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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야 1903년 가을 - 러시아 학자 세로셰프스키의 대한제국 견문록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지음, 김진영 외 옮김 / 개마고원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부드러운 우윳빛 햇살로 가득 찬 '하얀 꿈'의 동화 나라여!"

멋있지요?

문장 말입니다.

글은 이렇게 쓰는 겁니다.

다만 글에 자신이 있어야만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 교육!

나중에 이렇게 쓸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글쓰기 교육이어야만 하는 겁니다.

논술 점수 몇 점 더 받자고 하는 교육,

그런 '누런 꿈'을 가진 부모들은 꼬마작가 앞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기 바랍니다.

 

이렇게 써도 멋있지요?

'하얀 꿈'과 '누런 꿈!'

이렇게 자유자재로 비유를 할 줄 아는 것이 바로 글쓰기에 필요한 자신감입니다.

 

자 그럼, 잔소리는 여기서 끝내고, 먼저 작가에 대해서!

 

저자 :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 최근작 : <코레야 1903년 가을>
  • 소개 : 1858년 러시아제국 치하에 있던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으 ㅣ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74년 바르샤바 철도기술학교에 입학한 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사회주의 노동연맹에 가입하고, 그로 인해 1880년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된다. 12년의 유형 기간 동안 민속학적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첫 민속지학 학술서 <야쿠트족>을 집필하여 러시아 황실지리학회 메달을 수상했으며, 작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중·단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1900년 초, 다시 반정부 운동에 가담하여 유배를 가게 될 위험에 처했으나 지인의 도움으로 대신 러시아 황실지리학회 탐사대의 일원으로 합류하여 1902년부터 1903년까지 페테르부르크-시베리아-중국 북동부-일본-한국-중국-실론-이집트-폴란드로 이어지는 경로를 거쳐 여행했다. 이 경험을 통해 여행기 <코레야>(1905년)와 장편소설 <기생 월선이>(1906년)라는 두 권의 책을 남겼다. 폴란드 작가동맹 의장, 폴란드 예술원 문학분과위원장을 지냈고 1945년 바르샤바에서 사망했다.

폴란드 하면 또 우리가 아는 척해줄 수 있는 나라지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은이)

오, 세일이네요!

판매가 : 6,650원 (30%off, 2,850원 할인)

 

바로 이 이보나라는 작가가 폴란드 출신입니다.

꼭 좀좀 기억해 주세요.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출판사에서 제공한 저자 소개를 보면

"러시아 황실지리학회 탐사대의 일원으로 합류하여 1902년부터 1903년까지

페테르부르크-시베리아-중국 북동부-일본-한국-중국-실론-이집트-폴란드로

이어지는 경로를 거쳐 여행했다"고 나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바로 이 <러시아 황실지리학회>에서

출판되던 정기 간행물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글 하나를 보면 <간도 문제>를 언급한 것이 있습니다.

이 폴란드 저자의 책을 보니까 바로 이 "탐사대"에서

<간도 문제>에 관한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을 하신 분들께서는 러시아에서 한 번 그 자료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제가 돈 100달러가 없어서 그 원본을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간도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글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래도 러시아에서 그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은 알아둘 만한 것이고

그 뒤에라도 러시아에서는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하는 점은

우리가 유심히 체크할 만한 주제일 겁니다.

 

1903년 가을!

1904년 2월에 러일 전쟁이 시작되지요?

바로 그 전에 러시아 지리학회에서 탐사대를 보낸 것입니다.

뭔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이 책 맨 앞에는 <추천의 글>이라고 해서

현재 뻬쩨르부르그 한국어학과 교수라는 쿠르바노프라는 사람이 글을 썼네요.

이 한국어학과가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학과라고 했지요?

그럼,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어를 연구한 지는 얼마나 오래 됐는가?

 

19세기 초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무렵 북경에 있던 러시아 대사관에서 조선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한국어 연구를 시작했고,

덕분에 지금 러시아 출신 한국학 전공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며

전세계 수출되고 있습니다.

밥 먹고 살기도 어려운 러시아를 떠나 미국이나 서유럽, 호주와 같은 나라에서

막 불러댑니다, 러시아 출신 한국학 전공자들을 말입니다.

이게 다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책 하나 소개하면서 서설이 참 길지요?

그럼, 다시 뻬쩨르부르그 교수의 <추천 글>을 읽어보면,

이 사람은 <코레야 1903년>과 나란히

아주 유명한 가린-미하일롭스끼와 함께 곤차로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린이야 꼬마작가가 하도 선전을 해서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곤차로프는 잘 모르실 겁니다.

 

<오블라모프>!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남긴 작가입니다, 곤차로프가!

<잉여인간>, 러시아 문학사를 꿰뚫는 주제인 잉여인간을 다뤄서

반열에 올라간 작가가 바로 곤차로프입니다.

이런 대작가가 한국 땅에도 살짝 발을 디디고는 고향으로 돌아간 일이 있습니다.

그 여행 기록을 <전함 팔라다>에 남겼는데, 1858년에 출판됐다고 하네요.

이 책은 제가 읽은 일이 있는데, 그때 곤차로프가 디딘 곳은 거제도였습니다.

하지만 뻬쩨르부르그 대학 교수는 "초라한 강원도 해안 마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꼬마작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 교수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또는 번역의 오류인지,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요?

 

http://en.wikipedia.org/wiki/Ivan_Goncharov

 



 

서설 참 길다!

책이란 대충 읽으면서도

이렇게 샅샅이 오류 또는 의심 가는 곳을 긁어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만 발전이 있는 겁니다.

해설이랍시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쓰는 일은 이제 그만들 둡시다.

알겠지요, 한국의 지식인들?

 

"만성적 병폐의 화신, 양반과 관리(294페이지)."

뻬쩨르부르그 대학 교수는 이 폴란드 저자의 책이

"너무도 아름다운 책(5페이지)"이라고 추천 글에 썼는데,

사실, 우리=한국인이 읽으면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꼬마작가 패턴의 독설이 돋보인다고 할까요?

"만성적 병폐의 화신, 양반과 관리," 이 얼마나 대단한 독설인가요?

 

"지난 8년간 대만의 식인종들을 어떻게든 이끌어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만들어온 일본이

진보와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이 불쌍한 한국 또한

일으켜 세워주리라 기대해본다(284페이지)."

 

한국 독자들로서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속이 편할 리가 없지요?

자, 이제 저자를 생각해봐야 하는 겁니다.

폴란드 출신으로 반체제 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 문화인류학자!

저자는 큐리 부인과 같은 폴란드 출신입니다.

그의 조국 폴란드는 그때 러시아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그는 러시아와 일본이 한 번 붙으면 러시아가 패하기를 기대했을 겁니다.

러시아가 패한다는 건 일본이 이긴다는 말이지요?

일본이 이기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겁니다.

반대로 러시아가 이기면, 한국은 러시아에 합병되는 것이었구요.

저자는 아주 복잡한 심정을 일본의 "진보와 휴머니즘"으로 포장해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책을 읽으면서는 이렇게 저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계속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또 서설이었습니다, 그려!

 

더 중요하게는 저자의 그런 태도에 일희일비 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독자란 저자가 공정한 글을 쓰고 있는가 하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데,

"만성적 질병의 화신, 양반과 관리"와 같은 정치 분석에서는

좀 지루하다 싶기도 합니다.

뒷부분의 정치 얘기가 대체로 그런 면이 강한데,

다만 "민씨 가문은 1000여 개의 관직을 독식하고 있다"는 설명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못 들어본 얘기지요?

 

또 우리는 <보부상>이라고 해서 이게 같은 장사꾼들인 줄로만 알고 있지요?

하지만 이 폴란드 저자는 <보상과 부상>은 다른 것(267-270페이지)이라고 설명하고 있네요.

보상이란 완전 빈민 장사치이고,

부상이란 전국 조직을 갖추고 외국 수입품을 전국 구석구석에 판매하던

부유층 상인 조직이었답니다.

이들은 심지어 정부 한쪽 팔 노릇을 하면서

"국사범이나 범법자"들을 잡아들이기도 했다는데,

중요한 건 철도와 같은 교통 시설 발전에는 정부에 반대 압력을 넣었답니다.

