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한국영화는 다소 이색적인 형태를 보였다. 여름에 주로 등장하는 공포 내지 스릴러 장르에서 기존 스크린을 장악했던 것은 외국 영화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한국영화가 주요 공포영화로 등장했다. 곽도원 씨가 주연을 맡은 <곡성>을 늦은 봄에 시작하여 늦은 여름에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으로 이어졌다. 이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르가 아니다. 흔히 B급 정서라고 불리는 다소 서브컬쳐 요소가 강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몬스터 내지 좀비가 직접적으로 한국 영화에서 등장할 사례들은 많이 없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B급영화라고 해도 그 시장의 규모가 형성된 반면, 한국영화 시장은 일반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그 외 영화들은 인디 내지 예술영화로 상영되어 예술전용 소극장이나 혹은 대형극장 내에서 아트 시네마 홀에서 상영되기도 하나, 그 좌석규모는 매우 적다. 대중이 이용하는 영화관 내 예술전용 상영관 좌석규모는 80석 내외 정도다. 게다가 상영 회수가 매우 제한적이며, 상영기간도 길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큰 무리가 있다. 대중영화를 찾는 것보다 소소하게 볼 수 있는 예술영화의 맛은 기존 영화의 법칙이나 패턴에서 우회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서사나 소재 역시 우리가 직시하지 않은 부분도 많이 드러내며, 다큐멘터리나 르포르타주 형식도 많기에 사회적 문제에 대한 쟁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곡성>이나 <부산행>같은 B급 성격을 가진 영화는 예술영화는 아니나, 인디 내지 예술영화 쪽에서 다소 맥락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해오던 작품들이 B급 정서의 영화보단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인디 내지 예술영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옴니부스 애니메이션 <셀마의 단백질 커피>에서 내 사랑 단백질부분이었다.

 

가난한 자취생 3친구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통닭을 주문했는데, 팔 한 쪽이 없는 돼지가 와서 통닭을 건네준다. 그 통닭은 돼지 옆에 통닭가게의 주인의 아이였던 것이다. 닭의 아이이니 병아리고, 병아리는 하늘을 날 수 없지만,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꿈 많은 아이였다. 배고픔 속의 자취생,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닭과 돼지의 모습에서 자본주의 사회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서민의 블랙코미디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돼지의 왕>은 매우 충격적인 애니메이션이며, 영상미학적으로 반() 리얼리즘인 애니메이션이나, 작품에서 보여주는 의미는 매우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으로 <>은 군대 내 신임병장과 막 입영한 이등병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병영생활과 구타, 그리고 군대라는 공간에서 보이는 이질적 세계관을 고발한다. 연상호 감독이 보여준 작품은 언제나 불편하고 날카로우며, 때로는 매우 잔혹했다. 언제 학술 세미나에서 연상호 감독 작품세계에 대한 강연을 들을 때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대중사회의 폭력성과 ()연대성, 그것을 만들게 하는 비인간적 사회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고 한다. 연상호 감독 작품 세계는 결국 우리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가 말하려는 현실이란 모순과 부조리, 폭력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면 화질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투자규모가 적고, 시장형성에서도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돼지의 왕>이나 <>, <사이비>를 보아도 화질은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을 이용하여 현실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돼지의 왕 GV>에서 그가 관객과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래서일까? 이번 <부산행>이란 영화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소극장 강당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실사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으며, 단지 실사영화보단 애니메이션영상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다양하기에 앞으로 영화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더 많이 의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대부분 한국영화나 외국영화를 봐도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상은 들어가고, 미니어처 세트에서 장면을 다른 화면과 연계할 때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상처리를 많이 한다. <부산행> 역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상처리한 부분은 역시 많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부산행>은 실사영상이 메인이 되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인디 애니메이터로서 대중영화에 첫걸음 한 그로써는 영화 <부산행>은 엄청난 성공과 새로운 도전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 팬 중에서 오랫동안 영화에 대해 깊은 이해와 비판, 그리고 연구를 하던 사람에게 <부산행>은 다소 실망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 스토리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고, 뻔한 패턴과 흐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B급 정서 영화는 대부분 황당하게 전개되거나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으며, 마니아적인 요소를 가지기에 엽기 혹은 안 봐도 비디오로 갈 요소가 많다. 그러나 기존 연상호 감독이 인디 애니메이션 세계에 있다가 메인 주류 문화시장인 대중영화에 올라와 성공한 점은 분명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여태까지 도전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대신 <부산행> 이후 <서울역>에서는 실사영상이 아닌 애니메이션영상이기에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에서 한국애니메이션을 외면하고 미국 애니메이션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충실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 제작해오던 작품들과 방향성, 그리고 이번에 보여준 <부산행>, 그 연속적인 관계성에서 보자면 왠지 낯선 풍경이 아닐 수가 없다. 애니메이션 영상과 실사영상은 전혀 다른 영상미를 가지고 있으며, 배우와 배경을 바라보는 카메라 앵글 속의 풍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부산행>은 좀비가 서울역에서 발생하여 전국으로 퍼져 국가적 기능에 큰 타격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만든다. 우연히 부산에 있는 아내에게 가기 위해 딸 수안과 함께 KTX에 탑승한 석우는 기차 안에서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다. 어떤 여성 승객이 발작 후 사망하자, 그 승객 옆에 상황을 보고하던 KTX 여승무원을 공격한다. 그리고 여승무원은 오한과 발작을 일으킨 후 사망하더니 어느덧 다시 일어나 승객들을 공격했다. 이때부터 기차는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좀비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

