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찰스다윈 자서전
찰스 다윈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에 비글호를 소개하면서 <자서전>을 읽어봐야겠다고 했지요?

재미있네요!

육아서들 그만 사도록 하시고 <독서영재> 이런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다윈의 <자서전>을 읽어보도록 하세요.

이런 걸 읽으면 <과학영재>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겁니다.

왜 검증도 되지 않은 독서영재, 과학영재라는 말에 혹해서 우우 몰려다닌답니까?

이 책은 하나도 어렵지 않은 것이니까 겁 먹지 말고 읽어보도록 하세요.

 

다만 출판사에서는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이런 제목으로 독자들 우롱하지 좀 마세요.

영어 원제목이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1809-1882이라면서요.

여기에서 어디 <삶>이 진화를 합니까?

진화론을 얘기하면, 삶도 진화를 합니까?

이런 식으로 우롱하면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습니다, 명심하세요!

 

먼저, 동화책 <비글호 항해기>를 쓴 작가는 다윈의 <가설 설정 능력>을

에둘러 높이 평가했다고 지난 번에 소개한 일이 있지요?

그래서 꼬마작가가 <자서전>을 들춰보게 된 겁니다.

다윈의 고백을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이 책(<산호초>)은 내용은 짧지만 20개월 간의 고된 작업이 필요했다.

태평양의 여러 섬에 대한 모든 연구서를 읽어보고

많은 도표를 참고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자들이 높이 평가한 책이며,

그 안에 소개된 이론은 이제 잘 정립되어 있다.

 

내 연구작업 중에서 이보다 더 연역적인 사고로 시작한 것은 없다.

전체의 이론 구상이 남아메리카 서해안에서

진짜 산호초를 보기도 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이라곤 살아 있는 산호초들을 잘 살펴보고

내 견해를 검증하기만 하면 되었다(115페이지)."

 

이 <산호초>라는 책이 출판된 해는 1842년이고,

다윈이 비글호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해는 1836년입니다.

그러니까 6년 후에 책이 출판된 것인데,

그는 "전체의 이론 구상이 남아메리카 서해안에서

진짜 산호초를 보기도 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반면에 진화론에 대한 고백에서는

"베이컨의 귀납원리에 따라(146페이지)" 자신의 이론을 다듬어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얘기 전체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베이컨의 귀납원리에 따라 아무런 이론 없이 방대한 사실들을 수집했다.

특히 길들인 생물에 관해 서면 질문을 하거나,

노련한 사육사나 원예사와 직접 대화를 하거나,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통해서 수집했다.

일지나 회보 등을 망라하여 내가 읽고 요약한 모든 책의 목록을 보다보면

스스로 한 일에 놀라게 되기도 한다(146-147페이지)."

 

간단히 말하면, <산호초>에서는 연역법, <종의 기원>에서는 귀납법이라는

연구 방법론을 썼다는 말입니다.

그 옛날 우리는 국민윤리 시간에 연역법과 귀납법이 뭔지도 모르는 채

들들 암기하느라고 고생만 했지요?

국민윤리 하면 러시아 작가 일리인을 인용해가면 또 할 말은 많지만,

짧게 끊고 더 이상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것이 <논술 문제>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은 기억해야 합니다.

연역법과 귀납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학술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다윈의 <자서전>, 대단하지요?

'이것이 궁금하다' 하면서 탁 대들어보니까 저자는 <시원한 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자서전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또 그 사람의 이론에 대해서 깊이 알고 싶으면,

자서전부터 읽어보면 쉽게 길을 찾아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저는 다윈의 고백을 말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헉슬리처럼 비상한 이해력이나 재치가 없다.

그러니 비평가로서는 많이 모자란다.

논문이나 책을 읽으면 처음에는 그저 감탄하기만 한다.

약점을 알아차리는 것은 한참이나 숙고해본 다음이다.

또한 순수하게 추상적인 사고의 고리를 따라가는 능력이 내게는 아주 부족하다.

더욱이 나는 형이상학이나 수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다.

내 기억력은 방대하지만 흐릿한 편이다(169페이지)."

 

이거 말 그대로 믿어도 되는 얘기인가요?

이 사람 얘기는 책 전체에 걸쳐서 엄청나게 겸손합니다.

'특별한 능력도 없이 태어난 나는 부유하고 인자한 아버지 덕분에

커다란 걱정없이 성장하고 대학을 다니다가

우연히 비글호을 타게 되어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지질학과 동물학을 깊이 있게 연구하게 됐으며,

몇 년 후에 자상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내를 만나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리면서 커다란 걱정 없이

지질학과 생물학 연구에 집중한 결과 <종의 기원>을 쓰게 되었다.'

