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 -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3부작
아이자크 도이처 지음, 김종철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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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계속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이전에 조지 오웰의 소설에 탐욕스럽고 난폭한 돼지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지속되고 있었으나, 그 돼지에게 쫓겨난 작은 돼지 스노우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오로지 나폴레옹이 키운 사냥개에게 내친 이후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없었다. 나는 그 작은 돼지의 후기가 참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트로츠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트로츠키가 저술한 러시아 혁명사는 보았으나, 정작 그는 어떤 사람을 알기란 그의 일대기를 적은 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라는 서적을 읽게 되었다. 페이지가 700에 이르는 거대한 장편 도서로 그의 인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다시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한편으로 이 책을 접하면서 아직도 북한과 대치하는 분단국가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내부의 갈등과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일까라는 초점을 생각해본다. 1905년 러시아 피의 일요일과 1917년 2월과 10월에 발발한 혁명,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큰 사건이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레닌과 트로츠키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돌이켜보면 레닌과 스탈린은 있어도 그 자리에 트로츠키가 없었다. 트로츠키의 일대기를 통해서나 혹은 마르크스주의들에 대한 역사와 업적에 본다면 그의 업적은 레닌 이상이었다. 레닌은 분명히 러시아 차르권력으로부터 국민들을 억압에서부터 해방시키려 한 것이 사실이고, 1차 세계대전에서 허무하게 죽어가는 농민으로 구성된 군인들까지 인명을 살리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상황에서 트로츠키가 있었다는 점과 그 트로츠키가 그 중심점과 그 최전방에서 구군분투를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그를 희생시킨 것이다. 역사라는 이름에서 말이다. 트로츠키는 참으로 미묘한 인물이었다. 이 책을 저술한 아이작 도이처는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하고도 제명당한 인물이다. 제3 인터내셔널인 코민테른이 사실 정말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의 권력도구로 전략한 사실이다.

 

사실 그런 내용은 1936년 코민테른 현장에서 북한 김일성이 나타난 점과 더불어 1937년부터 한국독립군 중에서 홍범도 장군처럼 비롯한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고, 또한 1936년부터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살해당하고, 1938년 독립운동가 김산도 숙청당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트로츠키 죽이기 이름은 스탈린의 철권통치에 대한 하나의 수단이었고, 스탈린이 어느새 트로츠키가 공헌한 러시아혁명을 대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다. 책 뒷면에 “살아 숨 쉬는 한 나는 미래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는 트로츠키의 구호처럼 그는 스탈린의 자객에게 죽음을 맞이하나, 그의 염원은 다시 미력하게도 꽃을 피웠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에서 시민혁명의 주체적으로 선동한 자들은 프랑스의 마지막 아방가르드인 상황주의자였으나, 그 속에는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 중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이 쌓아온 역사적 산물은 20세기에 큰 여파를 주었다.

 

그런 트로츠키의 일대기를 <무장한 예언자>라고 했으니, 그의 일대기가 얼마나 화려했는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레닌의 친형이 러시아 차르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죽게 되자 귀족의 후손인 레닌이 러시아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고, 트로츠키는 유복한 유태인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자신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으로 자신의 농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아버지에 의해 착복당한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기도 분노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솔직한 자신의 신념을 가진 그는 소년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친척집에서 공부를 했고, 그의 출중한 학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지식을 섭취하고 현실적인 안목을 갖추었다. 그리고 다소 나로드니키 성향을 가진 트로츠키는 학창 시절에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를 지탄했다. 당시 러시아는 공업화가 되지 않았고, 거대한 영토에 농민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열렬한 논쟁의 상대자이며, 첫 번째 부인인 소콜로프스카야와 상당히 많이 다투었다.

 

그녀는 트로츠키에 대해 가장 분노한 태도로서 말과 행동을 나타냈고, 거기에 반대하여 나중에는 그에게 가장 헌신적이었다. 왜냐하면 확고한 의지와 명석한 두뇌, 과학적인 사고와 현실적이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모순적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모순적인 행동으로 해결하는 트로츠키에게 그녀가 가장 자신의 편이었다. 러시아 차르의 강렬한 탄압과 거기에 대한 반항으로 두 사람은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앞일을 도모하기 위해 결혼한다고 한다. 결혼하면서 소콜로프스카야는 트로츠키의 딸 두 명을 낳는다.

