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사상의 이해
박호성 지음 / 인간사랑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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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도시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던 토마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 자신에게 강요하면 그는 따르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그래야만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최후에는 어느 농촌 시골에 가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도시에서 언제나 수많은 여자의 침대에서 화려한 바람둥이로 살아간 토마스, 하지만 시골에서 그런 모습은 없다. 농촌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트랙터를 고치는 농부로 살아간다.


본래 어릴 적에 토마스는 트럭을 수리해본 경험이 있었다. 다들 화려한 세계에 살아간 전(前) 외과의사인 토마스를 존경했지만, 토마스는 결국 시골생활에 만족했다. 토마스와 결혼한 테레사는 자신이 원하는 삶에 토마스를 이끌고 와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오히려 토마스는 시골생활에 만족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시작은 니체로 시작하는 것이 나온다. 프리드리히 니체, 모든 서양의 형이상학적 관념을 전복한 신을 죽인 남자, 그리고 인간의 관계성보단 실존적인 인간에서 이 소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따라간 토마스 모습에서 니체보단 오히려 루소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은가 싶다.


토마스의 모습에서 말년은 루소의 <에밀>이 보여주던 이야기와 흡사하다. 자신의 의지로 시골에서 살아가고, 다양한 시골사람들과 관계에서 토마스는 자신의 의지로서 사람들과 살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실존적인 요소에서 토마스는 그의 아들조차 아들이기보단 차라리 남으로서 대한다. 인간 그 자체로서 자신의 실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그 자체를 외면하고 여자의 품에서 방황한 토마스에게, 시골농촌이란 즉 자연이란 어머니의 품이었다. 자연이란 공간에서 인간은 그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해준다.


인간에게 자연성이 왜 중요한가? 루소의 사상을 생각하면 인간은 자유와 평등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도덕적 인간도 아니고, 정치적 인간도 아니었다. 그는 불륜에 빠졌고, 프라하에서 소비에트의 침공 이후 그들의 정치제에 반대하는 서명조차 거부한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인간상은 자연적 인간상이다. 왜 루소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서로 대조했을까? 루소의 사상에서 인간의 시작은 자연적 인간 내지 도덕적 인간에서 또는 정치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제시한다.


<에밀>에서 제시한 인간상은 도덕적 인간이나 그 본래에 자연적 인간이 숨어있다. 왜 인간은 자연적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루소사상의 이해>에 연구한 내용을 본다면 인간은 자애심,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찾는다. 그게 바로 인간의 사랑에서 첫 번째 명제다. 내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자애심에 만족하면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찾는다. 자연인들은 자신의 삶을 만족하면 타인에 대해 감정을 품게 된다. 혼자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은 타인과 교류하고, 그들의 입장을 동조한다.


누군가 아프고 괴로우면 자연인은 그것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괴로워한다. 자신이 가진 감정, 즉 연민이란 인간 순수한 감정을 루소는 발견한다. 왜 이런 인간의 자연성 감정, 연민이란 감정이 중요한가?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으면 루소가 보는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루소가 보는 사회란 오로지 악과 부패 그리고 착취와 억압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고, 자신을 위해 누군가 속박하는 현실에서 <사회계약론>에서 억압이란 사슬을 다룬다. 나를 위한 사슬이 결국 자신을 속박하는 사슬이 되고, 그것은 새로운 사슬을 찾기 위해 도구로 이용되는 점이다.


