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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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삼대

삼대, 아들에서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까지의 일대기는 그들의 지위를 막론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하게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과 분단, 그리고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100년의 이야기다. 아울러 그들의 4대라고 할 수 있는 공장노동자의 농성투쟁은 현재의 삶에서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인내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철도가 조선 사람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지지 않았겠는가" (p.83)

가제본이라 책 내용의 일부가 담겨 있었지만 위의 대사는 읽는 내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의 역사와 연대가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의 4대에 걸친 이야기가 이어지기에 황석영작가님의 입담이 발휘되며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특히 말씀이 고모는 마치 이 소설안에서 비공식적인 소설가처럼 재미나게 이야기를 지어낸다. 노동자 집안의 치열한 삶과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유쾌하게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가족이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크레인에서 불안한 농성을 하고 있는 4대 공장노동자인 이진오에게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의 험난한 삶이 이어질 것을 예감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남은 이야기도 궁금하다. 또한 책을 읽으며 독자로서 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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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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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메들린밀러
이봄 출판사

여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신비로움 혹은 아름다움 그리고 완벽함.
여신은 여성에 대한 가장 고결한 명사로 인식된다.
하지만 '하급'여신 키르케에게는 다르다.
위대한 능력을 자랑하는 신들인 가족 그리고 신들의 세계에서 멸시당하며 그들은 키르케의 존재를 하찮게 여긴다. 아버지인 티탄 신족 태양신인 헬리오스에게도 모진 말을 듣고 결국 추방당하지만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강해지기를 열망한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위축되며 그들의 잔인한 말을 내면화하기를 거부한다. 아마도 그녀를 감화한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존재일 것이다.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다르다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아주 다른 여신이 된다. 통념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여신이 아닌 인간과 어울리며 자신의 강인한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마녀"가 된다.

"마법은 만들고 작업하고 계획하고 모색하고 파헤치고 말리고 다지고 빻고 끓이고 그 위에 대고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걸 다 했어도 실패할 수 있다. 신들의 방식과 다른 점이다."(110p)

신들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서사적 즐거움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들의 능력이 열광하기 보다는 이야기로서의 장치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능력이 이미 서사의 장치로 정해진 그들보다 키르케처럼 자신의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성장의 서사에 더욱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소설은 키르케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해 키르케가 얼마나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지 그리고 그녀의 욕망과 희망이 얼마나 강렬한지에 대해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 놀라웠다. 신화와 오디세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된 이야기라서 어느정도 구속이나 제한이 있을 수 있지만 키르케가 포함된 티탄신족, 올림포스신들 등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강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조화롭다.

키르케는 비련의 여주인공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신들로부터, 가족들로부터 냉대받고 결국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다가 추방당하며 애정을 가졌던 인간으로부터도 배신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추방의 시간을 자유로 인식하고 자신의 발전을 꾸준히 애쓴다. 그리고 인간들과 어울리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 키르케는 비극이 아닌 성장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갖는 매력과 그리고 작가의 놀라운 필력에 큰 인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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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그대 알비 문학 시리즈 4
야마카와 마사오 외 지음, 최수민 외 옮김 / 알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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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속의그대