 

사실 그녀는 트로츠키와 연배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나이가 훨씬 많았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 트로츠키는 십대였다면 그녀는 이십대였다. 정말 사랑했을까 에서 그들은 남녀의 사랑과 더불어 정신적 사랑을 나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고, 트로츠키는 두 번째 아내 나타샤를 만나고, 마지막 눈감는 그날까지 나타샤를 사랑하고 그녀가 있어서 자기가 존재했다고 할 정도로 아꼈다. 물론 나타샤 그녀 역시 러시아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트로츠키가 귀하게 편하게 자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농장에서 떠나, 편하게 공부하고 집필할 수 있는데도 오데사 친척 집에서 나오고, 그 역경 속에서 가족들을 버리고, 다시 권력을 잡음에도 그 권력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외로웠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느 당을 일방적으로 가입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어느 사람에게 편을 들지 않았다. 그와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같이 업무를 한 레닌조차도 처음에는 잘 지내다가 12년 동안 그를 비판하고, 그 후로는 레닌과 러시아정부를 위해 가장 헌신했다.

 

세상에는 호사다마란 말이 생각난다. 너무 앞서 나가거나 활보를 하면 적을 많이 만드는 뜻에서 말이다. 그는 처음에는 친구들이 정치적으로 입성하자 배신을 당하고, 또 배반과 반대를 당하다가 어느 순간 동지로 만드는 과정을 보인다. 그의 지적인 열변과 토론, 정력적인 활동은 누가 봐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러시아 10월 혁명에서 레닌은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는 반면, 트로츠키는 그 앞에서 선동하면서 나아간다. 그는 자신이 반대되던 찬성하던 그 누구라도 상관없이 자신의 웅변을 토해내었다.

 

그리고 그 어떤 불리하고 부당한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그것을 마다하면서까지 대변과 변호를 해주었다. 한편으로 그는 또한 냉정하고 잔혹한 면도 없지 않았다. 결단과 의지로 행동한다는 것은 곧 최악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을 감수함에서 그는 망설이지 않은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러시아혁명에서 1917년 10월에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러시아에서 아직까지 내전이 있었고, 차르정권 아래서 부귀영화를 누리려한 백색군이 남았다.

 

그 내전에서 트로츠키는 직접 진영에 나가 군사들을 지휘하고 응원하고 격려했으며, 심지어 전쟁의 한 가운데 직접적인 잠수함 침투에서 그 잠수함에 탑승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하지 않으며 전진했다. 다른 러시아혁명 공로자들은 모두 모스크바와 다른 도시에서 지켜볼 뿐이다. 게다가 그 백색군은 주변 강대국의 지원까지 받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남에도 불구하고 그 후속 군사력들은 러시아의 안전을 위협했다. 트로츠키는 끝까지 그들에게 저항하고, 또 응전했다.

 

그러나 전쟁이란 것은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국내 사정을 악화시키며, 토지와 산업시설을 척박하게 하였다. 트로츠키 입장에서는 비록 러시아가 공산주의로 되었을망정 미국의 테일러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하자고 했다. 화폐의 통화정책이 고물가로 이어지고, 전시 공산주의정책은 결국 국유화로 통해 농민들의 생산력을 저하시키고, 노동자들에게 식량공급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말이다. 그가 그런 정책을 내놓을 때 많은 정치가들이 반발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말을 한 직후 그가 옳았음이 나타난다.

 

트로츠키는 비록 자신들이 공산주의국가가 되었다고 해도 만약 그것이 과거의 차르의 유물이나 혹은 1차 세계대전에서 교전한 국가 내지 혁명 이후 자신들을 위협한 국가의 체계나 문물이라도 필요하면 받아 들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혁명으로 모든 것을 종지부를 마무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개혁성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시행착오 내지 강압적인 태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그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본래 국가가 재정이나 경제적으로 충분한 상태에서 혁명이 일어나면 분배의 원칙이 어느 정도 성립이 가능하나, 러시아는 오랜 기간 동안 이어온 가난과 낙후된 문화에서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분배가 가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혁명 자체가 지독한 가난과 그 가난 속에서 시작된 차르의 무능함과 전쟁의 연속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다음 편을 봐야겠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트로츠키가 스탈린과의 정치적 투쟁에서 밀려 자신이 행한 것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자신이 추진하려한 신경제 정책이 스탈린에 의해 다른 명분으로 바뀌어 그대로 통용된 사실을 말이다.