인간에 대한 불평등에서 루소는 기존 서구와 다른 관점으로 제시했다. 루소는 분명 <인간불평등기원론>과 <사회계약론>에서 최고 이상적 국가관은 스파르타와 로마였다. 특히 스파르타 남성에 대한 찬미는 대단했다. 모든 법적 제도나 생활습관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명료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로서 살아간 인간이다. 이런 점에서 루소는 플라톤의 <국가> 내지 다른 서적에 크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플라톤의 사상을 뛰어넘어 다른 식으로 물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책에서 1912년 루소 탄생 200주년에서 루소의 사상은 칸트와 연결하였다면, 1962년에 칸트 대신 마르크스가 그 자리로 들어간 점이다. 루소의 <에밀>은 칸트의 3대 비판서 토대가 되었고,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처럼 인간의 선험적 판단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인간 그 자체가 자연적인 존재, 즉 모든 경험과 파당적 사유로부터 멀어져야 가능했다. 그리고 <실천이성비판>은 인간이 타인에게 행하는 선(善, goods)이란 바로 자신의 의지로서 실천한다. 하지만 인간이 타인에게 베푸는 선에서 2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근거하는지 혹은 감정이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점이다. 이성과 감성이 올바르게 정립되었다면 그 인간은 자연적 인간이면서 또한 이성적 인간이다. 인간은 언제나 한 가지의 모습이 아니다. 차라리 모순보다 역설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바로 루소의 사상이 위험하고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역설적인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계몽주의 사상가이면서도 그것에 반대(反對)하기도 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가 열렸을 때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모든 사회적 초점은 진보적 이성과 과학적 기술에 의거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루소는 그것이 바르지 않음을 이미 예견했다. 이성의 발달과 더불어 감정이 중시되고, <신(新) 엘로이즈>와 같은 경우 데탕트 쥘리로 보는 인간이란 이성 이성의 자연스런 인간의 마음이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니체가 말한 인간상에서 진정한 강한 사람이 약한 자를 돕는 이유는 마음에 느끼는 약한 감정이나 또는 그 도움으로서 타인의 평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답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을 타고 올라가면 루소의 경우 왜 인간이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동조하는가? 이유는 자신이 인간이고, 인간은 본래 선하기에 연민의 감정으로 타인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민에 자만이나 우월심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서 움직이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즐거움이 존재해도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연적 인간을 넘어 도덕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에밀>에서 에밀은 자신의 가정교사와 더불어 소피의 집으로 간다.


원래 제 시간에 갈 수 있으나, 길가에 쓰러진 남자를 보고 그를 그의 집에 데려간다. 그리고 가정교사와 더불어 병자를 간호한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다. 의사를 데려오고, 집 안의 식구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보고 안정을 되찾아 준다. 하지만 현대인들 즉 문명인에서 타인의 고통은 그저 구경거리로 변한다. 길가에 누군가 쓰러지면 가서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경찰이나 소방서에 신고하여 어서 그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또는 길가에 싸움이 벌여지면 모두 구경하기 바쁘다.


루소는 길가의 신사들이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일 때 그들을 말리는 사람들이란 순박한 시장가의 사람인 점을 말했다. 그에게 이상적인 인간이 에밀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현실에 에밀이 없다면 어느 인간이 더 소중한가? 지식을 갖춘 높은 분보다 차라리 시골에서 농사짓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농민이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역시 인클로저 현상이 제법 지난 후에라 농민들이 집과 농지를 버리고 도시로 이주했다. 도시에 온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로 되어 비참한 노동으로 살아가거나 때로는 강도나 거지로 살아간다.


최후는 병에 걸려 죽거나 사형대에 죽어 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다. 루소가 지적한 인간을 타락하는 요소는 사회다. 루소의 사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 그리고 그 인간과 신에 대한 관계다. 신이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은 존재, 혹은 인간은 원초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죄인이라는 관념을 바꾸었다. 오히려 인간이란 본성을 선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 존재한 사회적 억압이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것이다. 인간이 욕심이 생기고 고통이 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불평등이 강하고, 그것을 탐하기 때문이다.


자연적 인간, 즉 자신에게 돌아간 인간에게 탐욕의 손길을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자신에게 자신의 의지로서 행복을 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인간의 삶을 악덕으로 가득하게 한다. 루소의 이런 사상은 훗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의 토대가 된다. 에릭 홉스봄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서적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자코뱅당 좌파와 리카도학파 좌파로 이어진 것에 중점을 맞춘다.


