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와 풍경의 세계 - 7명의 고전과 7명의 선구
윤철규 지음 / 미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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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산수와 풍경의 세계

저 자: 윤철규

출판사: 미진사

 

미술 작품을 보면서 그동안 접한 것은 대부분 유럽을 비롯한 서양미술이다. 물론, 더 익숙하고 정보(책을 포함한)가 넘쳐나니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동양미술도 서양미술 만큼 후세에 남겨질 정도로 실력이 있는 화가와 작품이 있을 텐데 관련 책이나 정보가 많이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 뿐이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시각으로 미술을 보는 책을 만났는 데 자연을 두고 산수와 풍경이라는 그림 화법(분위기가 달라서)이 다른 그림들을 보게 되었다. 평소 두 단어의 차이를 의식하지 않았는 데 이 책을 보자마자 산수와 풍경의 차이는 무엇일까? 평소 궁금하지도 않았던 질문에 아차 싶었고 나름대로 산수화는 동양을 풍경은 서양이라는 생각만 스쳐지나갔다.

 

저자는 두 그림의 차이를 설명하지만 결국 비슷한 뜻을 담고 있음을 말하고 중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화가 7인의 작품을 대조하면서 동시대는 아니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어떻게 변천이 되었는지를 설명 해 준다. 또한, 워낙 꼼꼼하게 설명을 하니 중국 역사를 자세히 모르다보니 어색하기도 했는 데 이점을 제쳐두고 그냥 어떤 인물이 있었고 그가 어떤 화법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딱! 이정도까지만 습득을 하면서 읽어갔다. 먼저, 산수를 시작으로 본문이 시작이 되는데 산수화의 시작은 언제라고 하기 보단 고대 문학[시경]에서 이들이 식물을 사람에 비유해 탐스러움을 표현한 것이 중국 문학에 영향을 끼치고 위진남북조 시대 무렵에 산수화가 탄생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묘사하고 전하려는 것이 바로 '산수화'였고, 서양 고대 문화는 그리스·로마(사실 그리스지만 로마제국으로 이어져 이렇게 부른다)로 시작한다. 중국과 다르게 서양은 인간을 중시했기에 사실적인 묘사가 특기였고 실내 장식용으로 풍경 그림이 다수 그려지기도 했다.

 

종병이 산수의 형상으로 도를 아름답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우주의 참된 아름다움이 산수화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본문 중-

 


산수화가 자연을 넘어 정신을 그리게 된 것은 종병이라는 인물에서 시작되었다. 산을 좋아했으며 중국 최초의 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렸고, 산이 보이지 않는 정신이 깃든 영적인 것으로 정의했다. 이를 보면 간혹 산수화를 볼 때면 몽환적(최대한의 정확한 표현...)느낌이 들었는 데 아무래도 종병으로 인한 화법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하여튼, 중국은 산수화가 이렇게 변화의 흐름을 탔는 데 '천리강산도'라는 길이가 10미터가 넘는 대작을 그린 '왕희맹'이 등장한다. 그림은 산과 나무, 언덕과 다리, 나루가 있으며 푸른 색상을 넣은 게 독특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의 나이가 당시 18세였다는 점으로 북송 마지막 황제 휘송이 왕희맹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면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정말 책에서만 보더라도 이런 그림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고 놀라 정도인데 저자는 당시 시대의 묘사 수준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를 알려주는 그림이라고 설명을 한다.

 

이에, 반해 서양의 풍경은 시도서(성경속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로 시작 되었다. 문맹이 많던 당시 글 보다는 그림으로 시민들에게 성경을 알려 주는 게 흔했기 때문에 시도서는 월력을 작성하면서 기념일을 표시하게 되었고 여기에 삽화를 넣은게 시초였다. 월력도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하면서 풍경화의 공간과 깊이 그리고 통일감도 서서히 발전되었다. 그림을 배우다 보면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원근법과 데생이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는 데 산수화와 다르게 서양의 풍경은 지금의 풍경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지역 내지는 땅을 가리키는 말'에 가까웠던 '풍경'은 계약서에 사용된 단어였다. 어찌되었든 누군가는 지역이 보이는 그림을 그려야 했고 그가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다. 당시 주어진 일 외에 마을과 나무숲을 묘사했는 데 그가 남긴 풍경 데생은 수백 점이나 그렸지만 남에게 보여주는 일이 없어서 후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 너무 늦은 화법에 아쉬움을 느꼈다.