 

가끔 나는 국가와 정부체계, 국민들의 상황에서 위에가 아무리 바뀌어도 하부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바뀌기 어렵다는 칸트의 생각처럼 나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지도자의 의지가 계속 낙후되어 무능하고 수동적인 차르가 된다면 그 정부의 능력은 최악으로 떨어져서 최후의 고통은 국민들에게 간다는 사실이다. 트로츠키는 그런 상황에서 바꾸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한다. 이번은 <무장한 예언자>이나 다음 편에서는 <비무장한 예언자>로 등장할 트로츠키, 그는 국제상황과 사회정치 문화생활에 대하여 상당히 조예가 깊은 정치가, 문학평론가, 군인, 경제학자였다. 그는 러시아혁명을 성공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후가 문제였다. 과업의 완료는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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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미공개 사진에세이
정철 글, 장철영 사진 / 바다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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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보기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보면 반갑기도 하나 한편으로 슬픈 사람이 있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는 그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으나, 어째서인지 웃는 그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내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노무현, 그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의 관련 도서 중에서 그의 일대기나 소개, 일화 소개보다는 그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책을 나는 더 많이 읽는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그의 모습을 느끼면 느낄수록 마음이 아파오기 때문이다.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노무현, 하지만 너무나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강박관념에 집착한 인간인 노무현, 그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풍차를 괴수로 보고 승리와 패배의 계산도 없이 달려가는 기사 돈키호테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그런 모습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깝게도 했으며, 한편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인간적인 매력이란 완벽한 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완벽하지 않지만 그 누구라도 깊이 공감하거나 또는 다가갈 수 있는 인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완벽한 미나 상징이 아니다. 가진 것도 없고 가방끈도 짧으며, 정말 힘도 빽도 없이 시작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오니 기존 권력을 지닌 엘리트주의자들에겐 얼마나 가소로워 보였을까?

 

그는 그런 세상에 대해 홀로 싸워나갔다. 그러면서 친구도 만나고 동료도 만나고 지지자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자만하지 않았다. 그는 그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키에 맞추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키에 맞추기를 바란 것이다. 그의 일화 중에 한 가지가 생각난다. 그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주거지역을 돌아다닐 때 그는 우연히 호떡 장사를 하던 예쁘장한 아주머니 한 분을 마주친다. 그 아주머니는 아주 부끄러워하며 말없이 노무현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분의 손은 호떡을 굽기 위해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런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고 노무현은 그 분의 손을 꽉 하며 잡았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가 사실 부끄러워하던 이유는 노무현이 악수를 청하고 했으나, 손이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 아주머니의 손을 잡았다고 한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나, 인간은 규모가 크고 웅장한 일에는 자신의 본성을 드러나지 않지만, 일상적이고 사소한 생활에서 일어나는 순간마다의 행동들은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를 나타내어주는 것이다.

 

그가 사법고시를 합격하여 판사를 거쳐 변호사에 국회의원과 대통령까지 거치고, 마지막 봉하마을에서 눈감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인생을 보냈다. 나는 인간에 대해 평등하냐고 묻는다면 평등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오히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고 한다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재산적으로 불리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 평등에 쫓아갈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한 일이다. 오히려 평등하지 않기에 그 평등하지 않음을 인정하여 스스로 그 높이에 맞추는 것이 평등으로 향하는 철학적 자세라고 본다.

 

난장이와 대화할 때는 난장이처럼 되어 대화하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노무현은 그랬다. 권력이란 것은 결코 자신의 이익과 부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선택이 결국 마지막 최후라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정치라는 것은 힘 내지 권력에 향한 의지일까? 정치하는 자나 혹은 정치하는 자를 멀리서 보는 자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인간인데, 왜 이리 박하게 살아가야하는지가 정말 미스터리이다.

그래서 나에게 노무현이란 이름과 얼굴은 그립다. 그의 솔직하면서 또는 인간적인 면이 말이다. 물론 솔직한 경박함과 날카로움을 들어내고 인간적인 면은 약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지 못하여 꿍꿍이를 숨기며 국민을 속이고, 자신의 약한 모습보다는 국민의 약한 모습을 물고 늘어지는 정치하는 자들을 생각하면 무엇이 진정한 정치의 가치냐고 말이다.