특히 자코뱅당의 사상적 기반이 루소를 비롯한 계몽주의 사상가이고, 좌코뱅당의 대표적인 혁명가인 로베스피에로, 당통, 마라 등은 루소의 열렬한 지지자다. 루소의 사상은 인간을 지배하는 신의 원리가 아니라 인간의 원리로 바꾸었다. 신은 분명 존재하나, 그 신은 인간과 자연을 처음부터 만들 뿐이지 그 이상으로 관여하지 않은 이신론(理神論)을 제기한 것이다. 신의 의지란 바로 내가 신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나란 존재가 스스로의 의지로서 살아간 것이다. 덕분에 루소는 자신이 저술한 <에밀>이 불태워져야 하는 비극을 겪고, 프랑스 파리 당국 경찰에 의해 추격당하는 신세가 된다.


평생 권력에 의해 억압과 탄압을 받고, 파리에 돌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야유와 조롱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루소는 인간에 대한 인류애를 포기하지 않았다. 루소의 생애를 보면 그가 시골에 은거할 때 처음 마을주민들은 마치 악마를 본 것처럼 깜짝 놀란다. 하지만 루소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루소는 마을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이 가진 의복이나 물건 등을 주었다. 그들은 권력자와 상위계급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러나 루소는 산악지방이나 농촌지방에서 그들과 살면서 그들이 주로 먹는 음식을 즐겼다.


야생에서 나오는 과일과 채소, 그리고 강가에서 잡히는 생선, 투박한 맛이나 건강에 이로운 음식들, <에밀>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나오는 곳은 농촌이었다. 하지만 루소는 인간은 자연의 공간에서 살 수 없는 것을 알았다. <에밀>에서 사회적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은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민에게 복종하는 것은 법이지 그 이상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법 위에 군림하는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루소의 공화주의 국가관은 인간은 법 이외에 그 외는 절대 복종하면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이권에 개입되면 인간은 비참해진다. 인간이 평등해지기 위해선 오로지 법에만 복종하면 된다.


그런다고 법 위에 군림하는 인간에게 복종해도 평등해진다. 모두 다 억압과 압제의 희생자로서 말이다. 만일 그런 인간들만 존재한 나라에 자유가 돌아와도 인간은 살아가는 방식을 모르고, 난폭한 야만인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적 인간상 대신 남들을 억압하고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려 하는 난폭한 맹수가 된다는 점이다. 루소는 자애심은 인정하고 자신의 재산을 인정한다. 그것은 자신이 비참한 삶을 살면 안 되고, 자신의 쌓아온 성과를 무시당하면 안 된다. 그러나 타인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반대했다.


지금 현실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재산은 타인의 재산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루소는 시민들이 누구나 너무 부자가 되면 안 되고, 자신의 몸을 팔 만큼 너무 가난하면 안 된다고 했다. 만일 그 가난이 치중되면 인간은 비참해진다. 루소가 본 파리의 거리는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빈민과 거지의 소굴, 강도의 은거지, 창녀들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사람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무시하고 천대하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고, 이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였다.


철학에서 고대 그리스 플라톤의 경우 스승인 소크라테스로 통해 인간의 행복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갈 깊은 사고와 성찰로서 초연해질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니체가 말한 초인도 플라톤이 말한 철인적인 요소와 흡사할 것이다. 이에 반해 루소는 자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영역으로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일반의지가 파괴될 수 없는 이유, 인간은 자연적 존재만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루소의 역설적 요소는 바로 인간이 숲에서 곰처럼 살아갈 수 없는 점을 알기에 문명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은 자신의 세계에 자연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만약 거기에 초월한 인간이라면 완벽한 실존적인 자연인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느끼는 세상이란 자신 이외에 모든 것들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호수세계 파동을 느낄 것이다. 루소가 계몽주의만 아니라 자연주의자로서 보여주는 모습에서 인간의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역설적 요소는 책에서 최초의 칸트주의자, 리오 담로시의 <인간불평등발견자, 루소>처럼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아버지로 될 수 있다. 후대에 이르러 교육학의 거두인 존 듀이, 인류학의 거장 레비 스트로스, 그리고 많은 혁명가들의 우상이 되었다. 이 책을 보고 의아한 점은 쿠바혁명에서 체 게바라와 같이 활동했던 피델 카스트로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마르크스주의로 알고 있지만, 그는 <사회계약론>을 항상 가지고 다녔고, 피델 이전의 남미의 혁명가인 시몬 볼리바르의 경우 루소에게 영향을 받아 평생 혁명을 위해 살았다.