 

산수화와 풍경화가 어떻게 다른데?

-본문 중-

 

중국은 곤륜산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신선을 만들었고 불교 역시 산수화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서양 역시 서서히 풍경화를 그리는 화법이 달라지고 시민들과 귀족을 포함한 그림도 등장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표현법으로 이상적인 풍경으로 서서히 드러나기도 했었다. 분명 이들이 바라본 것은 다른 세계도 아닌 같은 공간이지만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근래에 그림 관련 책을 보면서 미술 작품을 보면 볼 수록 작품을 통해 작가의 생각(아마도..)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요컨대 , 보여주는 시각적 그림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이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산수와 풍경의 세계]는 다른 표현법 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상과 문화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도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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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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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링컨 하이웨이(THE LINCOLN HIGHWAY)

저 자: 에이모 토울스 / 옮긴이: 서창렬

출판사:현대문학

 

"링컨 하이웨이가 뭐야, 빌리?"

"미국을 횡당하는 최초의 고속도로예요."

-본문 중-

 

[모스크바의 신사] [우아한 연인]으로 명성을 날리 에이모 토울스의 또 다른 책인 [링컨 하이웨이]. 사실, 아직 저자의 두 작품을 읽지 않았는 데 소로의 [월든]을 읽기도 전에 너무 알려져서 나중에 읽으려고 했던 것처럼 두 작품 역시 나에게 그랬다. 또한, 출간 전인 가제본을 먼저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기에 읽는 동안 내 생각과 등장 인물의 심리를 맘것 줄을 그으면서 읽었다는 사실이다(물론 도서에도 그러겠지만 말이다). 소설의 배경은 1950년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읽기 전에는 10대들의 열흘동안의 모험(?)이라 생각을 했었는 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소년들에게 어느 쪽으로든 영향을 준 사람들이라 이들 역시 꼼꼼하게 파악하면 읽어갔다. 책의 시작은 에밋 왓슨이 소년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 해야한다. 왜냐? 소설은 1인칭과 3인칭 그리고 화자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데 이 흐름 방식은 등장인물의 주체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여튼, 에밋은 형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지만 그 이유는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일한 가족은 여덟 살 어린 빌리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초반 왜 에밋이 감옥에 가게 된 원인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보안관을 통해 그가 악의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고 가해자는 그럴 일을 당하기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생명을 꺼지게 하는 건 결코 용납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온 에밋 그리고 동생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을 하려했고, 빌리 역시 형이 오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목적지는 달랐다. 빌리는 8년전 엄마가 집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엽서를 보냈던 캘리포니아로 가려고하고 에밋은 텍사스에 정착하려고 했다는 사실.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에밋 앞에 더치스와 울리 두 친구가 나타난다. 사실, 두 사람은 소년원에서 알게 된 친구지만 에밋처럼 출소를 한게 아닌 몰래 도망쳐 나온 것이다. 동생과 단 둘이 떠나려 한 에밋 앞에 더치스와 울리의 등장은 계획의 틀어짐은 물론이며 무사히 목적지(?)로 도착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로의 목적지는 다르지만 더치스와 울리 역시 가야할 곳이 있기에 에밋은 이들과 같이 동행을 하기 시작한다. 더치스는 활기차 보이면서도 그 영혼은 왠지 불안함을 느끼게 하고, 울리는 불안을 감수 할 수 없어 약을 복용할 정도로 평범하지 못하다. 또한, 두 소년이 왜 소년원에 가게 되었는지와 에밋의 이야기는 이들이 여행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는 사연에 안쓰러웠고, 상처받고 버림받은 그러나 일어서려는 소년들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이렇게, 링컨 하이웨이 도로를 횡단하기 위해 출발한 그 시점부터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짊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며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여기에, 1950년 이면 여성 인권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은 시기다. 에밋과 이웃인 샐리는 여성으로 독립성과 주체성이 강한 인물인데 그녀의 아버지는 이 점을 결혼 할 수 없는 결점으로만 생각 할 뿐이지만 결국 본인의 삶을 스스로가 결정하는 순간에 샐리가 멋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더치스와 울리는 어떤 결론에 다다랐을까? 어른에 의해 선택된 삶을 살아야 했고, 그곳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그렇지 못한 점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울리는 부유층의 자녀였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홀로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으며, 더치스는 친부로 인해 어긋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던 두 사람...에밋은 빌리로 인해 앞으로 나아갔지만 더치스와 울리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가 없었기에 다른 선택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그저 두 사람만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쉽사리 떨쳐낼 수가 없었다. 에밋에게 빌리는 어떤 존재일까? 물론 가족이고 동생이라는 현실적 정답이 있지만 여덟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에밋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형 뿐만 아니라 울리에게 그리고 유개화차에서 만난 율리시스라는 흑인 남성에게도 빌리의 존재는 빛과 같았다.

