예감하는 순간 나는 감은 눈을 한번 더 꼭

감았다가 번쩍 떴다. 어머니의 낭송은 극에 달하여 나를 전율하게 했

다.눈을 질끈 감고 턱을 치켜들고 목을 파르르 떠는 어머니...... 어머

니......어머니......

  그녀는 우렁차기보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날카롭게 외쳤다.

"나 , 노르웨이 삼림 속에서 제일 높은 전나무를 뿌리째 뽑아,"

나는 거대한 삼림에서 뿌리쨰 뽑혀나온 나무를 떠올렸다.

"그것을 에트나의 불타오르는 저 새빨간 분화구에 넣었다가,"

에트나가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거대한 아궁이 같은 곳에 나무를

집어넣으니 불이 나무뿌리에 단박에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고 그 열기

가 내 얼굴에까지 확 끼쳐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 불이 붙은 거대한 붓으로,"

그것은 붓으로 변하고,

"나, 캄캄한 저 하늘을 바탕 삼아 쓰겠노라."

검붉은 연기가 치솟는 불의 붓,밤하늘, 그리고 아아......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라고."

나는 이를 앙다물고 주먹을 꽉 쥔 채로 어쩔 줄 몰라하며 어머니만

노려보았다.어머니는 침을 급하게 꿀꺽 삼키고 시의 대미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한다면 밤이면 밤마다 저 화염의 글자는 불타고 있으리."

불붓은 밤하늘에 쓴 글씨들이라...... 나는 상상의 한계를 느꼈지

만 어머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쉴새없이 출생하는 우리의 후예들은 환호를 올리

면서 저 하늘의 문자를 읽으리라."

어머니는 장탄식을 하며 마지막 행을 쏟아 놓았다.

"아그네스!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라고."

어머니의 기나긴 낭송이 끝나면 언니와 나는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

고 맥이 탁 풀렸다. 나는 내 감격을 어떻게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에 이러게 물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긴시를 어떻게 다 외우세요?"

   어머니는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은 어리어리한 얼

굴로 장거리를 오나주한 육상선수처럼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내 머

리를 살짝 건드렸다.

"엄마 학교 다닐때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흑판 가득 필기해놨던 걸

박박 지우고 그대로 다 외워보라 그래도 토씨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다 외웠다.이젠 살림하느라고 머리가 나빠져서 원체 안 되겠지만."

.

 

 

 

 

 

푸르른 틈새 -권여선

중-[그 이름 아그네스]

p.42 /41 /40 /39

 

 

 


 

 

시를 옮겨 놓는 것은 나이지만 읊는 것은 성우이다.

라디오에서 방송에서 늘 보던 그이가 목젓을 흔들며

고조를 찾아 갈때, 같이 그 높이를 타고 오르던 아아,

기억들은 말할것도 없이 환상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술에 취한 겨울밤이면

기분 좋은 취기를 뭍혀 들어와서 "송희야,시를 받아 적으련"

하고 읊어내리셨는데,

언제나 , 감당 못할 크로키처럼 빠르게 치닫는 그 조용하고

나직한 읊조림을 ,그 의미를  모르기에 태반이 미완이고는

해서 "에잇, 오늘도 틀렀구나..." 하곤 했던 쓸쓸한 기억이

잘 옮겨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

였다고 ,사무치는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겨울 밤은 길었다.

 

 

어린 새 같은 마음이 되서

술에 취한 아버지가 뒤척이며 먼저 잠이드는 밤

멀리에서  언 강이 쩡쩡 숨을 트곤 했다.

새벽빛이 밝기도 전에 탄불의 구멍을 맞춰 놓고

비스듬한 문짝을 열고 투명한 겨울 내어 밟으면

뒷 동산 밤나무의 그늘이 이내 차분해지고

선명한 산그늘을 찾아내서 그 위의 별들에

선긋기를 하곤 하얗게 입김을 내뱉던 날들이

떠올라서 못내 가봐도 이젠 흔적도 없는 집터를 그린다.

 

 

그녀가 불러놓는 푸르는 틈새로 끼어드는

나의 유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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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22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여선씨 걸걸한 목소리 들은 이후로 그분 소설 읽을 때 그 목소리가 끼여들어서 좀 곤혹스럽습니다;

[그장소] 2015-05-22 17:13   좋아요 0 | URL
아, 본래 목소리는 그런가요?
아하핫! 이 책이 나온지는 한참된건데..저는 이걸 이제 읽어요,,^^
아주 옛날 메모지에 책 메모가 있더라고요.
ㅋㅋ 목소리와 싱크가 안맞는 경우가 더러있죠.
그럴때 확 깬다,할까..그런느낌?
요즘 이 작가 글이 좋은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