현대에서 큰 사회적 변동을 마르크스에서 찾지만, 사실 그 원류는 루소에게 있다. 루소가 없었다면 프랑스대혁명은 없었다. 물론 프랑스국민들의 분노로 인한 반정이나 쿠데타 폭동, 혁명 등은 존재했어도 그것을 이끌어 주는 이데올로기는 루소의 사상이다. 그 에너지를 흐름을 타고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루소의 사상이란 점이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신은 오로지 자신의 양심과 의지를 알아주는 존재인 것처럼, 오늘 날 우리 인간은 스스로에게 떳떳한가? 약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어긋난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루소의 눈에서 오히려 그런 포악한 자는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자신의 행동이 옳다 여긴다.


선악의 구분은 결국 인간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에서 힘의 대결이고, 그 선악이란 정의는 의미 없거나 비참한 결말로 이어진다. 더 많은 권력을 찾기 위해 권력에 아부하는 세상에서 루소의 자연성을 찾고, 시민의 의무를 생각하는 것은 그나마 우리 인간이 인간이란 이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진정한 자유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연성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만일 이 사회가 비참함과 분노로 가득하다면 그 사회는 자유의 참 된 의미를 상실했다. 진정한 자유가 없다면 그 나라의 시민들은 애국심도 없고, 올바른 판단도 없다. 오직 멸망이란 사슬로 인도될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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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X프린세스X블레이드 2 - Seed Novel
오버정우기 지음, 보라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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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 1권에서 리온이 교룡학원에 와서 그곳의 주인인 밀레니아와 용약의 계약을 맺는 것이 나온다. 처음에 교룡학원에 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리온은 동생 리에의 배웅으로 우연의 장난에 의해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학원에 입학하였다면, 그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1권은 말 그대로 리온과 리에가 교룡학원에 온 점에서 서사의 발단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2권부터 그 서사의 진행이 되는 전개로 이어진다.


전반적으로 서사는 큰 덩어리를 이루고 있지만, 그 안에서 1권마다 작은 서사가 담겨있다. 큰 서사 안의 작은 서사에서 2권은 분명 전개로 되겠으나, 그 내부에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이란 서사구조가 있다. 2권 전체로 보자면 1권에서 드래곤은 오직 밀레니아 혼자라면 2권부터 새로운 드래곤이 나온다는 점이다. 1권에서 주인공 중에서 메인의 등장이라면, 2권부터 그 메인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보조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선 밀레니아 학교의 주인이며, 학생회장인 점에서 자신의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바로 3명의 드래곤이다. 1권부터 이상한 계략만 알려주는 샐리, 전투적인 슈, 지적이나 타인들과 벽을 쌓는 페이린이다. 모두 용족이고, 계층도 높은 부류다. 밀레니아가 용왕 중에서 최고 용왕의 딸이라도 나머지 드래곤 역시 용왕의 후예다. 그런 그녀들은 다른 드래곤들과 달리 밀레니아와 같이 학생회에 소속된 자들이다.


작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만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대해 설정한 부분이다. 만물의 영장은 인간이나, 여기서는 드래곤으로 대체된다.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에서 용인전쟁 이후 드래곤이 만물의 영장으로 등장한다. 그런데도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왜 드래곤은 드래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인간의 의복, 음식, 생활 등 문화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드래곤은 인간과 다른 존재이나,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력한 존재다. 그들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점에서 진정 드래곤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 드래곤의 지배방식은 힘으로 인간을 제압해도 결국 인간을 힘보단 힘을 만들 수 있는 문화적 방식으로 접근한다. 교룡학원에 밀레니아의 방식은 인간과 드래곤은 분명 차이가 분명한 종족이나 불평등한 조건을 인정아래 평등한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 진정한 평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등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불평등적 요소를 인지하여 그것을 새롭게 정립하는 점에서 시작된다.