 

"영웅들은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세요?"

"나폴레옹이 파리로 돌아오고, 마르코 폴로가 베네치아로 돌아오는 것 같은 걸 말하는 거니?"

"아니에요. 장소로 돌아오는 길 말한 게 아니에요. 내 말은 때가 되면 예전의 상태로 돌아오는지 묻는 것이었어요. "

-본문 중-

 

800페이지가 넘는 [링컨 하이웨이]. 다 읽고서 완독했다는 마음 보다는 뭐랄까....인생을 계획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하더라도 폭풍를 만날 수밖에 없는 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도서 같았다. 여기에, 빌리가 소장한 [영웅, 모험가 및 다른 용감한 여행자 개요서]는 빌리에게 인생의 지침서 같았는 데, 오히려 책의 저자인 애버네이스 교수 역시 빌리를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하는 불확실성과 불안은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자각했고, 더 나아가 이를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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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탄생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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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집의 탄생

저 자: 김민식

출판사: b.read(브레드)

 

원시 자연에서 출발한 인간은 작은 집을 찾고 여기에서 정신적 위로를 받는다.

-본문 중-

 

집이란 공간은 주거 중심이 아닌 심적으로 인간이 마지막으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누구나 살면서 집은 꼭 필요한 공간이라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오늘 읽은 [집의 탄생]은 사실 읽기 전 까지 현실적으로 집 구조와 탄생 과정이라 생각을 했었는 데 더 넓은 의미로 집을 설명하고 있었다. 중간 곳곳에 소개한 집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 익숙한 모양도 있고 생소한 모습도 있어 '집'의 다양성을 보게 되었다. 저자는 직접 의뢰를 받아 집을 짓기도 하는 데 지어진 집을 보고 사는 것과 직접 지어 살아가는 건 그 자체부터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에 끌려 들어갔다.

 

저자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독특하거나 유명 디자이너의 집 또는 고희와 월든 작가의 소로의 오두막을 스케치로 보여주는 데 문득 인간의 창조성은 무한하다는 것을 느낀다. 지형에 맞게 짓는 것 역시 지혜의 일부이며, 때론 소박한 신념을 담아내 작은 집을 짓는 것 역시 삶의 터득이다. 건축가하면 르코르뷔지에를 소개하는 데 작년 저자에 관한 책을 읽었고 현대의 국내 아파트 형식이 바로 이 디자인으로부터 탄생 된 것을 알았다. 당시,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프랑스에 의뢰를 받아 창조한 게 '아파트'형식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인지도가 낮아 대중적사랑을 받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그 집에 의미를 부여하고 움직이게 하는 건 인간의 사고임을 재차 느끼게 되었다.