 

질문 자체는 물론 모범답안으로 돌아와도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을 다 넘어서서 정치하는 사람 노무현은 어떠한가는 다들 판단기준이 있으니 어떻게 옳다고 혹은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인간적 노무현을 좋아하기에 정치적 노무현을 좋아한다. 나는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한 인간보다는 조금 윤리와 인간성으로 무장한 인간이 좋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적인 얼굴과 표정, 말투와 행동을 한 노무현의 비공개 사진을 보자니 마음이 막막해진다. 가식 없는 그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모습은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다. 근엄하고 높게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 앞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그의 낮은 몸짓을 말이다. 물론 그는 인간적인 면만 강조한 것이 아니다. 일에도 열정을 다했다. 그가 국회의원 시절 그의 방은 불이 계속 켜져 있었다고 한다. 밤샘과 철야를 하면서까지 일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항상 이동 중이라도 업무를 하기 위해 보고를 받고 결재를 하였으며, 그 바쁜 와중에도 독서를 꾸준히 실천했다. 그의 독서력을 본다면 결국 바보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았으나, 그는 바보임을 자처했다. 그런 바보 노무현의 미공개 사진에세이에서 사소하나 세심한 그의 배려감이 돋보인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일화로 그는 편한 자동차로 이동하기보다는 헬기를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헬기로 이동하면 소음진동으로 시끄럽고, 자리도 편안하지 못했다.

 

그러나 헬기를 탑승하면 자신의 이동으로 인해 주변 시민들에게 교통피해를 미치지 않게 된다. 최근에 어느 행사가 열린다고 길거리 위로 장애인들을 못 지나가게 한 일이 있었다. 장애인들도 인간이고, 그들도 인간으로서 누릴 인권이 있는데, 단지 그들이 몸이 불편하게 보여 시각적 미에 저하된다는 이유로 묵살 당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는 무엇인가?”에서 사람들은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 2가지 이유로 인상을 찡그린다고 했다.

 

1가지는 그들의 모습이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얼굴을 찡그리는 점과 다른 1가지는 그들이 귀찮게 여겨지고 보기 불편하다는 것으로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인상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군대 가기 전에 친하게 지낸 어떤 형님은 선천적으로 소아마비로 2다리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는 엄청난 멸시와 차별, 경계의 세상과 시간에서 살아왔다. 내가 그와 같이 길을 걸을 때 그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 사람까지도 같이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하는 어느 바보의 외침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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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외로운 전쟁
김용한 지음 / 포북(for book)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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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돈을 지배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이성적으로 겉모습에선 근엄하고 당연한 표정으로 “예, 그렇죠. 사람이 중요하죠.” 라고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뒤를 돌아보거나 주변의 시선들이 사라지면 방금 했던 어디로 갔는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물질만능주의가 팽팽한 이 사회에서 사람들에게는 이성이 있기는 있다.

 

단지 그 이성이란 자신이란 존재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일순간의 임기응변에 불과한 것들이 많다. 왜 그렇게도 나는 회의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년 전인가? 우리 집에 동네 통장인가 하는 사람이 와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통장 아줌마가 나의 엄마에게 질문을 했다. 살아가면서 차별받고 사는 것 같은지 말이다. 우리 엄마의 입에서는 받는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왜 그러냐는 말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없는 것이 말이죠.

 

우습지도 않거니와 그냥 일상적인 흐름 같이 보이는 이 글에서 정말 사실이다. 가난이란 단어에서 우리 가족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나나 형이나 대학교는 나왔고, 하루 3끼를 다 먹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되기까지의 지난날과 희생이란 감출 수 없었다. 내 형은 어린 시절에 2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1번은 폐렴으로 1번은 연탄중독으로 말이다.