등에 짐을 지고 물건 팔던 상인들이니

철도가 건설되면 자기들이 설 자리는 다 날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19세기 말부터는 광화문 앞에서 깡패 조직을 동원해가며

특권을 누리던 상인 조직인 육의전이 몰락해가면서

대신에 부상들이 '부상'하게 됐다는 그런 얘기가 되겠네요, 그렇지요?

이런 얘기는 교과서 아무리 읽어봐야 안 나오는 겁니다.

뭣들 하는 겁니까, 한국사 전공자 여러분?

 

또 이 폴란드 저자는, 다른 여행 기록들과는 달리,

인용문을 많이 실었고 그걸 <주>로 다 밝혀줬습니다.

책 끝에는 참고문헌까지 자상하게 실었는데,

번역자들은 이 자료와 함께 폴란드 저자가 참고했을 만한 책들도 소개했습니다.

이 참고문헌 중에는 제가 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러시아 재무성의 책도 나와 있네요.

제목은 Opisanie Korei라고 하는데,

1984년에 <국역 한국지>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도 번역이 됐다고 합니다.

알라딘을 찾아보니까 이 책은 나오지 않고,

대신에 아마존에서 Opisanie Korei라는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비슷한 제목으로 <만주지>가 나오네요.

역시 러시아 재무성에서 나왔고 1897년에 출판이 됐던 것인데,

University of Michigan Library에서 영어로 번역해서 다시 찍은 모양입니다.

Language: English

 



 

러시아 놈들, 미국 놈들, 한국이니 만주니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지들 멋대로 가지고 놀지요?

강대국이란 이런 겁니다.

남들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애들은 얻어터지기만 하다가

주권도 빼앗기면서 노예로 전락하는 겁니다.

그게 역사지요?

 

<코레야 1903년 가을> 얘기는 계속됩니다.

다만 제가 소개하는 한국 관련 책들은 다 도서관에 신청해 주세요.

그래야 출판사들이 다른 책들을 찾아서 출판을 해줄 수 있습니다.

벌써 절판된 책들이 몇 권 나왔지요?

이런 일이 계속 생기면,

최소한 꼬마작가 같은 사람의 책 소개글도 막히게 되는 겁니다.

적어도 본전이라도 뽑을 수는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도서관 신청!

꼭 좀좀 부탁!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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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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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이제 우리한테는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이지요?

아동문학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말입니다.

<삐삐> 할머니 린드그렌과 <꼬마 바이킹 비케>를 배출한 나라, 스웨덴!

노벨과 에릭손, 라르손만 있는 줄 알았지요?

라르손은 또 누구냐구요?

스웨덴 출신 유명 축구 선수!

얼마 전에는 베리만이라는 사냥꾼이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훑고 지나갔지요?

 



 

작지만 강한 나라, 스웨덴!

이 스웨덴에서 출판된 한국 관련 저작이 또 한 권 있네요.

종군기자 아손이 쓴 <I Korea>!

이 책을 김상열이 번역했습니다.

김상열은 우리가 또 잘 아는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요?

만연체 문장의 진수를 보여주는 1909년 노벨상 수상작을 번역한 사람이

바로 김상열인데,

오늘 소개하는 책은 <닐스>보다는 번역 수준이 좀 떨어지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읽는 데에는 큰 불편은 없을 겁니다.

 



 

"탐구심이란 원래 타고난 본능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혹자는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을 보기 위해

한쪽 눈을 감고 인생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쉼표는 필요 없는 자리) 삶에 대한 이런 사람의 이해는

밝고 아름다운 것은 될 수 있을지언정 바른 것은 될 수 없다(287페이지)."

 

저자는 1905년에 조선 감옥에서 한 죄인이 사형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다음,

위와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 장면은 주리를 틀어서 먼저 종아리뼈를 부러뜨리고 나서 계속 이어집니다.

 

"죄수의 팔뼈와 갈비뼈 사이에 대막대기를 집어넣어

이 뼈들을 차례차례로 부러뜨린 다음,

마지막으로 비단 끈을 사용하여 죄수의 목을 졸라 죽여

시체를 질질 끌고 나갔다(286페이지)."

 

스웨덴 기자 아손은 1904-1905년 러일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서

일본에 갔다가 도쿄에 발이 묶여서는

일본을 '탈출'하여 조선으로 넘어온 사람이랍니다.

러일 전쟁기 종군 기자들에 대한 일본의 <야만 행각>에 대해서는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에 아주 실감나게 잘 묘사가 돼 있습니다.



 

어쨌거나,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서 일본에 왔던 스웨덴 기자 아손은

조선으로 넘어와서는 문화인류학 관점에서 조선에 대한 책을 남깁니다.

일본 당국에는 상인이라고 속이고 조선으로 온 아손은

고종 황제도 직접 알현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바로 이때 찍은 것인 모양입니다(219페이지).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4/h2010040221570084210.htm
이 사진은 최근에 출판된 <제국의 렌즈>에 실려 있다고 했지요?
 

 
누가 찍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스웨덴 기자 아손도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고,
다만 고종과 순종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황제의 얼굴은 개성이 없었으나
원만해 보였고 체구는 작은 편이었다.
조그만 눈은 상냥스러워 보였고 약간 사팔뜨기였다.
그의 시선은 한 곳으로 고정되지 못하고 노상 허공을 헤매었다.
...
황제의 옆에 서 있는 태자는 아주 못생긴 얼굴이었다.
작고 뚱뚱한 체격에다가
얼굴은 희멀겋고 부은 듯해서 생기가 없어 보였다.
입술은 두꺼워 육감적이었고, 코는 납작했으며,
넓은 눈썹 사이로 주름살이 움푹 파여 있었다.
놀란 두 눈을 신경질적으로 연방 깜빡거리면서
한시도 쉴 새 없이 이곳저곳에 시선을 돌려대었다.
...(218-219페이지)."
 
이 스웨덴 기자가 고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태자였던 순종의 비가 죽어서 벌어진 장례식 참가했기 때문이랍니다.
기자는 이 자리에 스웨덴 장교라고 속이고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고종과 순종에 대한 인상이
사진과 함께 역사 기록으로 남게 된 겁니다.
 
기자는 이 장례식을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라며
"한마디로 말해 웅장했다. 눈이 부셨다.
동양의 찬란함이요, 아낌없는 풍성함이었다(210페이지)"고 썼습니다.
기자가 묘사한 바로는 대강 1개 연대 병력에다가
내시 500명과 궁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아이들,
태자비의 상여를 메고 가던 장정 150명,
여기에 정부 관리, 서울에 있던 외교 사절단, 일반 백성까지 해서
규모가 엄청났던 모양입니다.
일본쪽에서는 관현악단까지 동원돼서 <쇼팽의 장송곡>을 연주했고,
조선 쪽에서도 음악은 연주가 됐겠지요?
 
중요한 건 태자비가 죽은 원인인데,
스웨덴 기자는 독일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분쉬라는 의사한테서
자초지종을 다 들었다고 합니다.
100명 가까운 의사들이 사기를 치고는 줄행랑을 쳤답니다.
사례금만 챙겨서 도망을 친 것이지요?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태자비가 죽은 책임을 져야 했겠지요?
또 의사들의 능력이 그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기자가 독일 출신 의사 분쉬 덕분에
조선의 의료 상황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는 점입니다.
물론 위의 책이 훨씬 더 도움이 될 텐데,
의사분들께서는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스웨덴 기자의 책에는 조선의 의학 문제에 대한 많은 얘기가 있는데,
대체로 합리성과 이성이 없는 조선 의학 시스템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주먹구구 수준을 넘어서는 조선 의학에 대해서는 좀 연구를 해야 할 겁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20세기 초 조선의 정치와 문화인류학을
절묘하게 결합한 것입니다.
이런 걸 두고 한철호라는 역사학 교수는
고등학교 국사 선생처럼 러일 전쟁 전후의 한국 상황을 얘기하면서
이 책의 가치를 정치로만 가두려고 했네요.
책이란 좀 크게 봐야 합니다.
 