인간이 거주하는 모든 곳을 '집'이라고 칭하지만 더 세세하게 나뉘어지면서 집의 형태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고향인 전주에 한옥마을이 있다. 오래 전에 이곳은 개발이 묶어진 곳이라 수리도 못하고 살아가는 거 자체가 열악했는 데 개발이 풀리면서 수리 후 한옥 마을로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한옥하면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모양이 한옥이 아니라는 점이다. 초가집, 너와집 ,기와집 등 한국의 전통 건축물을 포괄하는 것인데 유난히 기와집만을 의미하는 한옥이 되어 안타까웠고,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넓은 의미의 한옥을 알았다. 저자는 서양식 주택이나 일본풍 건축에 대비할 때 '한옥'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기와로 지붕을 올린 집을 한옥이라고 정의한 부분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집을 짓는 기술이 없었던 시대라도 사람들은 나무와 흙으로 지었다. 살기 위한 공간임에도 때론 인간의 사유를 갖는 곳이 되기도 했는 데 독일 철학자(비록 나치를 지지했지만)인 하이데거의 오두막은 고립된 시간 속에서 사유하기를 즐겼다. 40대에 세상을 떠난 소로의 [월든]은 낭만적인 숲속 생활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자본주의와 경제를 만날 수 있는 책이지만 그가 2년 동안 살았던 숲 속의 집은 왠지 최소한의 것으로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집이란 무엇일까?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자유롭게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 저자의 일상에서 직접 그곳에서 본 집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독한 오두막집은 철학자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을 주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본문 중-

 

마지막으로 고흐의 첫 유화 작업인 뗏집은 지붕에 풀이나 잔디를 심어놓은 집이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스칸디니비아아 아이슬란드 등 몇 개의 나라에 있었다고 하는 데 이를 보면 건축 역시 자연을 소재로 하기에 관리하지 않으면 소멸 되는 데 문득, 집이란 인간의 삶과 같이 탄생되고 살아가는 것임을 ... 더 넓은 시야로 집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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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 길 위의 삶, 호보 이야기
잭 런던 지음, 김아인 옮김 / 지식의편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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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더 로드

저 자: 잭 런던(자전적 기록)

출판사:지식의편집

 

호보로 성공하려면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순간적으로 이야기를 창조해야 한다. 내가 이야기꾼으로 성공한 것은 떠돌이 시절의 이런 훈력 덕분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본문 중-

 

[야성의 부름]도서로 알게 된 저자로 당시 이 책을 읽기 전에 표지를 보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간이 아닌 동물만 등장하는 게 아닌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왜 제목이 '야성의 부름'인지...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굳이 이 책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겠지만 주인공 벅(개)의 여정은 잭 런던이 [더 로드]에서 경험한 일부처럼 느껴졌다. 벅은 부유한 집에서 살았지만 주인 몰래 팔려가 추운 북극으로 가게 되면서 그곳에서 야성으로서의 눈이 떠지고 인간을 향한 애정에 놀라기도 했었다. 저널리스트,소설가, 호보(떠돌이 노동자) 등 이른 나이에 죽을 때까지 정말 다양한 인생을 가진 작가다.

 