 

엄청나지요?

머리가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죽을 고생을 해가면서 자기 이론을 완성한 것도 아니고,

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아내를 만난 덕분이라고 하니

<자서전, 회고록 전문가>인 꼬마작가로서는 좀 황당합니다.

러시아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잘난 척들 엄청나게 해대거든요.

러시아 사람들은 만 2살 또는 만 3살 때부터 거의 다 기억한다면서 자랑을 하는데,

다윈은 "네 살이 조금 지났을 때(18페이지)"라면서

자기는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깔고 얘기합니다.

다윈은 자신의 형편없는 기억력을 아버지 얘기로 설명합니다.

"아버지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자기 삶의 아주 어린 시절까지 기억해낸다고 했지만,

이 말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17-18페이지)."

 

아주 교묘하지요?

<다윈의 수사학>, 요건 꼬마작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단한 재주입니다.

다만 무신론에 가까운 진화론을 제기한 다윈으로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 속에서

<겸손>을 가장 큰 덕목으로 내세운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 신의 문제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근거 중 감정이 아닌

이성과 관련된 부분은 내게 더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

내가 생각하기에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나 사후세계의 상벌에 대한

아무런 믿음도 없는 사람은 가장 강렬하거나 자신에게 최상으로 보이는

충동과 본능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개는 이런 식으로 맹목적으로 행동한다.

반면에 사람은 앞뒤를 재며, 자신의 다양한 감정과 욕망과 기억을 비교한다(108-109페이지)."

 

다윈은 이 종교 문제에 대해서 모두 11페이지에 걸쳐서 얘기했는데,

이건 독자들이나 또는 후세 사람들에게 변명을 늘어놓는다기보다는

스스로도 엄청난 갈등을 느끼던 문제가 아니었나 하는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솔직히 이 호기심 때문에 다윈으로 빠져들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제가 다윈에 빠져서 뭐 나쁠 건 없지요?

거인 한 사람을 죽자사자 파다보면 별의별 게 다 나오게 돼 있습니다.

 

실제로 다윈이 세상을 떠난 뒤에 아들이

<찰스 다윈의 삶과 편지들>이라는 책을 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종교 논쟁이 일어날 만한 얘기는 다 뺐다고 합니다.

그 뒤 1959년에 손녀딸이 발간한 책이 바로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1809-1882이랍니다.

아래 책 두 권은 다윈의 저작, 뭔가 있을 것 같지요?

 

  

 

다윈의 책은 엄청나게 많은 모양입니다.

<종의 기원>만이 아니라 <산호초>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책이 다 있는 모양입니다.

<인간의 유래>라는 이 책은 3년에 걸쳐서 썼다고 하는데,

바로 뒤인 1872년에는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이라는 책도 냈다고 합니다.

요건 꼬마작가와 같은 영역에서 쓴 책이네요.

 

"내 첫아이가 1839년 12월 27일에 태어났는데,

아기가 다양한 표정을 처음으로 보여줄 때마다 즉시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린 시기에도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며,

점진적이고 자연적인 기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확신이 생겼다(160-162페이지)."

 

육아 방면에서도 진화론을 펼치고 있는 거지요?

저도 이 방면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로 자처하고 있지만,

우리 애들을 보면서 진화론은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요즘 출판되는 동물책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아무튼 하도 진화론을 떠드니까

다윈은 멍청하다는 소리까지 들은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그는 관찰능력은 뛰어나지만 추론능력은 형편없어(169페이지)."

이런 비판에 대해서 다윈은 억울하다는 듯이 변명을 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종의 기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 논증이며,

유능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추론능력 없이 그런 책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창의성이나 상식이나 판단력도 어느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이는 성공한 변호사나 의사가 가지고 있는 정도의 능력을 말하는 것인데,

그 이상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169-170페이지)."

 

재미있지요?

꼬마작가가 요렇게 인용문을 뽑아서 설명해주면 재미있단 말씀이야.

이게 바로 역사학에서 요구되는 상상력입니다.

다윈은 시대 환경을 느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있는 것이고,

꼬마작가는 <그게 무얼까? 또는 그 뒤에 뭐가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는 겁니다.

 

어쨌거나, 다윈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자신의 인생!

"관찰과 실험만이 내 삶의 전부다(165페이지)."

<관찰과 실험>은 다윈이 계속 얘기한 것인데,

마지막으로 이렇게 다시 한 번 선언을 하고나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아버지는 여든세 살까지 살면서도 지적 능력이 전혀 흐려지지 않았다.

나 또한 정신이 흐려지기 전에 죽기를 바란다.

적어도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죽는 날은 관찰과 실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날이 될 것이다(165-16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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