 

잘 못 먹고, 잘 못 입고, 잘 못 자던 점에서 내가 어릴 때까지 의식주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철없는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정말 내가 철이 없고 대학생까지 나는 진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힘겨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주변에 너무나도 많았다.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에 다닌 시절 내 주변 학급친구 중에서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가끔 교실에 남은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또는 부모님 1분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부산에서 가난한 동네였던 것이다. 가난, 그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가난이란 이름 아래 멸시받고 천대받는 것들은 왠지 모르게 내 가슴에 앙금으로 남은 것 같았다. 이제 나이도 먹었고, 도서관에 가서 어려운 철학 도서나 사회과학 도서 한권씩 들고 다니면서 폼이나 내는 게 아닌가 하지만, 왜 가난한 것이 죄가 아닌데, 죄라는 이름이 되었는지 한편으로 원한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가 참 아쉽기만 했다.

 

단지 돈이 없어서 그렇게 살아갈 뿐인데, 단지 힘이 없는 서민이라서 마음을 사리면서 살아가는데, 그마저도 못 살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인간에게는 언제나 신화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단지 그 신화가 우리의 욕망을 반영하는지 아니라면 억지로 끼워 맞추어진 틀에만 의존하느냐는 분명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에 대한 욕망에 대한 신화는 없는 놈들도 좀 살아보자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노무현을 알았는가와 이 책은 절묘한 타이밍에 걸려있었다. 2001년 시기에 나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2002년 겨울방학 때 나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부산시 내의 폐기물현황을 알아보는 것인데, 북구에 위치한 덕천동, 화명동, 금곡동 일대를 돌면서 쓰레기 성상별 현황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가정폐기물도 있고, 사무실도 있었고, 특히 기억나는 것은 가정집 중에 아파트, 일반가정주택이 있어서 종량제봉투를 우리가 사서 그 쓰레기봉투를 준분에게 다시 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처음 대하던 사람들의 눈에서는 경계심과 더불어 낯선 배타심에 나는 힘들었다. 게다가 집도 멀고, 아주 추운 겨울이라 오후 5시만 되도 온 몸이 시리고, 밤 9시 가까이 돌던 나는 괴로웠다. 단지 내가 하고픈 것은 집에 가고 잠자고 만화책보면서 TV에서 재밌는 방송만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일생일대의 변화를 준 사건이 있었다. 북구 덕천동에 돌면서 멋모르고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서 폐기물현황 조사한다고 말하고, 환경부에서 나온 협조공문을 보여주었는데, 우리가 들은 말은 상상 이상이었다.

 

바로 꺼지라는 것이다. 꺼지라는 말을 시민에게 내뱉은 보좌관인지 비서관인지 모를 아저씨, 게다가 욕까지 해대는 것이다. 나는 학교선배와 마치 바보가 된 것처럼 거기서 나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현실정치인에게 불신이 생겨버렸다. 나의 정치관은 권력을 지녔다고 사람 깔보는 자들에 대한 분노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노무현이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당시 덕천동은 북구·강서구 갑이었고, 노무현은 2000년 총선에서 북구·강서구 을에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때마침 군대에 전역한 형방에 가보니 이 책이 1권이 꽂혀있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라고 노무현의 자서전이었다. 아마 형이 군대 가기 전에 구매한 책인 것 같았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노무현이란 사람을 알았다. 청문회 스타라는 것과 매우 가난한 변호사 출신이란 점, 그리고 노동인권변호사였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권변호사란 말이 참 이상하다. 변호사라는 것은 인간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데, 이제 그 변호사가 인권을 지키지 않아 인권변호사란 단어가 탄생한 점은 그야말로 아이러니였다.

 

게다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도다리 몇 번 안지나간 입장에서 대학교 올라가면서 자주 겪은 교통 불편 중에 한진중공업과 금속노조 파업이 있었다. 당시는 몰랐다. 그저 왜 저렇게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해고는 생계수단을 잃은 자에겐 희망을 버리게 하는 행위고, 그 사람에게 매달려있는 가족들에겐 비참한 생활만 기다릴 뿐이다. 어린 시절 가난함에 기성회비를 못 내어 남아있던 애들을 생각하면 당시로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읽고 있는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에서 이 말이 가슴 속에 깊이 찌른다. “종로 선거 때 일입니다. 찬바람 부는 날, 노 의원을 모시고, 창선동 꼭대기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노 의원은 ‘나의 꿈은 사람 사는 세상, 힘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건설에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다부지게 갈 길을 재촉하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희망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힘도 없고 빽도 없어서 늘 무시와 고통만 받은 내 아버지, 그런 것도 모른 채 철부지로 자란 나의 지난날, 하지만 몰랐다고 하여 이제는 모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힘도 없고 빽도 없고, 가진 것이라면 오직 몸뿐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세상살이에 고개를 숙인 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못 배우고, 못 살고,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나와 내 아버지, 그리고 나 같은 사람과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조금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물론 그런 점에서 나는 노무현이란 인물을 좋아한다. 이에 반면에 싫어하거나 멀리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을 때 노무현이란 사람은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신화의 주인공처럼 사라졌다. 전에 누군가 서민이 뭔가라는 질문을 사회자에게 받았다. 그 의원후보는 서민이란 희망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말 비웃고 싶었다. 서민들은 희망을 기대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지치고 지쳐, 이제 큰 희망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민인 듯하다. 그들의 희망이란 단어는 눈 먼 떡이고, 현실의 괴로움에서 그저 벗어나는 것만이 희망이다.