책의 시작은 잭이 호버 생활을 한참 하던 시기다. 호보(hobo)라는 단어는 [더 로드]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대공황 전후로 실직 노동자들이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이동했으며 표는 당연히 무임승차였다. 그러니 기관사나 제동수(기관사 보조 차장)는 이들을 찾아 내쫓는 일도 변변치 않게 했었다. 잭은 자신이 호보로 무임승차를 한 일화를 들려주면서 어떻게 하면 기차를 놓치지 않고 타는지 그리고 기관사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탔는지를 실감있게 표현했다. 책에선 성공한 사례만 보여주었지만 잭은 실패한 사례도 있음을 알려주고, 횡단을 하면서 다양한 호보들을 만나고 그 중엔 몇 번이나 인연이 되어 같이 이동을 한 스웨덴인도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이들이 이동하는 열차를 통해서 알 수 있었는 데 어느 지역에서는 수십명이 되는 호보가 도착하는 것을 전달받아 미리 음식을 준비하고 다시 떠날 수 있게 기차를 경찰들이 기차를 잡아두기도 했었다. 요컨대, 이들의 존재가 그리 달갑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처럼 모험(?)만이 가득할까? 아니었다. 이때는 호보들을 잡아 감옥에 가게 하기도 했었는 데 잭 역시 30일 구금을 겪어야 했고 감옥이지만 이곳 역시 자본주의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런던이 감옥에 가는 일이 없었다면 아마 인생 대부분을 길 위에서 살지 않았을까? 자신 역시 왜 길위의 인생을 선택했는지를 그저 '방랑벽'이 있어서라고 하지만 인생은 선택의 삶이지 않는가? 스웨덴 친구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그 친구는 '다시는 호보 생활을 하지 않는다'라고 했었다. 그 후의 소식은 모르지만 정착하면 살지 않았을까?

 

내가 봤던 끔찍한, 훨씬 더 끔찍한 페이지들도 많았다. 나는 종종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만이 같은 종의 여성을 학대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하곤 했다. 늑대나 비열한 코요테도 그런 짓은하지 않는다. 가축으로 퇴화한 개조차도 그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개는 아직 야성의 본능을 간직하고 있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야성 본능을 잃었다. 최소한 좋은 본능은 잃었다.

-본문 중-

 

잭은 30일 동안 감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폭력과 어두운 모습을 봤기에 다시는 교도소라는 곳을 가지 않을 다짐을 했다는 것. 또한 그가 길 위에서 보냈던 경험은 소설과 기자로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그들의 이동에는 그들만의 표시가 있는 데 누군가의 흔적을 보고 방향과 장소를 정하고 때론 친구를 찾는 방법이 되기도 했던 표시들은 문득,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리기도 한다. 비록, 공황으로 떠돌이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대륙횡단 열차에 이들이 끊임없이 무임승차를 했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 1년에 한 번씩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저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게 아닌 타인과 교류, 자신만의 기술을 살려 작품을 만들 것, 좋은 본보기를 보여줘야 하고 , 가출한 아이들을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하는 것 등 비록 호보 윤리 강령이라고 하지만 이 호보대회를 통해 사람들은 누군가를 돕고 자신 역시 알지 못한 본인의 모습을 찾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호보의 시작은 방황하는 이들로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잭 런던을 통해 세세하게 알려지고 , 여러 작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길 위의 인생을 통해 얻어지고 깨지고, 알아가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떠돌이가 된 것은, 글쎄 쉬게 두지 않는 내 안의 생명력과 내 핏속을 흐르는 방랑벽 때문이었다. 물에 빠지면 피부가 젖는 것처럼 사회학은 단지 부차적이었다. 추후에 따라온 것일 뿐이다. 벗어날 수 없기에 나는 '길'에 나섰다. 주머니에 기차표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평생 한 가지 일만 반복하며 살 수 없게 태어났기 때문에, 글쎄 아마도 내게는 길이 더 쉬웠기 때문이리라.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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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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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마고(PIN 041)

저 자: 한정현

출판사: 현대문학

 

마고는 세상을 천지창조한 신 중에 유일한 여성 신이었다. 다른 남성 신들이 산을 넘어뜨리고 육지를 파괴해서 세상을 창조할 때 마고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계를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조선과 일제를 거치며 어느새 마고는 마귀가 되었다.

