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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씨족 소년 사슴뿔이, 사냥꾼이 되다 - 신석기 시대 ㅣ 사계절 역사 일기 1
송호정.조호상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2009년 12월
평점 :
먼저, 이 책은 예고편으로 띄웠던 것이지요?
작가의 글솜씨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서
반드시 검토를 해보겠다고 예고편을 띄웠던 겁니다.
검토를 해보니까 대단하네요!
전국 도서관에 죽죽 깔아주세요.
이런 작가는 자꾸 키워줘야 합니다.
표지 그림 왼쪽에 달린 글자를 잘 보면,
<역사일기>라는 말과 함께 <신석기 시대>라는 글자도 보입니다.
요 책은 일기 형식을 빌어서 신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을 그려낸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
일기란 요렇게 쓰면 되는 거다!
솔직히 저 자신도 일기 쓰기란 아주 지긋지긋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일기만이 아니라 뭐라도 쓰라고 하면 지긋지긋했습니다.
꼬마작가만 그런 건 아니지요?
다들 똑같습니다.
바로 이런 심리 요인 탓에 글만이 아니라
그림을 비롯한 창작활동이 어려운 겁니다.
그냥 쓰면 되는 것이고 그냥 그리면 되는 것을 가지고
학교에서는 꼭 점수를 매겨서 상을 주고 회초리도 줍니다.
그러니 애들이 잘할 리가 있나요?
잘 써야 하고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서 아예 못하는 겁니다.
학교에서 애들을 패면,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1. 맞는 애는 삭 죽거나 아니면 맞는 일이 버릇이 된다.
2. 맞는 걸 보는 애들의 심리는 엄청나게 위축된다.
꼬마작가는 주로 두 번째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한 건데,
초등학교 때만 해도 맞을 일은 별로 하지 않았고
다른 애들이 맞는 걸 보면서 쭈그러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에는 지리 선생 뺑구를 필두로 해서
맞아도 보고 맞는 걸 보면서 심리 훈련도 하고 그런 덕분에
군대 가서는 <아주 가볍게> 맞아주면서 군대 생활을 마쳤습니다.
군대 구타, 그거 별 거 아니대요!
이 방면에서는 대원고 선생들이 훨씬 더 뛰어났습니다.
어쨌거나, 뛰어난 일기 형식의 동화책!
일기를 쓰라고 하면 제대로 쓸 애들은 거의 없을 텐데,
요런 걸 읽어주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근거 없는 예상을 해봅니다.
이 책으로 해서 일기를 잘 쓰지 못한다고 해도 뭐 아쉬울 건 없습니다.
이 책이 지닌 두 번째 가치!
신석기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가 하는 것이 그림처럼 쫙 펼쳐집니다.
일기가 시작된 날은 <기원전 3000년3월 24일>,
마지막 일기는 <기원전 3000년 11월 20일>.
그러니까 거의 일 년 동안 어떤 신석기 꼬마가
어떻게 생활했는가를 보여주는 책인데,
다 나옵니다.
굶주릴 대로 굶주린 봄부터 시작해서 초여름의 신나는 물고기잡이,
물고기를 둘러싸고 이웃 씨족과 터질 뻔한 전쟁,
토기를 구워내는 동네 아줌마들,
돌멩이를 찾아 먼 길 떠나는 아버지와 3총사,
겨울나기를 준비하며 도토리 줍기에 나서는 마을 사람들,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멧돼지 사냥!
길지 않은 얘기 속에 신석기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요구되는 필수 요소는 다 담아냈다는 말입니다.
한 예로 "흑요석"을 들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제가 역사 전공이지만,
러시아 작가 일리인의 동화책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돌멩이가 떨어져서 인간은 청동기를 만들게 됐다!>
그럴 듯하면서도 뭔 소린지 이해가 잘 안 되지요?
널린 게 돌멩이인데, 돌멩이가 왜 품귀 현상을 일으켰을까?
러시아 작가가 요런 걸 좀 자세히 써줬으면,
역사학자 꼬마작가가 초등학생용 역사동화를 읽으면서
그렇게 헤매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수준 높은' 러시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쓰다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줘야지요, 뭐!
<흑요석>!
요게 말입니다, 화산 지역에서나 나오는 아주 귀중한 돌이랍니다.
이 돌이 한반도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일본에서 수입되기도 했답니다.