자, 스웨덴 기자의 한국 방문 기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 20세기 초 서울의 도시 사회사
2) 조선 여성사
3) 20세기 초 조선인의 체격과 체력 문제
 
1) 도시 사회사
솔직히 20세기 초 모스크바의 역사를 전공한 꼬마작가로서는
20세기 초 서울의 모습을 도시 사회사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굉장한 흥미를 느낍니다.
먼저, 지난 번에 1936년의 식민지 조선을 묘사한 책
<한국의 야생동물지>를 소개하면서
그 무렵 서울 인구가 40만 명이었다고 했지요?
 

 
오늘 소개하는 스웨덴 기자의 책에는 1905년 서울 인구가 30만 명이었답니다.
엄청나지 않나요?
잘 모르겠다구요?
 
1900년 무렵에 인구 순위로 1등은 200만 명을 자랑하던 뉴욕이었습니다.
10등 정도가 100만 명이었던 모스크바!
다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점은 1등 뉴욕부터 10등 모스크바까지는
거의 모두가 산업 발전을 기반으로 인구가 급성장했다는 점입니다.
쉬운 예로 모스크바를 들 수 있는데,
도시의 산업이 발전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10년 정도 지난 1913년에는
인구가 200만 명으로 늘어납니다.
 
중요한 건 서울은 기차, 전차를 비롯한 몇 가지를 빼고나면
근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전근대 도시였다는 점입니다.
그런 도시 안에서 30만 명이 살았다는 점이고,
그것도 4대문 안의 인구가 그랬다는 사실입니다.
몇몇 기록으로 볼 때,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성을 벗어나면 주민들은 거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 좁은 면적 안에서 1905년에 30만 명이 살았던 겁니다.
 
"쓰레기 더미 사이사이를 꾸불꾸불 흐르면서 온갖 불순물을 실어내어
그렇게 향긋하다고는 할 수 없는 냄새를 풍기는 하수도나 도랑 가에는,
아낙네들이 줄을 짓고 앉아서 열심히 빨래를 한다.
이들은 더러운 물에 빨랫감들을 억척스럽게 주무르고 문질러,
결국은 두 눈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해놓는다(167-168페이지)."
"여인네들은 우물 바로 주위에서 빨래를 하고 채소나 생선도 다듬었다.
이때 나온 찌꺼기들이 다시 우물로 흘러 내려가 우물물을 더럽혔다.
식수에 대한 부주의와 무관심이 바로 서울에
그렇게 자주 만연되는 콜레라와 기타 유행병의 원인이라 한다(144페이지)."
 
근대 사회에서 도시 발전이란 대개 산업 발전을 뜻하고,
동시에 교통과 통신을 비롯한 대중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흔히 놓치는 것이 바로 상하수도를 비롯한 공공 위생 시설의 발전인데,
이 문제는 전염병을 비롯한 시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19-20세기 전환기에 선진국의 대도시들은 바로 이 상하수도를 비롯한
<공공 위생 투쟁>에도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외국을 여행하면서 보는 현대 도시란
바로 이런 노력과 함께 기틀이 잡히게 되는 겁니다.

 

반면에 스웨덴 기자가 묘사한 바로는

서울에서는 이런 노력을 찾기 어려울 것 같지요?

이게 바로 후진국의 모습이고,

현대 도시의 상하수도 노릇은 '북청 물장수들'이 담당하는 거지요?

기자는 외국의 영향 아래 이 물장수들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가볍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옛날에 사용되었던 나무 물통은 튼튼하긴 했지만

더 가볍고 용적이 큰 양철통에 완전히 밀려났다.

이렇게 되자 코레아에서 그 전통을 자랑하던 수공업 중

하나가 문을 닫게 되었다(147페이지)."

 

기자는 전통 사회에서 일어나는 작은 경제 변화까지 짚어내고 있는 것인데,

중요한 건 전염병을 둘러싼 조선의 관념입니다.

기자는 사형 장면을 목격하던 날 돌아오는 길에

성벽에 짚더미로 덮어놓은 시체 40구를 봤다며 사진까지 담았고,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코레아인들은, 이렇게 할 경우(쉼표가 필요한 자리)

천연두를 일으킨 병마가 시체를 따라 성벽까지 가서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고

그러면 그 병마는 자신이 침범했던 집을 찾을 수 없게 된다고 믿는다.

넉 달이 지난 후 시신은 다시 수습되어 모든 예우를 갖추어

죽은 자에 합당한 장례를 치르게 된다(289-290페이지)."

 

이 무슨 끔찍한 얘기랍니까, 그래?

드라마에 보면 역병이 돌 때 불 피우고 해서 난리가 아닌데,

스웨덴 기자의 설명으로는 다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전염병=바이러스라는 생각이 아닌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 바이러스를 귀신으로 생각해서 어디론가 끌고가겠다는 말이지요?

이런 사회에서 전염병이 한 번 돌면 대책이 없었을 텐데,

실제로 1857년에는 콜레라가 돌아서 40만 명이 사망했다(251페이지)고 합니다.

 

전근대에 걸맞는 도시 사회 환경과 위생 관념,

여기에 엉망진창인 의료 시스템과 의학 관념!

스웨덴 기자는 이런 문제를 아주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있습니다.

현대 역사학이란 이런 걸 연구해야 하는 겁니다.

기자의 얘기가 사실인가 아닌가부터 시작해서

사실이라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가 하는 것을

조리에 맞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겁니다.

 

2) 조선 여성사

 

당시 조선의 여성 문제는

세계 문화인류학자들의 최대 관심사 중에 하나였던 모양입니다.

조선에 왔다 돌아가서 책을 남긴 사람들 중에

여성 문제를 얘기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수많은 책의 목차만 훑어봐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대체로 일부다처제 문제가 가장 커다란 관심사였는데,

솔직히 제가 결혼할 때 러시아 장모한테서 '가벼운 태클'을 받았던 것도

바로 이 일부다처제 문제였습니다.

'혹시 지금도 그런 전통이 남아있는 건 아니냐?'는 의심이었는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서양 사람들한테는

아주 굉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였을 겁니다.

 

이 문제에서 스웨덴 기자는 유럽 언어로 출판된

<조선 여성 문제>에 관한 자료까지도 읽고 조선에 왔다는 점을 밝히면서

계층에 따른 조선 여성 문제의 다양성을 얘기합니다.

"비천한 계급 내에서는 이혼 사태가 흔하기 짝이 없어

1년에 다섯 번이나 여섯 번씩  장가를 가는 남자가 있을 정도이다.

...

하층 계급에서도 첩을 두는 경우를 볼 수 있으나 상층 계급과는 달리

형식을 별로 따지지 않고 본부인과 거의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으면서

한 집에서 고락을 나눌 수도 있다(186페이지)."

 

이런 얘기는 우리 관념을 완전히 깨버리는 것이지요?

한국인한테 가족이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이고

또 소중하다는 관념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배웠는데,

"이혼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니,

참, 믿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럼, 역사학자라면 이런 걸 검증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국사 전공자들, 월급 받아서 뭣들 하는 거야,

우리는 이런 질책을 할 수 있는 겁니다.

 

3) 조선 사람들의 체격과 체력 문제

 

이 스웨덴 기자는 아주 대놓고 얘기합니다.

일본인 - 난쟁이족,

조선인 - 유럽인만큼이나 큰 사람들!

자기가 도쿄에 있을 때에는 보통의 일본 사람들보다는 머리 하나만큼 컸지만,

한국에 오니까 다 자기 만하다며

조선 사람들의 체격과 훤한 얼굴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다만 "흰 옷의 유령들"이라는 표현은 이 사람 책에서도 반복됩니다.

 

흰 옷 입은 유령들이라는 말이야 그냥 그런 인상을 받았다고 해도 됩니다.

하지만 듬직한 체격을 갖춘 조선인들은 <약골>이라는 얘기는

이 스웨덴 기자의 입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나옵니다.

"그 무리들 중에서 제일 왜소한 일본인이 키 크고 떡 벌어진

한 코레아 사람의 멱살을 거머쥐고 흔들면서 발로 차고 때리다가

내동댕이치자, 곤두박질을 당한 그 큰 덩치의 코레아 사람이

땅에 누워 몰매 맞은 어린애처럼 징징 우는 모습(45페이지)."

