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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평점 :
어린 시절 엄마는 저랑 두 살 터울 오빠에게 늘 함께 시키던 일이 있었어요.
콩나물이랑 멸치 다듬는 일이 그 두 가지였는데, 그중 멸치 다듬는 건 절대 빠지지 않았어요.
모아둔 신문지를 꺼내서 넓게 거실에 펼치고 엄마가 알려주는 데로 멸치를 다듬다 보면 어느새 손에 밴 꼬릿꼬릿한 멸치 냄새를 비누로 문지르며 우리 남매는 뭐가 좋은지 마냥 깔깔거렸지요.
멸치 한 박스를 모두 다듬어야 한다며 시작했을 때는 너무 많은 멸치에 '언제 다하나~' 싶다가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대가리 떼고 똥 빼고 ~ 하다 보면 어느새 손질이 다 된 멸치 한 무더기에 뿌듯함을 느끼곤 했어요.
오늘 소개해 드릴 그림책은 이상교 작가님의 멸치 다듬기라는 책이랍니다.
어린 시절 제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고, 함께 읽은 아이가 자신도 멸치를 다듬고 싶다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매력만점 그림책 알려드릴게요.
대가리 떼고 똥 빼고 육수를 낼 멸치의 몸통을 다듬는 방법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단순하고 유쾌한 그림체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단순노동인 멸치 다듬는 과정을 어쩜 이렇게 귀엽게 이야기하는지 읽으며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데요.
깔아놓은 신문의 내용에 따라 멸치가 배우도, 발레리나도 되고, 철새 따라 하늘을 날기도 하고 우주여행도 하고, 명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데요. 멸치 한 마리 한 마리의 캐릭터가 너무 귀엽습니다.
양손으로 대가리 떼고 똥 빼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손질이 끝난 멸치 그릇에 섞여있는 똥과 대가리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을 그려놓은 페이지에서는 공감 100배 하며 고개를 끄덕끄덕거렸습니다. 저녁 메뉴가 될 멸치 국수를 기대하며 엄마에게 다듬은 멸치를 건네는 아빠와 아이의 표정엔 뿌듯함과 설렘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들 촉감 놀이 많이 하잖아요.
생각해 보니 저 어린 시절엔 촉감 놀이라는 게 따로 없었던 이유가 일상생활 속에서 늘 촉감 수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멸치랑 콩나물 다듬고, 수제비 먹으려면 밀가루 반죽도 하고, 밀어서 하나하나 떼어내기도 하고 말이죠.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게 멸치국수를 한 그릇씩 뚝딱 비우는 책 속 장면에 반찬투정하는 요즘 우리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늘 쓰던 동전 육수나 시판 국수장국은 잠시 넣어두고 오늘 저녁은 큰 멸치를 아이와 함께 다듬어 육수를 내봐야겠어요.
우리 집 고양이 두 녀석이 멸치를 가만히 두고 볼까 염려되지만 말이에요.
오늘처럼 여유로운 일요일 '짜파00 요리사'가 아닌 아이와 함께 멸치를 다듬어 만드는 멸치국수 한 그릇 어떨까요?
안 그래도 국수 많이 먹는 아들 녀석 [멸치 다듬기] 이 책을 보고 함께 만들면 얼마나 많이 먹을지 살짝 걱정되지만 그래도 행복한 마음이 앞서게 만드는 그림책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