대단하지요?
신석기 시대에 벌써 한국은 <자본재>를 일본에서 수입해다가
산업 활동을 했던 겁니다.
요새 반도체 만들려면 거기에 들어가는 기본 장비는
몽땅 일본 제품이라고들 하지요?
흑요석이 바로 그런 <자본재>였던 모양입니다.
이 흑요석이 생산되던 또 한 군데는 바로 백두산!
이 돌을 구하기 위해서 주인공의 아버지를 포함한 3총사가
한여름에 백두산으로 떠났다가 가을에 돌아옵니다.
"아주 단단하고 날카로워 창이나 화살촉을 만들었다(48페이지)."
이 돌이 없으면 사냥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신석기 때 사냥감은 주로 멧돼지였던 모양인데,
멧돼지 사냥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요?
제대로 사냥을 하려면 바로 이 날카로운 <까만돌>이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이 <자본재>가 바로 백두산에서 가지고 오거나
또는 일본에서 수입을 했던 품목이랍니다.
물론 그때는 수입-수출 개념이 없었겠지요?
<돌멩이가 떨어져서 청동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러시아 작가의 이 말이 뭔 말인지 이제는 이해가 되지요?
세 번째로는 그림입니다.
저는 책을 사기 전에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옷을 만들어 입었나 하는 것 때문에
이 책의 그림을 좀 이상하게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벌써 삼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하네요.
동물 가죽이나 걸치던 시대는 <네안데르탈>이고,
신석기 시대에는 벌써 옷을 만들어 입었던 겁니다.
어쨌거나, 이런 의심을 뒤로 하고 그림을 보니까 잘 그렸네요.
이 책에는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그림만이 아니라
그 시대 역사를 설명하는 그림도 담겨 있는데,
요게 또 볼 게 여간 많은 것이 아닙니다.
미리보기 오른쪽을 잘 보면 설명 그림이 나오지요?
요게 대단히 뛰어난 수준입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4161
네 번째로는 주인공들의 이름입니다.
사슴뿔이, 곰손이, 째진눈이 - 주인공을 포함해서 비슷한 또래의 3총사!
맑은샘이 누나, 어여쁜이 아줌마, 반달눈이(사슴뿔이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
깊은주름 할머니(씨족의 무당), 번개구름 형(사슴 씨족으로 장가간 동네 형).
이름들이 재미있지요?
사실, 우리 조상들의 원래 이름은 이런 식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한자 들여다가 이름 쓰다보니까 지금처럼 변한 겁니다.
인디언만 "늑대와 춤을"과 같은 이름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고급 행세를 하려다보니까 성도 변하고 이름도 중국식으로 바뀐 겁니다.
아무튼 이런 이름들은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어할 그런 말들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옛날 물건들에 대한 순수 한국 이름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갈돌, 갈판, 돌톱, 활비비, 모룻돌, 뒤지개, 가락바퀴, 가리, 자귀...
사실, 이런 낱말들은 저 자신도 처음 보는 말들입니다.
이건 다 도구 이름들입니다.
또 이런 표현도 나옵니다.
"퉁을 놓았다(6페이지)."
"비나리(19페이지)."
"남자에게도 때로는 치레거리가 필요한 법이다(47페이지)."
치레거리란 어려운 한자말로 장신구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악세사리가 되겠네요.
네이버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니까 <치렛거리>가 표준어라고 하는데,
사실, <치렛거리>가 맞는 말입니다.
두 낱말을 합쳐서 하나로 만들 때에는 <ㅅ>을 붙이지요?
바다 + 새 = 바닷새, 요런 식으로 말입니다.
아무튼 대학이 아니라 <대학 할아버지>를 졸업했어도
치렛거리 같은 말을 알기는 쉽지 않지요?
솔직히 저 자신도 이 책 보면서 처음 알게 된 한국말입니다.
흠이라고 한다면, 책값이 좀 비싼 편입니다.
관념 좀 바꿔봅시다, 독자 여러분!
책이란 페이퍼백으로도 충분한 겁니다.
하드 커버만이 책인 것은 아닙니다.
하드 커버로 만들면 책값만 올라가게 됩니다.
책값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전국 도서관에 죽죽 풀어주세요.
출판사에서는 책값 좀 내리기 위해서 노력 좀 해주세요.
부탁!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