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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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단어는 여성이라면 본능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미혼이더라도 여자라면 결혼하게 되고, 훗날 자신에게 또 하나의 생명이 잉태가 될 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감정. 하지만, 이제는 모르겠다. 요즘 사회를 보더라도 모성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여기에 의무감마저 사라지고 있으니 어떻게 정의를 해야할까. 

 

오늘 만난 이 책은 저자가 이 작품이후로 작가를 그만두어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자신 역시 깊은 애정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이야기일까. 저 단어 자체만으로 무슨 뜻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일까. 작가의 전 작품들을 읽다보니 잔잔하면서도 강한 메세지를 볼 수 있는데 외면할 수 없으며 모성이든 아니든 한번쯤 우리가 생각해야하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고등학생 소녀가 주택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혀지지 않는체 시작이 되고 소녀의 엄마는 왜 딸이 그렇게 되었는지 알길이 없을 뿐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 표현 아니 발악이라고 해야할까 하여튼, 마지막 고함을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끊는 것으로 말한다. 어리석다고 할 수도 있으나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이는 거의 없다. 

 

그리고 유일하게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들은 가족인데 이것마저도 막혀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소설의 초반 자살이냐 타살이냐로 시작하면서 소녀와 엄마의 생각으로 책은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녀의 '엄마'의 캐릭이 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 즉, 소녀의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왔다. 엄마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보다 엄마가 마음에 들었던 남자와 결혼까지 했는데 이것을 보면 소녀 엄마의 삶은 오로지 자신의 엄마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살아계셨으니깐 말이다. 

 

어느 비오는 날 그녀와 엄마 그리고 딸이 있는 집에 지붕이 무너져 버리면서 자신의 딸과 엄마가 장농에 깔리게 된 것이다. 문득, 이 순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자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엄마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고, 그녀의 엄마는 딸을 구하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신의 딸로 살아온 것에 대해 마지막 말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사랑하고 사랑했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담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사고 이후 시댁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이들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했고 더불어 남편까지 외도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소녀는 유일하게 엄마의 편에 섰으나 비오는 그날의 진실을 딸이 알게 되면서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되어버린다. 

 

대화, 요즘 사람들은 서로간에 대화가 없어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가족간의 대화마저 끊기게 되어버려 최근에서야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만약, 소녀와 소녀의 엄마가 대화를 했더라면 이해를 할 수 있었을까. 모른다.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을 의지하고 살아간다.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요소이기에 생겨나는데 소녀의 엄마는 이 감정을 오로지 자신의 엄마에게로 준 것이다. 언제까지나 엄마의 딸로 남고 싶어서 였을까. 그렇다면,자신의 딸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금지옥엽으로 키웠다 생각했으나 결과는 평생 잊지못할  결과물이었지만 나름 마지막은 해피엔딩으로 끝나 다행스럽기도 하다.

 

모성..여성이라면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선천적인지 아님 후천적인지 모르겠다. 그냥 이책을 읽으면서 이 단어에 대해 생각만 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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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스카이
베로니카 로시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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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기전 저자의 경력을 보게 되었다. 세계 멸망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청소년 소설 작가.'디스토피아'적 소설은 잘 읽지 않았기에 괜찮을까. 실망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네버 스카이>를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찌보면 어두운 미래에 '희망'을 찾는 것이 이 부류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에테르라는 불길을 일으키는 폭풍이 언제나 일으킬 준비를 하고 현실에서 안전지대에 살고 있는 이들과 반대로 외부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돔안에서의 생활은 모든것을 주지만 단 가상세계를 통해 외부세계의 자연을 볼 수 있는 단점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17살 소녀 '아리아' 과학자인 엄마를 둔 그녀는 최근 블리즈로 떠난 엄마로부터 메세지를 받은 후 연락이 끊기 상황이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 그녀를 찾기 위해 돔으로 나가려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려고 한다.

 

반면, 외부 세계에 살고 있는 '페리'. 그는 조수 부족의 일원이기도 하고 왕족의 혈통이기도 하다. 현재는 그의 형이 통치를 하고 있으나 언제나 그의 맘 속에서 형을 누르고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누르게 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조카인 '탤론'이었다.