아름답고 기이하다.
무엇이 먼저인지 나중인지 모르겠다.
기이한 설정에서 오는 현실과의 괴리감은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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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의 일본 근대문학소설은 일본문학에 방점을 찍고 책장을 편 나에게 사소한 배신감을 주었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낯선 매력을 주고 섬세한 인상을 남긴다. 작품들의 호흡은 짧지만 작품이 남기는 여운은 깊었다. 특히 표제작인 "상자속의 그대"는 다소 섬뜩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실체가 선명해서 먼저 그녀를 공감하게 됐다. 이 작품 외에도 신비로운 이야기와 눈길을 사로잡는 문체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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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 뿐아니라 일본 근대 서양화가들의 작품들이 삽화로 들어가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처럼 느껴진다. 또한 역자가 얼마나 일본 근대문학 작품에 애정을 쏟고 있는지 느껴져 작품 외적으로도 감동을 받았다. 번역이 사랑하는 글을 소개하고 나누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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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단식 광대 -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창비세계문학 78
프란츠 카프카 지음, 편영수 외 옮김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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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충과 관종의 시대, 카프카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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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갑자기 벌레가 된 남자의 이야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누구나 떠올릴 것이다. 변신이라고 하면 슈퍼히어로나 신데렐라처럼 근사하고 화려한 변신을 기대한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변신의 여정에서 제자리로 돌아와 안도하며 교훈을 남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가장 끔찍한 벌레로 변해 아무 이유도 모른채 서서히 존재의 종말로 향할 뿐이다. 가족들은 그의 비극 앞에서 불안과 불편을 느끼고 그를 멸시한다. 누구도 그의 부조리한 변신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위한 자기보존의 욕구에 충실할 뿐이다. 문학적 완충장치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누구나 벌레가 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사실적이라는 표현은 유효하다. 시선은 냉정한 선을 긋고 대상을 추락하게 한다. 우리 시대의 잔인한 호명, 즉 벌레는 부르는 방식은 익숙하다. 맘충, 급식충, 이백충.....ㅇㅇ충은 어디에나 있다. 언제든 벌레가 될 수 있고 어쩌면 벌레가 되고도 모르는 그들 그리고 나. 변신의 첫문장에 '그레고르잠자'대신 누구의 이름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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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표제작인 <단식 광대>는 단식을 보여주며 존재를 확인하려는 광대의 욕망과 타인의 기이한불행을 지켜보는 욕망의 접점, 그리고 그 이후의 엇갈림의 비극을 보여준다. 광대의 단식은 존재의 이유면서 결국에는 제거의 이유가 된다. 단식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지불하는 돈이 그의 단식 행위에 가치를 결정한다. 그는 관심이 사라지고도 단식을 이어간다. 단식은 결국 생명을 위협하고 죽음이라는 결말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단식 광대는 단식을 통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한다. 어쩌면 그를 관심종자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결곡한 태도는 타인의 관심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 그렇다고 그를 예정된 실패 앞에서 용감하게 고군분투하는 투사로 이해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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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과 <단식광대>를 비롯한 프란츠 카프카의 중, 단편들은 부조리한 실존을 대면하게 한다. 분명히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 앞에서 주인공은 가혹하다거나 혹은 비참하다는 감정적 호소조차 하지 않는다. 실존에 대한 의지적 선언도 아니다. 기이한 상황에서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극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 존재에 대해 거리를 두고 질문할 수 있으나 결국 카프카의 시선은 현실을 관통한다. 벌레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비극의 관음증을 관종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익숙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창비세계문학리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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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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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기분
김봉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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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들 중 어느것이든 소설의 소재로 포획하는 것이 소설가의 숙명일까. 이야기를 만드는 자리에서 전지적 창조자로 군림하는 것에 이의는 없다. 작가가가 창조한 세계에 독자가 초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했던 이와의 일을 글로서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는 소설 세계를 장악하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어떤 부담과 그리움의 고백이 전해지는 지점은 윤리적이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생생한 묘사와 자기고백적 분위기에 과연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가늠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엔드게임>은 여타의 작품들처럼 재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연애사는 가볍게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의 깊은 곳까지 침잠하게 한다. 사랑은 과거이고 사랑을 기억하는 것은 현재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그의 글로 복원되다가도 어느 순간 사그라든다.
과거에 그의 작품들을 보면 독자로서 속고있는 기분도 들었다. 대체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작품을 분석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었다. 소설이 될 수 없다면 시간 속에서 기억하려는 시도는 윤리적이다. 나는 작가의 마음을 온전히 지지하고 싶다. 사랑의 절절한 기억을 문학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성큼 들어온 사랑 앞에 그에 걸맞는 응대로 윤리적인 태도를 어떤 인연도 없이 보여주는 것. 나는 그의 소설을 이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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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읽은 <시절과 기분>이 곧 단행본으로 만날 수 있다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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