밀레니아가 과거 자신을 구하려던 인간 남자아이 리온에 대한 최소한의 은혜, 그것이 그녀의 의지다. 드래곤은 인간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력하다. 그들의 힘은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 정도로 두려운 힘이다. 그렇기에 드래곤은 자신의 위치에서 인간을 조정하는 것보다 인간의 높이에서 맞추어야 비로소 공존이 가능하다. 밀레니아의 행동은 바로 인간의 행동방식에 어떻게 다가가는 점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감과 교감이란 점이다. 왜 용과 인간은 서로 다른데도 이렇게 서로 도우려 하는 것일까? 용이 차라리 인간과 전쟁을 하면서 모조리 섬멸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탄압하여 영원한 속박의 종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은 그렇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드래곤의 마음, 결국 작가의 세계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이나, 그것은 오래전 신화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대략적으로 이 작품은 드래곤, 용이 출현하고, 리온이 드래곤 슬레이어 같은 존재인 점에서 북유럽신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원소의 이론에서 불, 물, 흙, 공기는 지구를 이루고 있는 4가지 원소다. 물론 화학적으로 원소는 수소, 산소, 질소 등과 같은 다양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 고대그리스에선 지구를 구성하는 4가지가 있고, 인간의 몸에도 4가지의 원소로 움직이는 것이다. 용도 저 4가의 원소로 힘을 낸다. 단지 조금 놀란 점은 나는 그리스사상으로 4가지를 분류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작품에서 성경의 기준으로 삼았다.


작가의 작품세계관 설정에서 성경 내지 북유럽 신화를 많이 이용했고, 생각 이상 잘 정리했다. 나중에 교룡학원을 침입하는 적이 만든 장치가 아크엔젤(1. 대천사, 구품 천사 중 한 천사로 국가 통치자의 보호와 특별한 사명을 전달한다, 2. 러시아 북구 백해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점에서 성경의 내용을 많이 반영한 것 같았다. 조금 아쉬운 점은 작품설정에서 매우 연구를 많이 한 만큼 작품 내 플롯이나 복선의 배치는 아쉬웠다.


아크엔젤을 사용하는 적의 정체가 너무 쉽게 파악되도록 적은 것이다. 판타지모험으로 라이트노벨은 잘 정리해놓았다. 주인공의 설정이나, 드래곤이란 종족이 가진 특이함이 보여주는 용녀 밀레니아의 행동 역시 잘 정리했다. 그러나 범죄 추리로 가면 아쉬웠다. 작품 자체가 추리물이 아니기에 큰 문제점은 되지 않겠지만, 조금 적의 정체가 쉽게 들키지 않게 배치를 신경 썼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주인공과 페이린 관계에서 좋은 흐름을 보여준 것 같다. 일본에서 드래곤을 히로인으로 내놓은 작품들이 제법 많다.


라이트노벨, 만화, 애니메이션 심지어 신화의 세계에서 인간과 드래곤은 단순히 적대하는 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친구, 동지, 연인 등으로 나온다. 주인공 남성 1명에 다수 용녀들이 모이는 하렘구도가 보이기는 하나, 그 하렘구조에 너무 강조하지 않은 점이다. 물론 그런 구도로 이어지는 이유는 리에라는 여동생의 존재다. 리온에게 리에가 없었다면 그 세계는 자신만의 왕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동생이 있었고, 리온 역시 상당히 여동생을 아끼는 오빠다.


그렇기에 하렘구도가 보이더라도 cliche(반복적인 패턴적인)의 최소한으로 막아주는 리에의 앙탈은 괜찮다고 본다. 만약 리에가 없었다면 아마 리온은 밀레니아와 달콤한 시간만 보내는 것만으로 바쁠 것이다. 또한 라이트노벨 일러스트에서 그 표지의 인물은 책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1권에서 밀레니아라면 2권이라면 페이린이다. 다소 중국계 의상과 이름을 가진 용녀로서 보는 그녀의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는 않다.


