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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평점 :
도 서: 마고(PIN 041)
저 자: 한정현
출판사: 현대문학
마고는 세상을 천지창조한 신 중에 유일한 여성 신이었다. 다른 남성 신들이 산을 넘어뜨리고 육지를 파괴해서 세상을 창조할 때 마고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계를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조선과 일제를 거치며 어느새 마고는 마귀가 되었다.
-본문 중-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는 핀시리즈는 묵직한 내용을 독자에게 무겁지 않게 전달한다. 몽환적, 현실적, 사회파 등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소재 역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마고]는 제목부터 독특했고, 소개글에서 살해사건 이라는 단어에 추리소설이 떠오르면서 나름 이 자체만으로 두근거렸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과 어긋나고 심지어 앞서 적었듯이 묵직한 내용임을 알면서도 추리라는 요소에 살짝 긴장감을 놓았었나 보다..마지막 장까지 읽으면서 타인의 슬픔이 전이되어 책을 다 읽고서도 한동안 마음을 추스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때는 일제에서 해방이 된 시기로 미군정기 남조선에(아직은 분단이 되기 전이다) 있어 앞으로 이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주인공 연가희(가성)은 경찰의 검안의 여성으로 일본이 있을 때에도 경찰에서 근무를 했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여성으로 검안의라는 직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가성의 모습은 늘 어둡기만 하는 데, 우연히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남한에서 여성 인권 향상을 주장해온 윤박사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 용의자는 남성이 아닌 세 명의 여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연가성은 이 이름 외에 '세 개의 달'이라는 명칭으로 어린아이, 노인들, 여성들 등 약한 자들의 의뢰를 받아 수사를 하는 탐정으로 조용한 뒷골목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책은 가성의 화려한 이력을 알려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현재 일어난 사건이 소설의 중심이 아니라는 듯. 가성과 기자이면서 친구인 권운서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는 송화와 호텔 포엠 주인인 에리카 즉,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윤박사의 용의자는 이미 초반에 범인이 미군인지 나왔지만 나라는 미군과 어떤 관계도 틀어져서는 안되기에 세 명의 용의자 여성 중 한명을 지목하려고 한다. 편집자인 선주혜, 가정주부인 윤선자 그리고 자살한 소설가인 연초의. 가성은 이 사건을 외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제 시대에 여성의 존재는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미군이 일제의 잔해를 지우기 위해 여성 인권에 말하지만 옷만 다를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가성의 부모의 존재는 가성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 아직은 남북이 갈라지기 전이라 좌익 문제는 미군정 시대에 위험한 존재였기에, 재조 일본인 친모와 월북한 친부사이에 태어난 가성...시대엔 희생자가 필요했고 가성의 운명이 이런 위험에 처해 있었다.
사건은 앞서 적었듯이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윤박사의 본 모습은 인간으로서 최악이었고, 세 명의 여성은 서로 관련이 없었지만 윤박사의 굴레어서 벗어나지 못한 피해자들이었다. 모두 다 윤박사를 죽일 이유가 있었고 더 나아가 윤박사는 죽임을 당한 이유가 충분하기에 누구라도 범인이어도 의문이 들지 않는다. 소설 [마고]는 윤박사라는 한 사람을 내세워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고 무너지는 것을 속절없이 보여주는 데, 이런 과정에서 가성과 운서의 관계를 알아갈 때 느끼는 슬픔은..서로를 원하면서도 어느 선택이 상대방에게 최선인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위안부를 피해 일본인과 결혼을 했지만 잠자리를 거부하는 이유로 폭력에 시달렸던 가성. 가성에 맞추어 결혼을 한 운서는 부인이 여장을 하고 싶어하는 운서를 알면서 두 사람은 각각 이혼을 했었다. 혼란의 시기인 만큼 결혼으로 헤어진 두 사람은 다시 한번 만나게 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로 갈게
-본문 중-
운서의 존재는 초반 같은 여성으로 생각을 했었는 데 아니었고, 호텔 포엠 주인인 에리카 역시 운서를 통해 어떤 인물인지 알려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성은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울었던 건 카페 주인 송화의 죽음이었다.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지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고 미국으로 떠난 가성이 남한으로 오면 돌아올 곳이 '이곳' 밖에 없기에 남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곳'은 폭격의 대상이 되어 사라졌다. [마고]는 약자들은 서로를 밟아 살려는 대신 같이 빛을 발하고 의지하며 일어서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성/퀴어라는 점을 넘어 약자이기에 짓밟히는 현실...용의자 중 한명인 선주혜가 말한 "이곳에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남자이고 좌익이거나 우익일 테죠. 여성과 아이와 노인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겠죠."라는 문장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전쟁과 삶, 인간의 인권, 선택 그리고 그리움을 느끼게 한 [마고]. 읽으면서 눈물을 참느라 고생했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는지...아무래도 소설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