 

괴로움을 벗어내는 것이 희망이라는데, 과연 희망이 무엇일까? 지역주의와 패권주의, 보이지 않은 사회적 차별과 그것을 합리화해버리는 사회구조 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대해 정의를 논한다는 말인가? 최근에 존 롤즈에 대한 서적을 계속 읽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공화주의 이 거창한 말들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가까지 말이다. 이 위대한 철학자의 도서에서 찾아낸 내용은 인간을 윤리적으로 대하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여 이성적인 가치로서 공공선을 추구하며, 합리를 지나 합당한 것을 찾아가는 현실적 유토피아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외로운 전쟁에서 노무현은 갖은 차별에 시달렸고, 패배한 선거라도 비굴하지 않게 패배 아닌 패배를 맞이했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 동네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런데 그 후보는 뇌물문제로 동네방네 소문났고, 그것이 사실이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무마되었다. 게다가 어느 특정 종교단체에선 밥을 준다든지 혹은 뭔가 당장의 눈앞의 이익을 준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그런 것으로 선거를 치르고 돈을 사용하면 그 만큼 금액을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빼놓을 수밖에 없다. 멀쩡한 보도 블럭을 깨고 부수고를 연거푸 실시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멀었나? 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난다. 노무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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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 - 노무현 대통령 미공개 사진에세이
정철 글, 장철영 사진 / 바다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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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야하는 것은 오로지 손수건과 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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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법
존 롤스 지음, 장동진 외 옮김 / 아카넷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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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상가 및 철학자라면 선택하라면 나는 2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1사람은 카를 마르크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존 롤즈다. 그 이유는 마르크스의 경우는 내가 <자본>, <공산당 선언>, <경제학철학초고>를 읽어보면서 마르크스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했는지, 그런 사회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동시에 구조적인 설명을 통해 사회과학적인 체계를 확립하였다.

 

그 덕분에 나의 사고는 단순히 나의 독단적인 판단구조에서 다소 사회구조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덕분으로 프랑스 구조주의학자들의 서적들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보편적이란 사실에서 구조적인 사고로 통해 전반적으로 사회를 과학적으로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크스의 도서를 읽어보면 현실에서는 유토피아가 없는 것 같았다. 유토피아란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추구한다고 해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없다.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라는 노래가사 있듯이 그 어떤 사고관념이란 것은 허물에 매이는 족쇄이지 그 어떤 대안이 되지 못한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의 서적을 보면 그들은 철학이란 관념을 생산하여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유물론적인 관점을 끊임없이 관념론과 대립하여 비판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철학에서 지금의 자기를 만족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사유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철학자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유토피아가 없기 때문에 오직 현실에 대한 사회과학적 비판으로 통한 일상생활의 혁명으로 통해 계속 이어나가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란 것은 괜한 말로만 보여줄 존재라는 것인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은 존재이나, 이미 인간의 관념이란 공간에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생겼고, 현실에서 형이하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도 인간의 사고라는 인식에서 충분히 가능하다.

 

형이상학이라고 하여도 결국 보이던 것조차도 왜 존재하고 그것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하지 않은가? 유토피아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와 달리 분명하게 현실에서도 유토피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현실적 유토피아에 대해 존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위대한 철학자가 있으니 그는 존 롤즈이고, 이번에 읽은 도서가 바로 존 롤즈의 만민법(The Law Of Peoples)이다.

