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외로운 전쟁
김용한 지음 / 포북(for book)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돈을 지배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이성적으로 겉모습에선 근엄하고 당연한 표정으로 “예, 그렇죠. 사람이 중요하죠.” 라고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뒤를 돌아보거나 주변의 시선들이 사라지면 방금 했던 어디로 갔는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물질만능주의가 팽팽한 이 사회에서 사람들에게는 이성이 있기는 있다.

 

단지 그 이성이란 자신이란 존재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일순간의 임기응변에 불과한 것들이 많다. 왜 그렇게도 나는 회의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년 전인가? 우리 집에 동네 통장인가 하는 사람이 와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통장 아줌마가 나의 엄마에게 질문을 했다. 살아가면서 차별받고 사는 것 같은지 말이다. 우리 엄마의 입에서는 받는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왜 그러냐는 말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없는 것이 말이죠.

 

우습지도 않거니와 그냥 일상적인 흐름 같이 보이는 이 글에서 정말 사실이다. 가난이란 단어에서 우리 가족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나나 형이나 대학교는 나왔고, 하루 3끼를 다 먹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되기까지의 지난날과 희생이란 감출 수 없었다. 내 형은 어린 시절에 2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1번은 폐렴으로 1번은 연탄중독으로 말이다.

 

잘 못 먹고, 잘 못 입고, 잘 못 자던 점에서 내가 어릴 때까지 의식주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철없는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정말 내가 철이 없고 대학생까지 나는 진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힘겨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주변에 너무나도 많았다.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에 다닌 시절 내 주변 학급친구 중에서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가끔 교실에 남은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또는 부모님 1분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부산에서 가난한 동네였던 것이다. 가난, 그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가난이란 이름 아래 멸시받고 천대받는 것들은 왠지 모르게 내 가슴에 앙금으로 남은 것 같았다. 이제 나이도 먹었고, 도서관에 가서 어려운 철학 도서나 사회과학 도서 한권씩 들고 다니면서 폼이나 내는 게 아닌가 하지만, 왜 가난한 것이 죄가 아닌데, 죄라는 이름이 되었는지 한편으로 원한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가 참 아쉽기만 했다.

 

단지 돈이 없어서 그렇게 살아갈 뿐인데, 단지 힘이 없는 서민이라서 마음을 사리면서 살아가는데, 그마저도 못 살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인간에게는 언제나 신화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단지 그 신화가 우리의 욕망을 반영하는지 아니라면 억지로 끼워 맞추어진 틀에만 의존하느냐는 분명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에 대한 욕망에 대한 신화는 없는 놈들도 좀 살아보자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노무현을 알았는가와 이 책은 절묘한 타이밍에 걸려있었다. 2001년 시기에 나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2002년 겨울방학 때 나는 학교에서 주관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부산시 내의 폐기물현황을 알아보는 것인데, 북구에 위치한 덕천동, 화명동, 금곡동 일대를 돌면서 쓰레기 성상별 현황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가정폐기물도 있고, 사무실도 있었고, 특히 기억나는 것은 가정집 중에 아파트, 일반가정주택이 있어서 종량제봉투를 우리가 사서 그 쓰레기봉투를 준분에게 다시 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처음 대하던 사람들의 눈에서는 경계심과 더불어 낯선 배타심에 나는 힘들었다. 게다가 집도 멀고, 아주 추운 겨울이라 오후 5시만 되도 온 몸이 시리고, 밤 9시 가까이 돌던 나는 괴로웠다. 단지 내가 하고픈 것은 집에 가고 잠자고 만화책보면서 TV에서 재밌는 방송만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일생일대의 변화를 준 사건이 있었다. 북구 덕천동에 돌면서 멋모르고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서 폐기물현황 조사한다고 말하고, 환경부에서 나온 협조공문을 보여주었는데, 우리가 들은 말은 상상 이상이었다.

