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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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메들린밀러
이봄 출판사

여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신비로움 혹은 아름다움 그리고 완벽함.
여신은 여성에 대한 가장 고결한 명사로 인식된다.
하지만 '하급'여신 키르케에게는 다르다.
위대한 능력을 자랑하는 신들인 가족 그리고 신들의 세계에서 멸시당하며 그들은 키르케의 존재를 하찮게 여긴다. 아버지인 티탄 신족 태양신인 헬리오스에게도 모진 말을 듣고 결국 추방당하지만 그녀는 고통 속에서도 강해지기를 열망한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위축되며 그들의 잔인한 말을 내면화하기를 거부한다. 아마도 그녀를 감화한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존재일 것이다.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다르다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아주 다른 여신이 된다. 통념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여신이 아닌 인간과 어울리며 자신의 강인한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마녀"가 된다.

"마법은 만들고 작업하고 계획하고 모색하고 파헤치고 말리고 다지고 빻고 끓이고 그 위에 대고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걸 다 했어도 실패할 수 있다. 신들의 방식과 다른 점이다."(110p)

신들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서사적 즐거움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들의 능력이 열광하기 보다는 이야기로서의 장치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능력이 이미 서사의 장치로 정해진 그들보다 키르케처럼 자신의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성장의 서사에 더욱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소설은 키르케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해 키르케가 얼마나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지 그리고 그녀의 욕망과 희망이 얼마나 강렬한지에 대해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 놀라웠다. 신화와 오디세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된 이야기라서 어느정도 구속이나 제한이 있을 수 있지만 키르케가 포함된 티탄신족, 올림포스신들 등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강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조화롭다.

키르케는 비련의 여주인공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신들로부터, 가족들로부터 냉대받고 결국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다가 추방당하며 애정을 가졌던 인간으로부터도 배신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추방의 시간을 자유로 인식하고 자신의 발전을 꾸준히 애쓴다. 그리고 인간들과 어울리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 키르케는 비극이 아닌 성장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갖는 매력과 그리고 작가의 놀라운 필력에 큰 인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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