 

이 장면은 기차역에서 벌어진 것이고,

덩친 큰 조선 사람을 때린 사람은 역무원이었다고 합니다.

기자는 부산에 내리자마자 이런 장면을 본 것이라서

아주 커다란 인상을 받았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뒤에 서울에 올라와서 보게 된 조선과 일본 정규군의 총격전!

이 사건은 일진회를 둘러싸고 고종은 진압 명령을 내리고

일본군은 일진회를 비호하면서 일어나게 됩니다.

기자가 세세하게 목격했다는 이 전투는 아주 싱겁게 끝나버리고 맙니다.

일본군이 조선군의 방어진지로 돌격하면서

조선군은 모두 포로로 끌려나오게 됩니다.

그 뒤에 묘사된 조선군 지휘관들의 모습!

 

"어느 대위는 캐비닛 속에 숨어 있었고,

어느 대령은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미국제 책상 밑에 질린 표정으로 쪼그리고 있었다.

중위 두 명은 다락방에 있는 군복 더미 속에서 발견되었고,

계급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장교 한 명은

취사장의 밀가루 포대 속에 숨어 있었다(261-262페이지)."

 

조선군 총사령관이었던 고종의 군대는 이랬습니다.

단순히 일본군보다 병력이 부족하거나

또는 무기의 성능이 뒤떨어졌다는 점만이 아니라

용기, 사기, 군기라는 면에서도 형편없었던 겁니다.

스웨덴 기자가 목격했다는 조선군 방어진지 돌파 장면은

조선군 장교들의 우유부단함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이러니 20세기 초에 조선을 방문했던 유럽인들이

'덩치만 커다란 약골(겁쟁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했을 겁니다.

 

조선 사람에 대한 이미지에서 기자는 눈으로 직접 본 것 말고도

일본군 장교한테서도 영향을 받은 면도 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이 장교하고는 부산에서부터 기차를 같이 타고 서울까지 올라오는데,

두 사람은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섞어가면 대화를 했다고 합니다.

이 대화에서 일본군 장교는

조선 선비가 나라를 말아먹은 원인이라고 설명하면서

"예"를 중시하며

"어떤 까다로운 사람의 눈에 노동으로 보일 수 있는 일이라면

그 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그 일을 멀리하는 것(55페이지)"이 예라고 했답니다.

 

분명히 스웨덴 기자는 조선에 대한 인상에서는 이 일본군 장교한테서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노동을 수치로 알며 게으르고 무식하고 걸인이 많은 나라(254페이지)"라고

책 끝머리에 가서 다시 한 번 조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 속에서 "조선의 백성들-어린애처럼 천진난만하고 나태한-

은 그동안 속수무책인 채 손만 벌리고 서 있었다(255페이지)"며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스웨덴 기자의 책으로 볼 때,

그 무렵 유럽인들이 흔히 했던 '약골' 조선 사람들이라는 말은

<의지, 용기가 결핍된 민족>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 원인은 조선 양반들에게 있는 것이고,

그런 나약한 양반 계층에 기대고 있던 고종은

그 무렵에 조선을 찾은 유럽인들의 '조롱거리'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꼬마작가의 이런 해석은 키케로에서 기번으로 이어지는

서양인들의 도덕 관념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용기와 의지가 없는 나약한 민족 조선인과 그 조선인의 왕인 고종을 통해서

스웨덴 기자는 도덕 설교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만 착각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이 기자는

일본과 일본인을 경멸하다시피 증오한다는 점입니다.

아래 글은 일본군이 죄 없는 조선 백성 3명을 십자가에 묶어놓고 총살해서는

6일 동안 전시한 만행을 보면서 쓴 것입니다.

 

"여기서야 비로소 일본의 잔인함과 냉정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일본은 서구식으로 개화된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비록 일본인들이 빠른 두뇌 회전과 명석함을 무기 삼아

큰 힘을 과시하고는 있지만,

우리 서양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우리들이 자화자찬하면서 착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서구 문명이 도달해 있는 이 지점까지 쫓아오려면

그들은 아직도 수천 마일의 거리를 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267-2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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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 신화에서 역사로
김정진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도 2008년에 소개가 돼서 한동안 난리를 쳤던 것이지요?

사실, 그때만 해도 저는 <그림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거북선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의 문제입니다.

그것도 조선과 이순신에 국한된 그런 쫀쫀한 해석이 아니라

세계 해전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가치라든가

또는 항해와 관련된 다양한 과학 지식의 문제를 얘기하려고 합니다.

거창하지요?

 

사실, 아직은 저도 깊이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그 동안 얻어온 <동화책 지식>을 토대로 해서

거북선을 이리저리 평가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꾸 묶어가는 능력, 애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능력입니다.

그까짓 단편, 단편 끊어진 지식을 아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답니까?

거, 뭐라고 하지요, 논술에서?

<통합 논술>이라고 하나요?

살살 엮어서 설명할 줄 아는 재주,

이게 21세기 논술 시대에 살아남는 올바른 교육 방향입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면!
 

본론 1) <거북선>이 지니는 그림 가치: Cross-Section!

요즘 이 크로스 섹션 때문에 난리가 났지요?

 



 

스티븐 비예스티(한국에서는 비스티)!

이 사람의 책이 바로 며칠 전에 번역 출판돼서는

한 방에 베스트 셀러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스티븐 비예스티,

이 사람도 꼬마작가가 2년 전부터 열심히 강의를 해왔던

영국의 magic pencil입니다.

영국에 가면 magic pencil이라고 있습니다.

이 magic pencil들의 특징은 연필로 직접 그린다는 점입니다.

 



 

요것도 크로스-섹션은 섹션인데, 요건 기법이 다릅니다.

컴퓨터 그래픽!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림책 이론서를 보니까

컴퓨터 그래픽은 이제 그림책 영역에서도 전문 분야로 인정을 받고 있더군요.

미술 전공을 하시는 분들은

손으로 그린 것만이 그림이라는 고집을 피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에서도 MIDI라는 기법을 활용해서 작곡하고 편곡하고 그러는 모양이대요,

그것도 클래식에서 말입니다.

MIDI란 컴퓨터를 활용한 작곡인 모양입니다.

음악도 컴퓨터, 그림도 컴퓨터!

세상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자 그럼, 크로스 섹션 그림을 감상해 볼까요?

 



 

이 그림은 미리보기를 계속 클릭해보면 오른쪽에 짤린 것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내부 구조가 잘 보이지요?

크로스 섹션 기법이란 바로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최신형 미술 기법입니다.

요새 아동문학의 역사와 과학은 온통 이걸로 뒤덮여 있습니다.

꼭 좀좀 기억해 주세요!

 

본론 2) 거북선(판옥선)의 특징과 한계

 

거북선은 1555년에 처음으로 선을 보인 판옥선 위에

철갑을 입힌 전투함입니다.

그러니까 거북선을 제대로 알려면 판옥선을 알아야 하는데,

판옥선의 특징은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의 빠른 물살,

밀물과 썰물을 고려해서 만든 전투함이라는 점입니다.

빠른 물살 때문에 판옥선은 배 밑바닥이 U자 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반면에 그때 일본 전투함인 안택선은 V자 형이었답니다.

 

물리학 실험, 이런 건 한 번 실험을 해볼 필요도 있겠지요?

빠른 물살에서는 어떤 배들이 어떤 장단점을 보이는가?

속도와 회전 능력, 안정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측정될 수 있을 텐데,

이중에서 속도에 대해서는 태종 13년 기록이 있답니다.

 

"태종은 왜인으로 하여금 왜선을 만들게 하고,

우리나라 병선과 한강에서 경주하게 하였다.

이때 우리나라 배가 왜선보다 내려갈 때는 30보에서 40보 정도 뒤지고,

올라올 때는 백보가 뒤지더라(36페이지)."

 

하지만 전투함이라는 것은 단순 속도 경쟁만 하는 배가 아니지요?

쌈박질을 제대로 하려면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안택선에 대해서도 자세히 좀 써줬어야 하는데,

저자는 19페이지 아래쪽에 조그맣게 설명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지 간에 일본 전투함은 속도는 빠르지만

남해안의 빠른 물살을 이겨내는 <순간 민첩성>에서는 뒤떨어진 모양입니다.