 

만민법에서 만민이 결국 Peoples인데, 이 단어를 다르게 생각한다면 가령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mass(대중), mobs(선동가), 그리고 people(인민)이다. 시민이라는 이 단어 속에서 과연 어떻게 우리가 대중에서 시민으로 가야할지 혹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솔직하게 내 의견으로서는 시민들의 의해 정치적 입장이 분명하고, 자신의 이익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까지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 자유주의와 민주적 자유주의의 업적을 올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는 그런 시민사회를 일구어 갈 수 있는 만민들은 흔하지 않다는 점이다. 만민법에서 만민은 합리적이기보다는 합당한 것이 옳기 때문에 자신의 이성적인 자유의지로 통해 타인과 자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롤즈는 기본적으로 임마누엘 칸트, 게오르크 헤겔,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이성적인 인간을 추구하는 철학자에 동의했으며, 그 중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처럼 시민사회인 세상을 원했다.

 

단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는 남녀평등과 노예제도 폐지를 인정했으나, 각 개인에 대해 1인 1표에 대한 정치권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정치적 역량과 도덕적 기준에 따라 정치적 표력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어떻게 본다면 시민이란 존재는 대중들과 차이가 나는 존재라는 점이 분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민법에서는 비이성적인 사회의 국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으며, 정치적인 결정에서 종교적인 개입을 반대했다.

 

그러나 종교적 관념은 이성적인 영역보다는 이성적이지 못한 영역에 더욱 가깝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인 존재는 현실적인 존재라기보다는 관념적인 존재에 가까우며, 또한 인간의 믿음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기 때문에 종교단체가 정치적으로 개입할 경우 이성적인 정치를 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가령 1600년대부터 독일을 비롯한 유럽사회에서 발생한 마녀사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시 국가와 종교가 서로 정치적 연합으로 통해 많은 국민들을 탄압하지 않았는가? 만민법에서는 종교가 정치적으로 분리되어야 하며, 또한 한국처럼 종교단체가 지나친 자선단체의 개입은 종교의 영향이 정치적으로 여전히 주고 있어서 그것이 종교적 조직으로 통해 이성적인 정치제가 어렵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런 롤즈가 이성을 중시하고 이성을 위해서는 철학적인 자세를 만민이 가지는 것을 권장했다.

 

게다가 종교적 교리가 자유를 위하 하나의 사상이 아닌 포괄적인 자유로 보며, 종교가 절실하게 자신의 도덕적 교리를 따르면 그것이 제1의 철학과 동격으로 된다고 한다. 참고로 철학 중에서 제일 첫 번째가 되는 것은 에토스가 중시되는 윤리학이란 점이다. 윤리학은 결국 인간을 위해 자신보다는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것이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선(goods)보다는 타인의 선을 수동적인 입장이 아닌 능동적인 자세에서 실시하는 것이 진정한 도덕적 법칙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인간들은 그런 윤리적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의해 즉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살아간다. 그 합리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신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인간의 논리라는 것은 윤리가 선행되지 않으면 논리적 가치가 없다고 한다. 만약 카를 마르크스가 당시 많은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일하였으나, 이와 반대되던 세력은 카를 마르크스가 선동자로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선동자를 만들어낸 원인제공자란 누구란 말인가? 만민법에서는 분명히 재산의 분배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의 재산이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반대한다. 롤즈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경제적인 부분 역시 인정하는 점이다. 하지만 그가 더욱 더 중요하는 자유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민주적으로 공적으로서 정의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른바 자유를 위한 자유주의인 것이다. 또는 한나 아렌트처럼 권리를 위한 권리처럼 말이다.

 