단지 종족만 용족이지 용족 역시 보통 인간이 가진 고민이 있고, 때로는 질투도 한다. 기본적으로 라이트노벨 역시 그 기본토대는 신화의 세계다. 신화의 존재는 인간으로 등장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인간의 심리와 모순을 역설하는 존재다. 페이린 역시 그런 역설을 보여주는 히로인이다. 용녀 공주라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완벽해 보이는 인물이라도 막상 그 인물 내부로 가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다름 점은 특별히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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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 세상을 읽는 4가지 방법 Great 인문학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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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이 자유민주주의국가라고 하는데, 루소의 사상이 그 사상의 기반을 다져놓은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과연 그런 국가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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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신문기사를 보고 놀랬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징역1년의 실형을 받아 수감됐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1)이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22일 항공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부사장에게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대한항공 객실담당 여모 상무에게는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 국토부 조사관 김모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조현아가 항공기의 이동을 인식한 상태에서 사무장 박창진과 승무원 김도희에 대한 위력을 행사해 기장으로 하여금 푸시백을 중단하고 게이트로 되돌아가게 하여 이 사건 램프리턴에 이른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항공보안법 제42조의 해석상, 이 사건 램프리턴과 같이 ‘계류장 내에서의 램프리턴’은 ‘항로의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주요 혐의였던 항로변경으로 인한 항공보안법 위반의 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는 지상에서의 이동도 ‘항로’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아무리 법집행을 사법기관에서 한다고 하나, 법을 제대로 몰라도 법률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과 한글만 봐도 안다.


법률 제12257호 항공보안법,


http://www.law.go.kr/lsSc.do?menuId=0&subMenu=1&query=%ED%95%AD%EA%B3%B5#liBgcolor20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되고, 시행령은 대통령의 서명, 시행규칙은 장관의 서명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법률은 대통령이든 공무원이든 그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법이다. 그런 법률적 요소에서 항공보안법을 제2조 정의를 보자.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다만,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항공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  <개정 2012.1.26., 2013.4.5.>

1. "운항중"이란 승객이 탑승한 후 항공기의 모든 문이 닫힌 때부터 내리기 위하여 문을 열 때까지를 말한다.

2. "공항운영자"란 「항공법」제2조제7호의2에 따른 공항운영자를 말한다.

3. "항공운송사업자"란 「항공법」 제112조에 따라 면허를 받은 국내항공운송사업자 및 국제항공운송사업자, 같은 법 제132조에 따라 등록을 한 소형항공운송사업자 및 같은 법 제147조에 따라 허가를 받은 외국인 국제항공운송업자를 말한다.

4. "항공기취급업체"란 「항공법」 제137조에 따라 항공기취급업을 등록한 업체를 말한다.

5. "항공기정비업체"란 「항공법」 제137조의2에 따라 항공기정비업을 등록한 업체를 말한다.

6. "공항상주업체"란 공항에서 영업을 할 목적으로 공항운영자와 시설이용 계약을 맺은 개인 또는 법인을 말한다.

7. "항공기내보안요원"이란 항공기 내의 불법방해행위를 방지하는 직무를 담당하는 사법경찰관리 또는 그 직무를 위하여 항공운송사업자가 지명하는 사람을 말한다.

8. "불법방해행위"란 항공기의 안전운항을 저해할 우려가 있거나 운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로서 다음 각 목의 행위를 말한다.

가. 지상에 있거나 운항중인 항공기를 납치하거나 납치를 시도하는 행위

나. 항공기 또는 공항에서 사람을 인질로 삼는 행위

다. 항공기, 공항 및 항행안전시설을 파괴하거나 손상시키는 행위

라. 항공기, 항행안전시설 및 제12조에 따른 보호구역(이하 "보호구역"이라 한다)에 무단 침입하거나 운영을 방해하는 행위

마. 범죄의 목적으로 항공기 또는 보호구역 내로 제21조에 따른 무기 등 위해물품(危害物品)을 반입하는 행위

바. 지상에 있거나 운항중인 항공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또는 공항 및 공항시설 내에 있는 승객, 승무원, 지상근무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사. 사람을 사상(死傷)에 이르게 하거나 재산 또는 환경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목적으로 항공기를 이용하는 행위