-본문 중-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는 핀시리즈는 묵직한 내용을 독자에게 무겁지 않게 전달한다. 몽환적, 현실적, 사회파 등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소재 역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마고]는 제목부터 독특했고, 소개글에서 살해사건 이라는 단어에 추리소설이 떠오르면서 나름 이 자체만으로 두근거렸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과 어긋나고 심지어 앞서 적었듯이 묵직한 내용임을 알면서도 추리라는 요소에 살짝 긴장감을 놓았었나 보다..마지막 장까지 읽으면서 타인의 슬픔이 전이되어 책을 다 읽고서도 한동안 마음을 추스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때는 일제에서 해방이 된 시기로 미군정기 남조선에(아직은 분단이 되기 전이다) 있어 앞으로 이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주인공 연가희(가성)은 경찰의 검안의 여성으로 일본이 있을 때에도 경찰에서 근무를 했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여성으로 검안의라는 직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가성의 모습은 늘 어둡기만 하는 데, 우연히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남한에서 여성 인권 향상을 주장해온 윤박사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 용의자는 남성이 아닌 세 명의 여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연가성은 이 이름 외에 '세 개의 달'이라는 명칭으로 어린아이, 노인들, 여성들 등 약한 자들의 의뢰를 받아 수사를 하는 탐정으로 조용한 뒷골목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책은 가성의 화려한 이력을 알려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현재 일어난 사건이 소설의 중심이 아니라는 듯. 가성과 기자이면서 친구인 권운서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는 송화와 호텔 포엠 주인인 에리카 즉,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윤박사의 용의자는 이미 초반에 범인이 미군인지 나왔지만 나라는 미군과 어떤 관계도 틀어져서는 안되기에 세 명의 용의자 여성 중 한명을 지목하려고 한다. 편집자인 선주혜, 가정주부인 윤선자 그리고 자살한 소설가인 연초의. 가성은 이 사건을 외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제 시대에 여성의 존재는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미군이 일제의 잔해를 지우기 위해 여성 인권에 말하지만 옷만 다를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가성의 부모의 존재는 가성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 아직은 남북이 갈라지기 전이라 좌익 문제는 미군정 시대에 위험한 존재였기에, 재조 일본인 친모와 월북한 친부사이에 태어난 가성...시대엔 희생자가 필요했고 가성의 운명이 이런 위험에 처해 있었다.

 

사건은 앞서 적었듯이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윤박사의 본 모습은 인간으로서 최악이었고, 세 명의 여성은 서로 관련이 없었지만 윤박사의 굴레어서 벗어나지 못한 피해자들이었다. 모두 다 윤박사를 죽일 이유가 있었고 더 나아가 윤박사는 죽임을 당한 이유가 충분하기에 누구라도 범인이어도 의문이 들지 않는다. 소설 [마고]는 윤박사라는 한 사람을 내세워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고 무너지는 것을 속절없이 보여주는 데, 이런 과정에서 가성과 운서의 관계를 알아갈 때 느끼는 슬픔은..서로를 원하면서도 어느 선택이 상대방에게 최선인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위안부를 피해 일본인과 결혼을 했지만 잠자리를 거부하는 이유로 폭력에 시달렸던 가성. 가성에 맞추어 결혼을 한 운서는 부인이 여장을 하고 싶어하는 운서를 알면서 두 사람은 각각 이혼을 했었다. 혼란의 시기인 만큼 결혼으로 헤어진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만나게 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로 갈게

-본문 중-

 

운서의 존재는 초반 같은 여성으로 생각을 했었는 데 아니었고, 호텔 포엠 주인인 에리카 역시 운서를 통해 어떤 인물인지 알려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성은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울었던 건 카페 주인 송화의 죽음이었다.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지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고 미국으로 떠난 가성이 남한으로 오면 돌아올 곳이 '이곳' 밖에 없기에 남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곳'은 폭격의 대상이 되어 사라졌다. [마고]는 약자들은 서로를 밟아 살려는 대신 같이 빛을 발하고 의지하며 일어서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성/퀴어라는 점을 넘어 약자이기에 짓밟히는 현실...용의자 중 한명인 선주혜가 말한 "이곳에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남자이고 좌익이거나 우익일 테죠. 여성과 아이와 노인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겠죠."라는 문장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전쟁과 삶, 인간의 인권, 선택 그리고 그리움을 느끼게 한 [마고]. 읽으면서 눈물을 참느라 고생했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는지...아무래도 소설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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