만약 롤즈가 제시한 것처럼 만민들이 세계적으로 포진하여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거나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1871년 파리코뭔들이 독일군과 프랑스 독재정치에 항거할 때 어느 소녀가 은방울꽃을 들은 채로 죽었다고 한다. 왜 그 소녀가 죽어야 했을까? 만민법적인 입장에서 보면 만민이란 부당한 외압에 의해 자신들의 인권에 위협당하지 않은 권리가 있다. 그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이유는 오직 부당한 외침에 의해서다. 전쟁을 하더라도 전쟁을 기획하는 정치인과 군인들에 대해 군사적인 영역에서 처리하여야지 죄가 없는 민간인들에 대해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아마 그것은 롤즈가 2차 세계대전에 미육군으로 입대하면서 일본이 항복하고 난 뒤에 1946년까지 일본에 잠시 머문 점일 것이다. 일본에 머무른 롤즈에게 당시 일본의 민생이 전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의 전범후손들이 계속 정권과 대기업의 사업가로 권세를 누린다. 그에 반해 일본 국민들은 비참한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롤즈는 일본이 6월경에 항복에 대한 부분을 천황이 각료에게 지시한 것을 언급한 것에서 1945년 8월 핵폭탄 투하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일본은 핵폭탄 피해자란 생각에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반성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더 중요한 사실은 핵폭탄의 위력은 군인보다는 아무 방비도 없는 민간인에게 심각한 타격을 준 것이다. 진실로 만민이라면 이런 야만적인 전쟁을 일으키면 안되는 것이고, 일으킨다고 하여 죄 없는 국민들을 피해주면 안되는 것이다. 전에 “롤즈의 민주적 자유주의”라는 도서에서 전쟁에서 책임을 지는 존재는 장교라고 하는데, 병사들은 그들에게 군정에 대한 권한도 없이 강제로 징용된 점과 그 군인들은 모두 평범한 국민이란 점이다.

 

그래서인지 만민법은 분명히 유토피아를 추구하고 있으나, 롤즈의 사상을 보면 현실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롤즈의 사상은 철저하게 현실의 비극에서 시작된 씨앗이란 점이고, 그 비극을 줄이기 위해 만민이란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만민법에서 만민에 대한 법이라고 하여 그 법이 어느 국가가 지닌 각각의 법과 제도가 아니라 만민법은 그 자체만으로 범세계적인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만민법이란 강제적인 조항과 의무사항보다는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면 그것은 진정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를 위한 거대한 의지인 것이다. 자기 가족과 국가를 사랑하되 그것에 해당하는 만큼 다른 국가와 민족을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중시한 만큼 타인의 의견을 같이 조정해야하며, 부당하게 피해를 입거나 어려운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같이 하나의 인간체로 보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롤즈가 제시한 만민법처럼 세상에는 분쟁이 줄어들고 전쟁이 사라지는 현실적인 유토피아가 올 수 있을까라는 점에서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롤즈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얼마나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인간의 이성에 대해 인간은 자기 스스로 의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비이성적인 관념조차도 이성이다! 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상에 떠도는 많은 전쟁과 분쟁, 인종차별, 남녀차별, 신분차별 등이 생기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롤즈는 그런 세상을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심장병으로 쓰러져서 강의하지 못하게 되어도 그는 병상에서 계속 집필했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는지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힐러리 여사는 그들이 대학교에 다닐 적에 존 롤즈의 철학은 상당한 공부가 되었다고 한다. 롤즈의 서적은 다른 철학자와 달리 책이 많지 않다. 서적 1권 적는데 걸린 시간을 보니 거의 경이롭다고 할 수밖에 없다. 불세출의 명저인 <정의론> 1권 적는데 20년이, <정치적 자유주의>는 23년이 걸렸다고 한다. 2002년 자택에서 서거할 때까지 그는 세상을 좀 더 좋게 현실적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마르크스처럼 연속적인 투쟁을 살아온 마르크스와 다른 노선을 걷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본다면 마르크스와 롤즈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적 마인드는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에 치중하여 프롤레타리아의 자기 스스로 운명 개척을 주장했지만, 롤즈는 이와 반대로 인간 스스로 시민, 즉 만민이 되어 분쟁과 줄이고, 다 같이 잘 살 것을 추구했다. 뭔가 다른 방향이나 기본적으로 인간에 가져야 할 권리와 자유를 모두 인정한 것이다.

 

재산적인 부분에서 열심히 일한만큼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나 마르크스가 살던 시절은 그렇지 못했다. 하루 12시간 격렬한 노동을 해도 1가족의 생계는 막막했다. 적어도 마르크스는 독일인에게 맥주를 프랑스인에게 포도주란 말처럼 최소한 생계를 넘어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추구했다. 단지 추구하지 못하기에 그런 격동의 시간을 보낸 것이고, 롤즈는 그런 극단적 상황이 오지 않기 위해 현실적 유토피아라는 대안을 내놓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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