 

더불어, 그에겐 지실인으로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바로 멀리 볼 수 있는 '천리안'과 냄새를 통해 상대를 파악하는 두가지 능력이다. 그렇다고, 지실인들이 많은 것이 아니다. 몇몇만이 태어나면서 가지기 때문에 그들은 귀하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아리아'아 '페리'가 만나게 되고, 뜻하지 않는 여정길을 향하고 둘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이어진다. 어찌보면 흔다고 할 수 있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으나 나약한 소녀가 점점 변화하는 모습은 흥미로움을 주기에 충분했고, 더불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닫는 순간 강한 그녀의 모습이 와 닿았다.

 

그러나, 이 소설의 포인트는 그녀의 엄마가 연구하고 있던 DLS증후군이다. 돔안에서 안전하게 살아오는 이들에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을 억제하며 몇세대를 살아왔다. 그렇다보니 결국 이로인해 문제가 발생했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있으니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것은 꼭 필요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게 된다. 장기 하나가 없어도 살수도 있지만 대부분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에 돔 안에서 '위험'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무래도 벅찬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를 찾기 위해 나선 '아리아' 그리고, 정착자들에게 납치된 조카 '탤론'을 찾아나선 '페리' 둘이 점점 앞으로 나아갈 수록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고 서로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린 두 사람에게 과연 화창한 미래가 올 것인가.

 

또한, '아리아'에게 새로 주어진 임무 '고요한 파랑' 즉 에테르가 없는 곳을 찾아나서는 것.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조건이었다지만 불안하기다만 하다. 그녀 혼자서 이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헝거 게임>은 서로가 서로는 죽여야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네버 스카이>는 새로운 땅으로 가야만 살 수 있다. 총 3부작으로 된 소설 내년 초반에 마지막 권이 출간이 된다고 하는데 끝을 예상할 수 없기에 더욱 궁금하고 표지의 문장처럼 새장안의 소녀가 세계를 구원할 전사로 각성한다는 모습을 속히 만나고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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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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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양이에 대한 인식은 아무래도 북폴리오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것같다. 솔직히,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하는데 이유는 그냥 무섭다라고 하면 될까. 전설도 많고 개와 다른 모습이 보이고 있어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험악한 동물이 있는 반면 순진한 동물이 있을 텐데 그냥 그 자체만으로 외면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만나왔던 '고양이' 시리즈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위험한 것은 '강아지'가 아닐까 싶다. 애완견으로 키우고 있다면 무관하지만 야생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비교하자니 오히려 고양이가 더 정이 간다고 할까. 생각의 차이가 있겠으나 오늘 만난 <흐리고 가끔 고양이>로 인해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책은 다른 책들과 다르게 고양이에 대한 안타까움도 보이고 반면 귀여운 모습들이 많아서 읽는 동안 흐뭇하기도 했다. 17년째 여행중에 6년은 고양이들과 함께 했다면 어떨까. 아무리 이뻐 한다지만 이런 마음을 가지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들을 만나왔기에 이 책이 완성이 될 수 있지 않았는가.

 

초반 열악한 곳에서 비만 겨우 피하고 있는 고양이를 보니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픈지 말만 못할 뿐이지 이 역시 살아있는 생명이긴 같은데 말이다. 그중 거문도에서 고양이 몇백마리를 살처분 했다는 글에 놀랬다. 그정도로 많은 피해를 주고 있었단 말인가. 동물애호가는 아니더라도 이 소식만으로 무섭기만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지역 주민들의 고통이 어지간했으면 이렇게 했을까 그러나..이런 방법은 옳지 못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해외처럼 애완동물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다보니 이것이 최선의 방책 이었겠다 다짐을 하면서도 씁쓸했다. 다행히, 몇년 후 살처분 계획이 있었으나 중정화 수술로 마쳤다고 하니 이나마 나아진 것이 아닐까.