게다가 포를 쏘고 나면 아주 심하게 휘청거린 모양인데,

이런 약점 때문에 함포는 딱 하나만 설치를 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거북선에는 양 옆으로만 6문씩 해서

모두 12문의 대포를 설치할 수 있었다고 하니까

파괴력의 수준은 완전히 다르지요?

 

순간 민첩성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전함인 트라이림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바로 아래 <고대 그리스> 48-49페이지에는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이 돼 있는데,

여기에서 전함의 순간 민첩성이란 <박치기 기술>로 나타난답니다.

옛날 해전이란 적의 배에 올라가서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 고작인데,

백병전을 벌이기 전에 박치기로 적선을 깨버릴 수 있다면

전투는 한결 쉬운 일이 되지요?

사실, 거북선도 이런 돌격선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는데,

아무튼 그리스 전함 트라이림에 대해서는

magic pencil 스티븐 비예스티가 그림으로 잘 보여준 일이 있지요?

 

  

 

그럼, 거북선을 포함한 판옥선은 넓은 바다에 나가서도

그 위용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아닐 겁니다.

조선 해군은 해안선을 따라 살살 왔다갔다 할 수만 있는 배일 뿐이고,

조금만 벗어나면 별 힘을 못 쓰던 배일 겁니다.

위키에서 담아온 아래 사진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널 때 탔던

<산타 마리아 호>의 모형이라고 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anta_Mar%C3%ADa_(ship)



 

사실은 조선 배와 유럽 배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잘 알아야

아이들이 한국사에만 갖힌 사고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요?

아래 사진은 요즘에 제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의 그림책!

 



 

 

대양을 누비기 위해서는 배라고 하는 하드 웨어도 갖춰야 하지만,

소프트 웨어도 아주 중요하지요?

고려 때 중국에서 보낸 사신인 서긍의 <고려도경>을 읽어보면,

옛날 뱃길이라고 하는 것은 숙련된 뱃사람들의 경험에 의존해서

'때마침' 부는 바람 타고 섬 사이를 살살 돌면서

움직이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대서양과 같은 엄청난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나침반을 비롯한 기본 장비에다가

위도와 경도를 측정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됩니다.

이때 기본 지식이 바로 천문학이라고 했지요?

 



 

바로 이 경도와 위도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할 때

필요한 도구가 크로노미터입니다.

이 크로노미터를 주제로 한 동화책도 나와 있습니다.

동화 그림책을 가지고 완전 소설을 쓰고 있지요, 꼬마작가?

 



 

간단히 말하면,

조선은 바닷가를 살살 돌 수 있는 배와 항해술을 가지고 있던 것뿐이었고,

먼 바다로는 나갈 능력이 없었을 겁니다.

멀리 돌아다니지 못하면 세계관이 그만큼 좁아집니다.

거북선을 자랑이라는 관점만이 아니라

좀 더 크게 보면 이렇게 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본론 3) 세계 해전사에서 바라본 이순신의 전술

 

A. 육해군 합동작전에서 항공모함으로

 

 

 

이 책에 대해서는 2008년에 대강 얘기를 한 일이 있지요?

사실, 저도 아직 읽어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강 표지그림과 제목만 봐도 뭔 소린가는 짐작이 됩니다.

이 책의 저자도 거북선을 다룬 바가 있습니다.

 



 

위에 담아온 것 중에서 첫 번째 책은

바로 <육해군 합동작전>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겁니다.

항구에 있는 적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바다에서는 함포 사격,

땅에서는 육상 돌격전을 벌여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조선 육군은 형편없는 군대였지요?

사정이 이러니 이순신은 함대만 이끌고 쳐들어갔다가는

적의 대포에 맞아서 배가 다 침몰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1597년 명량해전 때부터

다음 해에 전쟁이 끝나던 노량해전 때까지의 일입니다.

이 동안에 이순신이 한 일이라고는

배 타고 일본군 코 앞을 식식 돌아다니면서 겁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일본군 대포에 맞아서 배들이 침몰할 테니,

<나 여기 이렇게 있으니까 니들은 가만히 있어라> 하는 암시만 줬을 뿐입니다.

 

1904년 러일 전쟁!

자, 300년을 날아서 여순으로 여행을 가는 겁니다.

여순이 바로 안중근 의사가 목숨을 잃은 뤼순이지요?

 

이 해 8월에 여순항에 숨어있던 러시아 극동함대가

여순항을 빠져나와 블라디보스톡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이순신의 '직계 제자' 도고 제독은 이 극동함대를 잡으려고

2박 3일 동안 죽기 살기로 쫓아다닙니다.

서로가 대포 쏘고 하면서 도망치고 쫓아가고 했지만,

서로에게 피해를 준 것은 별로 없는 가운데

러시아 극동함대는 <무사히> 여순항으로 돌아옵니다.

이걸 서해 해전이라고 하는데,

이때부터 러시아 극동함대는 <여순항에 숨어있기>만 고수합니다.

 

가을부터 도고 제독은 '머저리 같은 일본 육군'에 대고

빨리 빨리 진격해서 여순항을 공격하라고 다그칩니다.

함대만 이끌고 쳐들어가서 아무리 대포를 쏴대도

여순항이 끄떡도 하지 않으니까 육군을 다그친 겁니다.

이순신에 비하면, 도고 제독은 복 받은 사람이지요?

멍청하기는 했지만, 다그칠 육군이라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그 해 12월 말에 여순항이 함락됩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해군 전략가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왜?

항구가 함락되면, 함대는 무용지물이다!

 

항공모함!

짜잔, 항공모함 개념이 이때부터 나오게 되는 겁니다.

움직이는 항구, 항공모함!

 

물론 개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항공모함을 언제부터 만들 수 있었는가에 대한 자세한 사실은

저도 아직 모릅니다.

항공모함, 2차 대전 때 혁혁한 공을 세우지요?

주로 미군의 항공모함들이!

 



 

검색을 해보니까 드디어 이런 책이 나왔네요.

연합함대!

이 연합함대를 이끌던 사람이 바로 도고 제독입니다.

이 연합함대를 이끌고 여순항을 함락시킨 다음

발틱 함대를 섬멸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바로 이 도고 제독이 2차 대전 때에는 일본에 독이 됐습니다.

물론 애들이 멍청해서 그런 거지요?

전함 야마토!

전에도 소개한 바 있지요?

 



 

모기떼처럼 달려드는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의 폭탄 세례 속에서 가라앉은 일본의 전설,

야마토!

바로 그 모기떼 폭격기와 전투기는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겁니다.

반면에 야마토는 <전함>일 뿐이었습니다.

대포 쏘는 군함, 야마토!

순양함, 구축함, 항공모함을 비롯해서 군함에는 이름들이 많지요?

이중에 전함이란 대포 쏘기 전문 군함입니다.

대포 쏴서 비행기를 어떻게 맞추나, 일본군들아!

그래, 안 그래?

 

아무튼, 해군의 전략전술은 이렇게 변화가 되는데,

여기에서 이순신은 <육해군 합동작전 전술가>로서도 살펴볼 수가 있는 겁니다.

다만 흠이라면 <상상만> 했다는 것이지요?

 

B. 함포사격 전술가 이순신

 

일자진, 학익진!

많이들 들어봤지요?

일자진이란 일자로 그냥 죽 늘어서서 대포 쏘는 겁니다.

학익진이란 함대를 반원형으로 세워놓고 대포 쏘는 걸 말하는 것이구요.

이 차이는 아마도 지형과 물살에 따라

거기에 맞도록 함대를 배치한 것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항구에 숨어있는 적 함대에 쳐들어갔는데,

바닷가가 일자로 펼쳐져 있다면 일자진을 쓰는 것이고

둥글게 돼 있다면 학익진을 쓰는 것이고 하는 그런 차이라는 말입니다.

또 넓은 바다에서 싸울 때 물살이 잔잔하면 일자로 늘어세워서 대포 쏘는 것이고,

물살이 아주 빠르면 가운데를 뒤로 조금씩 물린 학익진을 썼던 겁니다.