아.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처벌받는 행위

9. "보안검색"이란 불법방해행위를 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무기 또는 폭발물 등 위험성이 있는 물건들을 탐지 및 수색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10. "항공보안검색요원"이란 승객, 휴대물품, 위탁수하물, 항공화물 또는 보호구역에 출입하려고 하는 사람 등에 대하여 보안검색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다시피 항공안전법에서 운항 중이란 분명하게 항공기의 모든 문이 닫히어 내리기 위한 시간까지다. 그리고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운항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게 하여 정상 운항을 방해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폭행·협박 또는 위계로써 기장등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하여 항공기와 승객의 안전을 해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운항 중인 항공기란 결국 최종 목적지 공항에 도착해 문을 열 때까지를 말한다. 법리적 해석이 항공안전법에 명백히 틀린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땅꽁회항의 처벌이 중요한 이유는 재벌의 가족이란 이유로 판례를 새롭게 내야하는 무리수다. 그 무리수가 적용되면 법률에서 정하는 평등의 원칙이 무너진다. 이미 법 자체가 법의 정신 즉 철학이 무너지고 있는 판국에서 그 규정자체까지 무너지면 대한민국은 법률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라는 사실을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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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5-2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더운데 열 오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5-22 21:58   좋아요 0 | URL
확실히 열이 오르는 기사인데,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라도 기록해야죠...ㅠ.ㅠ

만병통치약 2015-05-2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심 유죄 내린게 기특할 뿐이죠. 여론 무서우니 잠시 벌주는 척.

만화애니비평 2015-05-22 21:58   좋아요 0 | URL
뭐 결국 쇼란 것이죠~
김원준 쇼처럼
쇼! 끝은 없는 거야!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 5 - Seed Novel
맑은날오후 지음, 토브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 5권부터는 조금씩 비밀이 풀리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비밀이 풀리는 것만큼 의문과 위기가 다가온다. 5권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전에 론이 꿈에서 나온 여자가 있었다. 정확히는 누군지 모르나, 절망에 괴로워하던 론에게 다시 새로운 인생을 선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 1권에서 론에게 아주 낡은 검을 판매한 소녀인 것이다. 그 소녀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여신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에서 론과 인피니티제국 그리고 수많은 사람과 세계를 창조한 신인 것이다. 그런데 신의 모습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아마 지구의 탄생에서 지구를 두고, 영어로 earth라고 하나 한편으로 gaia란 단어를 사용한다. 가이아란 지구의 대지, 혹은 대지의 여신이라고 칭한다. 그리스신화에서 우라노스의 어머니이며 또한 그의 아내이기도 한 여신이다. 여신의 존재는 즉 자연과 대지, 모든 생물의 창조주이다.


그런 그녀의 이름이 <용사가 마왕을 무찌를 때 우리들도 있었다>에서 페스티벌이다. 즉 축제라는 의미다. 페스티벌은 겉보기엔 마왕 루리와 거의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인간나이로 약 8세 전후의 어린 소녀다. 육체적인 규모에서 나약한 소녀로 나오나, 사실 그녀는 매우 막강한 힘을 가졌던 여신이었다. 어린 소녀라 그러나, 그녀의 힘이 제대로 발휘될 경우 성인의 모습으로 변하면 세상에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미녀로 나타난다. 결국 신이란 인간과 비교하여 더 이상 부족할 것도 없는 완벽한 존재다.


라이트노벨 리뷰에 어울리지 않지만, 플라톤의 철학으로 따지자면 신적 존재란 그 자체로 완벽하다. 즉 신이 존재하는 곳은 인간의 현실이 아닌 이데아(idea)란 관념적 세계에 존재가 가능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이데아의 영역이 아니라 이데아를 본뜬 세계이며, 현실의 우리는 이데아와 같이 완벽하지 않고 불완전하다. 절대적인 미를 지닌 이데아의 세계, 그런 외모로 보자면 페스티벌의 완벽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은 그 어떤 인간보다 아름답고 강하다. 인간이 도달하지 못할 이데아, 즉 페스티벌은 그런 존재이어야 했다.


신이란 원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신화에서 가이아 외에도 우라노스,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로 이어지면서 신의 영역을 넓어진다. 신이 다른 신을 만들어내고, 또 그 신은 또 다른 신을 만들어낸다. 본래의 신은 강한 힘을 가졌기에 아래의 신들을 지배할 수 있으나, 이제 그 아래 신들이 힘을 모울 경우 자신을 창조한 신을 몰아낸다. 문제는 그리스신화에서 크로노스와 제우스의 경우 몰아낸 신은 아버지였고 남신이었다. 여신을 몰아내지 않았고, 오히려 어머니가 여신이라면 그녀와 의기투합하여 아버지 남신을 몰아냈다.


