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라진 손바닥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291
나희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평점 :
지나간 시간이었건, 지금을 지나고 있건
그것이 위악보다 못한 위선이었다는 것을 ...
아무래도 알게 되는 것이다.
미명아래 서로를 보듬을 지 몰라도
날이 밝으면 멋적게 뭐든 변명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더욱 상처 낼 뿐이라는 것을
잡는 것은 어리섞은 일이라는 것을
그러나 언제고 한 번은 겪을 일이라면,
이대로도 괜찮구나,
이렇게 당해버린 뒤에 세상이 끝나버려도
괜찮구나, 여겨버리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모두 외롭워. 뭐지. 이게 . 왜들 그러지 .
싶은 마음의 갈등을 숨기고 주먹을 그러쥘 뿐이라도
아, 아무래도 알게되는 것이다.
모두 두려웠다는 것을.
더 많이 상처 받을까..뾰족해져 버린 것을
그래도 주먹을 혼자 쥐기 보단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이가
물어봐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참,
복받은 일이 아닌가.
행복한 일이 아닌가.
아무래도 그리 알게 되는 것이다.
미련해 보이는 우주의 일부일 우리.
어떠랴, 사람이니까..어리섞어도 미워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공멸이라 하더라도
같이 가렵니다.
혼자 살아 남겠다.악쓰지 않으며..
2015.05.20
나희덕의 사라진 손바닥을 펴서...
마른 물고기처럼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었다 ,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리 없다 조금씩 밝아 오는 것이 , 빛의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 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 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꺽이고 빛나던 눈도 시들 어버렸다. 낡은 밥상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 은 말이 없다.
*[莊子](장자)의 -大宗師-(대종사)에서 빌어옴.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준다.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p.014.015 시집 -사라진 손바닥 중-
[마른 물고기 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