 

무조건 보호하자고 외치는 것보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내세웠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의견이 찬반으로 나뉘겠지만 어떠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에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우선 많은 고양이들이 사진을 볼 수 있다. 지붕위에 있어 먹이를 달라고 외치는 고양이들 따사로운 햇살로 인해 바닥에 누워 평온해 보이는 모습들 그리고 어린 고양이들의 눈은 차마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들..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지만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게 되니 힘들었다. 물론,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마음에 눈길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애완견 인듯 한데 버려지 강아지를 봤다. 멀리서 가는 모습을 보고 말았는데 우리가 마침 집으로 가는길에 동물병원이 있었고 그 울타리 안에다 누군가 그 개를 넣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병원문은 닫혀 있어 그 다음날 아침까지 홀로 있어야 하는 운명이지만 버려진 모습을 보니 왜 굳이 이렇게 키울까 싶다. 뉴스에서 조차도 책임감 없이 키우다 버리는 것이 많다고 하는데 생명이 아닌 하나의 도구처럼 생각을 하니 그렇지 않을까 싶다.

 

<흐릭고 가끔 고양이>는 읽는 동안 기쁨을 주다가도 슬픔을 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엄청난 수고...진정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진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기도 하다. 아직도 고양이를 만지기 무서워하고 있으나 그래도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가고 있는 것만으로 오늘도 난 만족하고 있다. 물론,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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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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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 까진 저자에 대해 알 수 없었다. 물론, 페이스북을 잘 하는 것도 아니기에 더더욱 몰랐을 텐데 제목을 보고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이 읽었는데 오히려 인생과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얻게 되었다.

 

책을 펼치기 앞서 '전국 초청 1순위 대중 강연가' '420자 칼럼 '페이스북의 논객 최준영 그리고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소개가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이야기가 이 안에 있을까. 첫 장부터 '저렴한 강의' 그리고 '거지 교수'의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는데 어? 이게 무엇이지?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글을 보는 동안 공감이 가지 않을래야 가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 믿을까.

 

소위 말하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을 나오고 유학까지 다녀오고 커리큘럼이 화려한 인물이었다면 과연 내가 이 책에 호응이 되고 공감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에게는 자신과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쉽게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본능이 있다. 그렇기에, 최준영 선생님의 강연은 있는 자보다 없는 자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고 더불어, 사람사는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최준영 선생님의 삶은 어때했는가. 배경이 탄탄한 집안도 아니었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고등학교는 자퇴를 하고 야학을 다녔으면 검정고시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대학에서는 몇번의 제적 끝에 결국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뒤 글쓰기로 하나로 인생을 걸고 걸어온 길이었는 점이다. 

 

현재는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우면서 가장 낮은 곳에서 인문학에 대한 강연을 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 2005년 성프란시스대학 (최초의 노숙인 인문학 과정)을 시작으로 노숙인, 여성 가장, 교도소 수형인들에게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했다는데 머리로만 배우는 것이 아닌 몸소 인문학에 대한 느낌을 알려주고 있다.

 

인문학은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것이라 하지만 어느 한 노숙인으로 인해 사람으로 인해 행복과 사랑을 통해 사람의 온기 느끼는 그 이상의 인문학이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문학 하면 그 자체로 딱딱하기보다는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이게 외면을 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적었듯이 최준영 선생님의 경력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걸어온 삶은 어느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노동자들 그리고 노숙인 등등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이들에게 거침없이 다가가고 있는데 이러한 것이 유명대학을 나왔다 라는 것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마음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것 솔직히, 이러한 실천이 어렵더라도 그들의 인생을 이해하려는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힘든 시절 책읽기와 글쓰기로 자신을 위로하며 지내왔다던 시간들 이제는 인문학을 많은 이들에게 알림으로 인해 그들 자체의 삶에 빛이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 특히, 노숙인 인문학 1기 졸업생인 한 분의 이야기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까. 마지막 가는 길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보다는 뒤늦게 배운 '인문학'으로 인해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는 글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인해 때로는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볼 수 있었다는 점과 그들의 마지막 몸부림이 자신을 버린다는 사실에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것이 그들의 절규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이렇게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에는 생각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실천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인문학'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쓴 글에 대해서 잘 썼다는 논평보다는 못쓴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요즘 글쓰기 관련해서 많은 서적이 출간이 되고 있는데 몇권을 소장하고 있지만 역시나 많이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준영 선생님은 글쓰기로 생계를 시작하지 않았다. 무상으로 칼럼을 써달라는 부탁으로 시작되면서 2년동안 소개로 여러곳에 글을 썼고 아름다운재단 에서 대기업으로 소개를 해주게 되면서 원고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처음부터 욕심을 앞세우고 했다면 어땠을까. 누가봐도 탄탄한 학력이지만 오히려 글한번 쓰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해주는 조언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일부를 들려주는 것 뿐이었다. 어느것도 바라지 않고 시작한 것이 튼튼한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모습이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면 인생은 자신이 베풀수록 언젠가는 꼭 부메랑 처럼 되돌아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여러 갈림길이 있다. 미래는 한길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두렵다고 머무르기 보다는 실패를 통해 단단해지고 길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삶을 이끄는 목적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최준영 선생님은 어제의 글이 부족하고 부끄러워 오늘도 계속 쓰고 있다.  

