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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 -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3부작
아이자크 도이처 지음, 김종철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나에게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계속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이전에 조지 오웰의 소설에 탐욕스럽고 난폭한 돼지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지속되고 있었으나, 그 돼지에게 쫓겨난 작은 돼지 스노우볼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오로지 나폴레옹이 키운 사냥개에게 내친 이후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없었다. 나는 그 작은 돼지의 후기가 참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트로츠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트로츠키가 저술한 러시아 혁명사는 보았으나, 정작 그는 어떤 사람을 알기란 그의 일대기를 적은 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라는 서적을 읽게 되었다. 페이지가 700에 이르는 거대한 장편 도서로 그의 인생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 다시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한편으로 이 책을 접하면서 아직도 북한과 대치하는 분단국가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내부의 갈등과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일까라는 초점을 생각해본다. 1905년 러시아 피의 일요일과 1917년 2월과 10월에 발발한 혁명,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큰 사건이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레닌과 트로츠키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돌이켜보면 레닌과 스탈린은 있어도 그 자리에 트로츠키가 없었다. 트로츠키의 일대기를 통해서나 혹은 마르크스주의들에 대한 역사와 업적에 본다면 그의 업적은 레닌 이상이었다. 레닌은 분명히 러시아 차르권력으로부터 국민들을 억압에서부터 해방시키려 한 것이 사실이고, 1차 세계대전에서 허무하게 죽어가는 농민으로 구성된 군인들까지 인명을 살리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상황에서 트로츠키가 있었다는 점과 그 트로츠키가 그 중심점과 그 최전방에서 구군분투를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그를 희생시킨 것이다. 역사라는 이름에서 말이다. 트로츠키는 참으로 미묘한 인물이었다. 이 책을 저술한 아이작 도이처는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하고도 제명당한 인물이다. 제3 인터내셔널인 코민테른이 사실 정말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의 권력도구로 전략한 사실이다.
사실 그런 내용은 1936년 코민테른 현장에서 북한 김일성이 나타난 점과 더불어 1937년부터 한국독립군 중에서 홍범도 장군처럼 비롯한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고, 또한 1936년부터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살해당하고, 1938년 독립운동가 김산도 숙청당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트로츠키 죽이기 이름은 스탈린의 철권통치에 대한 하나의 수단이었고, 스탈린이 어느새 트로츠키가 공헌한 러시아혁명을 대체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다. 책 뒷면에 “살아 숨 쉬는 한 나는 미래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는 트로츠키의 구호처럼 그는 스탈린의 자객에게 죽음을 맞이하나, 그의 염원은 다시 미력하게도 꽃을 피웠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에서 시민혁명의 주체적으로 선동한 자들은 프랑스의 마지막 아방가르드인 상황주의자였으나, 그 속에는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 중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이 쌓아온 역사적 산물은 20세기에 큰 여파를 주었다.
그런 트로츠키의 일대기를 <무장한 예언자>라고 했으니, 그의 일대기가 얼마나 화려했는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처음에는 레닌의 친형이 러시아 차르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죽게 되자 귀족의 후손인 레닌이 러시아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고, 트로츠키는 유복한 유태인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자신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으로 자신의 농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아버지에 의해 착복당한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기도 분노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솔직한 자신의 신념을 가진 그는 소년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친척집에서 공부를 했고, 그의 출중한 학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지식을 섭취하고 현실적인 안목을 갖추었다. 그리고 다소 나로드니키 성향을 가진 트로츠키는 학창 시절에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를 지탄했다. 당시 러시아는 공업화가 되지 않았고, 거대한 영토에 농민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열렬한 논쟁의 상대자이며, 첫 번째 부인인 소콜로프스카야와 상당히 많이 다투었다.
그녀는 트로츠키에 대해 가장 분노한 태도로서 말과 행동을 나타냈고, 거기에 반대하여 나중에는 그에게 가장 헌신적이었다. 왜냐하면 확고한 의지와 명석한 두뇌, 과학적인 사고와 현실적이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모순적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모순적인 행동으로 해결하는 트로츠키에게 그녀가 가장 자신의 편이었다. 러시아 차르의 강렬한 탄압과 거기에 대한 반항으로 두 사람은 감옥에 갇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앞일을 도모하기 위해 결혼한다고 한다. 결혼하면서 소콜로프스카야는 트로츠키의 딸 두 명을 낳는다.