 

달리는 기차 안에 기차역에 도착할 때까지 멈출 수는 없고, 오로지 괴물을 피해 도망쳐야 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전개되어진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란 틀을 가진다. <부산행>은 사실 발단 그 자체가 위기였고, 절정까지도 위기의 연속이다. 영화에서 어느 일정한 시간을 기준으로 위기의 해소가 있고, 그 해소 안에서 긴장감을 잠시 풀기도 하나,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는 그 조차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잠시 숨만 돌렸을 뿐이지 앞으로 계속 전진하고 후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보통 인간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런다고 가만히 앉아 죽을 수 없으면 인간은 과연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가? <부산행>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다. 자신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인간, 남을 위해 도와주는 사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가 결국 선동에 의해 집단이기주의화 되는 인간들, 인간 군중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다소 비관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인간이 위기에 빠지면 소수에게 구원을 손길을 줄 수 있어도 오히려 외면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기존 시각만을 보여주지 않았다.

 

<부산행>을 보면 열차승객(일단 승무원은 배제)의 분포현황을 보면 대부분 성인이다. 일부 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도 탑승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오직 수안만 있었고, 임신기간이 거의 다 된 성경만이 유일하게 다른 부류였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최후의 생존자는 누구라는 것이다. 분명 임신부인 성경과 그리고 석우의 딸 수안이란 점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 가임 중인 여성과 어린 아이는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 중에 약자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며,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다.

 

<부산행>은 좀비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기차 안에서 생존투쟁을 그린 영화다. 그 지옥 같은 공간에서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을 무시하는 인간들의 냉혹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관객이 느끼기엔 인간으로 용서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막상 인간이 그런 처지에 높인다면 자신이 그런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래도 영화는 이기적인 인간의 세계에서 마지막 희망은 있다고 말해주려 한다. 석우는 서울 유명 펀드매니저 회사의 직원이고, 그는 돈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인 삶을 택한다.

 

석우의 유일한 핏줄인 수안의 행동에 그는 이때까지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닌텐도 게임기가 있었는데, 다시 또 사온 것을 보면서). 딸을 이끌고 부산에 갈 때 그는 현실세계의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번뇌한다. 그리고 상황이 터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눈을 뜬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아버지란 집안의 가장으로 군림하는 게 아니라(그러나 그는 늙은 홀어머니를 모신 점에서 완벽한 의미로 가장은 아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자녀에게 미래라는 시간을 넘겨주는 것이다.

 

석우와 상화, 그리고 영국 일행이 좀비의 벽을 넘어 수안, 성경, 진희에게 목숨을 걸고 찾아간 것은 인간이 마지막 순간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딸, 남편(아버지)와 아내(), 친구와 친구로 말이다. 마지막에 용석의 배신으로 영국과 진희는 같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석우와 상화는 자신의 죽어도 수안과 성경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받고, 그것을 영화의 장면으로 등장한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가?’

 

물론 가족과 친구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라고 말할 수 잇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은 과거가 되어도 사랑하는 사람은 미래로 나아간다. 그래서 <부산행>은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영화 중간에 볼 수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에 젖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간사회를 두고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뉴스에서 좀비로 난리 났는데, 그것을 반국가적 세력이 꾸민 짓이고, 군경이 투입하여 해결 중이라 한다. 실제로 일어난 현실과 미디어의 정보는 분명 다르다.

 

정치권에서 올바른 정보로 해결방안을 주기보단 그저 이 상황을 넘어가려는 오묘함만 보여준다. <부산행>에서 좀비가 나타나 위기에 봉착한 것은 맞으나 위기가 터진 이유, 그리고 그 문제가 발생해도 대처가 되지 않고 오히려 치명적으로(대전역사의 탈출 장면처럼) 작용된 점이다. 시스템이 붕괴한 시점에서 현실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존재는 너무 연약하고 무기력하다. 좀비의 탄생은 그저 단순히 우발적으로 생성된 존재는 아니다. 개봉예정인 <서울역>에서 풀어줄 것처럼, 그것은 시스템 오류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면 기본적으로 그 오류의 근본을 고치기보단 임시방편적으로 누군가를 항상 희생시켜 오류의 발생 그 자체를 은폐시킨다. 처음 좀비의 탄생이 석우가 맡고 있던 생물연구기관에서 발생되었다는 점에서 정치, 경제, 권력, 언론 등의 이해관계에 부조리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물론 현실의 세계에 나는 좀비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나, 단지 좀비 같은 인간을 만들어 내는 존재들은 항상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도 <부산행> 결말처럼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는 점에서 참으로 어려운 주문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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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좀비가 산 사람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통도 없어,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어, 경쟁도 없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어, .......

만화애니비평 2016-08-16 11:08   좋아요 0 | URL
여기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좀비가 되면 덕질을 할 수 없는 겁니다!!!
오덕에겐 잔혹한 일인 겁니다!! 오오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6 12:31   좋아요 0 | URL
아 !