 

T자진!

도고 제독이 스승의 일자진, 학익진을 엄청나게 연구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새롭게 만들어낸 진형이 바로 T자진!

함대를 T자 모양으로 늘어세운 다음에 대포로 쏴대는 겁니다.

러시아 발틱 함대가 바로 이 T자진에 완전 섬멸이 됐습니다.

이 T자진이 <도망 전문 함대>를 쫓아가서

빈틈없이 두드리기에 아주 좋다고 하던데,

솔직히 저는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애들하고 한 번 물리학 실험을 해보기 바랍니다.

 

C. 조선의 대포에서 로켓까지

 

<거북선> 이 책 가운데 48에서 55페이지까지는

조선 대포가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이 돼 있습니다.

다만 <대포 전문 동화책>이 따로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대포가 바로 로켓의 원형이라고 하는데,

어디가 어때서 그렇다는 건지는 저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튼 대포를 연구하면 로켓이 나오고

로켓을 연구하면 우주선이 나온다,

이건 공식 같은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대포!

왜 중요한지 처음 알았지요?

애들 전쟁놀이, 이것도 다 써먹을 데가 있는 겁니다.

 

블랑기!

임진왜란 때 수입 대포, 블랑기!

이 블랑기가 중국을 통해서 조선에 수입됐다고 합니다(52페이지).

원래 이름은 프랑크(Frank).

이 블랑기가 재장전과 발사 속도에서 아주 탁월한 성능을 갖추고 있었고,

거북선과 판옥선에 올라가서 아주 혁혁한 공을 세웠답니다.

최무선의 후예들이 블랑기 매력에 폭 빠진 거지요?

 

책에서는 이 블랑기가 유럽의 15세기 무기라고 합니다.

대포 선발 주자 중국과 조선이 15세기에 벌써 역전을 당한 거지요?

기술 이전과 확산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마치 한국의 삼성과 LG가 일본 소니의 TV를 추월한 요즘 세상에 비유해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책에 나온 그림으로 보면, 블랑기는 크기가 작은 모양입니다.

이런 대포는 육전, 그중에서도 공성전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홍이포!

홍대용이 꿈꿨던 대포랍니다.

어린 시절 북진 열망 속에서 홍이포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다고 하는데,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828749

 

이 홍이포가 병자호란 때 만주족이 조선의 성을 두들기던 대포랍니다.

원산지 - 네델란드!

이 홍이포가 조선에서는 19세기 말에

일본, 프랑스와 싸울 때에도 사용됐던 대포랍니다.

참, 질기게도 오래 울궈먹는다!

그러니 망했지요?

우째, 니들은 대포 하나를 가지고도 200년이 넘도록 써먹냐, 조선 양반들!

기술 발전이란 아예 없었던 모양입니다.

 

다른 건 제가 아는 바가 없고,

러일 전쟁 때 군함에서 쏘던 대포의 사정거리는 벌써 10km 정도가 됩니다.

전설 속 전함 야마토에 장착된 대포의 사정거리는 40km가 넘구요.

 

현란하지요?

배 하나 가지고 천문학부터 시작해서 해군의 전략전술을 지나

항공모함에다가 대포가 어쩌구 저쩌구!

제대로 된 공부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으달달달 역사 교육이여,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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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완 2013-04-16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거북선 저자입니다.(글작가) 구구르로 거맥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많이 배우고 갑니다.

igor5474 2013-05-14 16:51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은 내가 다 팔아주고 있는 겁니다.
믿기지 않나요?
내가 학부모들에게 많이들 사라고 해서
내 선동글 읽는 사람들은 다들 사는 겁니다.

아무튼 좋은 책을 써줘서 고맙습니다.
이런 책이 많이 좀 나와야 하는데 말입니다.

욕쟁이아줌마 2015-06-27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입니다. 강추요. 거북선 작가님과 꼬마작가님께 감사. 좋은 책은 두루 알려져야 합니다. ㅎ
 
유럽에 빠지는 즐거운 유혹 3 - 고성과 건축여행
베니야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0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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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본 사람이고, 시리즈로 나온 책들 중에서 3권입니다.

부제는 <고성과 건축여행>!

 

<성> 하면 또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분야지요?

물론 꼬마작가를 잘 모르는 분들은 <성>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꼬마작가의 전공이 역사학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이쪽 분야로는 수많은 엄마들이 통달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 번 볼까요?

 

 

 

요건 절판이구요.                  요건 데이비드 매컬레이의 명작 그림책!

 

데이비드 매컬레이는 어제도 소개했던 사람이지요?

이 사람은 꼬마작가 무대에 자주 등장하게 될 인물입니다.

꼭 좀좀 기억해 주세요.

 

오늘 소개하는 베니야마의 <고성과 건축여행>은

사실은 어른들을 위해서 쓴 것입니다.

하지만 꼬마작가한테 오면 대개는 다 어린이용으로 변화되지요?

그 비결은?

엄마가 읽어준다!

요게 유태인들의 <교육 비법>이라고 계속 강조를 해왔지요?

 

대원외고 학생들, 잘난 척 해봐야 유태인 앞에 서면 어딘가 모르게 쪼그라들지요?

그럴 겁니다.

한국인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겁니다!

안에서나 잘난 척이 통하는 거지, 국제 무대에서는 별 볼일 없습니다, 한국인!

 

아무튼 일본 사람이 쓴 이 책, 아주 재미있네요.

유럽의 성이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고 건축 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행 안내를 목적으로 해서 쓴 것이라서 사진도 아주 많습니다.

사진이 많다는 얘기는 책이 잘 넘어간다는 뜻이 되지요?

책이란 모름지기 잘 넘어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다 성을 찍은 것입니다.

 

사진들 중에는 슈발리에도 보이네요.

슈발리에는 우리가 또 아는 척해줄 수 있는 성이지요?

어디에 있는 성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스티븐 비예스티(한국에서는 비스티) 작품인

Stephen Biesty's Castles에 있는 성이지요?

벌써 2년 전부터 난리를 쳤던 <성 책>이지요?

우리의 깜찍한 <위키>를 찾아보니까 슈발리에가 나오네요.

 

http://en.wikipedia.org/wiki/Krak_des_Chevaliers



 

어때요?

멋있지요?

요건 터키에 있는 성입니다.

위키로 하나만 더 볼까요?

 

http://en.wikipedia.org/wiki/Neuschwanstein_Castle



 

독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랍니다.

요게 노인네 디즈니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성이라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까 그런 것도 같지요?

사실, 위에 담아온 사진보다는 책에 나온 사진이 더 뛰어나네요.

<위키>에 나온 사진 더 살펴보니까 설악산 기암절벽 위에 세운 성 같기도 하네요.

안 그래요?

 



 

유럽에서 성이란 대강 1,500-1,600년대 이후부터는 건축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간단합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성을 지어봐야 대포알 한 방 맞으면 끝난다!

 

간단하지요?

대포로 두들기는데 바위로 지었건 뭐로 지었건 간에 남아날 게 없는 겁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한국에서는 정조의 명을 받아

정약용이 거중기를 활용해서 멋진 성을 지었지요?

그때가 1794년에서 1796년!

미친 짓거리 한 겁니다, 한마디로!

대포로 두들기는 세상에 무슨 성을 짓고 그런답니까?

정신 좀 차리고 삽시다, 이제는!

 

http://ko.wikipedia.org/wiki/%EC%88%98%EC%9B%90_%ED%99%94%EC%84%B1



 

성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중요한 건 이 건축 기술, 건축 예술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기는 했지만, 수원화성은 예술성에서는 높이 봐줄 만하지요?

예술성을 자랑하는 유럽의 성을 하나만 더 볼까요?

 

http://en.wikipedia.org/wiki/Chambord_castle



 

멋있지요?

샹보르 성이라고 하네요.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 널려 있는 많은 성들 가운데 하나랍니다.

 

오늘 소개하는 일본 저자의 책에는 이런 성들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데,

더 중요한 사실은 성의 이름이 영어나 프랑스어로도 씌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달랑 발음만 해서 한글로 써주면 우리가 찾기 쉽지 않지만,

원래 이름을 그대로 써주면 <위키>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볼 수가 있는 겁니다.