그런데 여신을 추락한 것은 그 세계를 만든 것에 대한 부정이다. 페스티벌과 적대하는 만들어진 신, 그들은 인간에게 어떤 시련의 시간을 주는 것일까? 론의 잠재의식에 숨은 꿈의 기억에서 페스티벌을 만났고, 페스티벌과 만든 신도 만났을 것이다. 만들어진 신과 싸우며 모든 것을 잃은 론, 그가 이민족들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순간 운명의 수레바퀴는 탈선되어 절망의 극으로 갔다. 다시 시작한 인생에서 문제는 지난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의 론을 인지하는 존재는 신과 악마이다. 즉 시공간적으로 초월한 존재만이 인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라이트노벨 설정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도 인간이 생각하는 세계와 그것을 토대로 만든 작품 역시 현실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이상에 의해 구성될 수밖에 없다. 라이트노벨 1권을 보면서 철학적 가치관을 정립해보는 것은 도가 지나치지 않나 싶으나, 작품에서 페스티벌의 등장, 페스티벌이 그렇게 약해진 이유, 인간을 위협하는 세계, 그리고 왕궁 내의 권력이 움직이는 모습에서 비켜나가기란 어렵다. 작품 내의 이야기 흐름에서 매우 정치적인 상황을 반영했다. 인피니티라는 국가는 거대한 제국이고, 그 힘을 모든 주변국가가 두려워할 정도로 강력하다.


헤프미왕국의 여왕인 아일린의 보면 더욱 그렇다. 아일린 가족은 왕족이나, 그녀의 가족은 무능한 정치가였다. 그래서 어린 나이로 왕위를 물려받고, 국가를 통치한다. 그녀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전쟁을 막는 것이다. 자신의 국가가 약한 약소국이기 때문에 언제나라도 주변국가 군대에 의해 짓밟힐 수 있다. 전쟁이 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우선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전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은 마을에 대한 약탈이다. 약탈은 가축과 농산물을 탈취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유린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간다. 남자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한다.


작품세계가 비록 판타지라도 주요 무기가 검(서양적 요소)과 (건 서머너의 무기는 총이고 그것은 마법으로 이루어짐) 여자(왕녀, 공주, 여왕)의 의복이 중세유럽 내지 로코코시대 유럽(18세기 프랑스)인 조건에서, 전 근대적의 전쟁은 노예 혹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전쟁이 나면 자신의 목숨도 그렇지만, 왕국의 무너지는 것은 헤프미란 왕국의 국민들도 국민의 지위 대신 다른 국가의 노예로 팔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일린은 어떻게든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론 일행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자신 역시 어린 소녀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자신의 선택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점에서 그녀의 행동은 개연성이 매우 높은 행동을 보여준다. 전쟁의 고통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 작품에서 헤프미왕국의 어느 마을 한 소녀가 세상에 대한 증오와 원한으로 마검과 동화된다. 구원받을 수 없는 자신의 삶, 어둠에 물든 영혼은 결국 악령처럼 변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불행의 고통에 이끌어낸다. 그리고 세계를 더 심한 나락으로 만들려는 자들이 있다.


론이 지난 과거, 즉 다시 구성된 세계 이전에 멸망한 세계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신과 악마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 세계가 되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신과 악마는 기억하고 있고, 그것은 론에게 암시해준다.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 것은 악마가 진짜 악마인가 싶을 정도로 모순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멸망한 세계에서 주박에 걸려 론과 싸운 악마는 지금의 론에게 은혜를 갚으려한 모습에서 말이다. 


강한 힘으로 주인의 명령을 듣는 악마지만, 론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주박이란 쇠사슬에서 벗어난다. 악마조차도 “나는 노예의 평화보다는 위험한 자유를 택할 것이다.”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자유를 준 론이 그것을 지키기 것은 역시 이종족의 몰살을 피하면서부터다. 나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자유와 평화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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