 

바로 꺼지라는 것이다. 꺼지라는 말을 시민에게 내뱉은 보좌관인지 비서관인지 모를 아저씨, 게다가 욕까지 해대는 것이다. 나는 학교선배와 마치 바보가 된 것처럼 거기서 나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현실정치인에게 불신이 생겨버렸다. 나의 정치관은 권력을 지녔다고 사람 깔보는 자들에 대한 분노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노무현이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당시 덕천동은 북구·강서구 갑이었고, 노무현은 2000년 총선에서 북구·강서구 을에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때마침 군대에 전역한 형방에 가보니 이 책이 1권이 꽂혀있었다. “여보 나 좀 도와줘” 라고 노무현의 자서전이었다. 아마 형이 군대 가기 전에 구매한 책인 것 같았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노무현이란 사람을 알았다. 청문회 스타라는 것과 매우 가난한 변호사 출신이란 점, 그리고 노동인권변호사였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권변호사란 말이 참 이상하다. 변호사라는 것은 인간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데, 이제 그 변호사가 인권을 지키지 않아 인권변호사란 단어가 탄생한 점은 그야말로 아이러니였다.

 

게다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도다리 몇 번 안지나간 입장에서 대학교 올라가면서 자주 겪은 교통 불편 중에 한진중공업과 금속노조 파업이 있었다. 당시는 몰랐다. 그저 왜 저렇게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해고는 생계수단을 잃은 자에겐 희망을 버리게 하는 행위고, 그 사람에게 매달려있는 가족들에겐 비참한 생활만 기다릴 뿐이다. 어린 시절 가난함에 기성회비를 못 내어 남아있던 애들을 생각하면 당시로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읽고 있는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에서 이 말이 가슴 속에 깊이 찌른다. “종로 선거 때 일입니다. 찬바람 부는 날, 노 의원을 모시고, 창선동 꼭대기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노 의원은 ‘나의 꿈은 사람 사는 세상, 힘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건설에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다부지게 갈 길을 재촉하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희망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힘도 없고 빽도 없어서 늘 무시와 고통만 받은 내 아버지, 그런 것도 모른 채 철부지로 자란 나의 지난날, 하지만 몰랐다고 하여 이제는 모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힘도 없고 빽도 없고, 가진 것이라면 오직 몸뿐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세상살이에 고개를 숙인 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못 배우고, 못 살고,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나와 내 아버지, 그리고 나 같은 사람과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조금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물론 그런 점에서 나는 노무현이란 인물을 좋아한다. 이에 반면에 싫어하거나 멀리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을 때 노무현이란 사람은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신화의 주인공처럼 사라졌다. 전에 누군가 서민이 뭔가라는 질문을 사회자에게 받았다. 그 의원후보는 서민이란 희망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말 비웃고 싶었다. 서민들은 희망을 기대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지치고 지쳐, 이제 큰 희망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민인 듯하다. 그들의 희망이란 단어는 눈 먼 떡이고, 현실의 괴로움에서 그저 벗어나는 것만이 희망이다.

 

괴로움을 벗어내는 것이 희망이라는데, 과연 희망이 무엇일까? 지역주의와 패권주의, 보이지 않은 사회적 차별과 그것을 합리화해버리는 사회구조 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대해 정의를 논한다는 말인가? 최근에 존 롤즈에 대한 서적을 계속 읽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공화주의 이 거창한 말들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가까지 말이다. 이 위대한 철학자의 도서에서 찾아낸 내용은 인간을 윤리적으로 대하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여 이성적인 가치로서 공공선을 추구하며, 합리를 지나 합당한 것을 찾아가는 현실적 유토피아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외로운 전쟁에서 노무현은 갖은 차별에 시달렸고, 패배한 선거라도 비굴하지 않게 패배 아닌 패배를 맞이했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 동네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런데 그 후보는 뇌물문제로 동네방네 소문났고, 그것이 사실이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무마되었다. 게다가 어느 특정 종교단체에선 밥을 준다든지 혹은 뭔가 당장의 눈앞의 이익을 준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그런 것으로 선거를 치르고 돈을 사용하면 그 만큼 금액을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빼놓을 수밖에 없다. 멀쩡한 보도 블럭을 깨고 부수고를 연거푸 실시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멀었나? 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난다. 노무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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