나중에 혹시 책을 쓰실 분들은 이런 것도 잘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자, 이제는 책 내용으로 들어가면,

저자는 유럽에서는 성이 선사시대부터 건설됐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것도 신석기 시대!

며칠 전에 소개한 한국 동화 <사슴뿔이>를 보면,

신석기 시대만 해도 전쟁 준비를 위해서 성을 쌓고 하는 그런 긴장감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에 가면 3,000개나 되는 신석기 시대의 성인

힐 포트(Hill Port)를 볼 수 있다고 하네요(29페이지).

"언덕 요새"라고 번역할 수 있다는 이 힐 포트는

흙을 높이 쌓아올려서 만든 성을 말하는 겁니다.

한국사에서는 <토성>이라고 하는 거지요?

토성 중에서 유명한 토성은 몽촌토성!

 

몽촌토성 사진을 한 장 정도 담아오려고 했더니,

<한국 위키>는 부실하고 다른 사진들 중에는 항공 사진이 보이지 않네요.

직접 가서들 보시기 바랍니다.

서울의 올림픽 공원 안에 있는 겁니다.

가실 때에는 자동차는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주차할 때 애를 먹게 됩니다, 꼭 좀좀 기억해 주세요!

 

부실한 한국 위키 때문에 몽촌토성을 포기하고

영어 위키로 가서 힐 포트를 찾아보니까 요런 사진이 나오네요.

따뜻한 햇살 받으며 한 숨 자면 딱 좋겠지요?

몽촌토성도 그런 용도로 방문을 하시면 되는 겁니다.

뭐 구경한다고 힘 빠지게 삐질삐질 돌아다닐 필요 없습니다.

애들 데리고 가서 낮잠 한 숨 푹 자면 되는 겁니다.

백제의 왕들이 꼬마작가 잡으러 땅속에서 뛰쳐나오것다!

 

http://en.wikipedia.org/wiki/Maiden_Castle,_Dorset



 

어쨌거나, 이 사진을 보면 전쟁 때 방어용으로는 그럴 듯하지요?

게다가 이 시대가 선사시대라니까

무기도 그다지 발전되지 않았던 때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된 성으로는 예리코 성을 꼽는답니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성!

만든 지는 기원전 6,200년!

특징은 "돌과 벽돌(36페이지)"로 지었다는 점인데,

이쪽 중동 지역의 역사가 빠르기는 빠르지요?

흙으로 만든 몽촌토성이 백제 때 성이라고 하니까 차이가 많이 나지요?

 



 

중요한 건 이런 신석기 시대 <힐 포트>에서도 해자가 나온다는 점입니다.

해자가 뭐냐구요?

몽촌토성에 가보면 압니다.

올림픽 공원에 가면 물놀이 해도 될 것 같은 곳이 보이지요?

이게 바로 해자입니다.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611912&docid=64033&dir_id=1003020301



 

이 사진에 보이는 물이 바로 해자인데,

적이 공격을 하려면 이 물을 건너서 언덕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겁니다.

적군은 물을 지나야 하니까 수비하는 쪽에서는 한결 쉽겠지요?

 

바로 이 해자를 적극 활용한 성이 유럽의 중세 성이고,

바로 여기에서 도개교라는 개념이 도출됩니다.

도개교 하면 또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척을 해줄 수 있는 분야지요?

그림책에 널리고 널린 것이 바로 도개교 아닙니까?

그중에서도 <추추>!

 



 

여기에 가면 기관차 <추추>가

도개교를 훌쩍 뛰어넘는 아주 멋진 장면을 감상할 수 있지요?

어린 아기들이 아주 열광을 하지요?

버지니아 리 버튼, 꼭 좀좀 기억해 주세요!

서양 중세의 성으로 넘어가면,

해자, 도개교, 이런 장치들 덕분에 볼거리가 아주 많은데,

그런 거야 관광객을 위한 얘기가 되는 거지요?

 

꼬마작가는,

21세기 지식 정보 시대를 열어가는 교육 이론가 꼬마작가는

바로 이런 건축을 통해서 수학을 수학답게 교육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사람입니다.

황당하지요?

박정희식 전근대 교육 이념에 사로잡힌 한국의 <선행학습> 학부모 여러분,

황당하지요?

 

며칠 전에도 저는 <주판 수학>에 기본을 둔 조선의 부실한 수학 능력 탓에

천문학도 별 볼일 없다는 실학자 홍대용의 얘기를 전한 바 있습니다.

이게 바로 기하학의 문제인데,

서양 기하학은 피타고라스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바로 이 기하학이 제대로 돼야만

건축도 예술성을 갖춘 <높이>를 자랑할 수 있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조선 건축을 보세요, 다 1층짜리입니다.

2층짜리가 드물지요?

수학, 그중에서도 기하학이 안 되니 하늘로 올라갈 수가 있나요?

 

선행학습 학부모 여러분!

주판 수학, 1층 수학, 박정희식 전근대 수학 개념일랑 하루 빨리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개념으로는 미분 적분, 백날 해봐야 못 따라갑니다.

내 말이 틀렸나요?

 

아무튼 건축을 통해서 수학을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한국에서는 보도 듣도 못한 탁월한 상상력 이론가 꼬마작가의 가설이기는 하지만,

근거는 있습니다.

바로 제 스승인 시튼 선생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시튼 동물기>의 시튼 선생이 동물이나 잡고 그림이나 그리고 그런 줄로만 알고 있지요?

인디언과도 아주 친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시튼은 수학 개념을 도출해냅니다.

티피!

 

http://en.wikipedia.org/wiki/File:Tipi01.jpg



 

티피!

인디언 건축 예술 티피!

사진을 이렇게만 보여주니까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요?

<티피 기하학> 그림 무대 앞으로!

 



 

미국에는 바로 이 티피를 주제로 한 수학책도 나와 있습니다.

꼬마작가는 바로 이런 걸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역사와 과학, 역사와 수학을 연결해서 하나로 묶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역사와 과학>이라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고

또 거의 정리가 돼가는 과정인데,

<역사와 수학>, 이게 좀 어렵기는 어렵습니다.

어쨌거나,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건축과 수학>이고,

오늘 소개한 일본 저자의 여행 안내서 <고성과 건축여행>은

바로 이런 목적을 지닌 <목적성 여행 안내>가 되는 겁니다.

 

자 그럼, <도개교>가 뭔가를 보여주는 너서리 라임 <런던 다리>를 들으면서,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http://www.youtube.com/watch?v=e3u6FD019_M

 

책 하나 소개하는 솜씨가 아주 현란하지요?

안 나오는 게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얼마나 많은가를 잘 보여주지요,

꼬마작가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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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 하늘의 법칙에 도전한 북학 사상가 아이세움 역사 인물 23
고진숙 지음, 김창희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먼저, 홍대용!

1731년에 태어나서 178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까

우리가 고등학교 때 뜻도 모르고

으달달달, 들들 암기했던 실학 시대 인물이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실학 시대를 열었던 조선 후기의 걸출한 임금 정조의 사부 되시며,

<백탑파>를 이끌던 박지원과는 오랜 세월 동안 친구로 지냈다는 홍대용!

정조의 사부로서는 어떤 교육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홍대용의 원작을 읽어보면 알 수가 있는데,

사실, 제가 원작을 읽다가 이 사람의 가치를 대강 짐작하게 돼서

동화로는 나온 것이 없는가 하고 살펴보니까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두 번째로 <백탑파>란 <파고다 학파>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파고다 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옛날에는 백탑이라고 불렀다네요.

바로 여기를 중심으로 해서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글재주를 자랑하던

박지원이 제자들을 데리고 좀 놀았나 봅니다.

그 제자들이 바로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이덕무 같은 사람들이라는데,

고등학교 때 다 우리가 교과서로 으달달달 했던 사람들인 것 같은

아련한 기억이 떠오르지요?

 

<북학파>!

바로 박제가가 <북학의>라는 책을 써서 <북학파>라는 용어가 생겼답니다.

이 북학파의 뿌리가 바로 <백탑파=(오늘날의)파고다 파>랍니다.