사실 그녀는 트로츠키와 연배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나이가 훨씬 많았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 트로츠키는 십대였다면 그녀는 이십대였다. 정말 사랑했을까 에서 그들은 남녀의 사랑과 더불어 정신적 사랑을 나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고, 트로츠키는 두 번째 아내 나타샤를 만나고, 마지막 눈감는 그날까지 나타샤를 사랑하고 그녀가 있어서 자기가 존재했다고 할 정도로 아꼈다. 물론 나타샤 그녀 역시 러시아혁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트로츠키가 귀하게 편하게 자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농장에서 떠나, 편하게 공부하고 집필할 수 있는데도 오데사 친척 집에서 나오고, 그 역경 속에서 가족들을 버리고, 다시 권력을 잡음에도 그 권력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외로웠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느 당을 일방적으로 가입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어느 사람에게 편을 들지 않았다. 그와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같이 업무를 한 레닌조차도 처음에는 잘 지내다가 12년 동안 그를 비판하고, 그 후로는 레닌과 러시아정부를 위해 가장 헌신했다.
세상에는 호사다마란 말이 생각난다. 너무 앞서 나가거나 활보를 하면 적을 많이 만드는 뜻에서 말이다. 그는 처음에는 친구들이 정치적으로 입성하자 배신을 당하고, 또 배반과 반대를 당하다가 어느 순간 동지로 만드는 과정을 보인다. 그의 지적인 열변과 토론, 정력적인 활동은 누가 봐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러시아 10월 혁명에서 레닌은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는 반면, 트로츠키는 그 앞에서 선동하면서 나아간다. 그는 자신이 반대되던 찬성하던 그 누구라도 상관없이 자신의 웅변을 토해내었다.
그리고 그 어떤 불리하고 부당한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그것을 마다하면서까지 대변과 변호를 해주었다. 한편으로 그는 또한 냉정하고 잔혹한 면도 없지 않았다. 결단과 의지로 행동한다는 것은 곧 최악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을 감수함에서 그는 망설이지 않은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러시아혁명에서 1917년 10월에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러시아에서 아직까지 내전이 있었고, 차르정권 아래서 부귀영화를 누리려한 백색군이 남았다.
그 내전에서 트로츠키는 직접 진영에 나가 군사들을 지휘하고 응원하고 격려했으며, 심지어 전쟁의 한 가운데 직접적인 잠수함 침투에서 그 잠수함에 탑승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하지 않으며 전진했다. 다른 러시아혁명 공로자들은 모두 모스크바와 다른 도시에서 지켜볼 뿐이다. 게다가 그 백색군은 주변 강대국의 지원까지 받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남에도 불구하고 그 후속 군사력들은 러시아의 안전을 위협했다. 트로츠키는 끝까지 그들에게 저항하고, 또 응전했다.
그러나 전쟁이란 것은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국내 사정을 악화시키며, 토지와 산업시설을 척박하게 하였다. 트로츠키 입장에서는 비록 러시아가 공산주의로 되었을망정 미국의 테일러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하자고 했다. 화폐의 통화정책이 고물가로 이어지고, 전시 공산주의정책은 결국 국유화로 통해 농민들의 생산력을 저하시키고, 노동자들에게 식량공급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말이다. 그가 그런 정책을 내놓을 때 많은 정치가들이 반발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말을 한 직후 그가 옳았음이 나타난다.
트로츠키는 비록 자신들이 공산주의국가가 되었다고 해도 만약 그것이 과거의 차르의 유물이나 혹은 1차 세계대전에서 교전한 국가 내지 혁명 이후 자신들을 위협한 국가의 체계나 문물이라도 필요하면 받아 들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혁명으로 모든 것을 종지부를 마무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개혁성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시행착오 내지 강압적인 태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그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본래 국가가 재정이나 경제적으로 충분한 상태에서 혁명이 일어나면 분배의 원칙이 어느 정도 성립이 가능하나, 러시아는 오랜 기간 동안 이어온 가난과 낙후된 문화에서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분배가 가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혁명 자체가 지독한 가난과 그 가난 속에서 시작된 차르의 무능함과 전쟁의 연속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다음 편을 봐야겠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트로츠키가 스탈린과의 정치적 투쟁에서 밀려 자신이 행한 것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자신이 추진하려한 신경제 정책이 스탈린에 의해 다른 명분으로 바뀌어 그대로 통용된 사실을 말이다.
가끔 나는 국가와 정부체계, 국민들의 상황에서 위에가 아무리 바뀌어도 하부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바뀌기 어렵다는 칸트의 생각처럼 나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지도자의 의지가 계속 낙후되어 무능하고 수동적인 차르가 된다면 그 정부의 능력은 최악으로 떨어져서 최후의 고통은 국민들에게 간다는 사실이다. 트로츠키는 그런 상황에서 바꾸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한다. 이번은 <무장한 예언자>이나 다음 편에서는 <비무장한 예언자>로 등장할 트로츠키, 그는 국제상황과 사회정치 문화생활에 대하여 상당히 조예가 깊은 정치가, 문학평론가, 군인, 경제학자였다. 그는 러시아혁명을 성공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후가 문제였다. 과업의 완료는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