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엔 감기 몸살로 삼천배를 가지 못했다.

이번 달엔 봉고차에 탈 인원이 초과되는 바람에 내 차에 도반들을 태워 가게 되었다.

10년이 넘은 차라도 출퇴근 할 땐 별 이상을 못느꼈고, 차맹이라 차에 이상이 있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구마고속도로에서 88고속도로로 새로 길이 나는 바람에 쌩쌩 신나게 달려서 백련암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차 앞의 엔진 부분에서 하얀 김이 올라왔다.

백련암 고개를 올라오느라 열받아서 그런가 하고 차 앞의 보닛(?)을 열어 보니 물이 사방에 튀어있고 김이 무럭무럭 올라온다.

차를 식히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엔진 냉각수를 회전시켜주는 파이프가 터졌단다.

카센터에 연락을 좀 해달라고 하고 천배를 마치고 공양간에 오니 기사님께서 키와 아까 맡겼던 돈을 그대로 돌려주신다.

마침 백련암에서 일하시는 거사님께  온돌 파이프 깔고 남은 것을  조금 얻어서 그것으로 연결했다고 하신다.

차에  시동을 걸어보니 엄청나게 복잡한 호스와 기계들 아래 하얗게 조그만 파이프에 물이 도는 것이 보인다. 저 밑에 있는 것을 어떻게 연결했느냐고 하니까 어차피 혼자 심심하던 차에 다 뜯어내고 고쳤다고 하신다.

기사님이 오늘의  관세음보살이시다.


요즘 매일 금강경을 읽다가, 새삼 무릎을 치는 일이 있다.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단지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늘 읽으면서도 그 뜻을 잘 몰랐는데, 이 세상엔 단지 그 이름이 보살일 뿐이거나 단지 그 이름일 뿐인 사물들, 사람들이 많음을 본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이름의 내용이다.

내 이름에 맞게 사는 지 돌아볼 일이다.

 무사히 잘 다녀온 내 차에게도, 차를 잘 고쳐주신 봉고차 기사님에게도,  용맹정진하는 도반이 많이 늘어서 내게도 늘 하루하루 새롭게 신심을 다져주는 도반들에게도, 법화경 몇 번 녹취한 공덕에 과분하게 책과 직접 쓰신 글씨를 보내오신 무비스님에게도 문수 법공양회에도, 은혜입고 사는 것이 너무 많아 고맙고 고마운 마음이다.

세월이 더 흐른 후에 40대의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지, 이름만 40대로 살지 않았는지, 무늬만 선생님으로, 엄마로, 아내로, 주부로 살지 않았는지, 은혜 입은 것을 잘 회향하며 살았는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50대에 입문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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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8-04-13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잘 지내셨나요? ^^ 여전히 열심히 정진 중이시군요. 전 얼마전에 경남 하동에 있는 쌍계사에 다녀왔지요. 1년에 두번 밖에 개방을 안한다는 금당(육조정상탑이 모셔진 곳이라던데...)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30년간 쌍계사에 다닌 신도 중에서도 아직 한번도 못 본 분이 계시다던데.^^

혜덕화 2008-04-1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잘 지내시죠?
쌍계사, 멀리 오셨네요.
지리산은 언제 가도 좋은 산, 품고 있는 좋은 절도 너무 많죠?
예쁜 부인 닮은 2세 소식은 있는지?
아름다운 봄 즐기시길......

글샘 2008-04-1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이름만 반야바라밀일 따름이군요...

혜덕화 2008-04-1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햇살이 너무 좋아서 모든 말들이 봄 햇살에 사라져버리는 느낌입니다.
짧은 봄, 행복하게 보내시길^^

이누아 2008-04-1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에 제 방명록에 남기신 인사를 이제야 봅니다. 저는 얼마 전 일주일 동안 절에서 지내다 왔는데 큰언니가 꿈에 제가 아주 좋은 물건을 갖고 있는 걸 봤다며 "니가 절에 다녀오더니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고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수행하는 것, 기도하는 것, 그게 바로 좋은 일이야. 이미 난 좋은 일이 생겼어"라고. 님이 50대를 기약하지 않아도 이미 감사한, 이미 부끄럽지 않은 날들을 살고 계신 건 아닌지..^^ 손내밀어 인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혜덕화 2008-04-1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는 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베카난다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부산은 비가 내리고, 아이들 하교지도를 하고 들어오는 길엔 활짝 핀 라일락 향기가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꽃을 보면서, 비를 보면서, 요즈음의 투명한 햇살을 보면서 말이란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부처님의 염화미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낄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도 잘 하고 계시리라 생각하면서도, 가끔 님의 소식이 궁금합니다.
봄이 전하는 한 소식을 함께 보고 느끼리라 믿으면서도, 말로 글로 안부나누고 싶은 이것도 전생부터 지고온 습이 아닌가 싶네요.
정진 잘 하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