이 박제가가 서얼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백탑파를 이끌던 박지원은 <양반 인생 떨거지들>을 긁어모아

파고다 공원에서 야부리를 풀어주던 지도자였고,

홍대용은 박지원이라는 친구 덕분에 하루아침에

백탑파를 이끄는 리더로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이 서얼들이 정조 때 관직에 등용되면서

실학 시대가 짜잔 하고 열리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럼, 홍대용은 <박지원의 친구>라는 명목만으로

<파고다 학파>를 이끄는 리더로 등장할 수 있었는가?

만일 그랬다면, 우리가 고등학교 때 실학 사상가들의 이름을

으달달달 암기하느라고 고생하지는 않았겠지요?

 

홍대용!

이름은 하나인데, 이 이름이 붙은 주체는 '두 명'이랍니다.

1700년대에 실학 사상을 이끌었던 홍대용과

2005년에 발견된 소행성에 붙여진 이름 홍대용!

이 소행성은 화성과 목성 사이를 도는 별이라는데,

여기에다가 국제천문연맹에서 <홍대용 이름>을 붙였다면

'원작 홍대용'의 가치는 대강 짐작할 수 있는 거지요?

 

참, 세상 많이 변했지요?

우리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홍대용이니 박지원, 박제가니 하면서

으달달달 암기하느라고 죽을 둥 살 둥 했는데,

지금은 이런 애들이 다 동화책으로 나옵니다, 그려.

허허, 무식하면 아직도 으달달달 하고들 있겠지요?

누가 무식해?

교사와 부모!

 

홍대용!

노론 출신이랍니다.

위에 얘기한 박지원, 박제가는 <반남 박씨> 출신이구요.

꼬마작가도 <꼬마작가 박>이기는 하지만,

<반남 박씨>는 또 태어나서 처음 들어봅니다, 그려!

 

노론의 거두는 송시열.

<조선의 송자>, 송시열!

공자, 맹자의 맥을 잇던 '조선의 대표 선수, 송자!'

이 송시열이 살아 생전 <북벌>을 외쳤는디,

가장 아끼던 제자 윤증이 반기를 들면서 노론을 싹쓸이 했답니다.

 

사색당파, 당파 싸움!

이거, 이거 우리가 고등학교 때 아주 부실하게 배운 종목입니다.

당파 싸움에서 깨지면 말입니다,

가족에 친족을 비롯해서 <족> 자가 들어가는 것들은 다 죽은 목숨이 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아주 자세한 강의를 해준 사람이 바로 이중환입니다.

<택리지>를 보면 당파 싸움의 시작은 선조 때였다고 하는데,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당하고는 나라가 온통 쑥대밭이 되지요?

이때만 해도 동인-서인, <이색당파>였습니다.

그 뒤에 가지를 쳐서 <사색당파>가 되는데,

이 싸움에서 깨지는 <파>에서는 수 백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바치게 됩니다.

 

아주 <고결한 헌납>이 되겠지요?

대신에 몇 십년 지나면 <피의 보복>이 시작되는 것이구요.

이런 게 바로 당파 싸움이었다고 이중환의 <택리지>는 전하고 있고,

이 책의 저자는 그런 <피 비린내>가 두렵다며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은 어디일까 하면서

후손인 우리들에게 <부동산 투기 적격 지역>을 알려주는 책이 바로 <택리지>입니다.

부동산 투기업자들의 필독서 <택리지>에 대해서는

제가 전에도 자세하게 소개한 바가 있지요?

이 책에서 업자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펜션 개념>입니다.

<소중화 사상의 대가 이중환>은 18세기에 벌써 <펜션 개념>을 얘기했습니다.

투기업자들의 필독서로서는 가치가 있지요?

 

어쨌거나, 홍대용은 노론 출신이었지만,

노론을 도륙한 윤증이라는 인물을 '마음의 스승'으로 받아들입니다.

핵심은 '오랑캐 청나라'한테서 배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발전하고 있는 청나라는

결코 우리가 얕볼 상대가 아니다.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우리에게 치욕을 안겨 준 청나라일지라도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67페이지)."

 

바로 여기에서 홍대용은 자신의 출신성분인 노론과 갈라서게 된다고 합니다.

또 송시열이 외쳤던 <소중화=조선 중화 사상>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이러면서 어릴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과학과 우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사색당파 중에서도 노론이란 <골수 공자왈, 맹자왈 계파>였답니다.

 

공자왈, 맹자왈과는 깨끗하게 헤어지고 난 뒤에

홍대용은 <개인 천문대>를 만들어서 연구를 했다는데,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나경적입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천문관측기계인 <혼천의>에다가

<기계 시계>를 도입한 정확한 시간을 결합한 것이고,

이 새로운 관측기계를 통해서 홍대용은

별들의 움직임을 정확한 시간에 맞춰서 관측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한 겁니다.

 

여기에서 <시계의 역사>를 이해해야만 이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알게 되는데,

정확한 시간을 잴 수 있도록 해주는 개념은

바로 갈릴레이한테서 나온 것이지요?

갈릴레이가 어느 날 갑자기 터득한 <진자 개념>이

오늘날에 우리가 보는 <기계식 시계>의 출발점이 되는데,

이 시계는 해시계, 물시계하고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꼭 좀좀 기억해 주세요.

중요한 건 홍대용이 바로 이 개념을 알고

혼천의를 나경적에게 제작 주문을 했다는 점입니다.

 

개인 천문대 덕분에 하늘의 법칙을 나름대로 연구하던 홍대용은

친척이 중국 청나라에 갈 일이 있어서 발 빠르게 따라 나섭니다.

베이징에 가서는 <조선 천문학자의 허망함>을 깨닫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수학!

기하학!

주판만 때리던 조선 수학에서 서양의 기하학을 보고는

홍대용이 뒤집어졌나 봅니다.

책에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사인, 코사인을 비롯한 <당구놀이>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한시 좀 그만 때리고 당구 좀 때리지 그랬니, 조선 양반들아!

 

중국에 다녀온 뒤,

홍대용은 <넓은 세계>를 파고다 공원 가서 설파하기 시작합니다.

이러면서 <백탑파=파고다 학파>가 자리를 굳히게 되고,

이게 바로 북학파였답니다.

 

이 북학파도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꼬마작가가 보기에는!

'백성에게 보탬이 된다면 꽃이건 물고기건 잡초건

기꺼이 연구할 것이다(129페이지).'

바로 요게 한계입니다.

과학 연구란 <자기 좋아서, 호기심이 넘쳐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백성에게 보탬이 된다면>?

 

보탬이 된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그 연구는 끝장이 나게 됩니다.

그럼, 그 판단에 결정은 누가 내리는가?

고명하신 <윗선>이 내립니다.

정치가들이 내린다는 말이지요?

고명하신 정치가들이 <보탬이 안 된다>고 하면,

그걸로 끝장나는 게 과학입니다.

근본 철학이 <백성, 보탬>이 될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홍대용은 2005년에 <소행성 홍대용>으로 다시 태어났을 만큼

뛰어난 천문연구 업적을 남겼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홍대용의 죽음과 함께 조선 후기 천문 연구는 바닥이 났습니다.

바로 실학 사상의 철학이 <백성, 보탬>이었기 때문일 것이고,

이 실학은 1800년 정조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되지요?

그 뒤의 조선 역사 110년은 '하늘이 괜히 한 번 살려줘 본 것'뿐이구요?

 

꼬마작가의 역사 해석, 재미있나요?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뽑아보는 <펜션 개념>,

<백성, 보탬>의 과학이 아니라 <호기심>의 과학이 돼야만 한다며

실학 사상의 한계를 지적한 꼬마작가!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도 앞서가는 꼬마작가의 한국사 해석!

재미있나요?

 

다만 오늘 소개한 위인전 <홍대용> 속에서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 하나 도출될 수가 있는 겁니다.

수학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수학도 으달달달 암기로 채우려는 한국 사회에서

기하학을 알아야만 천문학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이런 수학 개념은 아주 중요한 겁니다.

애들한테 수학을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기하학이 어디에 써먹을 곳이 있는 분야인지를 아는 것은 다른 겁니다.

그래, 안 그래, 무식한 한국 대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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