 

저질러야 합니다. 저지르고 나서 후회할 일이면 후회하고 아플일이면 아프고 즐길 일이면 즐기는 겁니다. 해보지도 않고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안 되느니 차라리 저지르는 무대책한이 되라는 겁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까요.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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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걷자, 둘레 한 바퀴 - 한국산악문학상 수상 작가의 북한산 둘레길 예찬!
이종성 글.사진 / 비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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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이 어디든 생기니 딱히 정하지 않아도 어디로 걸어도 왠지 둘레길을 걷는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도 둘레길 표시가 되어있는데 그냥 평소 걸었던 곳이 막상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니 왠지 색다른 기분이 들때도 있다. 그리고, 북한산 둘레길은 수없이 들었는데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이기도 한 '북한산' 이베는 둘레길오 이곳을 만나려고 한다. 

 

총 21구간으로 되어있고, 상중하로 난이도를 구분해놓았다. 그렇기에, 무리하게 걷지 말고 자신의 체력에 맞추어 걷는 것이 좋을듯하다. 대부분, 둘레길 하면 그 기로의 설명과 가는 방법을 중점으로 소개해주고 있는데 이 책은 각 구간마다 있는 사연들을 들려주고 마지막으로 시를 다시한번 내용을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비록 초반에는 정보(?) 중심으로 읽기 시작해서 적응이 안되었지만 차차 무엇을 애기하는지를 마음으로 알게 되니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또한, 북한산은 많은 아픔과 역사를 가진 곳이다.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데 미흡도 부분도 있고 때로는 몇몇만이 알고 있는 내용들도 있어 안타까움을 주는 부분들도 있었다. 과거를 보고 그리고 현재를 볼 수 있는 곳 '북한사 둘레길'이다. 묘지만 덩그러니 남겨진 곳도 있고 세종의 아홉째 아들인 이영. 한글창제에 참여했지만 역사의 흐름앞에 36세 나이에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던 '화의군묘역'을 만날 수 있고, 그와 함께 둘째 딸이었던 정의공주묘가 안장되어 있다.

 

그녀 한글창제에 큰 공을 세웠다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어떤 이는 북한산성 성곽 축조공사에 있는 임을 만나러 오다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 가다 결국 못에 빠져 죽은 이야기 등등 무슨 까닭없는 인연들이 왜이리도 많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북한산에 가게되면 보이는 곳마다 이곳엔 어떠한 사연들이 있을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싶다.

 

스페인의 '카미노'의 영향으로 제주도의 '올레길'이 크게 퍼지면서 이제는 어디서든 둘레길 이라는 용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걷는 것 자체만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점을 바꾸어야 한다. '카미노의 길'은 순례자의 길로 베드로가 걸었던 길이라고 하여 많은 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되찾기 떠난다. 비록, 베드로의 이야기는 속설이라 하지만 이 순례길을 걷는 이들은 목적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뜻을 두고 만들면 좋은 둘레길인데, 지리산 둘레길은 아무러 준비도 안된 시점에서 개방을 하게 되어 주민들을 포함하여 많은 피해를 입는 곳도 있는데 무조건 따라 하기 보다는 '목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오늘 만난 <다함께 가자 둘레 한 바퀴>는 단순히, 북한산을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역사와 현재 그리고 옛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걸을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 마지막장에는 북한산 둘레길의 구간 지도가 있다. 특히, 21구간 '우이령길'은 예약제로 개방하고 있기에 미리 갈 분들은 신경을 쓰도록 하자. 개방을 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엔 과거의 역사 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란다. 주말이면 어디로 갈지 고민하지 말고 아이들과 가족과 함께 이곳을 둘러보는 것도 참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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